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5화 이상과 미래
월령안은 그들 중에서 옥룡산에 들어간 적이 있다는 사람들에게 추가로 금 덩이를 하나씩 더 주었다. 그들더러 서른 명이 옥룡산에서 필요할 물자와 일행이 옥룡산에 들어갈 때 쓸 썰매를 준비하라고 했다.
돈을 나눈 뒤, 월령안은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그녀는 계약서도 쓰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 적지도 않았다.
가게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사람들이 흩어진 뒤,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협객, 정녕…… 이들이 돈을 가지고 도망칠까 두렵지 않으신가요? 무려 금 덩이 하나라고요!"
이런 작은 곳에서는 금 덩이 하나로 한 가족의 운명을 살 수도 있었다!
월령안은 가볍게 웃고 반문했다.
"넌 이런 보잘것없는 곳을 떠나 출세할 기회를 잡고 싶으냐?"
"그럼요! 물론이죠! 꿈에서도 그러고 싶어요! 협객께서 비웃어도 하는 수 없지만 전……, 전 이 돈을 벌고 나서 가족을 데리고 사람이 살 맛 나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가게 주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낭자도 제가 탐욕스럽다고 탓하지 마세요. 이곳에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어요. 조금이라도 다른 수가 있었다면 절대 여기에 남아 있지 않겠죠. 우리는 나이가 많아 희망이 없다 해도 애들은 아직 어린데 그래도 그들의 앞날을 생각해야죠."
"그런데 너희들 힘으로 어디를 갈 수 있겠느냐? 어느 곳에서 너희들을 원하겠느냐? 너희들이 누란어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누란에서 너희들이 입성하는 것을 허락하고 호적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느냐? 다른 곳에 간다면 너희들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느냐?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현지인이니 서역의 나라들이 얼마나 배타적인지 나보다 잘 알 것이다. 너희 같은 외지인들이 호적도 없이 입성하려면 노예가 되는 수밖에 더 있겠느냐?"
월령안이 문제를 잔뜩 던지자 가게 주인은 그만 얼이 빠졌다. 그는 멍하게 월령안을 바라보다가 절망적으로 변했다.
"그, 그렇게 어렵나요?"
'그럼 내가 평생 이따위 곳을 떠나지 못한다는 말인가?'
"너희들에게는 아주 어려워도 나한테는 쉽지!"
월령안은 금 덩이 하나를 꺼내 가볍게 불었다.
"금 덩이 하나를 가지고 계속해서 이딴 곳에서 살지, 아니면 나와 함께 미래를 개척할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
월령안은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손에 든 금 덩이를 가게 주인에게 주었다.
"잘 생각해 봐! 이곳에서 금 덩이를 껴안고 평생 썩는 게 좋을지, 나와 함께 새로운 삶으로 달려가는 것이 좋을지!"
상인은 물건을 팔 뿐만 아니라 이상과 미래를 팔기도 한다.
그녀가 오늘 판 것은 바로 미래였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그녀의 고객들이었다!
설용국은 일 년 내내 눈으로 덮여 있었다. 양식을 심을 수 있는 토지는 극히 적었고 심었다 하더라도 기후의 영향을 받아 수확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이 땅에서 사는 백성들은 아무리 부지런해도 살아가기 힘들었다.
그 금 덩이 하나는 비록 그들이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지만…….
돈 같은 것은 언젠가 다 쓰는 날이 오는 법.
진정 총명한 사람은 살길을 찾을 것이다.
월령안은 그들 중 대다수가 금 덩이를 받은 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특별히 가게 주인에게 이 말을 한 것이었다.
그녀는 가게 주인처럼 간사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꼭 총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총명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길을 택할 것이다.
일을 마친 뒤, 월령안은 가죽 가게의 문을 닫고 가게 안에서 쉬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가 주인의 가게를 강제로 점거한 것이다.
가게 주인은 의견이 있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차가운 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눈꽃이 휘날렸다.
월령안은 가게 안에서 모든 문틈을 꼭꼭 막아 두었지만 여전히 밖에서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정말 사람 살 곳이 못 되는군!'
아침에 깨어나 입김을 불어보니 바로 얼음으로 변했다. 방 안의 물도 얼음덩이로 변했다. 다행히 그녀가 어젯밤에 화로 위에 물 주전자를 올려 두어 마실 물이 없지는 않았다.
그녀는 머리를 빗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건량을 끊어 물 주전자에 넣은 뒤, 끓여서 대충 끼니를 때웠다.
간신히 배를 불린 뒤, 또 설용국의 화주를 마신 월령안은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눈송이가 날려 들어왔다. 월령안은 사레들려서 죽을 뻔했다.
얼굴을 꽁꽁 싸매서 눈보라를 막은 뒤 눈을 뜨자 밖에 늘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월령안은 이를 보고도 전혀 놀라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한마디만 했다.
"많아졌군!"
그녀는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고 기회가 있다면 필사적으로 잡을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그녀처럼…….
팔을 다친 가게 주인은 어제의 교활함을 지우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뒤, 엄숙한 얼굴로 앞으로 다가와 월령안에게 다소 이상한 읍을 했다.
"낭자, 저희들도 무서운 것을 무릅쓰고 알려 드립니다. 우리는 설용국의 사람이 아니고 서역의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주나라 사람들입니다. 저는 비록 주나라 말을 할 줄 모르지만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을 들어 보았지요.
낭자가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제 할아버지의 어조와 매우 비슷했습니다. 전 낭자가 분명 주나라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죠! 낭자께서 우리 모두 주나라에서 온 것을 봐서 우리에게 이곳을 떠날 기회를 주십시오. 우리는 보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떠날 수만 있으면 됩니다!"
가게 주인은 월령안이 어제 지불한 금감을 모두 바쳤다. 그중에는 월령안이 백곰 가죽을 사느라 지불한 금감도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받지 않고 의아한 시선으로 가게 주인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모두 주나라 사람이라는 것이냐?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머무는 것이냐? 그리고 난 너희들이 주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이 사람들에게는 주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게 주인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의 선조들이 바로 전조(前朝) 대장군의 친위대입니다. 주나라가 개국한 뒤, 서역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저희의 조상님들은 여러 곳을 거쳐서 설용국에 자리를 잡았지요. 우리들의 선조는 주나라 사람이지만 그것도 모두 삼사 대 전의 일입니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설용국에 있어서 낭자를 제외하고 주나라 사람들이라고는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어제 내가 들어오자마자 알아보았다. 설용국에는 확실히 외부인이 들어온 적이 없더군."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을 믿는다고도 하지 않고 믿지 않는다고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어디 사람이든 난 상관하지 않는다. 돈을 가져가 나누거라. 내가 다시 너희들에게 한 시진의 시간을 줄 테니 집안사람들을 다독이거라. 한 시진 뒤, 옥룡산으로 출발한다."
가게 주인은 이 말을 듣고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월령안에게 거절당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월령안이 또 말을 이었다.
"이번 옥룡산으로 가는 여정은 우리 양측이 서로 선택하는 기회다.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너희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난 반드시 너희들을 데리고 나갈 것이다. 마찬가지로 너희들도 이 기회에 내 실력을 보고 다시 나와 함께 갈 것인지 결정하거라!"
가게 주인은 크게 기뻐하며 월령안에게 진심을 담아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절대 낭자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비록 월령안이 이것은 양쪽이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그들은 월령안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래서 옥룡산으로 가는 이번 여정은 월령안이 그들에게 내린 시험이었다.
그들이 월령안의 마음에 든다면 그들은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잘 지낼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해도 적어도 정상적인 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좋다, 너희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겠다!"
월령안은 새하얀 먼 곳을 응시하며 차가운 시선으로 말했다.
염명경 귀시의 사람은 사람을 데려가지 말고 그녀더러 홀로 욕룡산으로 가라고 했다. 그렇다고 월령안이 부릴 사람이 없겠는가?
이 세상에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월령안은 쓸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군인 후예라서 그런지 이 사람들은 아주 효율적으로 일했다. 월령안은 그들에게 한 시진을 주었지만 반 시진도 되지 않아 그들은 돌아왔다.
또 하나같이 모피를 갈아입고 배낭을 메는 등 철저하게 준비를 마쳤다.
가게 주인은 몸에 상처가 있어 그들과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들도 남아서 마을을 지키며 노인과 부녀, 아이들을 보살필 사람이 필요했다. 그들 일행을 이끄는 사람은 대석(大石)이라고 하는 남자였다.
대석은 옥룡산에 세 번 다녀온 적이 있어 그들 중에서 경험이 가장 풍부한 사람이었다. 동시에 대석은 그들 촌장의 아들이기도 했다. 촌장은 그때 유배된 사람들의 상전이었는데 마을에서 명망이 아주 높았다.
그러나 백 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 사람들은 글도 모르고 족보도 잃어버려 상세한 가족사는 얘기할 수 없었다.
물론, 월령안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이 사람들의 내력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쓸 만하면 되었다.
현지인이 길을 안내하는 데다 또 눈길에서 움직이기 편한 썰매가 있자 일행은 그날 저녁 무렵에 옥룡산 발치에 도착하게 되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새하얀 눈밭이었다. 밤인지 낮인지 사실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루 종일 길을 간데다 지금 배고프고 지친 점을 감안하여 월령안은 육장봉의 안위가 아무리 걱정되어도 경험이 풍부한 대석더러 쉴 곳을 찾으라고 했다. 그녀는 내일 아침 계속해서 길을 떠날 생각이었다.
안전에 안전을 기하기 위해 월령안은 대석더러 사람을 시켜 길의 상황을 조사하게 했다. 이 근처에 사람들이 나타난 흔적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알아보았지만 현지인들은 외지인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월령안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흔적을 찾으려고 했다.
염명경 귀시는 자신의 명성으로 장난을 칠 리가 없었다. 육장봉은 옥룡산에 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큰 옥룡산에서 그녀가 어디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말인가?
대석은 월령안에게 이 며칠 동안, 매일 눈이 왔고, 특히 오늘은 눈이 아주 크게 왔으니 흔적이 있어도 모두 눈에 덮였을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월령안의 찌푸려진 눈썹을 바라보자 월령안이 그들을 데리고 설용국을 떠나겠다는 약속이 떠올랐다. 대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길과 흔적을 찾으러 떠났다.
설산은 가기 힘들었다. 경험이 풍부한 대석일지라도 한 번 다녀오기조차 쉽지 않았다.
대석은 월령안의 요구대로 자세히 길에 흔적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별다른 수확이 없던 와중에 산허리에 도착한 그는 눈사태의 흔적을 발견했다.
설산에서 눈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은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눈사태가 일어나기만 하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두 설산 아래에 묻히게 된다.
'그 낭자가 찾으려는 사람이 이 이틀 안에 옥룡산에 올랐다면, 위험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