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7화 황제의 사냥개
물론 조정에서 염명경 귀시에 손을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격에 격파하지 못한다면 그곳 사람들이 주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다.
이 세상은 항상 다스리기가 힘들지, 소란을 피우는 것은 아주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월령안의 말은 너무나 일리가 있었다. 황제는 전혀 반박할 수가 없었다.
황제는 답답한 기색으로 말했다.
"무림맹의 사람들은 상대하기 힘들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그렇다고 돈 몇 푼 때문에 목숨을 걸려고 하겠느냐. 염명경 귀시에 손쓰라고 하면 그들이 네 말에 따르겠느냐?"
"폐하, 무림맹의 수 맹주는 저의 오라버니입니다."
비록 의남매지만 수횡천은 오라버니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조정의 경우, 무림맹 사람들을 상대하기 어렵겠지만 그녀에게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녀의 이번 행동은 서로를 돕는 길이었다.
무림맹은 이미 유명무실해졌다. 만약 계속하여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망할 것이다.
강호의 각 대문파는 조정의 탄압하에 모두 메추리처럼 한쪽 구석에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평생 지금처럼 풀이 죽어 살고 싶겠는가.
예전에 무림인들이 강호를 종횡무진하며 조정의 법을 지키지 않고 오직 강호의 규칙만 따르던 영광을 되찾을 생각이 없겠는가.
만약 정말 생각이 없다면 그들은 이미 조정에 귀순했을 것이다. 이렇게 구석에 가만히 숨어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월령안은 자신 있게, 침착하게 말했다.
"무림맹이 안 되면 천목신교도 쓸 수 있습니다. 귀시는 어느 정도 천목신교의 영역을 빼앗고 있습니다. 천목신교의 사람들은 모두 사파 사람들이라 돈을 위해 일을 합니다. 제가 값을 많이 주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돈만 있다면 목숨을 걸 사람이 왜 없겠는가.
가능성은 충분했다.
돈이 충분하면 그녀는 귀시의 사람으로 귀시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황제는 아무리 원하지 않더라도 월령안의 이 조치가 실행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답답하게도 이 일은 조정에서 나서지도 못하고, 나설 방법도 없었다.
무림맹이나 천목신교 모두 조정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고 심지어 은밀히 맞서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소인이 폐하께 청을 드립니다. 월씨 가문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월령안은 읍을 하면서 큰절을 했다.
"그건 안 된다."
'월령안은 지금 무슨 좋은 생각을 생각하는 거야.'
그 월씨 가문 사람들로 월령안을 위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인질들이 손에 있으면 황제는 어쨌든 그나마 마음이 든든했다.
다시 말해 만약 월령안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그 사람들 속에서 월령안을 대체할 사람을 찾을 수도 있었다.
"폐하, 그럼 소인이 그들을 한번 만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녀는 황제가 동의하지 않을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런 작은 일로 황제가 월씨 가문 사람들에게 자유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른 다음, 한 걸음 양보해 황제가 그녀의 그다음 조건을 승낙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허!"
황제는 월령안에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냉소를 날렸다.
월령안은 움츠러들지 않고 다시 한번 청구했다.
"소인은 염명경 귀시가 완전히 없어진 다음, 그들을 만나러 갈 것입니다."
그녀는 반드시 방법을 강구해 황실에 의해 갇힌 월씨 가문 사람들을 만나 봐야만 했다.
옥룡산에서 황금당 당주가 했던 말은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그녀는 월씨 가문 사람을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야만 월씨 가문 사람들이 황실의 감금 지역에서 도망쳤는지, 도망쳤으면 몇 명이나 도망치고, 그 사람들은 또 무엇을 하려는지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짐이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어쩔 것이냐?"
황제는 월령안의 단호함을 알아차리고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월령안은 전형적인 상인이었다. 이익이 없으면 그녀를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폐하, 소인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월령안은 협박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꿇고 거듭 부탁했다.
남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도움을 청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황제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는 월령안이 서역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그것도 월씨 가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의 기억으로 지금 갇혀 있는 월씨 가문 사람들 가운데서 월령안과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라 해도 숙부(叔伯)뻘이었다.
그 사람들이 갇혔을 때 월령안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 사람들을 본 적이 없기에 감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월령안은 절대 가족의 정 때문에 그들을 만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목적은 무엇인가.
"짐에게 이유를 말해라."
월령안이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황제는 물었다.
그는 그녀가 어떤 이유를 꾸며 내어 그를 속이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소인은 그 사람들이 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월령안은 진작 이유를 생각해 놓았다. 황제가 묻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치가 없다면?"
'월령안은 지금 이것도 이유라고 말한단 말인가.'
황제는 월령안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을 믿는다면 그는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다름 아니라 이걸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건 너무 어리석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럼 폐하께서 그들이 후대를 둘 수 있게 여인을 하사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제가 좀 고생스럽더라도 십 년 뒤에 애들을 데려와서 잘 교육시키겠습니다."
그녀는 이미 이유를 말했다. 황제가 그 이유를 믿든 안 믿든 그건 그녀의 소관이 아니었다.
"참 멀리까지 생각하는구나."
황제는 화가 나서 비웃었다.
"왜 네가 낳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냐?"
월령안은 화가 나서 웃었다. 그녀는 낳고 싶다만, 어디 아이를 낳을 시간이 있는가.
아이는 물론 그녀가 낳아야 한다. 임신해 낳기까지 일 년이란 시간이 걸리는데, 그녀가 낳을 시간이 있다고 한들 몇 명이나 낳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한배에 일여덟 마리씩 낳는 암퇘지가 아니었다. 하나하나씩 낳으면 언제까지 애만 낳아야 한단 말인가.
애만 낳다가 목숨이나 남겠는가.
황제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고 있었다.
"폐하, 월씨 가문의 자제들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월씨 가문 가주 쟁탈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 년 동안 월씨 가문에는 여 가주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월씨 가문에서는 조씨 황실의 미움을 산, 여 가주 외에 이렇게 오랫동안 한 번도 여 가주가 나오지 않았다.
월령안은 월씨 가문 여인들이 재능이 뒤처져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틀림없이 황실의 개입이 있었다.
필경 여인은 일생 동안 생육 능력이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 제한도 받지 않기에 첩 몇을 더 둔다면 한 해에 열 명을 낳으려고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월령안, 아는 게 너무 많은 것 아니냐?"
어떤 일은 알아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리를 월령안은 모른단 말인가.
"폐하께서도 삼십 년 뒤, 월씨 가문에 가주 쟁탈전에 참가할 자제들이 없기를 바라지는 않으시겠죠?"
그녀가 십 년 동안에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한두 명쯤 낳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십 년 뒤면 그녀의 나이 또한 스물여덟이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낳을 수 있다고 해도 그녀는 낳지 않을 것이다.
여인이 아이를 낳은 것은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으로 대를 이을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았다.
"참 멀리도 생각하는구나. 삼십 년 뒤의 일을 누군들 알겠느냐?"
황제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준비가 돼 있으면 걱정할 일이 없잖습니까. 미리 뒷손을 남겨 두어야죠. 쓰지 않으면 지워 버리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쓰려고 할 때, 쓸 만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곤란하죠."
토끼를 다 잡기도 전에 사냥개를 잡으려 하다니. 모질기로 따지면 황제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월령안의 이 말은 이치에 맞았다.
만약 황제가 월씨 가문을 계속 쓰려면 확실히 월씨 가문 사람들에게 후손을 남기게 해야 했다.
월령안이 혼자서 죽을 때까지 낳는다고 해도 몇을 낳지 못할 것이다.
황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진중하면서도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 너의 행동을 봐서. 만약 일을 멋있게 해내면 짐이 그들을 만나게 해 줄 것이다."
월령안은 할 말이 없었다.
이건 정말 그녀를 사냥개로 여기는 것이었다.
고기 조각을 눈앞에 던져 주고 볼 수 있지만 먹을 수 없게 한 다음, 목숨을 내걸고 토끼를 쫓게 하려는 게 아닌가.
그래도 주도권은 황제가 쥐고 있으므로 월령안은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마지못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황제에게서 확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피도 안 보고, 다친 데도 없이 온몸이 성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서역의 일에 대해서는, 앞서 북요 황제에 대한 원한에 이어, 뒤에 또 염명경 귀시의 번거로움이 있어 황제는 아직 그녀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이변이 없는 한, 잠시는 넘어갈 수 있었다.
황제가 추후에 다시 그녀를 찾아 결판낼지에 대해서, 월령안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후의 일은 황제가 말한 것처럼 어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월령안은 대전에서 나와 유유히 궁 밖으로 나갔다.
변경에 돌아와 황제를 직접 만나는 고비는 넘겼다. 이제 무림맹에 찾아가 수횡천과 염명경 귀시를 없애는 일에 대해 의논하면 되었다.
변고가 없다면 그녀는 이틀만 쉬고 또다시 변경을 떠나야 했다.
월령안은 황궁 한복판에 서서 고개를 돌려 어두운 표정으로 연복궁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노인이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었다.
노인은 그녀를 만나 주지 않을 것이다.
"정말 독하시네요."
월령안은 눈을 감아 눈물을 감추었다. 그러고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려 떠나갔다.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서 있어도 소용없었다.
그녀는 마치 뒤에서 사나운 개가 쫓는 것처럼 나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녀 자신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두려웠다.
걸음이 늦으면 떠나기 아쉬울까 두려웠다.
걸음이 늦으면 참지 못하고 연복궁 쪽으로 달려갈까 두려웠다.
월령안은 몰랐으나 그녀가 황궁 한복판에서 연복궁을 바라보고 있을 때 노인은 어화원 전망대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돌아보는 그녀의 모습, 초라하게 떠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많이 컸구나."
노인은 줄곧 월령안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노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돌아가자."
"네."
어린 내관이 명을 받고 바퀴 의자의 방향을 돌려 전망대 계단 앞으로 밀고 갔다. 계단 앞에 다다르자 시위가 넘겨받아 바퀴 의자를 들어 올렸다.
노인은 전망대에서 내려가기 전에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궁전의 지붕만 보일 뿐이었다.
노인은 눈을 감았다. 눈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