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5화 월령안의 믿음
"어르신 역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아가씨께서 대장군을 위해 서역에서 많이 조심했다고요. 하지만 폐하께서는 믿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어르신이 또 한 무리의 사람을 서역에 보내 서역의 다른 몇 나라를 공략하라고 제안하셨습니다."
월령안은 서역에 체류한 시간이 너무 짧아 겨우 열몇 개 나라만 굴복시켰다. 그 외 나라들은 건드리지 않았고, 건드릴 마음도 없었다.
염 황숙은 황제가 불복하자, 그가 깨끗이 승복할 수 있게 계속해 서역에 손쓰라고 조언해 주었다.
"영감님은……."
염 황숙 이야기가 나오자 월령안은 살짝 우울해졌다.
"관두죠. 아저씨께 물으면 또 아무 일도 없다고 하실 테죠. 저한테 사실을 얘기해 주지 않을 거잖아요. 손불사는요? 궁 밖으로 나올 수 있나요? 한번 만나 보고 싶어요."
그녀는 노인의 몸 상태가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 노인이 그녀를 두고 떠날까 두려웠다.
"어찌 감히 큰아가씨를 속이겠어요. 어르신은 확실히 많이 좋아졌습니다. 손 신의가 새로운 약을 지었는데 어르신의 병에 효과가 있습니다. 어르신은 오늘도 저와 이야기했었습니다. 큰아가씨가 관성과 서역에서 어르신의 체면을 깎지 않고 너무나 잘해 줘서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서 선생은 느긋한 미소를 지으면서 보건대 아주 기쁜 듯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그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손불사는 나올 수가 없나요?"
그녀는 직접 노인의 가르침을 받았다. 노인이 가르친 사람이 얼마나 일을 잘하고, 얼마나 남을 잘 속이는지 그녀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만 있다면, 얼굴도 붉어지지 않고 거친 숨도 쉬지 않으며 눈도 깜박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진실보다 더 진실되게 말할 수도 있었다.
"손 신의가 궁 밖으로 나오려면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황제에게 허락을 받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월령안이 부탁하면 말이다.
월령안은 화가 나서 말했다.
"분명 제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가 만나는데도 남한테 부탁을 해야 한다니요. 정말 빌려주고 그냥 떼인 꼴이네요."
서 선생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황실 사람들은 항상 제멋대로였다. 그들의 눈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두 황실의 것이었다.
손불사는 처음이 아니고, 또한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월령안은 화가 났지만 계속 따지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제가 관성에 있을 때, 저한테 영감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누설한 사람은 누가 보낸 거예요? 조사해 냈나요?"
"그 일은…… 황궁 안까지 조사했는데 폐하께서 손을 써서 증거를 없앴습니다."
서 선생은 눈을 감고 기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태후인가요?"
황제가 손을 써 흔적을 지워 줄 사람은 태후뿐이었다.
"모릅니다."
서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은 누군가 태후를 이용했다고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너무 빨리 손을 쓰셔서 모든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역시 신같이 만능인 적수는 두렵지 않지만 돼지같이 둔한 동료는 무섭네요. 폐하는 돼지인가요? 흔적을 지워 버리기 전에 스스로 좀 조사해 보지 않았나요?"
월령안은 화가 나서 눈알을 뒤집었다.
"바깥의 적을 미처 깨끗하게 척결하지 못했는데, 내부에서 먼저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고, 믿지 못하다니요. 그러니까 청주 그 노친네들이 청주에서 멀쩡하게 살아있지."
서 선생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일에 대해 염 황숙도 많이 언짢아했다. 하지만 황제가 이미 다 일을 그르쳤는데 어찌할 수 있겠는가.
집사는 화청에 들어서서 월령안이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감히 예도 올리지 못하고 곧장 말했다.
"큰아가씨, 이반반은 살구나무 숲 뒤편에 있는 낭현별장에 갔습니다."
"낭현별장? 뭐 하는 곳이에요?"
그녀는 명월산장 부근에 무슨 별장이 있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인이 큰아가씨께 알려드리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낭현별장은 황실에서 새로 지은 별장입니다. 초여름에 시작해 지었으며 이제 윤곽이나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소인이 가서 알아봤지만 낭현별장을 누가 지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월령안이 더 물을 필요 없이 집사가 상세하게 말했다.
월령안은 서 선생을 바라보았다.
"영감님이 지은 건가요?"
서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은 아마 조왕 전하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다만 짐작일 뿐이었다. 낭현별장에서 소식을 꽁꽁 숨겼기에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명월산장 뒤편에 별장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서 선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인이 급히 와서 보고했다.
"큰아가씨, 조왕 전하께서 오셔서……."
그런데 하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계안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모두 내려가거라."
서 선생과 집사는 움직이지 않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암시를 받고서야 두 사람은 물러갔다.
"황실 별장에서 내 말이 네 말보다 먹히지 않다니."
조계안은 월령안의 옆에 앉았다. 그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월령안의 얼굴을 지켜보면서 입으로는 싫은 티를 내며 말했다.
"육장봉은 너를 어떻게 보살핀 것이냐. 어째 깡마르고 거메졌어. 워낙 못생겼는데 더 마르고 거메지면 앞으로 시집이나 갈 수 있겠느냐?"
"그에 대해 조왕 전하께서 근심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월령안은 말없이 뒤로 옮겨 앉았다.
그녀는 소유욕으로 가득 차 있는 조계안의 눈빛이 몹시 싫었다.
그녀의 움직임이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계안에게 들켰다.
그의 눈에는 음흉하고 악랄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마음속 열망을 애써 억제하고 눈길을 거두며 악의적으로 입을 열었다.
"너 알고 있어? 육장봉이 곧 결혼할 거야. 물론…… 신부는 네가 아니야."
월령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조왕은 거짓말을 해도 좀 진지할 수 없을까?'
월령안은 '오', 하는 소리만 냈다. 온몸으로 대충 응수하고 있음을 알렸다.
조계안은 말을 해도 너무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도저히 그에게 장단을 맞춰 주며 놀라고 마음에 상처 입은 표정을 지어 보일 수가 없었다.
"네가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불행하게도 사실이야."
조계안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두 발을 겹쳐서 한쪽에 놓인 작은 탁자에 올려놓았다.
"육장봉이 북요 공주에게 손을 대서 북요 황제가 그더러 공주와 결혼하라고 한대."
"그 공주가…… 마침 야율염이라고 부르지는 않겠죠? 일명 귀염이라고도 부르고 염명경 소주이기도 한."
조계안이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보아 월령안은 가까스로 한마디 대답했다.
"이미 알고 있었구나. 그럼 육장봉이 조만간 타협하리라는 것도 알겠네."
조계안은 전혀 왕으로서의 위엄이 없이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 물을 마시려 했다.
월령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건 제 찻잔입니다."
"오, 내가 이미 마셨는데, 어떡하지?"
조계안은 잔의 찻물을 다 마시고 빈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정말 매를 부르는 표정으로 웃었다.
"전하께서 독살당할까 두렵지 않다면 괜찮습니다."
월령안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조계안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나는 목숨줄이 질기거든."
"전하, 다른 일이 또 있나요?"
월령안은 입을 열어 손님을 쫓았다.
그녀는 변경에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 시간에 조계안을 접대하기 너무나 귀찮았다.
"월령안, 너한테 농담한 거 아니다. 북요 황제는 현음 공주를 주나라에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육장봉과 야율염을 결혼시키려 해. 현음 공주가 육장봉의 마음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너도 잘 알 것이다. 현음 공주를 주나라로 데려오기 위해 육장봉은 조만간 타협할 거야."
월령안은 지금 그를 믿지 못하는 것인가.
"저는 육장봉을 믿어요."
북요 그쪽이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계안의 말만으로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설령 진짜라 해도 뭐 어떤가.
아직 결혼한 게 아니잖는가.
"그를 믿는다고?"
조계안은 차갑게 웃었다.
"월령안, 정신 좀 차려…… 육장봉의 마음속에서 너는 네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육장봉이 서역에서 현음 공주를 위해 너를 한 번 버릴 수 있으면, 또 두 번째도 있을 거야."
"오."
월령안은 건성으로 대답하다가 조계안이 울화통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인 것을 보고 영혼 없이 한마디 덧붙였다.
"전하께서 귀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할게요."
조계안은 월령안의 평온함 때문에 폭발할 것만 같아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다.
"월령안, 내 말이 안 들려? 육장봉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 한다고. 너를 버렸다고."
월령안은 육장봉을 이토록 믿는단 말인가.
다른 여자를 아내로 삼는다는 말에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여전히 믿는단 말인가.
"전하, 진정하십시오."
월령안도 덩달아 일어섰다.
"내가 너더러 냉정해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조계안은 옆쪽에 있던 작은 탁자를 발로 걷어차 날려 버렸다.
분명 그가 월령안의 구경거리를 보러 온 거였다. 심지어 어떻게 그녀의 진심이 짓밟힌 것을 비웃을지 생각까지 해두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월령안과 역할이 바뀌었다. 월령안이 그를 구경거리로 삼아 지켜보고 그더러 냉정해지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무슨 냉정 같은 소리. 월령안이 이처럼 냉정하자, 그는 전혀 냉정해질 수가 없었다.
"전 매우 냉정합니다. 냉정하지 못하신 것은 전하입니다."
월령안은 조계안더러 앉으라고 손짓했다.
"육장봉이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다는데, 넌 왜 이렇게 냉정할 수 있어?"
조계안은 이를 악물고 씩씩거리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아직 아니잖아요?"
그녀가 급해 하지 않는데 조계안이 왜 급해 하는가.
"상대는 북요 공주다. 북요가 후원자가 되기에 육장봉이 결혼하게 될 때는 이미 늦은 거야."
조계안도 자신이 왜 급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육장봉이 다른 사람을 아내로 삼으면 그로서는 기뻐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는 왜 월령안보다 더 조바심이 나고 그들을 걱정하는 것인가.
'정말…… 미치겠군!'
"육장봉이 허락할 리 없고, 폐하도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도 허락할 수 없었다.
월령안의 눈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보아하니 그녀는 염명경 귀시를 하루빨리 없애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육장봉의 혼인을 팔아 현음 공주를 데려올 수 있었다면, 현음 공주는 진작 돌아왔을 거예요."
전에 육장봉은 현음 공주를 한 번 찾아갔었다. 그녀가 들은 바로는 북요에서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현음 공주 본인이 돌아오지 않으려 했다.
현음 공주는 큰일을 할 사람이었다. 그때 그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더욱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결국 너는 육장봉을 더 믿고, 나를 믿지 않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