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9화 해독약을 주세요
그러나 월령안이 말을 묻자 육장봉은 부인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내가 쇠로 만든 것도 아니고. 난 단지 당신보다 일각 정도 먼저 깨어났을 뿐이오."
"그래요?"
월령안은 믿지 않았다.
"물론이지!"
육장봉은 진심 어린 얼굴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월령안에게 깊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육장봉은 월령안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깨어났으면 식사합시다. 저들이 말하기로 당신은 어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더군."
그는 월령안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이지 신이 아니었다.
그의 팔이 저렸으니까.
육장봉과 월령안은 모두 심하게 다쳤다. 특히 육장봉은 온몸에 동상을 입었다. 대석 등 사람들에게서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 하더라도 빠른 시일 안에 낫는 것이 아니었다.
월령안은 비록 모두 외상이고 뼈를 다치지 않았으나 여러 곳의 상처에서 피가 흐른 탓에 움직이기만 하면 심하게 아팠다. 아무래도 며칠 쉬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귀시의 사람이 나에게 전한 바로는 해독약이 옥룡산 꼭대기에 있다고 했소. 나더러 열흘 안에 옥룡산 꼭대기에 도착하라고 하더군. 오늘이 바로 열흘째요."
그 말은 그에게는 요양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제가 당신과 함께 갈게요."
월령안은 자기가 비록 당분간은 생명의 위험이 없지만 육장봉이 해독약을 얻지 못한다면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해독약 때문에 재차 염명경 귀시에게 휘둘리느니 단번에 해결하는 것이 나았다.
몸의 독을 해독하지 못하자 육장봉이 걱정할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도 걱정이 되었다.
아포의 배신은 그녀가 서역에서 약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끊어 버렸다. 지금 그녀에게 몸속의 독을 억제할 수 있는 해독약이 두 달 치 정도 있었다.
그녀도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그들은 나더러 홀로 산에 오르라고 했소."
육장봉은 월령안을 데리고 산에 오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산꼭대기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그들은 모두 몰랐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 혼자 다녀오는 것이 맞았다.
"당신은 당신 대로 가세요. 전 제 갈 길을 갈 테니까요. 옥룡산이 귀시의 것도 아니고, 제가 산에 오르고 싶다는데 그들이 절 어찌할 수 있겠어요? 또 귀시의 사람은 저더러 옥룡산에 혼자 오라고 했었어요. 제가 산꼭대기에 가는 것은 규칙을 어기는 것이 아니에요."
염명경 귀시는 일을 엄밀하게 하는 편이 아니었다. 내건 조건에도 허점이 수두룩했다. 이건 그녀를 탓할 것이 못 되었다.
육장봉은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
"당신 몸에는 상처가 있소!"
"당신 몸에도 상처가 있잖아요."
월령안이 말했다.
"그래서 난 더더욱 당신을 데려갈 수 없는 것이오."
'월령안은 꼭 나더러 상처 입은 내가 그녀의 안전을 보호하지 못할까 걱정된다고 직접 말하게 하려는 것인가?'
"지금 제가 짐 덩어리라는 거예요?"
월령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생존 욕구가 아주 강한 육장봉은 바로 부정했다.
"아니오, 난 그런 적이 없소!"
"그게 아니라면 왜 절 데리고 산에 오르지 않겠다는 거예요?"
월령안이 씩씩거리며 물었다. 육장봉이 여전히 거절하려고 하자 월령안은 눈시울을 붉히며 씁쓸하게 말했다.
"육장봉, 홀로 설산에서 하염없이 무언가를 찾는 그 절망적인 기분을 당신이 아세요?"
육장봉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내가 졌다!'
육장봉은 한숨을 내쉬며 더는 거절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약간의 준비를 했다. 특히 육장봉은 밤새 팔베개를 해 주느라 저릿한 팔을 움직여야 했다.
몰래 두어 번 두드리고 몸이 뻣뻣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한 육장봉은 일어나 월령안이 가져온 곰 가죽 외투를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서 떠날 준비를 했다.
육장봉이 있자 월령안은 대석 등 사람들을 데려가지 않았다.
그녀는 황금당이 산꼭대기에 살수들을 안배했을지 안 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대석 등 사람들은 소용이 없었다.
월령안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인감을 꺼내 대석에게 던져 주었다.
"사흘 안에 우리가 산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면 넌 이 인감을 가지고 서쪽으로 가서 월씨 상사를 찾거라. 그들이 이 인감을 보고 너희들을 위해 한 가지 일을 해 줄 것이다."
대석 등 사람들은 인감을 가지고 한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차가운 인감보다 그들은 더욱 월령안과 함께 설용국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들과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하는 것이었다.
말을 한 뒤, 육장봉은 월령안을 데리고 설산을 올랐다. 그 속도가 매우 빨라 대석처럼 노련한 사람도 따라갈 수 없었다.
육장봉은 하루 밤낮 꼬박 얼어 있은 탓에 실력이 약간 못해졌다. 그러나 아무리 못해져도 월령안을 데리고 설산을 걷는 일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산허리에 도착한 두 사람은 또 어제의 늑대 무리를 마주쳤다.
월령안은 또 늑대 무리와 한바탕 싸우게 될 줄 알았는데 늑대들은 그들을 보고 줄행랑을 쳤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늑대들은 배가 부른 것인가? 그래 보이지 않는데? 이것들은 더 큰 수를 준비해 오려는 것인가?'
월령안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늑대 무리를 바라보았다. 이를 본 육장봉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긴장하지 마오. 괜찮소."
"우리가 어제 이 늑대 무리를 만났는데 하마터면 전멸될 뻔했어요. 이 늑대들은 매우 굶주려서 아주 흉폭했다고요."
눈밭에서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너무 적었다. 어제의 그 먹이로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늑대들은 단결력이 아주 강한 종족이었다. 그들은 다른 동물처럼 늙어서 사냥을 못하는 늑대나 어린 새끼들을 나 몰라라 하지 않았다.
열몇 마리의 성년 늑대를 가지고 있는 늑대 무리는 먹여 살려야 할 늙은 늑대와 새끼들이 적어도 두 자릿수는 되었다. 어제의 그 먹이는 성년 늑대 몇 마리가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었다. 늑대 무리 전체가 배불리 먹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이 늑대들은 그들 두 '먹이'를 놓아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산에 오를 때도 늑대 무리를 만났소. 그러나 그들은 나한테 맞아서 도망쳤소."
육장봉은 홀가분한 얼굴로 말했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왠지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같은 늑대들이에요?"
월령안이 물었다.
"모르겠소. 난 그저 우두머리 늑대만 주의 깊게 보았소. 우두머리 늑대를 죽이고 또 몇 마리 더 죽이니 그들이 도망쳤소. 나도 더 이상 쫓기 귀찮았소."
육장봉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는 늑대 무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월령안은 또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크게 타격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같은 사람이 똑같이 늑대를 만났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지?'
월령안 그들은 어제 하마터면 늑대 무리에 의해 전멸될 뻔했다. 그런데 육장봉은?
'그의 말을 들어 보니 늑대들이 빨리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그가 늑대 무리를 전멸시켰을 거라는 소리잖아!'
월령안의 멍한 얼굴을 바라보자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뜨며 반문했다.
"당신, 내 실력에 대해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눈에 묻혔다고 월령안이 내가 아주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눈에 묻힌 것은 완전히 사고라고 해명해도 될까?'
눈사태는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그는 그때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길 시간밖에 없어 다른 것은 하지 못했다.
"없어요, 없어요, 절대 없어요! 고작 늑대 무리가 어떻게 당신의 상대가 되겠어요."
월령안은 육장봉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아부하듯이 말했다.
"늑대 무리가 별거라고. 백만 대군도 당신은 순식간에 없어지게 할 수 있죠!"
"역시 당신 내 실력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었군."
육장봉은 한숨을 내쉬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백만 대군을 없앤다는 것은 정말 해낼 수 없소. 적어도 차 마실 정도의 시간은 있어야지."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자기가 이미 충분히 아부를 떨었다고 생각했는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
'역시 남자치고 허풍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니까.'
월령안은 육장봉을 흘겨보고 말했다.
"우리 곧 산꼭대기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에요?"
계속해서 말을 하다가는 육장봉이 옥룡산을 순식간에 없애버릴까 봐 두려웠다!
육장봉은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웃고 고개를 들어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
"맞소, 도착했소!"
산꼭대기에는 검은 점이 있었다. 온통 새하얀 옥룡산에서 아주 눈에 띄었다.
육장봉은 멀리서부터 그 검은 점을 바라보며 검을 뽑아 들고 월령안을 자기의 옆에 단단히 붙게 한 뒤에야 산꼭대기로 걸어갔다.
산꼭대기서 육장봉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황금당의 당주(堂主)였다.
"왔구나!"
검은 옷을 입고 얼굴에 황금 가면을 한 남자의 옆에는 온통 검은 칠을 한 검이 세워져 있었다.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육장봉과 월령안이 산에 오른 것을 보고 황금당 당주는 시선만 들었을 뿐, 전혀 놀라워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육장봉과 월령안도 그를 보고서 전혀 놀라워하지 않았다.
"당주, 또 만났군요."
월령안은 웃는 얼굴로 황금당 당주에게 예를 올렸다. 그리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서역의 길을 개척하는 황금이 충분해지자 황금당은 내팽개쳐졌군요. 염명경 귀시의 수작은 참 대단해요! 물론, 황금당도 참 처참하고요. 그래도 큰 공을 세운 공신(功臣)인데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황금당의 당주는 말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미소로 화답하며 느긋하게 앞으로 다가갔다.
"황금당이 버려진 것에는 제 공로도 있어요. 저와의 그 두 차례 큰 거래가 없었더라면 당신들도 이렇게 빨리 서역의 귀족을 매수할 황금을 모으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녀는 진작부터 생각했어야 했다.
어떤 살수 조직이 이토록 견고하게 돈이나 은표가 아닌 황금만 고집하겠는가.
돈과 은표도 황금으로 바꿀 수 있지만 대량의 황금은 모두 조정과 귀족, 대상인들의 손에 있었다. 황금당처럼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 곳에서 대량의 황금을 바꾸려면 설령 염명경 귀시를 통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을 리 없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황금당의 독특한 성질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에게 황금당의 살수는 단순히 황금만 좋아한다는 인식을 심어 두었다.
염명경 귀시의 이 작전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만약 그녀가 서역에 오지 않았더라면 염명경 귀시가 서역에서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황금당이 이 몇 년 동안 번 황금이 모두 서역에 쓰였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요? 저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나요?"
월령안은 황금당 당주와 열 걸음 정도 떨어졌을 때, 발걸음을 멈췄다.
"하, 아주 고맙다!"
황금당 당주는 마치 조각상처럼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저한테 감사를 표하려면 성의를 보여야죠!"
월령안은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손을 내밀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가 왔어요. 해독약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