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786)화 (786/1,004)

786화 백호 골적

육장봉의 눈가는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슬쩍 훑어보고 맞장구를 치는 군주들의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

그는 월령안에게 자신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 사람들을 혼내 주는 것 또한 전혀 충돌되지 않았다.

'내가 자리에 있는 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아 있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성을 갈 것이다!'

화가 난 육장봉과는 달리 월령안의 기분은 매우 좋았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구경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대범하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제 기예를 보고 싶어 하시니 그럼 제가 여러분들께 노래 한 곡을 바치지요!"

"좋소!"

귀염은 두 손을 마주치며 힘껏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역시 주나라에서 명성이 드높은 여 상인답게 주눅 들지 않는군요! 월 낭자께서 필요하신 악기가 있으시다면 제가 사람을 시켜 가져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말할 수 있는 악기면 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연회에서 기예를 보여 주지 못해 흥을 돋우지 못할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나는 오늘 반드시 월령안을 핍박하여 사람들의 앞에서 기예를 보여 주게 할 거야. 그렇게 월령안이 기예나 보여 주는 여상인이고 사람의 시중이나 드는 물건 짝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할 거야. 난 월령안이 서역에서 영원히 고개를 못 쳐들게 할 거야.

물론 주나라까지 소문이 퍼져서 그 노친네의 귀에까지 들어가면 참 좋겠는데. 그 노친네더러 애지중지 키운 보배가 무슨 물건인지 알게 해야지!'

"그럴 필요 없어요. 마침…… 제가 오늘 몸에 악기를 지녀서요."

귀염의 눈에 드리운 악의는 밖으로 흘러넘칠 지경이었다. 월령안은 아무리 모르는 척하려 해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귀염이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입장이 다르니 서로 날카롭게 맞서는 것은 그렇다 해도 귀염 지금의 방식은 너무 어린애 같았다. 전혀 귀시의 풍격에 어울리지 않았다.

"역시 천성적으로 시중드는 물건 짝이네. 악기도 몸에 지니고!"

귀염은 일부러 '물건 짝' 세 글자를 강조하며 끊임없이 말로 월령안을 깔아뭉갰다.

육장봉은 화가 나 안색이 퍼레졌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를 너무 잘 알았다. 육장봉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월령안은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육장봉더러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하여 육장봉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이 '억지로 웃는 척'하고 있고 육장봉이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귀염은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다!

'역시 대완국 연회에서 월령안을 난감하게 굴고 월령안더러 고개를 숙이게 핍박하는 게 맞았어. 월씨 가문은 서역에서 장사도 해야 할 테니 서역의 이런 소국 군주들의 미움을 사지 못할 거야.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월령안은 참을 수밖에 없을걸!

하하하……. 정말 그 노친네가 직접 봤으면 좋겠군. 자기가 직접 가르친 제자가 얼마나 멍청한지! 얼마나 무능한지! 그 노친네는 항상 자랑스러워했잖아? 심지어 우리 모녀를 오점으로 여기고 말이야! 만약 직접 자기가 가르친 제자가 이렇게 나한테 짓밟히는 것을 본다면 아주 재미있겠어.

아쉽게도 그 노친네는 황궁에서 나오지 못하지. 예외가 없는 이상, 난 평생 그를 보지 못할 거야.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내가 월령안을 아무리 짓밟아도 그 노친네는 나한테 칭찬 한마디도, 말 한마디도 못할 거야. 모두 월령안 때문이야! 내 것이어야 하는 것을 빼앗아 갔어!'

여기까지 생각한 귀염의 아름다운 오관은 일그러지며 기괴한 모습을 보였다. 월령안을 보는 시선에도 질투와 원망이 담겨 있었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친 여자 아냐? 아무리 입장이 대립한다 해도 날 이렇게까지 볼 정도인가? 귀염이 나와 사적인 원한 관계라도 있나? 그런데 내가 귀염에게 미움을 산 적이 있던가? 혹시 황금당 당주가 귀염의 무슨 사람인가? 그런데 생사 원수를 이런 수단으로 보복한다고? 너무 멍청하잖아.'

월령안은 비단 주머니를 떼려고 손을 넣던 동작을 멈추고 끝내 물었다.

"우리가 접점이 있던가요?"

그녀의 기억력은 나쁘지 않았다. 귀염 같은 얼굴을 그녀가 본 적이 있다면 분명 기억할 것이다.

귀염은 음산한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저의 가장 중요한 사람을 빼앗아 갔어요. 우리 사이에 접점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가장 중요한 사람이요? 누구요?"

월령안은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육장봉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는 육장봉이 서역에 온 적이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이 사람이 혹시 육장봉의 홍안지기(紅顏知己 - 남자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성 친구)인 건 아니겠지?'

육장봉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난 이 사람을 모른다고!'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눈빛만으로도 육장봉은 월령안이 무엇을 물으려는지 알아챘다.

육장봉은 이를 악물고 매섭게 월령안을 노려보았다.

'나더러 나서지 못하게 하더니 지금 날 의심까지 해? 월령안, 너무하잖아.'

귀염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도도한 얼굴로 말했다.

"알고 싶으신가요? 그럼 제 시중을 잘 드세요! 제가 만족하면 알려 드리죠."

월령안도 웃었으나 그 웃음은 선했다.

"좋아요! 귀 소주, 제가 반드시 소주를…… 자리의 모든 분들을 만족시킬게요!"

'왜냐하면 너희들은 불만스러울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대완국 국왕은 옆에 서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을 느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월 낭자, 그만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는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늦었어요!"

월령안은 빨간 입술을 살짝 벌리더니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비단 주머니를 풀더니 골적(骨笛 - 동물의 뼈로 만든 피리)을 꺼냈다.

"시작할게요!"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목을 깨끗이 씻고 그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 이건…… 백…… 호…… 골적(骨笛)? 천하의 모든 사도(沙盜 - 사막 강도)를 호령할 수 있다는 그 골적?"

대완국 국왕은 손으로 월령안 수중의 골적을 가리키며 눈빛이 흔들리고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난 끝장났어. 난 미움을 사서는 안 될 사람의 미움을 산 것이다. 염명경 귀시도 날 지키지 못할 거야!'

"안목이 있네요! 백호 골적을 알아보다니!"

월령안의 목소리는 아주 가벼웠다. 그녀는 손에 든 골적을 만지작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대완왕께서도 이 골적의 용도를 아시니 제가 다시 소개할 필요는 없겠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대완국의 신임 국왕은 다리가 나른해지더니 바로 월령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아니, 아니……. 제발, 제발 불지 마세요. 살려 주세요!"

백호 골적?

육장봉은 대완국 국왕을 바라보다가 다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대완국으로 오는 길에도 그는 월령안이 이 피리로 곡을 부는 것을 보았었다.

그때 그는 한마디 물은 적이 있었다. 월령안은 염 황숙을 따라 서역에서 주운 것이라고 했다. 전에 줄곧 잊고 지내다가 서역에 와서야 이것이 생각나 상 관리인더러 가져오라고 했다고 대답했다.

염 황숙과 연관된 것이기에 육장봉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지금 보니 이 골적은 대완국 국왕마저 겁을 먹고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니 절대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육장봉은 대완국 국왕에게 콩을 한 알 튕겼다.

대완국 국왕은 흠칫하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좋은 일을 하고도 이름을 남기지 않은 육장봉은 손을 등 뒤에 가져갔다. 그는 자기의 능력과 명성을 깊이 숨겼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양측에 앉아 있던 소국 군주들은 월령안과 대완국 국왕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들은 대완국 국왕의 반응을 보고 하나같이 서로서로 바라보며 당황한 얼굴을 했다.

지금 그들은 환호를 보내며 월령안더러 기예를 보여달라고 몰아세우지 않았다. 대완국 국왕의 반응을 본 그들은 매우 불안해졌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귀염도 대완국 국왕의 반응을 보고 당황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곧 침착해졌다.

지금 서역의 절반 이상 세력은 그들 귀시의 손에 있었다. 그들 귀시야말로 서역의 진정한 주인이었다. 서역 이 땅에서는 그녀의 실력으로 월령안을 땅에 누르고 마음껏 문질러도 되었다. 월령안을 모욕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었다. 그녀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귀염은 또 천천히 진정되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월령안, 여기는 서역이야! 소주인 내가 너더러 기예를 보여 주라고 하면 넌 보여 줘야 하는 거야. 넌 주나라의 세력을 빌려 대완국 국왕을 협박한다면 소용 있을 줄 알았어? 알려 줄게. 소용없어! 여긴 서역이지, 주나라가 아니야. 주나라의 신화(神話)는 서역에서 이어지지 않을 것이고 주나라의 신화를 신경 쓰는 사람도 없을 거야!"

귀염은 말하면서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줄곧 월령안에게 '눌려' 말할 기회조차 없었던 육장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허허!"

육장봉이 차갑게 웃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난 아주 억울하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오.'

월령안은 뭔가를 느낀 듯, 고개를 돌려 육장봉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눈을 깜빡이며 육장봉더러 잠시 화를 내지 말라고 눈치를 주었다.

육장봉이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없는 신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용히 옆에 앉아 최대한 월령안의 선두를 가로막지 않으려고 했다.

"대완국 국왕은 주나라의 협박을 받은 것이구나!"

소국의 군주들은 월령안의 손에 든 백호 골적을 보지 못하고 귀염의 말만 듣고는 하나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대완국 국왕이 왜 저렇게 겁을 먹었나 했어. 원래 주나라의 전신이 그들을 협박했구나. 그러나 나였어도 무서웠을 것 같아……. 염명경의 사람들이 주나라에게 밉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무섭다고. 염명경 귀시는 깊게 숨겨져 있어 주나라가 그들을 찾지 못해 우리로 화풀이를 한다면 우리 같은 작은 나라는 커다란 주나라 앞에 서면 아무것도 아니지."

"대완국 국왕은 이번에 크게 봉변을 당할 거야. 난 그가 염명경 그쪽과 사이가 좋다고 부러워했는데 지금 보니 사이가 좋으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아주 뚜렷한걸. 자, 봐봐……. 이런 고래싸움에 대완국 국왕 같은 새우는 등이 터지지 않겠어?"

"이번 판에서 염명경과 월씨 상사 중에 누가 이기고 누가 지든 어쨌든 대완국 국왕은 틀림없이 패배자야. 대완왕은 이제 막 즉위했는데……. 퇴위당하겠네."

몇몇 소국의 군주들이 모여앉아 시시덕거리며 고소해했다.

월령안은 대완국 국왕이 왜 그녀의 손에 든 것이 백호 골적인 것을 봤으면서 우물쭈물하며 큰소리로 말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챘다.

이 사람들은 비록 협력하고 있으나 하나같이 자기의 속내가 따로 있었고 꿍꿍이도 많았다. 심지어 상대방이 봉변을 당한 것을 보고 도와주기는커녕 두어 번 짓밟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떻게 이득을 나눌지 계산했다.

모든 동맹과 협력 관계가 다 이익으로 이어진 관계라고 하나 서역의 이 소국 군주들처럼 동맹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하나같이 고소해하는 모습은 월령안도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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