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785)화 (785/1,004)

785화 귀시의 소주 귀염(鬼冉)

대완국의 국왕 즉위 의식은 아주 웅장했다. 육장봉과 월령안뿐만 아니라 서역 주변의 작은 나라의 군주와 귀족들을 초대했다.

즉위식이 끝난 뒤, 성대한 연회가 열린다고 했다. 육장봉과 월령안도 초대를 받은 사람들 명단에 있었다.

두 사람은 시간이 얼추 된 것을 보고 마차를 타고 대완국으로 갔다.

대완국의 왕궁은 돌로 쌓은 건물이었는데 반원 모양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회백색이었다. 궁전의 꼭대기에는 태양 모양의 돌 조각이 세워져 있었다.

궁전은 크지 않았으나 주변에 각양각색의 보석으로 둘러 호화롭고 정교했다.

대완국의 귀족들은 흰색을 지존으로 여겼다.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흰색 장포를 입고 무거운 장신구를 한 귀족들이었다. 가끔씩 궁인들도 지나갔지만 그들의 몸에도 많은 금 장신구를 두르고 있어 회백색의 돌 궁전과 잘 어우러져 더욱 돋보였다.

월령안과 육장봉은 궁전 안을 거닐면서 가끔씩 고개를 들어 둘러보며 보기 드문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그러나 월령안은 자기가 대완국 궁전의 이국적인 풍채를 감사하고 있을 때, 궁전에서 오가는 귀족과 궁인들도 몰래 그녀를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주나라의 옷차림을 했는데 한 명은 준수하고 존귀했으며 한 명은 아름답고 장엄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우아하여 원래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함께 서 있으니 빛이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그녀에게 돌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물론, 안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작은 대완국은 물론이고 주나라에 있어도 그들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태연자약하게 연회청에 들어가 궁인의 안내를 받으며 왼쪽의 상석에 앉았다.

월령안이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육장봉의 덕분이었다.

높이 앉으면 멀리 볼 수 있는 법이었다.

낮에 대완국 국왕의 즉위식에 참가한 소국의 군주들이 모두 왔다. 그들은 모두 자식을 데리고 왔는데 사람마다 성대하게 치장을 했다. 마치 꼬리를 한껏 핀 공작새처럼 온몸으로 배필을 찾으려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특히 몇몇 귀족 소년들 사이에서는 강렬한 적의가 맴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목적을 가지고 참가한 것이 틀림없었다.

"춘일연 같지 않아요?"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육장봉을 향해 웃어 보였다.

"대완국 신임 국왕에게는 왕자만 있지 공주는 없소."

육장봉은 무심한 듯한 시선으로 둘러보더니 이미 짐작이 가는 곳이 있었다.

월령안은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시에서 여인이 왔어요."

외모가 뛰어난 미남미녀들은 절대 그녀와 육장봉을 겨냥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 둘이 들어와서 앉을 때까지 귀족 남녀들은 몰래 훑어보기만 할 뿐 먼저 나서서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와 육장봉이 그들의 목적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월령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궁전에서는 악기 소리가 들리더니 궁인의 쩌렁쩌렁한 통보 소리도 함께 들렸다.

"대완국의 국왕, 왕후, 왕자, 그리고 귀시의 소주 귀염(鬼冉)이 납시오!"

'앞의 세 사람은 그렇다 해도 귀시 소주 귀염은 무슨 소리지? 이것도 통보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월령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육장봉이 궁전에 들어설 때도 궁인이 통보하지 않았는데 한낱 귀시의 소주가 군주의 대우를 받다니. 이 사람들은 주나라와 육장봉 이 주나라 대장군을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니야?'

월령안은 불만을 드러냈지만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이 분노를 마음에 새겼다.

'감히 이 월령안의 남자를 밟고 이름을 날리다니. 귀시의 소주에게 '후회'란 게 무엇인지 알려 줘야 겠다.'

통보 소리가 끝나자 모든 궁전의 사람들이 일어나 웃는 얼굴로 궁전 입구를 향해 예를 올렸다.

월령안은 정말 웃음이 나왔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서역 이 소국 군주들의 눈치 없는 멍청한 행위에 웃음이 터진 것이었다.

오늘 대완국에 나타난 많은 소국의 군주들은 모두 귀시와 동맹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귀시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주나라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잊은 것이 아닐까?

그들이 이토록 귀시에게 아부하며 심지어 주나라를 짓밟고 육장봉의 명성을 짓밟는 것도 개의치 않는데 주나라의 보복을 불러일으킬까 두렵지 않은 것인가?

주나라는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주나라를 모욕하고 주나라의 대장군을 모욕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월령안이 화를 내는 사이에 대완국 국왕은 왕후, 왕자와 함께 궁전으로 들어왔다. 귀시의 소주는 그들보다 한 걸음 뒤에서 각 소국의 군주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예상대로, 귀시의 소주 귀염은 여인이었다. 그것도 묘령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기세가 아주 강해 보였다. 대완국 왕후의 뒤에 있어도 기세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월령안은 힐끗 보기만 하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는 귀시 소주 귀염이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완국의 국왕은 월령안과 육장봉 앞에 서서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주나라 예를 올렸다.

"육 대장군, 월 낭자, 소홀했습니다. 천조국에서 오신 두 분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는 말로 소홀했다고 하면서 전혀 황송해하지 않았다. 예도 대충 올렸다.

"소홀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소홀하다니. 알면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그 죄가 더하지."

월령안은 몰래 육장봉의 손을 잡으며 육장봉이 말을 못 하게 했다.

육장봉은 너그럽고 성미가 좋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이렇게 속이 좁고 원한을 가슴에 새겼다.

대완국이 육장봉의 체면을 짓밟은 것을 그녀는 평생 기억할 것이다!

육장봉은 마주 잡은 두 사람의 손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협조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탁자 위의 포도주를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

대완국에는 한혈보마(汗血寶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포도주도 많았다. 이것들을 주나라, 북요, 서하나 금나라로 운수한다면 귀시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래서 귀시는 큰 힘을 들여 이 새 국왕을 자리에 앉힌 것이었다.

"월 낭자는 언제부터 천조를 대표하셨나요?"

대완국의 국왕은 월령안이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무안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잠깐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허!"

월령안은 차갑게 웃으며 의자에 기대앉았다. 그녀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명쾌한 여인의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월 낭자? 월령안? 월씨 상사의 월령안이라고?"

말하는 새에 이국적인 소녀의 차림을 한 귀염이 월령안 앞까지 걸어왔다. 그녀는 오만한 얼굴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는데 그 시선에는 감출 수 없는 악의가 담겨 있었다.

육장봉은 줄곧 위험에 민감했다. 그는 눈앞의 이 여인을 힐끗 보았다. 그러자 왠지 눈에 익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자세히 떠올려 보아도 어디가 눈에 익은지, 누구와 닮았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귀시 소주, 귀염?"

귀염이 가까이 다가오자 월령안은 그제서야 귀염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귀염은 오관이 아름답고 움푹 꺼진 것이 한인(漢人)과 선명하게 달랐다.

'왜 귀시에서 여인을 서역으로 보냈냐 했더니만 이자는 서역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구나.'

월령안은 귀염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이 대답하지 않아도 귀염은 멈추지 않고 월령안을 물건 보듯이 훑어보았다. 그녀는 경멸 어린 시선으로 월령안을 훑어보며 두 손을 벌리고 오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상인?"

월령안은 따분한 기분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귀염이 일부러 '여상인' 세 글자를 강조했을 때, 월령안은 그녀가 무슨 생각인지 알아챘다.

주나라에서 서역까지 이 여인들의 수단은 변한 적이 없었다. 항상 그녀의 신분으로 그녀에게 타격을 주려고 했다.

이 귀시의 소주가 만약 '여상인' 세 글자로 그녀를 모욕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 귀시 소주도 그저 그 정도일 뿐이다.

월령안의 예상대로 월령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귀염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정말 상인 집안 출신이네!"

말을 마친 귀염은 또 사정없이 비꼬았다.

"술집 여자들은 망국의 한을 알지 못하고, 강 건너에선 아직도 후정화를 노래하네.1) 이 시에서의 '술집 여자'는 월 낭자 당신을 가리키는 거죠?"

말을 마친 그녀는 또 월령안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 시는 참 잘 썼어요! 월 낭자 생각은 어떠세요? 여상인은 이렇다니까요. 눈에 이득밖에 없죠. 돈을 위해서 뭐든 팔 수 있다니까요."

"염 소주는 스승을 모셔 글을 제대로 배우시는 게 좋겠어요. 여기서 망신을 당하지 마시고."

월령안은 시구의 '술집 여자'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애써 설명하지도 않았고 여상인은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팔 수 있다는 말도 반박하지 않았다.

잠든 척하는 사람을 영원히 깨울 수 없듯이 일부러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과 도리를 따질 수 없었다.

귀염은 트집을 잡으러 온 것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쨌든 모두 여상인이잖아요. 안 그래요?"

귀염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도도하게 말했다.

"주나라에서 술집 여자는 사람의 시중을 드는 것들이에요. 월 낭자도 여상인이니 기예를 보여 주어서 연회를 위해 흥이나 돋우는 것이 어때요?"

"무엄하다!"

육장봉의 안색이 변하면서 술잔을 세게 내려놓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월령안이 그를 꾹, 눌러 두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고개를 저어 보이며 그더러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육장봉을 다독인 월령안은 느긋하게 일어나 웃는 얼굴로 귀염을 바라보았다.

"정말 저더러 기예를 보여달라는 건가요?"

그녀는 귀시의 소주는 좀 다른 수를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린애가 심술부리는 것처럼 따분하기 짝이 없었다!

"왜요? 월 낭자의 몸값이 비싸 우리가 차마 지불하지 못할까 봐서요?"

귀염은 말마다 월령안을 기루의 기예를 파는 여인에 비유하며 신랄하고 날카로운 말을 퍼부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망가뜨리는 행위였다.

월령안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대완국의 국왕, 왕후, 왕자 및 맞은편, 그리고 하석(下首)에 있는 몇몇 소국 군주들을 훑어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정말 저더러 기예를 보여달라는 거죠?"

월령안은 눈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시선도 평온했다.

그러나 월령안의 시선과 마주한 대완국의 국왕은 이상하게 불안한 느낌이 들어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그는 귀염의 경고를 받았다.

대완국의 국왕은 하는 수 없이 억지로 말했다.

"그럼 월 낭자께서 수고해 주십시오!"

대완국 국왕이 떨어지기 바쁘게 다른 몇몇 소국의 군주들도 분분히 맞장구를 치면서 환호를 보내 월령안더러 기예를 보이라고 했다.

이 사람들은 귀시의 눈치를 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귀염 이 소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들은 월령안의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육 대장군의 미움을 사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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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商女不知亡國恨,隔江猶唱後亭花 - 남북조 시대, 시인 杜牧(두목)이 진후주(陳後主)의 고도(故都)를 지나다 지은 시. 여기서 술집 여자를 뜻하는 商女(상녀)는 여상인과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수(隋)나라 군대가 왕궁을 공격하는데도 평소처럼 성안에서 술을 마시고 시 읊기에 여념이 없다가 결국 포로가 된 진(陳)나라 마지막 왕을 뜻하는 말. 그는 뒤뜰의 꽃, 후정화(後庭花)라는 노래를 짓고 후궁의 미녀들에게 부르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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