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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84)화 (784/1,004)

784화 이 세상에는 만약이 없다

"제 생각에도 령안은 최고로 멋져요! 이 세상에서 다시는 이토록 멋진 여자애는 절대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월령안은 으쓱한 얼굴로 자신을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전혀 쑥스러워하지도 않고 아주 당당했다.

"이 세상에 어쩌면 저처럼 예쁘고 능력 있으면서도 지혜롭고 사리에 훤한 여자애가 있을까요?"

육장봉의 시선에는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손을 뻗어 월령안의 얼굴을 잡아당기며 웃었다.

"별로 두껍지도 않은데 말이오."

월령안은 으쓱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요, 제 얼굴은 얇아요. 제가 스스로 평가할 때는 항상 겸손했다고요."

"겸손하다고?"

'월령안에게 글을 가르친 스승은 아마도 '겸손'에 대해 제대로 해석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월령안이 이 두 글자의 뜻을 오해하고 있는 것일 거야.'

"왜요? 제가 겸손하지 않아요?"

월령안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육장봉의 허리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허리의 연한 살을 잡았다.

육장봉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난 지금 위협을 당하고 있는 건가?'

육장봉은 말없이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의 손목이 살짝 움직이면서 육장봉 허리의 연한 살을 비틀며 더욱 달콤하게 웃었다.

"왜요? 제가 겸손하지 않다는 말이에요?"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지자 육장봉은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난 당신이 겸손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자신을 평가하는지 알고 싶소."

"저처럼 겸손한 사람에게 어찌 겸손하지 않을 때가 있겠어요!"

월령안은 억울한 얼굴을 했다.

"알았소, 내가 잘못했소."

육장봉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그는 월령안의 낯가죽 두께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육장봉이 묵묵히 용서를 빌자 월령안은 하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길 가는 내내 두 사람은 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한담만 했다. 시간은 아주 빨리 흘렀고 마음도 매우 편했다.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가 계속되자 육장봉은 상처도 아주 빨리 회복되었다.

보름 뒤, 육장봉의 상처가 모두 나았고 일행도 무뢰국에 도착했다.

월씨 상사의 사람들은 진작에 떠났지만 상 관리인은 황금과 서역의 특산물을 담은 수십 차와 함께 무뢰국에서 월령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 관리인이 가져왔던 화물은 이미 전부 팔렸고 그는 그 돈으로 대량의 서역 특유의 약재와 향료, 및 종자를 구매했다.

그는 상인 대오를 거느리고 주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무뢰국에 들렀다가 월령안이 설용국에 사람을 구하러 갔다는 말을 들었다. 시름이 놓이지 않은 상 관리인은 무뢰국에서 이틀 기다렸다.

다행히 하늘도 눈이 있어 상 관리인은 월령안이 무사하게 돌아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월령안이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상 관리인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의 지금 기분은 마치 예전에 월령안이 어린 나이에 낯선 상인 대오를 따라 장사를 하러 떠나간 것을 알게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매일같이 걱정했다. 직접 월령안이 무사하게 돌아오는 것을 보아야만 진정 안심이 되었다.

* * *

상 관리인은 서무(庶務 - 특별한 명목이 없는 여러 가지 일반적인 사무)를 처리하는 데 능했다. 그가 있으니 월령안은 많은 일을 덜 수 있었다. 적어도 월령안은 대석과 사람들을 배치시키는 것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월령안은 대석을 비롯한 사람들을 주나라로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다.

주나라는 호적 관리가 엄격했다. 대석 등 사람들을 주나라로 데려간다면 조정의 이목을 끌 것이 분명했다.

그것 말고도 월령안은 대석 등 사람들의 배짱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말로 주는 쌀은 은혜를 베푸는 것이고 되로 주는 쌀은 원한을 쌓는 법.

이득을 너무 많이, 빠르게 준다면 처음에는 황송하고 불안할 수 있으나 시간이 길면 당연한 줄로 알게 될 것이다. 심지어 나중에는 이득을 적게 준다고 탓할 수도 있었다.

대석 등 사람들은 지금 순박하나 번화한 세상에 눈을 뜬다면 누가 그들이 계속해서 순박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사람 마음을 시험하지 않았다. 가장 시험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 마음이었다.

그들을 설용국에서 빼내고 그들에게 새 삶을 살게 해 준 것은 월령안이 그들과 했던 약속이었다. 월령안은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더 좋은 삶을 살고 싶다면 그들은 자기의 힘으로 바꿔와야 할 것이다.

단숨에 정상까지 오르고 싶다면?

그녀 앞에서는 불가능했다.

상 관리인은 대석 등 사람들을 배치시킨 뒤, 월령안에게 보고했다.

"큰아가씨, 아가씨께서 데려오신 사람들 중에서 몇 사람은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그들에게 더 좋은 삶과 더 나은 앞날을 약속하셨는데 결국 그들에게 거처만 찾아 주었다고 애초의 약속과 다르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전하거라. 난 그들에게 앞날을 줄 수 있으니 나한테 그들의 가치를 보이라고 하거라. 나중에 내가 무뢰국 부근에 술 가게를 꾸릴 건데 그들이 능력이 있다면 술 공장에 가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만약 그래도 불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거라……. 내가 그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고 그들이 무뢰국에서 정착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또 뭐가 불만이냐고. 나더러 그들을 평생 부양하라는 것이냐? 아니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달라는 것이냐? 그들이 그럴 자격이 있냐고 묻거라."

월령안은 육장봉과 화주의 얘기를 했지만 대석 등 사람들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만약 미리 말한다면 가죽 가게 주인의 간사함으로는 분명 높은 가격을 부를 것이다.

그러나 무슨 수가 있겠는가. 그녀의 주변에 화주를 빚을 줄 아는 사람은 그들밖에 없었다. 모두 장사를 하는 사람이니 누가 유일무이한 물건이 높은 가격에 팔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지금 그들을 안착시켰으니 그들도 번화한 바깥세상을 보았고 또 바깥세상의 생존 압력도 느꼈을 것이다. 지금 술 가게의 얘기를 꺼낸다면 많이 쉬울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곳에서 나온 사람들은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버틸 것이다.

지금 그녀는 그들에게 길을 제시해 주었다. 그들이 아주 멍청한 게 아닌 이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이다.

상 관리인의 능력으로 대석 등 사람들을 다루는 것은 작은 일에 불과했다. 그가 특별히 월령안에게 보고하러 온 것은 월령안이 어떤 태도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 사람들을 거래하는 상대로 여겨야 하는지? 아니면 목숨을 구해 준 은인으로 여겨야 하는지?

월령안의 태도를 확신한 상 관리인은 바로 대석 등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물론, 그 수법은 매우 간단하고 거칠었다. 내부 분열을 일으키는 데 지나지 않았다. 한 사람을 추켜세우고 다른 한 사람을 짓누르며 대석을 위시한 사람들에게 잘 지내고 싶으면 말을 들어야 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월령안과 함께 옥룡산에 갔던 마을 사람들은 대석을 대표로 상 관리인의 간단하고도 거친 진압을 겪고 나서는 바로 월씨 상사와 계약서를 체결했다. 그들은 월령안을 위해 술 가게에서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떠나는 것을 선택한 일부 사람들도 있었다.

떠난 사람들은 가죽 가게의 주인을 대표로 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대석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항상 야심이 가득하고 자기가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가죽 가게 주인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대석이 월령안과 옥룡산에 가자 그는 몰래 사람들을 끌어들여 나중에 대석과 발언권을 쟁탈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설용국을 나서자 가게 주인은 바깥세상을 보고 또 월씨 상사의 위력을 느꼈다. 그는 사람들 아래에서 굽히며 살고 싶지 않아 사람들을 끌어들인 뒤, 나가서 부딪혀 보자고 생각했다.

떠나는 날, 가죽 가게 주인은 특별히 월령안을 찾아와 작별을 고했다. 그는 월령안에게 감사를 표했고 또 월씨 상사에서 그를 좀 배려해 줄 수 없는지 물어보았다.

"물론 가능하지."

월령안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가게 주인에게 의정(儀程)을 주는 한편, 상 관리인더러 그가 길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해 주라고 했다.

가죽 가게 주인은 감격해하면서 연신 월령안이 좋은 사람이라고 읊조렸다.

월령안은 웃기만 할 뿐, 말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사람을 보내자 육장봉은 내실(內室)에서 걸어 나왔다.

"당신은 저자를 아주 좋게 보고 있소?"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데리고 부자로 되는 길을 가려고 해도 결국 가난의 심연에 빠지게 되죠."

"그런데 당신은 왜 그와 쓸데없는 소리를 길게 했소."

'내가 온 것을 알면서도 일찍 보내지 않고.'

"경험이 있는 백발의 노인을 속일지언정 가난한 젊은이를 속이지 말아야 하는 법이죠. 운명을 누가 단정 지을 수 있겠어요? 저자가 운이 좋아 귀인을 만나게 되면요? 아무튼…… 말 몇 마디 한 것뿐이니 손해 볼 것은 없어요."

사업하는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과 원수를 맺지 않았다. 또 괜히 누군가의 미움을 사지도 않았다.

큰일도 아닌데 보기 좋게 처리한다고 해서 나쁜 점이 없었다. 또 원한을 사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가죽 가게 주인이 정말 그녀에게 원한을 품는다고 해도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운이 좋긴 좋지!"

운이 나빴더라면 이 사람들은 월령안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월령안이 없었더라면 그들에게 아무리 많은 시간을 줘도 그들은 설용국 외의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월령안은 웃고 나서 시선을 들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육장봉의 옷깃이 약간 구겨진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 말은 그만하죠. 절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육장봉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더니 손에 든 초대장을 월령안에게 건네주었다.

"대완국(大宛國)의 초대장이오. 새로운 왕이 즉위하니 우리더러 구경하러 오라는군."

월령안은 초대장을 받아 들고 옆에 앉았다.

"대완국이라고요? 정변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럼 귀시의 사람인가요?"

육장봉은 마음속의 실망감을 누르고 월령안의 옆에 앉았다. 그는 다른 생각에 잠긴 듯이 대충 대답했다.

"맞소."

눈매가 부드러운 월령안을 바라보며 방금 전 그녀가 자연스럽게 그를 위해 옷매무새를 정돈하던 모습을 떠올리자 육장봉은 참지 못하고 몰래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돌아와 혼인을 올렸더라면, 만약 그때 내가 월령안이 보낸 편지를 자세하게 읽어 보고 월령안에게 회답 편지를 썼더라면. 만약 내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날에 아내를 내치지 않았더라면 나와 월령안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세상에는 만약이 없었다.

매번 이 생각이 들 때마다 육장봉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그가 꿈꾸던 삶이 그렇게 가까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가 직접 밀어냈다!

"마침, 저도 그들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들이 먼저 찾아왔네요. 그럼 가죠."

'안 간다면 나 월령안이 겁을 먹은 줄로 알 거야! 설용산의 원수를 난 기억하고 있다고.'

"그러지."

월령안의 눈빛에 드리웠던 부드러운 기색이 사라지고 드높은 전의만 남자 육장봉의 마음속은 말할 수 없이 씁쓸해졌다.

세상에는 역시 만약이 없었다.

오로지 눈에 그만 담던 월령안은 이미 사라졌다.

오로지 그만을 중심으로 삼던 월령안도 이미 사라졌다.

지금은 그 어떤 일도 그에게 향해 있던 월령안의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월령안을 탓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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