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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06)화 (806/1,004)

806화 만약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조계안은 무슨 심정인지 딱히 말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이 육장봉을 이토록 신임하자, 조계안은 육장봉을 위해 기쁜 한편, 살짝 씁쓸하기도 했다.

그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이 먼저 월령안을 알았었다.

그런데 왜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일편단심이고 육장봉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 하는가. 그녀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도대체 어디가 육장봉보다 못하단 말인가.

육장봉과 비하면 분명 그가 월령안에게 더 잘 대해 주었다.

"전하, 저는 전하를 믿지 않는 게 아니고 또 육장봉을 더 믿지도 않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고, 제 안목을 믿으며, 제 판단을 믿고 물론 제 실력도 믿습니다. ……야율염, 또는 귀염은 절대 육장봉한테 시집갈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허락하지 않거든요."

월령안은 마지막 말을 매우 느리고 가볍게 하며 얼굴의 미소도 거두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음산하고 차가우며 날카로운 기운이 배어 있었다.

"네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조계안은 화가 난 나머지 웃고 말았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허락하지 않느냐? 너는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니냐? 월령안,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육장봉의 마음속에서 너보다 더 중요한 사람과 일들이 수두룩해. 주나라의 강산과 사직, 수하의 병사들, 그리고 현음 공주…….

이것들은 모두 너보다 중요하지. 육장봉의 마음속에서, 너는 첫 번째는 물론이고, 아마 셋 안에만 들어도 대단한 일일걸. 육장봉을 믿는다고? 육장봉이 너를 위해 현음 공주의 안위를 돌보지 않을 거라고 믿느냐? 네가 이렇게 순진하다니. 네가 정말 내가 알던 징벌에 과단성 있고 육친도 몰라보는 월씨 가문 령안이냐?"

월령안은 조계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염명경 귀시가 없으면, 북요 황제가 귀염을 계속해서 지지해 줄까요? 저는 육장봉이 귀염과 결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염명경 귀시를 멸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도 북요 황제가 감히 육장봉을 핍박해 다른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게 할까요?"

"무슨 뜻이냐?"

조계안은 자기도 모르게 바로 앉았다.

"너 염명경 귀시에 손을 쓰려고?"

"폐하께서 전하께 알려드리지 않았나요? 제가 폐하에게서 그 임무를 맡았습니다."

마침 그녀는 염명경 귀시를 무너뜨려 북요 사람들에게 위세를 떨칠 수 있게 되었다.

육장봉을 상대하기 어렵지만, 월령안도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너…… 그래서 어제 황형이 너를 괴롭히지 않았구나."

조계안은 그제야 곧 알아차렸다.

"자신 있는 것이냐?"

그는 어제 하루 동안 걱정했다. 오늘도 아침 일찍 낭현별장에 와서 만약 황제가 월령안을 괴롭히면 가까운 곳에서 막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괜한 걱정을 했던 것이다.

"반반요."

사실 그녀는 팔 할 정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조계안 앞에서 솔직히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뭐 도와줄 거 있느냐?"

조계안은 말을 내뱉는 순간 후회되었다. 곧 도도한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오해하지 마. 너를 도우려는 게 아니야. 육장봉이 변경에 없어서 어떤 사람과 일들은 너의 신분으로 감당할 수가 없을 거라 그래."

"전하 감사합니다. 저는 내일 떠나니 괜찮을 겁니다."

감당할 수가 없으면, 도망가면 되었다.

"내일 떠난다고?"

조계안은 뜻밖이었다.

최 승상은 아침에 월령안에게 최일이 귀경길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월령안은 최일을 만날 생각이 없는 것인가.

"최일이 돌아오는 중이라는 걸 모르는 것이냐?"

월령안은 조계안에게서 최일이 변경에 복명하러 오며 지금 길에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냥 놀란 데 그쳤다.

그녀는 최일을 위해 머물거나 그와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심지어 조계안이 떠난 뒤 월령안은 서 선생에게 일손을 준비하라고 분부했다. 그녀는 밤중에 변경에서 떠나려 했다.

"이렇게 급하게요?"

서 선생은 월령안이 조계안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몰라 걱정스럽게 물었다.

"조왕 전하께서 뭐라도 말한 겁니까?"

"조왕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그냥 제가 변경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서요."

그녀는 서 선생이 걱정하지 않게 설명했다.

"조왕은 육장봉의 이야기를 해 주러 온 것이에요."

"북요에서 육 대장군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건가요?"

서 선생이 물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북요 황제가 현음 공주의 자유를 내세워 육장봉에게 북요 공주와 결혼하라고 강요한다고 하네요."

"북요 황제가 미친 거 아닐까요?"

북요 황제는 육장봉과 하루 이틀 거래한 것도 아니고, 그가 타협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설령 육장봉이 동의한다 해도, 현음 공주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현음 공주는 큰 포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북요 황제는 물론 미치지 않았어요."

월령안은 가볍게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고 하잖아요. 북요는 육장봉에게 패했기에 북요 전체에서 육장봉의 생애와 취향을 확실하게 알아냈을 거예요. 그들은 육장봉이 타협해 그 무슨 북요 공주와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들이 이렇게 하는 건…… 육장봉을 타협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 거예요. 기필코 다른 목적이 있을 거예요."

"무슨 목적일까?"

서 선생이 눈썹을 찌푸렸다.

월령안은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찌 알겠어요?"

서 선생이 제안했다.

"북요에 있는 정탐꾼을 동원해 알아볼까요?"

"아뇨.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육장봉도 생각할 거예요. 육장봉은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를 믿어야 해요."

조계안이 말한 가운데 한마디는 틀리지 않았다. 그녀의 육장봉에 대한 신임은 확고했다.

육장봉은 노인을 제외하고, 그녀가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두 번째 사람이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에 대해 더 언급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튼 저 오늘 밤에 떠날 거예요. 공부에서 전함과 수군을 임대하는 일에 관해서는 공부 쪽에서 일시에 결정 내리기 어려울 거예요. 최 승상한테는 제가 이미 말해 두었으니 앞으로의 일은 서 아저씨께 부탁드릴게요. 계약서가 다 완성되면 신속하게 저에게 보내 주세요. 제가 도장을 찍어 보낼게요."

"네, 큰아가씨."

서 선생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끝내 설득하려던 말을 삼키고 말았다.

지금의 월령안은 변경에 있는 세도가들에게 있어서 기름진 고깃덩어리였다. 누구나 한입 먹으려고 하니 좀 일찍 떠나는 게 좋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미인방과 은양당은 시간이 나면 지켜보다가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세요. 제가 떠난 다음, 저를 도와 최씨 가문, 정씨 가문, 장군왕부 등 잘 알고 지내는 집들에 선물을 보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 주세요.

성안의 저택은…… 하루라도 빨리 지어 주세요. 너무 사치스럽지는 않아도 되고 밀실과 암도(暗道)도 필요 없어요. 그냥 사람이 살 수 있으면 되고 안전을 우선으로 고려해 주세요."

조계안은 명월산장 뒤쪽에 낭현별장을 지었다. 이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녀는 될수록 명월산장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조계안은 그녀에게 악의가 없고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한 것이라고 수차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조계안과 같이 수시로 안면을 바꾸는 미치광이와 교제하고 싶지 않았다.

조계안이 지금은 말짱하지만, 돌아서는 순간 혹시라도 태도를 바꿀지 누가 알겠는가.

그녀가 오늘 밤 떠나기로 일정을 바꾼 것도 조계안이 갑자기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며칠 더 있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황제를 만났을 때, 갑자기 머리가 확 돌아 황제더러 그녀를 며칠 더 남게 하라고 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녀는 반년이 다 지나 변경에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그녀도 이렇게 서둘러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변경에 남아서 찾아올 번거로움과 비하면 그래도 떠나는 것이 나았다.

월령안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분부했다. 그리고 특별히 황궁 특히 노인을 지켜보라고 신신당부했다.

"영감님께서 불편하면 꼭 저에게 가장 빨리 알려 주세요. 괜히 나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기회를 틈타 영감님의 안위로 저를 해코지하지 못하게요. 영감님께 전해 주세요. 저 꼭 제 마음대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무슨 일이 있든지 저를 속이지 말라고요.

이번에 돌아와서 손불사를 만날 수가 없었네요. 손불사에게 전해 주세요. 인색하지 말고 약재도 아끼지 말고 꼭 영감님을 잘 돌봐 달라고 하세요. 그가 원하는 건 어떤 약재든지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면 꼭 찾아 줄 거라고 하세요.

참, 육장봉의 친위대가 모두 돌아왔어요. 내일 그들에게 임무가 있는지 없는지 좀 알아보세요. 만약 없다면, 그들에게 따로 수입을 올릴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세요. 생각이 있다면 무림맹에 가서 저를 찾으라고 하세요. 청주 쪽에 대한 감시를 끊어서는 안 돼요. 그 세 노친네의 움직임을 항상 예의 주시하세요. 소함연은 답장이 왔나요? 없으면 연락해서 가능한 한 그녀가 나씨 가문에서 발을 붙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세요."

월령안은 변경을 떠난 지 반년이 넘었다. 서둘러 돌아왔다가 겨우 이틀만 있고 떠나야 했다. 그녀는 너무 많은 일들을 서 선생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말을 타고 떠날 때까지 여전히 서 선생에게 분부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자조했다.

"저를 좀 보세요…… 말만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주절주절, 제가 다 귀찮네요."

서 선생은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큰아가씨께서는…… 우리를 걱정하고 있잖아요."

월령안은 이 말들을 편지에 적을 수도 있었다. 직접 만나서 분부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녀가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는 것은 그저 아쉬워서 그러는 것이었다.

서 선생이 말하지 않았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말을 하자 그녀는 곧 눈시울을 붉혔다.

"세상 사람들은 상인들이 이익을 중시하고 이별을 가볍게 여긴다고 하죠. 하지만 만약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누가 가족과 항상 함께 지내는 것을 싫어하겠어요. 누가 밖에서 동분서주하면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기약 없는 날들을 보내고 싶겠어요."

그녀는 변경으로 돌아와 노인과 만나 보지도 못했다. 가능하다면 그녀는 정말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변경에서의 잡다한 일들을 제외하고, 육장봉은 북요에서 북요 황제에게 혼사로 발을 잡혔다.

비록 북요 황제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그가 호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북요로 가서 육장봉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후방에서 그를 위해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염명경 귀시를 없애는 것이었다.

"슬퍼하지 마세요. 나와 어르신은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겁니다. 언제든지 큰아가씨가 고개를 돌려 보면 우리가 그곳에 있을 겁니다."

서 선생은 월령안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네."

월령안은 눈시울을 붉히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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