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776)화 (776/1,004)

776화 눈밭에서 찾아낸 단서

월령안은 일찍이 장사를 하러 돌아다니며 겪어 봤기 때문에 눈사태가 뭘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약재를 찾던 일행 수백 명이 눈사태를 만났다가 순식간에 눈에 파묻혀 시체조차 찾지 못하게 된 것을 보았었다.

대석에게서 옥룡산에 눈사태가 일어났다는 말을 들은 월령안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혀끝을 꽉 깨물고 나서야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육장봉이 곁에 없으니 그녀는 의지할 곳도 없다 느꼈고 보호 받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그녀는 쓰러지면 안 되었다.

혀끝의 아릿함과 입안에서 퍼지는 피비린내는 월령안이 강제로 침착함을 유지하게 하였다. 그녀는 감정의 기복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흔적에서 보면 눈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나 되느냐?"

'만약 이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면 어쩌면……. 아니, 아니, 아니, 난 함부로 생각할 수 없어. 육장봉이 어떻게 설산에 묻혀 있겠어! 심지어 육장봉은 옥룡산에 오지 않았을 수도 있어. 염명경 귀시에서 나더러 홀로 옥룡산에 오라고 한 것은 나를 속이려는 것일 거야. 난 스스로에게 겁을 줄 수는 없어.'

대석은 월령안의 침착한 표정을 보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흔적으로 보면 아마도 이 이틀 사이에……. 제가 산허리에 있었는데 돌 위에 검이 스친 흔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산허리에서 싸운 탓에 눈사태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설용국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설산에서 싸움은커녕 큰 소리로 말만 해도 눈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고작 이틀 전……."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은 울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한, 복잡한 표정이었다.

이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인데다 몸싸움을 벌인 흔적, 거기다 염명경 귀시의 처사까지, 이 모든 것들은 그녀가 전에 생각했던 것들이 스스로를 속인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육장봉이 정말 옥룡산에 있는 거야. 눈사태도 그와 연관되어 있고. 심지어 육장봉이 눈 아래에 깔려 있을 수도 있겠어.'

비릿한 입안의 피 냄새에 월령안은 토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녀는 몰래 숨을 여러 번 들이쉬고 입안의 피를 삼켰다. 그리고 억지로 침착하게 말했다.

"너희들 다 쉬었느냐? 지금 산에 오를 수 있겠느냐?"

"지금은……."

대석은 왠지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가 길게 생각하기도 전에 월령안이 또 덧붙였다.

"너희들이 산에 오르기 싫어도 괜찮다. 내가 지금 돈을 줄 테니 우리 각자 흩어지자."

월령안은 말만 하지 않았다. 말을 마친 그녀는 돈주머니를 대석에게 던져 주었다.

"나머지는 너희들에게 주는 상금이다."

말을 마친 뒤, 월령안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옥룡산으로 걸어갔다.

옥룡산의 눈은 무릎까지 왔다. 대석이 지나간 발자국이 있더라도 월령안은 힘겹게 걸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위로 향했다.

대석은 월령안을 바라보다가 또 손에 든 돈주머니를 바라보며 일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를 따라온 사람들은 더더욱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어떻게 할지 전혀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석이 결정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석이라고 별수가 있겠는가?

월령안은 돈주머니를 깔끔하게 던져 주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길을 갔다. 또 고개를 돌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협박하지도 않고 대신하여 선택을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미 옥룡산에 도착했다. 설령 그녀 혼자라고 해도 그녀는 육장봉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육장봉을 떠올리자 월령안은 점점 더 빨리 걸었다. 추워지면 가져온 화주를 마시고 배가 고파져도 화주를 마셨다.

화주의 힘을 빌려 월령안의 대석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한 시진 반 동안 걸으니 대석이 말한 눈사태의 흔적을 보았다. 또 대석이 말한 몸싸움 흔적도 보았다.

눈사태가 지난 뒤, 큰 눈이 오지 않은 탓인지 산허리에는 쌓인 눈이 얼마 없었다. 발아래에는 이미 거무스레한 땅과 모양이 각각 다른 돌이 드러났다.

땅에서 검과 칼이 스친 자국이 많았다. 얼마 전에 여기서 싸운 적이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몸싸움을 했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눈사태가 지난 뒤에도 그들이 여기 있었는지, 도망치지 않았는지는 전혀 보아낼 수 없었다.

월령안은 산허리에 서서 온통 새하얀 주변을 바라보며 잠시 동안 멍해졌다.

'난 어디서부터 사람을 찾아야 하지?'

월령안의 망연자실함은 단지 순간이었다. 그녀는 바로 손을 쓰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건 단서가 생긴 것이니 먼저 찾자!"

지금의 상황은 이미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그녀는 홀로 옥룡산에 와서 열흘에서 보름 동안 육장봉의 행방을 찾아 헤맬 것을 예상했었다.

'지금 옥룡산에 오자마자 단서를 찾았는데 내가 불만스러울 게 뭐가 있겠어?'

여기까지 생각한 월령안은 기운이 생겼다. 그녀는 아무 방향을 선택해 땅에 떨어진 돌 조각을 줍고 눈밭에서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먼저 이곳의 눈을 치워서 사람이나 다른 흔적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눈밭은 아주 컸다. 월령안은 이곳에서 쓸 만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었지만 찾지 않는다면 분명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먼저 이곳을 치워야 했다.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육장봉이 이곳에 없다는 것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주아주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월령안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월령안이 고개를 숙이고 눈밭을 팠다. 파다가, 파다가 갑자기 기척이 들렸다!

월령안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눈을 파고 있는 대석과 다른 마을 주민들이 보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너희들……."

대석은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

"낭자가 약속했잖아요. 우리를 데리고 설용국을 빠져나가기로. 우리를 데려가기 전에는 낭자는 죽을 수 없어요."

그들이라고 한밤중에 방금 눈사태가 일어난 곳에 오고 싶겠는가.

월령안이 그들에게 그토록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 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전혀 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돈도 다 받았는데 무사히 금 덩이를 가지고 집으로 가면 좋지 않겠는가?

이곳은 방금 전에 눈사태가 일어난 곳이었다. 또 눈사태가 일어날지 안 날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이 이 시간에 설산에 올라가는 것은 목숨으로 도박을 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평생 이런 곳에서 갇혀 지내고 싶지 않았다.

마치 가게 주인이 어제 그들에게 말한 것처럼, 그들에게 돈이 있은들 또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들 같은 서민들은 돈이 있어도 지키기 힘들었다.

귀인의 도움이 없이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설용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몇 세대 지나서야 사람처럼 살 것이다.

도박에 져도 고작 그들의 천한 목숨 하나 잃을 뿐이다.

그러나 도박에서 이긴다면 그들은 자손에게 남다른 미래를 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 일행은 한바탕 토론을 한 후, 두 사람을 보내 이 금 덩이들을 돌려보내고 그들은 월령안을 찾으러 산을 오른 것이었다.

그 금 덩이들이 있는 이상, 그들이 전부 옥룡산에서 죽는다 해도 가족들은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더 물을 필요 없이 월령안은 한눈에 대석 등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파악했다.

그녀는 전처럼 그들을 감질나게 하지 않고 먼저 약속했다.

"너희들은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설용국을 나선다면 너희들은 월씨 상사의 월이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낭자……."

대석은 눈을 반짝이더니 기뻐서 말도 하지 못했다.

대석이 흥분되어 재차 확인하려는 순간, 그의 족인(族人 - 같은 종문의 먼 친척)이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여기에……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건드리지 마!"

월령안은 죽은 사람이 있다는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놀라고도 두려웠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월령안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마을 사람이 가리킨 대로 시선을 옮기자 땅에는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린 마른 체형의 시체가 보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육장봉이 아니었다!

"이 사람의 몸에는 치명상이 없습니다. 얼어 죽은 것입니다."

대석은 월령안보다 한 걸음 늦게 도착했다. 자신의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내려고 대석은 먼저 앞으로 다가와 시체를 살펴보았다.

월령안은 너무 급히 일어난 데다 과하게 긴장하여 다리가 나른해졌다. 그녀는 억지로 버티지 않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것이 없나…… 계속해서 찾아보거라!"

눈사태가 일어난 곳에서 얼어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쁜 소식이기도 했다.

이는 그들이 격투를 벌일 때, 눈사태가 일어났고 그들은 미처 도망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말이었다.

"여기에 또 황금이 한 덩이 있습니다!"

시체를 발견한 마을 사람은 작은 황금 장식품을 들고 쩔쩔매며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이 황금은 내가 발견한 것이니 내가 가져도 되겠지?'

월령안은 힐끗 보고 냉소를 하였다.

"황금당의 살수구나!"

'염명경 귀시의 사람은 얼마나 육장봉의 목숨을 가지고 싶었던 것일까?

사람을 이따위 곳으로 불러들인 것도 모자라 살수까지 부르다니.'

"여기에 피 흔적이……. 그리고 시체가 한 구 더 있습니다. 시체에 황금도 있습니다!"

"여기에도……."

시체 한 구를 발견한 뒤, 다른 마을 사람들도 연이어 눈밭에 묻힌 시체를 발견했다.

시체가 모두 열세 구였다. 한칼에 즉사한 것도 있었고 얼어 죽은 것도 있었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황금당의 살수였다.

'육장봉은 살아 있어!'

월령안은 땅에 가득 널린 시체를 보자 점점 육장봉에 대한 신심이 생겼다.

그녀는 돌아서서 대석 등 사람들의 피곤한 모습을 보고는 대석더러 사람들을 먼저 쉬게 하라고 했다.

그녀는 사람을 찾는 데 급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을 가축 부리듯 부릴 수는 없었다.

대석 등 사람들은 월령안의 말을 듣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그들은 춥고 배고픈데다 또 지치기까지 하여 실로 버티기 힘들었다.

대석은 온몸의 긴장이 풀어져 고개를 드니 우울한 얼굴로 앞쪽을 바라보는 월령안이 보였다. 그는 생각하다가 한 마디 설득했다.

"귀인 낭자, 이곳은 우리가 모두 치웠지만 낭자가 찾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낭자가 찾는 사람이 이곳에는 없는 게 확실합니다. 그는 분명 괜찮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월령안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는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난 그를 믿어."

대석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위로해 줄 필요가 없었네.'

대석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