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0화 영원히 당신 편에 설 것이오
그녀는 육장봉을 난감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또 황제가 육장봉을 탓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음모를 꾸며 자기가 나섰던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 황제는 그녀를 탓할 것이고 그녀가 속셈이 있어 육장봉을 이용했다고 여길 것이다. 황제는 육장봉이 일을 잘하지 못했다고 탓할 수는 있어도 육장봉이 여인 하나를 위해 이성적으로 일을 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육장봉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길이 있었소. 그런데도 당신은 홀로 이기기 위해 모험을 택했소."
"제가 모험하는 게 뭐가 잘못됐나요? 제가 왜 다른 사람과 전과(戰果)를 나눠야 하죠?"
월령안은 다시 육장봉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서역 이 기름진 땅덩어리는 네 나라들에 찍혔어요. 만약 제가 빨리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북요, 금나라와 서하가 나섰을 때, 서역에 제가 설 자리가 있었겠어요?"
육장봉은 여전히 차가운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싸늘하고 낯설어 보였다.
그는 아직도 화가 나 있었다!
월령안은 울화가 치미는 기분만 들었다.
"그래요! 전 야망이 크고 겁도 없어요. 홀로 서역의 전과를 삼켜 버리고 싶어요. 그런데 이게 뭐가 잘못됐나요? 제가 서역의 전과를 홀로 삼켜버릴 수 있는데 왜 네 나라와 나누어야 하죠? 네 나라의 세력이 서역에 들어온다면 제가 설 자리가 있겠냐고요?"
"주나라는 물론, 북요, 금나라와 서하 등 모든 나라들에서도 저 같은 작은 상인을 안중에 두지 않을 거예요. 그들에게는 제가 서역에 심은 세력을 없애는 것이 마치 먼지를 쓸어버리는 것처럼 쉬운 일일 거예요.
전 염명경 귀시의 사람들처럼 순진하게 개인의 능력과 조정이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또 저와 친한 왕실 사람 몇 명을 왕으로 올렸다고 해서 서역에서의 발언권을 가지고 네 나라와 대항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 않는다고요.
저뿐만이 아니라 서역 서른여섯 개 나라가 손을 잡아도 네 나라의 상대가 될 수 없어요. 서역이 네 나라들이 힘을 겨루는 다른 전쟁터가 되게 하는 것보다, 서역의 나라들이 뿔뿔이 흩어져 네 나라들에게 치우치게 하는 것보다 전 네 나라의 세력이 모두 서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서역의 원상태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육장봉, 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같은 일을 다시 겪는다고 해도 전 이렇게 할 거예요."
그렇다, 그녀는 육장봉이 가진 그녀에 대한 믿음을 이용했고 육장봉과 상의 없이 육장봉의 일을 망쳤지만 그렇다 한들…….
또 어떠하리?
서역은 주나라의 영역이 아니었다. 서역에서는 각자의 능력으로 겨루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자기에게 가장 이로운 선택을 했다. 그녀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육장봉에게 잘못을 인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그녀에게 화가 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육장봉이었어도 줄곧 속았다면 화가 났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월령안은 이상하게 마음이 찔렸다. 그녀는 감히 육장봉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포기한 듯 말했다.
"서역의 일은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화가 나면 화내세요. 지금 바뀔 것이 없으니까요."
여기까지 말한 월령안은 잠깐 멈췄다가 다소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제가 잘못했어요. 전 사과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요. 말씀하세요…… 제가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리겠는지? 어떻게 하면 저와의 냉전을 그만둘 거예요?"
냉전은 정말이지 너무 화가 났다!
그녀는 처음에 육장봉이 그녀를 좋다고 쫓아다녔을 때 너무 쉽게 타협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녀는 마땅히 육장봉을 좀 더 오랫동안 쌀쌀하게 굴어 차갑게 외면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했어야 했다!
"내가 당신더러 어떻게 하라고 하든지 다 하겠소?"
육장봉은 눈썹을 살짝 치켜뜨며 두 팔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속이 찔리나 고개를 숙이지 않고 버티는 월령안을 바라보며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월령안이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가 화를 내 뭘 하겠는가.
정말이지 너무 화가 났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화를 내지 않고 저와 냉전을 벌이지 않는다면 저더러 뭘 하라고 해도 다 할게요."
주나라는 외부를 침략할 생각이 없었다. 육장봉이 서역 때문에 그녀와 냉전을 벌일 가치가 없었다!
"내가 당신더러 바로 변경으로 돌아가 폐하께 용서를 빌라고 한다면?"
육장봉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월령안은 눈을 크게 뜨고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진지한 얼굴의 육장봉을 보자 월령안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돌아가라면 돌아가지. 내가 육장봉한테 빚진 것을 갚는 셈 치고.'
"지금 당장 갈 수 있겠소?"
육장봉은 더 과분한 요구를 했다.
"당신……."
월령안은 답답한 기분이 들었으나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녀는 대답한 일을 반드시 완성했다. 설령 지금이 무뢰국과 협력하는 중요한 시기라도 육장봉이 원한다면 그녀는 떠날 수 있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큰 것을 희생하지만 말은 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보고는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을 놀리는 것이었소! 이틀의 시간을 더 줄 테니 서역의 일을 끝내면 우리는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폐하께서 서역의 사업을 물으신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마시오. 특히 백호 골적의 일은 꺼내지도 마시오. 알겠소?"
마지막에 가서 육장봉의 말투는 엄숙해졌고 시선도 진지하고 무거워졌다.
"당신…… 당신, 어쩌려는 건가요?"
월령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자기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는 걸까? 폐하께 실망을 끼쳐드릴까 두렵지 않은 건가?'
"당신은 지금 폐하의 분노를 너무 많이 사서는 안 되오. 금나라의 일만으로도 충분하오."
서역의 일까지 더한다면 그도 황제가 월령안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일단 황제가 월령안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월령안은 십 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폐하께서는 절 죽이시지 못할 거예요. 전 아직 쓸모가 있거든요!"
적어도 청주의 그 늙은 괴물들이 철저히 제거되지 않는 이상 그녀는 아직 소용이 있을 것이다.
황제에게는 그녀와 범씨 가문이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범씨 가문과의 십 년 쟁탈전은 그녀와 범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큰일이나 황제는 중히 여기지 않았다.
황제가 신경 쓰는 것은 청주 노친네들과 그들 수중의 군사들이었다.
일단 청주의 세력이 철저하게 제거된다면 그녀의 존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청주에 있을 때, 그 노친네들에게 치명적인 한 방을 먹일 수 있었지만 손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그 몇몇 노친네들의 세력이 사라진다면 그녀도 끝장나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소용없어지는 날이 오면 결과를 생각해 봤소? 폐하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소용도 없다면 당신은……."
육장봉은 말을 하다가 또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왜 신복(臣服)할 줄 모르는 것이오?"
월령안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아마도 제 뼈는 천성적으로 거꾸로 자랐나 보죠."
그녀가 언제 신복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한 번, 또 한 번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한 번, 또 한 번 황제에게 사정했으며 한 번, 또 한 번 자신의 충성심을 보였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황제는 그녀를 믿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황제는 그녀를 믿지 않았다!
그녀가 뭘 하든지 황제가 보기에는 목적이 있는 것이었고 야심이 있는 것이었다
한 번, 또 한 번 실망한 후, 그녀는 더 이상 황제의 마음을 살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자기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어쩌면 육장봉이 말한 것이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반항아라 신복이라고는 모를 수도 있었다!
황제가 그녀를 믿지 않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육장봉은 손을 뻗어 월령안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당신 문제가 아니오. 내가…… 내가 당신을 보호하지 못한 것이오!"
그는 월령안의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알고 있었다.
청주 월씨 가문 출신인 그녀는 황제의 신임을 받지 못할 운명이었다. 설령 그녀가 신복하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만약 월령안이 멍청했더라면 황제는 그녀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을 것이다.
월령안은 황제를 속이기 위해 자신을 감추며 살았지만 그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드러냈다. 황제는 거기서 그녀의 영리함과 능력을 알아버렸다.
이러한 월령안은 황제의 신임을 더욱 얻을 수 없었다.
황제마저 속일 수 있고 또 속였던 사람이 어찌 황제의 신임을 얻을 수 있겠는가?
'월령안은 나 때문에 이 지경까지 온 거야…….'
육장봉은 마음속으로 한탄했다.
"서역의 일은 이렇게 되었으니 난 사정을 아는 모든 사람들의 입을 막을 것이오. 그리고 폐하께 내 실수 때문에 서역의 사도들에게 미움을 샀고 당신은 날 구하려고 사도와 협력하여 몇몇 소국에게서 돈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겠소."
"미쳤어요? 폐하께서 당신한테 실망하실 거예요."
월령안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 난 아직 쓸모가 있어 폐하께서는 날 죽이지 않으실 거요."
"당신……."
월령안은 울먹거리며 육장봉의 허리를 안았다. 그녀는 얼굴을 육장봉의 품에 묻고 말했다.
"육장봉, 저한테 이렇게 잘해 주지 마세요!"
'육장봉은 모든 책임을 자기한테 돌린다면 폐하가 아주 실망할 것이고 심지어 그에게서 병권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육장봉, 전 죽는 게 두렵지 않아요. 또 세상 사람들과 적이 되는 것도 두렵지 않아요!"
'당신은 날 위해 이런 것들을 할 필요가 없어요. 서역의 일들은 내가 했으니 내가 책임질 거예요.'
그녀는 황제의 미움을 사는 것도, 황제가 그녀를 죽이고 싶어 해도 두렵지 않았다.
황제가 그녀를 죽이고 싶어 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육장봉이 걱정할까 두려웠다!
그녀는 육장봉이 그녀와 황제의 중간에 껴서 난감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녀는 육장봉이 난감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공교롭지만 나도 죽는 게 두렵지 않소. 또 당신을 위해 세상 사람들과 척을 지는 것도 두렵지 않소!"
육장봉은 월령안을 품에 안고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소? 앞으로 모든 길을 내가 당신과 함께 갈 것이라고. 앞길이 가시밭이든 탄탄대로든 난 항상 당신과 함께 갈 것이고 영원히 당신 편에 설 것이오. 당신 편만 들 것이오. 그래서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혼자 하지 말고 나한테 말하시오. 아무리 큰일도 난 당신을 위해 끝까지 싸울 수 있소."
'나에게 미리 알려 준비할 시간을 달란 말이오. 이번처럼 일이 일어난 뒤에 알아서 다급히 수습하게 하지 말고. 결국 폐하 앞에 가야 할 정도로 일이 커지지 않았소…….'
월령안은 육장봉의 품에 안겨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육장봉을 믿었다.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심지어 그녀를 위해 황제까지 속이는 이 남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