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화 우리는 모두 다 한 식구 아닌가
뇌 선생은 직접 월령안을 데리고 가려 했다. 하지만 월령안이 완곡하게 거절하자 자기 손자더러 길을 안내하게 했다.
뇌 선생의 손자는 당시 청주에서 월령안을 만났었다. 그때 그는 그녀에게 불만을 가지고 적지 않게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녀 앞에서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큰아가씨, 할아버지께서 일부러 그러하신 것은 아닙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태어나서부터 가족의 기대를 받으셨고, 평생의 꿈이 뇌씨 가문을 거느리고 공부에 되돌아와 뇌씨 가문의 조선 기술을 빛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공부로 돌아왔습니다. 그분은…… 그분은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 하세요. 결코, 결코……."
그들은 월령안에게 감격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황제가 월령안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감히 가까이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들은 월씨 가문 상사에서 나왔다. 출신부터 황제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는데, 더하여 그녀와 가깝게 지낸다면 황제에게 더욱 밉보일 것이다.
그들은 어렵사리 오늘을 누리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고 싶지 않았다.
월령안이 그들을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큰아가씨,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아가씨께 줄곧 감사하게 여기고 계십니다. 다만 어쩔 수 없어서…… 아가씨께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소년은 얼굴을 붉히고 눈물을 반짝이며 소리 없이 애원했다. 아무리 무정한 사람이라도 그 모습을 보면 감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월령안은 감동하지 않았다.
뇌씨 가문은 그녀에게 감격하지 않아도 되고, 그녀와 거리를 유지해도 되었다. 하지만 일단 선택했으면 그녀에게 아무 응어리가 없기를 바라서는 안 되었다. 더욱이는 그녀가 뇌씨 가문의 어려움을 이해하기를 바라서는 안 되었다.
그녀더러 무엇을 이해하라는 말인가.
그녀가 뇌씨 가문의 어려움과 부득이함을 이해하면, 누가 그녀를 이해해 주겠는가.
그녀는 뇌씨 가문에 빚진 것이 없었다.
뇌씨 가문은 월씨 가문에서 키운 장인이었다. 뇌씨 가문이 월씨 가문과 고용관계를 해지하기 전에 연구해 낸 모든 것은 응당 월씨 가문의 소유여야 했다.
뇌씨 가문이 깊은 산속에서 십 년을 지킨 정분을 보아 그녀는 그들이 만든 철선과 도면을 가지지 않았다. 도리어 뇌씨 가문에 아름다운 미래를 선사했다.
그녀는 뇌씨 가문에 할 만큼 다 했다.
그녀와의 관계로 공부에 들어갔으면서 그녀와 관계를 끊으려 하고, 또한 그녀가 개의치 않기를 바라다니. 뇌씨 가문은 정말이지, 생각이 참 야무졌다.
월령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웃기만 하다가 고개를 돌려 최 승상과 이야기했다. 뇌 선생의 손자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최 승상은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월령안과 한담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뇌 선생의 손자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뇌 선생의 손자는 몇 번이고 입을 열어 말하려 했지만 기회를 찾지 못했다. 얼굴에는 당황해하는 빛이 살짝 어렸지만 결코 후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공부의 사람은 뒤를 따르면서 월령안과 뇌 선생의 손자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공부의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급히 월령안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뇌씨 가문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월령안에 대한 황제의 혐오는 겉으로 드러나 조정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황제는 월령안을 싫어했다. 그녀와 연관된 모든 사람과 일들을 못마땅하게 여길 정도로 싫어했다.
뇌씨 가문은 변경에 도착해서 철선을 바쳤다.
황제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들이 워낙 월씨 가문을 위해 일을 했었다는 말을 듣고는 곧 차가운 얼굴로 바뀌어 그들을 한쪽에 내버려 두고, 되는 대로 아무 상이나 조금 내려 주었다. 그들을 쓰려는 뜻이 전혀 없었고 공부에 들이는 일은 더욱 없었다.
결국 최 승상이 황제 앞에서 그들을 위해 말을 해 주고 나서야, 황제는 그들을 공부에 불러들이고 품급을 주었으며 조정의 장인으로 삼았다.
뇌씨 가문 사람들은 월령안에게 감격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의 압박으로 그들은 반드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다만 선택을 했으면 월령안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서는 안 되었다. 더욱이 그녀가 조금도 개의치 않기를 바라서는 안 되었다.
뇌씨 가문의 이런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배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월령안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다니. 그녀가 보복하지 않기만 해도 매우 관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는 비록 공부시랑이어서 조선소를 관리하지만 평생 그 자리에 있을 건 아니었다.
며칠 지나면 그는 인맥을 통해 자리를 이동할 것이다. 지방으로 발령 나도 괜찮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비록 뇌씨 가문처럼 그렇게 욕심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월령안과 감히 가까이 지낼 수도 없었다.
월령안과 가까이 지내려면, 최 승상 같은 출신이 아니고서는 보통 사람은 모두 좋은 결말이 없을 것이다. 그는 황제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피하기로 했다.
월령안과 최 승상은 말하는 와중에 반쯤 만들어진 배 두 척을 보았다.
월령안은 얼핏 보고는 웃고 말았다.
이 두 척의 배는 작은 배였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이런 배는 아무리 개조하더라도 화물선이 될 수 없었다.
화물선의 가장 주요한 목적은 화물을 싣는 것이었다.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많이 실으면 실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최 승상도 곧 알아챘다. 그는 '변변치 못한' 작은 배 두 척을 보고 울적하면서도 난처해하며 말했다.
"이것 좀 봐…… 내가 미리 와 보지도 않고 말을 얹었네. 이 배는 고쳐도 쓸 수가 없겠구먼."
너무나 작은 배라 개조할 공간조차 없었다. 어떻게 합리적으로 월령안을 변경에 남길 수 있을까.
'에잉, 아버지 노릇을 하기가 정말 어렵군.'
"아니에요. 이 두 배는……."
월령안은 원래 최 승상에게 내려설 퇴로를 열어 주려던 참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공부의 전함을 외부에 팔 수 있나요?"
"월 낭자, 새 전함에는 여러 가지 새로운 공예 기술이 들어갔습니다. 대외적으로 팔지 않습니다."
공부의 사람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최 승상에게 밉보일까 두려워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월 낭자, 최 승상께서는 앞서 이 두 척의 배를 화물선으로 개조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두 배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까닭에 새로운 공예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최 승상의 체면을 봐준 것이지, 아니었으면 최 승상의 체면을 내세워도 그들은 결코 월령안에게 배를 주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그럼 임대는요? 수군과 배를 함께 임대할 수 있나요? 당신네 공부에서도 수입을 올릴 수 있고, 병부에서도 병사를 훈련시킬 수 있잖아요. 이러면…… 모두에게 이득 아닌가요?"
"네? 월 낭자…… 그게 무슨 뜻입니까?"
공부의 사람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오히려 최 승상이 무엇인가 짐작한 듯했다.
"령안, 이 일은 저 사람이 결정할 수 없단다. 먼저 네 생각을 나에게 이야기해 보렴. 그리고 우리 다시 공부상서와 병부상서를 찾아가서 이야기해 보자꾸나."
"승상 나리. 저는 공부의 전함을 임대해 화물선과 함께 출항시켜 화물선을 호위하려고 합니다. 그리하면 매번 출항해서 얻은 수익의 일 할을 임대료로 드리겠습니다. 이 임대료는 공부의 전함 연구와 개발 및 병부의 수군 훈련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직접 공부, 병부와 협력하고 호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 외에도 저는 또 조정을 도와 해외에서 새로운 작물을 찾는 일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전에 청주에서 가져온 두 가지 알곡 작물에 대해 승상 나리께서도 잘 알 것입니다. 해외에서 그 두 가지 작물을 찾을 수 있는 만큼, 틀림없이 다른 작물도 있을 것입니다. 상단이 매번 출항할 때마다 많은 알곡 작물을 찾을 수 있다고 약속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십 년 동안 조정에 새로운 알곡 작물 열 가지를 찾아 주겠다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찾지 못하면 한 가지에 십 년 동안 해운업 수익률의 일 할을 배상으로 드리겠습니다."
공적인 일을 말하자 월령안은 최 승상의 호칭도 모두 바꾸어 부르면서 완전히 사무적인 태도를 취했다.
뇌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남의 덕을 보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남이 잘나가면 곧 들러붙으려는 사람도 아니었다.
뇌씨 가문은 그녀를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뇌씨 가문에서 그렇게 그녀와 선을 그으려 하지 않아도, 둘의 관계가 유지되었다면 그녀가 먼저 배려하여 뇌씨 가문을 멀리했을 것이다.
"나는 그 일이 참 괜찮다고 생각한다."
최 승상은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찬성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공부의 사람은 월령안의 말에 눈앞이 번쩍 뜨였다.
그는 이제 인맥을 통해 지방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월령안과 공부의 이번 협업이 성사된다면, 앞으로 공부는 더 이상 호부가 말하는 아무 재간도 없으면서 돈 쓰는 데만 일등인 부서가 아닐 것이다.
앞으로 그들 공부도 수입이 있게 되어 육부 앞에서 허리를 곧게 펼 수 있을 것이다.
"승상 나리, 월 낭자…… 소인이 지금 가서 두 상서 대인을 모셔오겠습니다. 다시 상세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월령안과 최 승상이 재촉할 필요가 없었다. 공부의 사람은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을 공부에서 사무 보는 곳으로 데려가더니 또 바삐 공부상서와 병부상서를 찾아갔다.
호부상서는 필요 없었다.
호부상서는 돈을 받기만 하고 절대 안 나눠 주려 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가 소문을 듣는다면 그들 공부와 병부는 돈을 만져 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일을 호부상서에게 알리기는 알려야 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 공부가 병부와 어떻게 돈을 나눌 것인지를 다 의논한 다음, 호부상서에게 알려야 했다.
월령안은 변경에서 소문난 여 재신이었다. 돌도 금으로 만든다는 설이 전해지기에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대상인뿐만 아니라 호부상서도 있었다.
반쯤 빈 국고를 지키는 상서대인으로서 호부상서는 압박이 어지간히 큰 게 아니었다.
국고에 돈이 없지만 돈을 써야 할 곳은 한두 곳이 아니었다. 호부상서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방법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최 승상이 아침 일찍 월령안을 데리고 공부 조선소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호부상서는 마치 비린내를 맡은 고양이 같았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사람을 보내 공부만 지켜보면서 수시로 공부의 동향을 보고하게 했다.
지켜보던 관리가 공부의 사람이 병부상서를 불렀다고 보고하자마자 호부상서는 두말없이 의복을 단정히 하고서 따라갔다. 병부상서보다 한 발짝만 늦었을 뿐이었다.
"승상 나리!"
호부상서는 최 승상에게 예를 올리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전혀 자신을 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예를 올리려 하자 그는 제지했다.
"우리는 모두 다 한 식구 아닌가. 예의를 차리지 마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