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화 살금살금, 뭐 하는 짓이냐?
"살금살금, 뭐 하는 짓이냐?"
황제는 반나절이나 궁리해도 월령안과 최일을 함께 묶을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한창 초조해하고 있는데 이반반의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자 더욱 불쾌해졌다.
"폐하……."
이반반은 속으로 황제가 기분이 언짢을 때 맞닥뜨려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이반반은 몸이 굳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왕 전하께서 이부자리를 성 밖의 낭현(琅嬛)별장에 옮기라고 하셨습니다."
"낭현별장? 계안이 왜 갑자기 출성하려 하는데? 아니……. 짐의 기억에는 황실에 낭현별장이라는 곳이 없구나. 대체 그곳이 어디냐?"
황제는 의혹이 가득 한 얼굴로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지만, 낭현별장이라고 떠오르지 않았다.
"폐하, 초여름에 조왕 전하께서 폐하께 성 밖에 별장을 짓겠다고 보고했었습니다. 그게 바로 낭현별장입니다."
이반반은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황실 형제끼리 잔꾀를 부리는데 일개 하인이 가운데 끼어 참으로 힘들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기억이 있구나."
황제는 그 일을 떠올리고 얼굴빛이 좀 나아졌다.
"초여름에 시작했는데 벌써 다 지은 것이냐? 공부 사람들이 계안이를 속인 건 아니겠지. 책임감 없이 대충 지어 놓고 그런 건 아니냐?"
"폐하, 낭현별장은 앞뜰만 지은 상태입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었다.
"앞뜰만 지었는데 계안은 왜 거기로 가려는 것이냐?"
조계안이 언제부터 저리 대충대충 지낸 것인가.
이반반은 이 일을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
"폐하, 낭현별장은 명월산장 바로 뒤쪽에 있습니다."
황제는 그만 굳어져 버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곧 화근이었다.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황제는 이를 갈았다. 사람을 잡아먹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일찍 알았으면 그는 결코 조계안이 그 무슨 낭현별장을 짓게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반반은 깜짝 놀라 부들부들 떨었다.
"폐, 폐하…… 조, 조왕 전하께서 소인들이 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꺼져!"
황제는 자기 동생이 어떤 성격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아랫사람과 따져도 별 의미가 없었다.
"네, 폐하."
이반반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물러났다. 겨우 두 발짝 물러서자 황제는 차가운 얼굴로 다시 호통쳤다.
"이리 오너라!"
이반반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일 초라도 빨리 꺼지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황제가 명령했다.
"가서…… 조왕에게 어명을 전해라. 그더러 짐을 만나러 당장 오라고 해! 어린 내관을 보내지 말고 네가 직접 한 번 가거라."
이반반은 잠자코 있었다.
'소인은 할 수 없습니다!'
황제가 재촉했다.
"어서 가지 못할까!"
"네, 폐하."
이반반은 눈물을 머금고 대답하고 나서 급급히 궁을 나섰다.
* * *
이반반은 어명을 받들고 출성했다. 그리고 성밖에서 말을 타고 명월산장으로 돌아가는 월령안을 만나 높은 목소리로 불렀다.
"월 낭자! 월 낭자!"
"이반반?"
월령안은 뒤쪽에서 누군가 부르자 속도를 늦추었다.
이반반은 속도를 올려 따라잡고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월 낭자는 지금 명월산장에 돌아가는 것입니까?"
"네."
그녀는 성안에 거처할 곳이 없었다. 출성해 명월산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마침 저도 그쪽으로 가는데 같이 갈까요?"
조계안이 지은 낭현별장은 명월산장의 뒤쪽에 있었다. 그리고 사이에 살구나무 숲이 있는 데다가 낭현별장의 지세가 상대적으로 낮아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다.
월령안은 아마 조계안이 그녀의 뒤쪽에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이반반께서 앞서세요."
월령안은 말을 몰아 한 걸음 양보했다. 얼굴에는 적절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어 귀찮아하는 것을 보아낼 수 없었다.
이반반은 월령안이 틀림없이 시큰둥해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
그가 직접 찾아가서 어명을 전하면 조계안은 결코 그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월령안을 데리고 가면 꼭 그녀의 체면을 봐줄 것이다.
그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월령안을 낭현별장으로 구슬려 데려가는 것이었다.
가는 내내 이반반은 줄곧 월령안과 이야기를 나누려 했고, 월령안은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 없었다. 이반반이 아무리 노력해도 월령안은 가볍게 한두 마디 대답할 뿐이었다.
그 대답마저도 하기 싫으면 말을 타서 먼지가 많다는 이유로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이반반은 방법이 없자 염 황숙을 미끼로 유혹하려 했다.
하지만 전에는 염 황숙의 일만 말해도 들뜨던 월령안이 이번에는 매우 침착해 말 한마디도 받지 않았다.
그녀는 이반반이 말하면 듣고, 말하지 않으면 묻지 않았다.
모든 방법이 다 통하지 않았다.
이반반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으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가는 내내 그녀를 구슬리기 위해 그녀가 흥미를 느낄 만한 일을 골라 말했다.
월령안은 가는 동안 많은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반반에게 아무 대답도 주지 않았다.
아무 일 없이 아부하는 것은 반드시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이반반의 과도한 열정에 그녀는 괜히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 감히 상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월령안이 이반반을 무시할수록, 이반반은 더 들러붙고 더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월령안이 명월산장에 이르렀다.
"이반반, 저 도착했어요. 먼저 실례할게요."
월령안은 이반반을 만난 후 가장 긴 말을 했다. 그러고는 이반반에게 반응할 기회도 주지 않고 말을 몰아 명월산장으로 달려갔다.
"월……."
이반반이 정신을 차리고 쫓아가려고 하자 월령안의 뒤를 따르던 호위가 그의 앞길을 막았다.
"우리 집 큰아가씨께서는 지쳤습니다. 오늘은 손님을 접대하기 힘들 겁니다."
이반반은 속에 열불이 났다.
'그래서 내내 내가 아부한 것이 헛일이었단 말인가?'
이반반은 꼭 닫혀 있는 대문을 보면서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그가 지금 순간 황제가 왜 월령안을 싫어하는지 특별히 이해되었다.
그도 월령안이 싫어졌다.
월령안은 너무 영리라고 간사했다. 분명 그의 속셈을 간파하고서도 모른 척하면서 그가 아부하게 내버려 두다가 나중에는 문전 박대를 한 것이다.
그를 바보처럼 속인 것이 아닌가.
정말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반반은 화가 나서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명월산장의 문을 부술 용기는 없었다.
염 황숙이 아직 황궁에서 지키고 앉아 있었다. 황제도 월령안을 참아야 하는데 일개 내관이 어찌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염 황숙에게 또다시 머리가 터지고 싶지 않았다.
이반반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떠나갔다.
명월산장의 호위는 월령안에게 이에 대해 보고했다.
"사람을 보내 그가 어디로 가는지 봐라."
월령안은 한마디 분부하고 안뜰로 걸어갔다.
"큰아가씨."
서 선생은 정원 한가운데 서 있다가 월령안을 보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서 아저씨."
월령안도 발걸음이 빨라졌다.
"무슨 일이 있나요?"
"장군왕이 큰아가씨를 찾아뵙겠다고 명첩을 보내왔습니다. 그 외에 진국공(鎭國公), 원국공(遠國公), 안평후(安平侯), 진원(鎭遠) 장군……."
서 선생은 무려 열다섯 명의 이름을 말했다. 게다가 모두 신분이 높은 사람으로 월령안이 미움을 사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관성 무역지역 때문인가요?"
월령안은 그 원인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장군왕 세자가 부잣집 도련님들을 데리고 관성에 갔었다. 그녀는 장군왕 세자와의 교분을 봐서 그 사람들에게 돈을 벌 기회를 주었다.
그 부잣집 도련님들은 다른 능력은 없어도 자랑하고 뽐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들은 변경으로 돌아와 관성 무역지역에 대해 마구 떠벌렸을 것이다.
서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 몇은 서역 장사를 위해 온 것입니다."
월령안이 서역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그녀가 밉보여서는 안 되는 극소수의 몇 사람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월령안은 그들을 부득불 만나 봐야만 했다.
"폐하께서는 제가 변경에 사흘만 머물도록 허락하셨어요."
그녀는 이럴 줄 알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미리 황제 앞에서 떠날 시간을 약속했다.
그렇지 않고 변경에 머문다면 그녀는 그 세도가들에게 무척이나 시달릴 것이었다.
월령안은 비록 상인이지만, 문관으로는 최씨 가문의 지지를 받고, 무장으로는 육장봉이 뒷받침이 되어 주었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은 감히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다.
지금 감히 그녀에게 명첩을 보내고 관성 무역지역과 서역 장사에서 한몫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신분과 지위,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월령안이 감히 그들에게 밉보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확실히 그 세도가들에게 밉보여서는 안 되었다.
만약 평소라면 아무리 싫어도 시간을 내어 그들과 한번 만났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일부 이익을 내주어 편안함을 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사람들을 상대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월령안은 모든 사람들을 거절했다. 그리고 성의를 보여 주기 위해 직접 사과문을 썼다.
황제가 그녀에게 변경에 사흘만 머물도록 허락했다고 알리면서 오늘은 이미 이틀째이므로 내일이면 반드시 변경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그녀는 도저히 뭇사람들과 만날 수가 없다고 했다.
"성문이 닫히기 전까지 성안에 가져가거라."
월령안은 편지를 집사에게 건네면서 절대 너무 빨리 보내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일찍 보내면 그 사람들은 오늘 내로 와서 그녀를 막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도망갈 수가 없었다.
집사는 편지를 받고 허리를 굽혀 물러갔다.
그제야 서 선생은 앞으로 다가갔다.
"큰아가씨, 내일 떠나려고요?"
"네."
월령안은 서 선생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러고는 옆에 놓인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가능하면 저는 오늘 밤에 떠나고 싶어요."
그녀는 현재 자신의 가치를 잘못 가늠했다. 그녀는 이미 육씨 가문에서 쫓겨나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월령안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천금 가는 몸값에, 손에는 두 개의 큰 상로(商路)를 장악하고 있었다. 손가락 틈으로 아주 작은 부스러기를 흘려도 그것을 주운 보통 사람들은 평생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대상인이었다.
그녀가 변경으로 돌아온 뒤 그녀를 지켜보며 그녀한테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변경에 더 머물면 번거로움만 많아질 것이다.
"일찍 떠나는 것도 좋습니다. 괜히 폐하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말입니다."
서 선생은 웃으며 월령안의 아래쪽에 앉았다.
"서역의 일에 폐하께서 아주 불만이 많으십니다. 폐하께서는 육 대장군이 사적인 감정에 얽매어 아가씨의 사정을 봐주었다고 생각하시고 몰래 또 사람들을 보내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서역으로 간 사람이 육장봉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예요. 만약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으면…… 한 사람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거예요."
월령안은 조소가 섞인 미소를 지었다.
"폐하께서는 아마 내가 담이 얼마나 큰지 모르나 보네요. 저는 육장봉 말고는 누구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