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787)화 (787/1,004)

787화 사도 수령 우호(尤虎)

"염 소주, 지금 시작할게요!"

이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을 보기 싫고 귀염과 서로 떠보는 것에도 지친 월령안은 골적을 들고 가볍게 불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에서 억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나같이 죽고 싶어 날뛰는데 그녀가 이루어 주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안 돼, 안 돼……."

대완국 국왕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해졌다. 그는 입술을 뻐끔거리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하나 또 눈물이 나지 않는 모습을 했다.

육장봉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완국의 왕후와 왕자는 의아해했다. 그들은 앞으로 다가와 국왕을 부축하려고 했으나 어떻게 해도 부축할 수가 없어 함께 월령안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침착하게 손에 든 골적을 불었다.

골적의 소리는 보통 피리 소리와 좀 달랐다. 골적은 특이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피리의 맑고 또렷한 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또 신성하고 단아하며 신비롭고 애달픈 소리도 가지고 있었다.

월령안이 부는 곡은 골적의 신비롭고 애달픈 특점을 최대한 끌어냈다. 마치 구슬프게 원망하는 소리 같았다.

몇몇 소국 군주들은 우쭐해서 구경하고 있다가 피리의 애달픈 곡이 불길하게 들리자 하나같이 낯빛을 바꾸었다. 성미가 고약한 사람은 바로 탁자를 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멈춰! 멈춰! 다른 곡으로 바꿔!"

"곡을 할 줄 알긴 아는 거야! 너희 주나라의 여상인들은 이 정도 수준인 거야?"

"정말 별로군!"

귀염은 경계의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며 월령안이 꼼수를 부릴까 봐 두려워했다. 그런데 월령안이 부는 곡을 듣자 귀염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월령안도 이것밖에 되지 않는군. 겨우 곡에서나 꼼수를 부리지.'

가장 가까이 있던 군주는 귀염의 말을 듣고 바로 탁자를 치며 일어났다.

"너더러 흥을 돋우라고 했지 망치라고 했나! 무슨 귀신 같은 곡을 불고 있는 거야? 바꿔! 당장 새것으로 바꿔!"

"별로인가요?"

사람들에게 방해를 받으니 곡이 곡 같지 않게 되었고 월령안도 계속해서 연주할 기분이 사라졌다.

물론, 더 이상 불 필요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월령안은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연회의 중앙에 섰다. 그녀는 손에 든 골적을 만지며 살기를 띤 채, 말했다.

"이건 제가 특별히 길 떠나는 당신들을 위해 준비한…… 안혼곡(安魂曲)이에요!"

'안혼곡' 세 글자를 월령안은 아주 가볍게, 또 아주 무겁게 말했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자 월령안은 백호 골적을 치켜들고 말했다.

"백호가 나오면 모든 길이 평탄해지네! 오늘 제가 당신들을 다 쓸어 버릴 수 있을까요!"

"뭐, 뭐라고……."

"백…….."

"백호 골적!"

월령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사실을 모르는 왕자와 공주들이 옆의 사람들에게 백호 골적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그들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덜덜 떨며 놀라운 시선으로 월령안 수중의 백호 골적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가득했다.

귀염도 이 사실을 차마 믿을 수 없었다.

"이게 전설의…… 백호 골적이라고?"

'월령안에게 어떻게 백호 골적이 있지? 이까짓 피리가 어디를 보아서 백호 골적이라는 거지?'

"그……럴 리 없어!"

귀염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은 개인의 의지로 인해 바뀌지 않는 법이었다. 귀염이 아무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해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육장봉은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도 똑같이 말하지 않고 조용히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는 월령안이 걸어온 길에서 겪은 서러움이 가슴 아팠다. 전에 월령안은 사람들에게 '술집 여자'에 빗대어 억지로 기예를 보여 주게 되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온하기 그지없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비웃음을 당하고 수모를 당한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조금도 화가 나지 않겠는가?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닌 이상.

그녀는 익숙해졌다.

이런 비웃음에 익숙해졌고 이런 수모에 익숙해졌다. 화날 기운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런 난감함과 수모를 얼마나 겪어야만 익숙해질 수 있을까? 덤덤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흔들리지 않고 전혀 감정적 기복이 없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하는데도 육장봉의 심장은 바늘로 찌르듯 아팠다.

그는 지금에야 왜 월령안이 육씨 가문에 시집간 삼 년 동안 그를 위해 뭘 했는지 그는 영원히 모를 거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월령안은 상인 집안의 여식 신분으로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고 육씨 가문에 시집갔다.

그러나 변경의 귀족들은 월령안이 자기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거나 심지어 그들보다 높은 신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게다가 육씨 가문 사람과 그는 월령안을 한 번도 중시한 적이 없었다. 변경의 귀족들은 더더욱 월령안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염 황숙의 신분으로는 변경에서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는 월령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리고 또 얼마나 많은 서러움을 겪고 나서야 조금씩 육씨 가문에서 자리를 잡고 변경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상상이 갔다.

그러나 그때 월령안은 겨우 열다섯 살이었다!

육장봉은 탁자 위의 술잔을 집어 단숨에 들이켰다.

바로 이때, 거친 남자 목소리가 연회청의 적막을 깼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보아 하니, 내가 적당한 시간에 오지 못한 것 같군!"

말이 떨어지자마자 백호 가죽을 입은 민머리 사내가 손에는 아직도 피가 떨어지는 큰 칼을 들고 으스대며 연회청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시위들이 쓰러져 있었다.

"사도 수령 우호(尤虎)!"

누군가 민머리 사내의 신분을 알아채고 놀라움에 소리를 질렀다.

"왜 이렇게 빨리 왔지!"

우호는 그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칼을 어깨에 멘 채, 월령안에게 걸어왔다.

"월 가주, 대완국은 이미 해결했어. 또 뭘 할까?"

"그럴 리가!"

대완국 왕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완국 왕후도 자기가 들은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다리가 나른해지더니 서로 부축해서야 쓰러지지 않았다.

대완국 왕자와 왕후는 땅에 쓰러진 채, 기절한 대완국 국왕을 힐끗 보더니 일제히 귀염에게 시선을 돌렸다.

"염 소주, 어떻게……."

그러나 귀염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도망쳤다.

"월령안, 나중에 보자고!"

그러나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육장봉은 손에 든 술잔을 던졌다.

"가고 싶다고? 내가 허락했느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술잔이 날아가 귀염의 뒤통수에 맞았다. 귀염은 비명을 지르고 바닥에 넘어졌다.

창피함에 화가 난 귀염은 큰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월령안, 너……."

"너무 시끄럽군!"

육장봉은 발을 들어 앞의 탁자를 차서 날려 보냈다. 탁자는 귀염의 몸에 세게 부딪혔다.

귀염은 아픔에 비명을 지르고 혼절했다.

육장봉은 손을 털었다. 드디어 통쾌해졌다.

귀염이 입을 떼고 첫마디를 했을 때부터 그는 이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월령안이 줄곧 그더러 손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이다.

'끝장났다!'

대완국 왕자와 왕후는 이 타격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육장봉? 넌 왜 여기에 있어?"

우호의 시선은 단번에 육장봉에게 떨어졌다. 그의 눈에는 놀라움으로 가득해 어깨에 메고 있던 칼을 떨어뜨릴 뻔했다.

"장군인 내가 여기 있는 게 그리 이상하냐?"

육장봉은 시선을 들어 수호를 바라보았다.

"장군이야? 너 정말 대장군이 되었어? 주나라의 대장군?"

우호가 어깨에 메고 있던 칼이 조금 미끄러뜨렸다.

월령안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당신들 서로 알아요?"

"모르오!"

"좋은 벗이오!"

육장봉과 우호는 동시에 입을 열었으나 대답한 말은 판이하게 달랐다.

월령안은 의아한 얼굴로 육장봉을 힐끗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그제서야 느긋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몇 번 싸운 적이 있소."

우호는 반박했다.

"뭐가 몇 번 싸운 거라는 거야? 우리는 분명……."

"됐어, 일이나 해라!"

육장봉은 사정없이 우호의 말을 잘랐다.

그는 서역에서 한동안 있었던 탓에 우호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우호를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그래, 그래, 일을 해야지!"

우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어 월령안의 손에 든 백호 골적을 가지려고 했다.

"월령안, 우리 사방(沙幫)더러 하라고 한 일을 다 했어. 백호 골적을 이젠 돌려줘. 앞으로 난 너한테 빚진 것이 없어!"

"누가 다 했대요?"

월령안은 손을 들어 피하며 자리에 있는 소국 군주들을 가리켰다. 그녀는 전혀 양보하지 않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 처리했어요?"

"오, 지금 바로 죽이지."

우호는 칼을 들고 베려고 했다.

그러나 소국의 군주들은 하나같이 그보다 행동이 빨랐다. 칼을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먼저 무릎을 꿇었다.

"월 가주! 살려 주세요!"

"월 가주, 우리가 잘못했어요! 제발 너그럽게 우리를 살려 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사도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사도들이 손을 잡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월령안 수중의 백호 골적은 공교롭게도 서역 전체 사도를 호령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서역 전체의 사도는 적어도 만 명이 되었다. 그들 한 나라의 병사는 팔백에서 천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어찌 그토록 많은 사도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염명경의 지지를 받은들 또 어떠리?

염명경이 서역에서 평생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도는 그럴 수 있었다!

사도는 그림자도 없고 종적도 없었다. 사도가 언제 나타날지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들은 주나라처럼 큰 나라가 아니었다. 그들 소국은 정말 감당할 수 없었다.

"월 가주, 우리는 당신과 척을 지고 싶은 적이 없었어요! 우리도 하는 수 없이 그런 거예요! 모두 염명경이 우리를 핍박해서 한 거예요. 우리는 약해서 말도 서지 않으니 감히 염명경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기껏해야 염명경 소주의 말에 따라 두어 마디 비웃었을 뿐이었다. 월령안은 신경조차 안 쓰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안 했다고? 구경하고 칼을 건넨 것이 살인이 아니라는 것이냐?"

이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았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입을 열자 육장봉이 크게 화를 냈다!

이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를 죽은 사람으로 여기는 것인가?

육장봉은 주나라, 북요, 금나라에서 모두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서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적어도 젊은 사람들은 대다수가 육장봉을 알지 못했다.

육장봉이 입을 열자 이국 소년들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우리가 언제 칼을 건넸다는 거야. 저 월씨도 신경 쓰지 않았잖아. 농담일 뿐인데 왜 따지는 거야. 그리고 우리도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월씨 가문은 상인 집안이 맞잖아. 월씨도 여상인이 아니야?

기예를 보여 준다는 것도 그녀가 원한 거지 누가 핍박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뭘 잘못했어? 왜 그녀에게 용서를 빌고 왜 사과해야 하는 거냐고? 그녀가 대완국의 연회를 망치고 야만인을 불러왔는데 그녀가 우리한테 용서를 빌고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