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8화 넌 날 죽이지 못해
"뭐라고 했느냐?"
육장봉은 일어서더니 천천히 이국 소년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빠르지 않았으며 자세도 아주 느긋했다. 그러나 온몸으로 발산하는 기세는 직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닥치거라, 말하지 말고!"
이국 소년의 아버지는 놀라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소년도 겁을 먹었다. 그러나 오만하고 고집스러운 소년은 고개를 숙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녀 스스로도 인정했잖아?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다고 그녀의 출신이 달라져?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사람 시중이나 드는 여상인이라는 것이 잊혀지냐고?"
"당장 입 닥쳐!"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아버지의 저지를 물리쳤다.
"아버지, 뭐가 두려우신 거예요? 우리는 염명경 귀시와 손을 잡았잖아요. 감히 우리를 건드리기만 해 봐! 그들이 우리를 건드리면 그들도 끝장나는 거예요!"
"끝장나는 건 맞아!"
그러나 끝장나는 사람은 그들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도 대완국 국왕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죽어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동정하면서도 다행으로 여겼다.
그들을 대신해 월령안과 육장봉의 분노를 감당하고 사도의 보복을 감당할 사람이 생긴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고?"
육장봉은 냉소를 하며 소년을 들어 올렸다.
"오늘 좀 보여 줘야겠군. 내가 감히 널 건드리는지 못 건드리는지!"
이국 소년은 병아리처럼 두 발이 들린 채, 허공에 들려 있었다. 그의 얼굴은 자주색으로 되었으면서도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
"당신, 당신…… 뭐 하려는 거야? 알…… 알려 줄게. 난 의내(依耐)의 왕자다. 당신은…… 이러면 안 돼. 나한테 이렇게 굴면 안 된다고!"
"허!"
육장봉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아아…… 살…… 살려……."
이국 소년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혀를 빼물었다. 그는 고통스럽게 구원을 청했지만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조차도 소년의 살려달라는 시선을 보고 묵묵히 고개를 숙여 외면했다.
월령안도 힐끗 보았지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록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출신으로 억누르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서 주는 사람이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시끄럽다!"
육장봉은 비록 기분이 언짢았으나 소년의 목숨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소년을 내팽개쳐 귀염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
이국 소년은 비록 소리가 컸지만 간이 크지는 않았다. 그는 던져지는 순간 놀라서 까무러치는 바람에 던져질 때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그가 이렇게 던져지자 다른 사람들은 더욱 겁을 먹었다. 감히 살려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벌벌 떨면서 월령안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기도했다.
"다행이군, 똑똑한 사람이 많아."
육장봉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는 이 사람들이 오랫동안 꼴 보기 싫었다.
"내가 손을 쓸 때가 되었군!"
우호는 칼을 들었지만 한참이나 칼을 쓸 기회를 찾지 못했다. 드디어 기회를 잡자 칼을 들어 옆의 소국 군주의 머리를 베려고 했다.
소국 군주는 놀라서 당장에서 오줌을 지렸다.
"살려 주세요……."
"그만!"
월령안은 손을 들어 우호의 동작을 막았다.
"제가 살인마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서 뭐 하겠어요! 장사하는 사람은 평화를 귀하게 여겨요. 전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과 철천지원수를 진 것도 아닌데 죽일 것까지 있겠어요?"
여기까지 말한 월령안은 잠시 멈췄다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말씀해 보세요. 아닌가요?"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월 가주, 우리 사이에 철천지원수를 진 것도 아니고요. 우리는 단지 염명경에게 굴복했을 뿐이에요. 굴복만 했지 다른 친분은 없어요."
소국 군주들은 월령안의 말을 듣고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월령안이 번복할까 두려웠다.
영리한 사람은 심지어 먼저 말하기도 했다.
"월 가주, 우리 비륙국(卑陸國)의 말은 비록 대완국의 한혈보마처럼 유명하지는 않으나 서역에서도 아주 인기가 많답니다. 월 가주께서 개의치 않으신다면 말 천 필을 토산품으로 드리겠습니다."
누군가 선두를 떼자 죽기 싫은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자국의 특산품을 내놓았다. 특산품을 내놓을 수 없는 사람들은 황금을 내놓았다.
물론, 이유는 모두 급조한 것이었다. 월령안에게 토산품을 준다는 명목이었다.
월령안은 생글거리면서 듣고 있었다. 그녀는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람들더러 계속해서 말하라고 격려하기도 하고 가끔씩 언짢은 말을 들으면 얼굴의 미소가 옅어지기도 했다.
예상대로, 그녀 얼굴의 미소가 옅어지기만 하면 말하는 사람은 '성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살기 위해 기를 쓰고 추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회청의 모든 방문객이 하나같이 월령안을 위해 준비한 '토산품'을 보고했다.
월령안은 듣기만 할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이 끝나자 월령안은 백호 골적을 우호에게 넘겼다.
"세 가지의 일을 모두 끝냈으니 주인에게 돌려줘야죠. 앞으로 서로 빚진 게 없어요!"
"뭐라고? 이 사람들을…… 처리해야 한다면서?"
우호는 골적을 받고서 멍해졌다. 그는 일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왜 마무리가 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멍청하긴!"
육장봉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 사람들이 토산품을 바쳤잖아? 받았으니 사람을 풀어 준 것이고 받지 못한 사람은……"
육장봉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가까이 있던 몇몇 소국 군주들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바쳐요! 바칠게요! 우리 지금 당장 바칠게요……. 지금 쓰고 사람을 시켜 가져오게 할게요. 당장 가져오게 할게요. 꼭 가져올 거예요!"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우리 드릴게요. 지금 드릴게요. 꼭 드릴게요."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장담했다. 손을 들고 맹세만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돈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목숨이 더욱 중요하다.
목숨을 위해서 그들은 돈을 써도 상관이 없었다.
월령안은 몰래 육장봉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돌아서서 사람들에게 예를 올렸다.
"여러분들께서는 너무 열정적으로 손님을 맞이하시네요. 그럼 전 사양하지 않겠어요. 나중에 우리 월씨 상사가 서역으로 와서 사업을 한다면 여러분들께서 많이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배려, 배려, 꼭 배려해 드릴게요!"
'우리는 월령안에게 가죽마저 벗겨졌는데 또 월씨 상사까지 배려해 달라니. 참 꿈도 크다! 월씨 상사 사람들은 서역에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만약 온다면 우리가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니!'
월령안은 이를 발견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몇몇 소국의 군주들은 원래부터 원래의 국왕을 내몰고 즉위한 사람들이었다. 돈이 없어진 그들이 돌아가서 왕위에 계속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적을 잡으려면 왕을 먼저 잡아야 한다고 염명경 귀시의 일을 처리한다면 이 몇몇 소국 군주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그녀는 이 사람들의 보복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우호는 월령안의 처사에 의견이 없었다. 그는 귀염을 끌어당기더니 물었다.
"이건? 어떻게 처리하지?"
"죽여요!"
월령안은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귀염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그녀는 서역의 사람들과 철천지원수를 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서역에서 장사를 해야 했다. '황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사람 목숨으로 해결하지 않았다. 서역의 사람들이 그녀를 살인마로 오해하고 심심하면 사람을 죽인다고 여긴다면 앞으로 누가 그들 월씨 가문과 거래를 하겠는가?
그러나 그녀와 귀시 사이에는 철천지원수가 있었으나 그녀는 마음이 약해질 필요가 없었다.
"좋아!"
우호는 머뭇거리지 않고 칼을 들어 베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이때, 귀염이 깨어났다.
"넌 날 죽이지 못해. 난 조염(趙焰)의 딸이야!"
"그만 둬!"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육장봉이 손을 뻗어 우호의 칼을 날려 버렸다.
귀염은 다시 한번 자신이 염 황숙의 딸이라고 잡아뗐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려고 암황령을 내놓기도 했다.
"내 어머니는 이십 년 전에 갑자기 실종된 누란 여왕이다. 너희들이 알아봐도 돼. 이십 년 전, 조염이 서역에 오지 않았는지, 누란 여왕과 함께 실종되지는 않았는지."
월령안은 말하지 않고 육장봉을 힐끗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귀염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귀염이 염 황숙의 딸이 옳은지 아닌지는 증명이 필요했다.
염 황숙은 자기에게 딸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월령안은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어 바로 우호에게 명령을 내렸다.
"기절시켜서 가두세요!"
"감히…… 난 조염의 딸이야. 네가 이렇게 날 대한다면 조염에게 미안하지 않겠어?"
귀염은 화가 나 몸부림을 쳤다.
"월령안, 날 풀어 주는 게 좋을 거야!"
월령안은 비웃더니 앞으로 다가가 손에 든 백호 골적으로 귀염의 얼굴을 훑었다.
"영감님의 딸은 인정해야죠! 하지만 풀어 달라니. 그럴 자격이 되나요?"
"너……."
귀염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애써 우호의 압박을 물리치며 월령안에게 덮쳤다. 그러나 덮치려는 순간, 우호의 칼등에 맞아 쓰러졌다.
월령안은 이를 힐끗 보고 우호에게 한마디 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가두세요! 그들의 가족이 토산품을 가져올 때까지요! 만약 적게 가져왔다면 팔 하나나 다리 한쪽을 자르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육장봉과 함께 가 버렸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정말 강도가 아닌 상인이 맞긴 해?'
사람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 오직 우호만이 월령안의 등에 대고 엄지손가락을 쳐들었다.
"월 가주는 역시 월 가주요. 탐욕스럽기가 우리 사도들보다 더 강하군!"
대완국은 이미 우호의 사람에게 빼앗겼다. 궁전 전체가 우호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월령안과 육장봉도 장소를 옮기지 않고 한 편전을 골라 묵었다.
대완국을 손에 넣는 것은 쉬운 일이었으나 계속해서 대완국과 다른 나라들을 안정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령안은 한 번에 서역의 상로(商路)를 끊어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의 장사를 위해 서역의 나라들을 달래야 했다. 그들에게 월령안과 주나라는 모두 서역의 사무에 손을 댈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려 줘야 했다.
물론, 그녀도 손을 쓸 수 없었다.
서역의 서른여섯 개 나라들마다 병사가 많지 않았지만 백성들은 많았다. 그녀가 서역을 손에 넣는다 해도 서역을 통치할 수 없었고 서역의 백성들이 그녀의 말을 듣게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녀가 돈을 벌게 하는 서역이지 황야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반드시 서역의 나라들에게 그녀의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다.
월령안은 서역 나라들의 사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육장봉이 찾아왔다.
"당신은 나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지 않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