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2화 이 일은 의논할 수 없었어요
진주가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월씨 상사는 북요 등 세 나라의 병기를 사들였습니다."
육장봉은 안색을 바꾸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진주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장군, 우리는 지금 어떡하죠? 마님께서는 우리 병기를 사지 않으실 게 분명해요. 그 많은 병기들을 다 운반해 가야 하나요?'
진주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육장봉의 싸늘한 얼굴과 마주하자 진주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대장군이 또 화가 난 것 같았다!
진주는 묵묵히 물러났다.
육장봉은 아무 일도 없는 척, 계속해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이나 지났지만 한 장도 넘기지 않았다.
한참 뒤, 육장봉은 손에 든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잠깐 본 뒤, 또 탁자 위의 책을 들어 한 장 넘겼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육장봉은 책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책을 집어 들었다. 이 행동은 계속 반복되었다…….
서재에 사람이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보았더라면 육장봉의 정신이 문제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육장봉은 밤이 될 때까지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밤이 되었지만 그의 손에 든 책은 여전히 그 장이었고 더 이상 펼쳐지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육장봉은 결국 책을 내려놓은 뒤, 문 입구로 걸어갔다.
"월령안은?"
"대장군께 아룁니다. 마님께서는 주무십니다."
진주는 고개를 숙이고 감히 육장봉을 쳐다보지 못했다.
"잔다고?"
이 대답은 육장봉의 예상을 벗어났다. 그는 하마터면 언성을 높일 뻔했다.
그는 월령안이 그를 달래러…… 아니, 해명하러 와 주기를 반나절이나 기다렸는데 월령안 본인은 자고 있다니!
'너무하잖아!'
"네!"
진주는 자기가 너무 '총명'하여 설용국으로 가는 일을 빼앗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가 갔다면 이렇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게 지금 며칠째냐고! 우리 대장군께서 오늘 겨우 정상으로 회복되셨는데 또 돌아가게 생겼구나.'
"오늘 뭘 했더냐?"
'이렇게 지쳤어? 나에게 해명할 기운도 없을 만큼?'
"마님께서는 오전에 상 관리인과 상사의 작은 관리인을 만나셨고 오후에는 대완국 귀족과 돈을 내고 온 몇몇 소국 왕실을 만나셨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우호를 만나셨고요. 우호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뢰국의 사신이 왔었습니다. 세 사람은 서재에서 두 시진 있었고요. 우호와 무뢰국 사신을 보낸 뒤, 마님께서는 홀로 서재에 계시다가 한 시진 뒤, 서신을 가득 월씨 상사의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진주는 월령안의 하루 일과를 보고했다.
월령안은 하루 동안 어디도 가지 않고 줄곧 서재에만 있었으나 정말 한시도 쉬지 않았다. 보는 그마저도 지쳤다.
육장봉은 주전(主殿)의 방향을 힐끗 본 뒤, 말했다.
"내일, 난 부인과 함께 조식을 들어야겠다. 알겠느냐?"
'그렇게 바빴다니 오늘은 놔주지.'
"네, 대장군."
진주는 마음속의 기쁨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일 장군께서는 분명 마님과 병기의 일을 상의하실 거야. 잘됐어. 그 병기들을 손에 썩히지 않아도 되겠어.'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두 시진도 못 잔 월령안은 부랴부랴 일어나 조식을 들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육장봉이 건너와 월령안 맞은편에 앉았다.
"어? 당신은 이 시간에 무술을 연습하시지 않았나요?"
육장봉은 아주 규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무술을 연마했다.
지금 시간은 바로 육장봉이 무술을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월령안은 그녀가 일부러 이 시간에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은 바로 육장봉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오늘 육장봉을 달랠 시간도, 기운도 없었다.
"당신과 함께 조식을 들려고 그러지."
육장봉은 월령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하인더러 수저와 그릇을 추가하라고 했다.
"좋죠!"
월령안은 활짝 웃으며 육장봉과 함께 식사를 했다.
시간이 부족한 탓에 월령안은 전쟁을 치르듯 식사를 했다. 심지어 육장봉보다도 먹는 속도가 빨랐다.
"아주 급한가 보오?"
월령안이 수저를 내려놓는 것을 보고 육장봉도 수저를 내려놓았다.
"내일 변경으로 돌아갈 것이니 마지막 마무리를 하려고요."
이틀의 시간만으로는 분명 철저하게 매듭을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괜찮았다. 그들이 내일 떠난다고 해도 바로 변경에 도착할 수는 없었다. 서역 안에 있는 이상, 그녀는 서역의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오……. 원래는 염 황숙과 귀염의 일을 알아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바쁘다니 그만합시다."
육장봉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월령안더러 일 보러 가라고 했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말을 하다가 말았는데 어떻게 가라는 거야? 육장봉은 분명 일부러 이러는 것일 거야!'
월령안은 몰래 육장봉을 흘겨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내 기억 좀 봐, 사실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니에요."
"바쁘지 않다니 먼저 병기의 얘기를 하지."
육장봉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토끼를 보지 않으면 매를 풀어 놓지 않지. 이래야 월령안이지.'
월령안은 얼굴의 웃음기를 거두더니 말했다.
"당신 수중의 병기들은 제가 소화할 수 없어요."
소화할 수 있다 해도 그녀는 사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딱 잘라 말하는 월령안의 말에 육장봉은 퍽이나 놀랐다.
"서역이 겨우 이만한데 그렇게 많은 병기를 소모할 수 없어요. 당신 수중의 병기를 선택하면 전 북요 등 세 나라의 병기를 소화할 수 없었어요. 이익을 최대화로 끌기 위해서라도 전 당신 수중의 병기를 선택하지 않을 거예요."
육장봉의 기분이 상하더라도 그녀는 타협할 수 없었다.
"왜 북요, 서하, 금나라의 병기를 선택하면서도 나한테 있는 병기를 사지 않은 것이오? 내가 당신에게 바가지를 씌우기라도 한다는 말이오?"
그는 이 이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신은 안 그러시겠지만 잘 아는 사람과 거래를 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에요. 제가 당신의 병기를 산다고 했을 때, 가격을 높이 불렀다면 제가 기분이 안 좋았을 거고, 가격을 낮게 불렀다면 당신이 언짢으셨겠죠."
장사는 간단한 사고팔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저는 원가의 가격으로 북요 등 세 나라에서 원하는 병기를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 가격으로 당신에게서 살 수 있겠어요?"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뜨며 반문했다.
"왜 안 되오?"
월령안이 실소를 하였다.
"제가 만약 이렇게 낮은 가격으로 당신에게서 사들인다면 당신은 제가 우리 사이를 빌미로 당신에게서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겠어요? 또 감정을 내세워 당신에게 저가로 병기를 팔라고 압박한다고 느껴지지 않으시겠어요?"'
육장봉이 대답하기 전에 월령안이 또 물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해도 폐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어요? 진주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제가 내놓는 가격은 이윤이 거의 없고 수고비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낮으니까요."
육장봉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확실히 문제가 될 만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아무리 낮은 가격을 불러도 당신에게서 이득을 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전 같은 가격으로, 심지어 더 낮은 가격으로 똑같은 병기를 구매할 수 있어요. 또 당신에게 인정을 빚지지도 않고요."
월령안은 묻지 않아도 육장봉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장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가로 사들였다가 고가로 파는 것도 일종의 학문이었다.
"나와 의논을 했어야지!"
그는 막무가내인 사람이 아니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은 의논할 수 없었어요. 제가 최저가로 북요 등 세 나라의 병기를 사기 전에는 제가 무슨 가격을 내놓든지 당신의 사람들은 제가 당신에게서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당신이 헐값으로 저한테 팔았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당신이 이해할 수 있어도 폐하, 진주 등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폐하와 진주 등 사람들이 이 병기에 얼마나 큰 기대를 품고 있는지 잘 아실 거예요."
여기까지 말한 월령안은 비꼬듯이 웃었다.
"어쩌면 당신은 저한테 원래의 약속대로 협력해도 되지 않겠냐고 하실 수 있어요. 병기를 판 뒤, 얻은 이익을 반씩 나누자고요. 그런데 제가 저가로 병기를 사들일 수 있는 상황에서 왜 절반의 이익을 내놓아야 하죠?"
월령안은 두 손을 겹쳐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어쩌면 당신들은 다 잊었을지 몰라도 전 잊지 않았어요. 당신의 손에 있는 병기들은 우리 월씨 상사 수십 명의 피로 물들었다는 것을요. 당신 생각에는 제 옹졸한 성격으로 당신들이 거기서 이득을 보게 할 것 같아요?"
상인으로서 사업을 얘기하는 것도 맞았다. 그러나 그녀는 소인배이기도 했다.
그녀가 이익을 양보하고 싶을 때는 대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지 않을 때는 누구도 그녀에게서 이득을 보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했다.
그 병기들은 육장봉이 '사도들'에게 약탈당할 위험을 안고 주나라로 운반하거나 손에서 썩게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녀는 사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이 아무리 기분이 상한다 해도 이 일에서 그녀는 타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는 의논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오?"
'그래서 어제 내 품에 안긴 채, 세상 사람들과 척을 지더라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 것이 날 위한 게 아니라는 건가? 심지어 척을 진다는 이 '세상 사람들'에 내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건가?'
"의논할 여지가 없어요."
월령안은 다시 자리에 앉아 등받이에 기댔다. 그리고 더 이상 유쾌하지 않은 이 화제를 계속할 생각이 없는 듯 재차 물었다.
"이젠 저한테 영감님과 귀염의 일을 알려 줄 수 있으시겠죠?"
귀염은 노인의 딸이라고 했고 노인의 물건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귀염의 신분을 확인하려면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바로 노인에게 직접 묻는 것이었다.
그녀는 궁에도 사람을 심어서 노인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그녀가 노인과 연락할 수 있다는 것을 황제가 알게 된다면 노인이 전에 그녀를 위해 했던 모든 것이 헛수고로 될 것이다.
하루빨리 귀염의 신분을 확인하려면 육장봉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암황은 자식이 없다, 이것이 바로 염 황숙이 나에게 보낸 회답이오."
병기의 일에서 이미 답안을 얻었다. 비록 육장봉이 원하던 것과 달랐으나 그는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았다.
어떤 쪽으로는 월령안이 그보다 더 이성적이었다. 더 매달려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월령안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래도 물어보았다.
"혹시 예외가 있을 가능성은요? 혹시 염 황숙 자신도 몰랐지 않을까요?"
"예외가 있을 리가 없소!"
염 황숙은 편지에서 암황이 되는 순간, 자식을 볼 수 없는 약을 마셨으니 씨를 남겼을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염 황숙은 조계안처럼 그를 지켜 주는 형이 없었다. 염 황숙이 암황이 되어서 고조 황제의 신임을 얻으려면 반드시 모든 퇴로를 끊어 버려야 했다. 자식을 보지 못하는 약을 마신 것은 염 황숙이 고조 황제에게 보여 준 충성이었다.
"귀염 수중의 암황령은 어찌 된 일인가요? 그건 영감님의 영패잖아요? 영감님의 신분을 대표하는 영패가 왜 귀염의 손에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