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4화 설용국(雪龍國)
옥룡산과 무뢰국은 각각 가장 북쪽과 서쪽 끝에 위치해 있었다. 두 곳 사이의 거리는 천 리가 넘었다. 월령안은 밤낮 가리지 않고 길을 재촉했는데도 사흘이나 걸렸다.
연속 사흘을 달린 월령안은 더없이 피곤하였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그녀는 설용국에 들어가기 전에 안전한 곳을 찾아 반나절 쉬었다. 피로감이 좀 가신 듯하자 그제서야 설용국으로 달려갔다.
설용국에 들어서자마자 월령안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느꼈다. 그녀가 가져온 모피는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는 돈이 많았다.
월령안은 장터에 들어가 현지에서 가장 큰 가죽 가게로 들어갔다. 그녀는 가격도 깎지 않고 바로 가게에서 가장 비싼 백곰 가죽의 피풍의와 백곰 신을 사서 갈아입었다.
"이 빌어먹을 날씨 같으니라고! 염명경 귀시 그 녀석들이 날 속이지 않았기를 바라겠어. 아니면 내가 주나라에 돌아가면 반드시 월씨 가문 귀시를 열어서 그들의 장사만 빼앗을 테니까. 손해를 보더라도 너희들이 망하게 할 거야!"
월령안은 백곰 가죽을 몸에 두르고 현지 백성들이 강력하게 추천한 화주(火酒)를 따랐다. 그리고 잔에 든 매운 화주를 조금씩 삼켰다.
화주가 목구멍에 들어가자 타는 듯한 느낌이 늘었다. 맛도 좋지 않았으나 월령안은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고 드디어 살았다고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날씨, 이 빌어먹을 곳. 이번 생에는 절대 다시 오고 싶지 않아!'
"이보게, 날 데리고 옥룡산으로 갈 사람이 있나? 난, 너희들에게 보수를 줄 것이네!"
설용국은 너무나도 외딴곳이었다. 월령안은 설용국에 처음 왔다. 다행히 설용국에서는 누란어(樓蘭話)를 썼다. 월령안도 마침 할 줄 알아 현지인과 문제없이 교류할 수 있었다.
"너…… 얼마를 낼 건데?"
가죽 가게의 주인은 녹두알만 한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월령안의 몸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에는 사악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 어린 소녀가 집을 나섰다. 몸에 거금을 두르기는커녕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다 해도 안전하지 않았다.
'이 소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혼자 마구 돌아다니네. 내가 나쁜 마음을 먹어도 탓하지 말라고.'
월령안은 화주를 마시고 손발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옆의 탁자 앞에 앉아서 비수를 꺼내 탁자 중앙에 꽂았다.
"그 눈알을 치우거라! 내가 홀로 찾아왔다는 것은 너희들이 행패를 부릴까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비수는 정교한 강철로 만들어진 것으로 차가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한눈에도 보통 물건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자기의 검은 속내가 월령안에게 까발려졌지만 가죽 가게 주인은 두려워하지도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간상배의 모습을 하고 말했다.
"헤헤, 낭자께서 오해하셨군요. 소인은 낭자가 가죽을 사시고 돈이 부족할까 걱정되어 한 소리입니다."
그 가죽은 열 배로 부풀려 판 것이었으나 이 소녀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이 소녀가 멍청하고 돈이 많은 줄로 알고 꿀꺽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이 고깃덩이를 먹기는 그른 것 같았다. 겨우 국물이나 얻어 마실 수밖에 없었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을 소개하거라. 너한테도 이득이 떨어질 것이다."
월령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주인을 흘겨보았다. 백곰 가죽을 쓴 그녀의 몸은 작고 가녀렸으나 온몸으로 내뿜는 기세는 결코 낮잡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소녀는 만만하지 않군.'
가게 주인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눈에는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을 담지 않았다.
"낭자, 몇이나 필요하신지요?"
'난 현지인인데 내가 무서워할 게 뭐가 있겠어?'
월령안은 돈 주머니를 내놓고 그 안에 든 금을 전부 쏟았다.
"있는 만큼 다. 많을수록 좋다! 나와 함께 옥룡산으로 가면 한 사람당 이 금을 두 덩이씩 줄 것이다. 떠나기 전에 한 덩이, 돌아와서 또 한 덩이! 만약 일이 생긴다면 열 덩이씩 줄 것이다!"
서역에서 통용하는 화폐는 황금이었다. 월령안은 오기 전에 돈을 유통하기 편리한 금 덩이로 바꾸었다.
물론, 그녀가 가져온 금 덩이는 크지 않았다. 동전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이고 두께는 비슷했다.
하지만 월령안이 쏟아낸 금은 적어도 백 개는 넘었다.
가게 주인은 탁자 위에서 반짝거리는 금 덩이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무서운 것도 잊고 앞으로 달려들어 빼앗으려고 했다. 그런데 움직이자마자 은침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날아왔다.
"죽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
은침이 얼굴을 스치며 깊은 혈흔을 남겼다. 그러나 돈에 눈이 먼 가게 주인은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월령안에게 덮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을 들어야 하는 쪽은 네년……!"
그러나 가게 주인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무릎을 꿇게 되었다!
장사를 하러 다니는 것은 강호의 사람들보다 더 위험을 많이 겪게 되는 일이었다.
강호 사람들은 모두 무공이 있는 사람들이고 별로 부유하지 않았다. 강호인들이 원수를 갚으려고 찾아오는 것 말고는 습격당하거나 약탈당하는 경우가 아주 적었다. 그러나 장사하러 돌아다니는 것은 달랐다.
사람들 모두 상인들에게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물건을 가지고 움직이는 상인 대오는 더욱 값졌다.
더구나 상인은 강호인보다 못했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맷집이 약했다. 무공을 할 줄 아는 사람을 고용해 물건을 옮긴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전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았다.
그래서 상인은 줄곧 강호 산적들과 강도들의 주요 약탈 대상이었다.
월령안은 열 살이 넘어서부터 상인 대오와 함께 도처를 돌아다녔다. 그 어떤 위험도 모두 겪어 보았다. 가죽 가게 주인이 이렇게 솔직하고 악랄하게 나쁜 짓을 하는 모습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게 주인의 한쪽 팔을 망가뜨린 뒤, 월령안은 금 덩이 한 줌을 쥐고 그에게 던져 주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말을 잘 들으면 너는 남은 생을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난 네 사지를 망가뜨려 병신을 만들 것이다!"
한쪽은 남은 생에 쓰기에도 충분하고도 남는 돈이고 다른 한쪽은 죽을 각오로 모험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가게 주인도 성격이 대쪽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그는 월령안 이 노다지를 홀로 꿀꺽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월령안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바로 겁을 먹었다. 그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월령안은 옥룡산에 들어갈 사람을 찾아 줄 현지인이 필요했다. 가죽 가게의 주인은 비록 간사했지만 시장에서 가장 큰 가죽 가게의 주인이 된 것으로 보아 능력이 꽤나 있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심성이 못되고 탐욕스러워도 쓸데가 있었다.
가게 주인은 월령안 앞에서 복종한 뒤, 밖으로 나가서 그녀와 함께 옥룡산에 들어갈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러나 한눈에 월령안은 이 사람들이 모두 거리의 깡패로 일을 할 만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월령안은 차갑게 웃더니 비수로 가게 주인을 가리켰다.
"너도 나와 함께 가도록 하지."
"나, 낭, 낭자……. 어휴!"
가게 주인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판 무덤에 자기도 빠지게 될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사람들은 착한 부류가 아니었다. 이 여자애의 몸에 있는 돈이 나누기 충분하지 않다면 그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럼 쓸 만한 사람으로 바꾸어 오거라!"
월령안은 어느새 비수를 꺼내 가게 주인의 앞을 막았다.
"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좋다. 나한테 널 죽일 이유를 주지 말거라!"
"네, 네, 네……."
가게 주인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뛰어나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데려오기는 쉬워도 돌려보내기는 어려운 법.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월령안의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가라는 가게 주인의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
"천한 계집 주제에, 우리를 개처럼 부리는 거야? 우리가 오라면 오고, 꺼지라면 꺼지는 사람이야? 돈이 있다고 이렇게 사람을 부려도 되는 거냐고! 오늘 내가 너한테 제대로 혼을 내줘서 사람으로 만들어야겠어."
인상이 험악한 사람은 막무가내로 가게 안에 들이닥쳐 월령안을 때리려고 했다. 가게 주인과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흥분되고 기대된 얼굴로 밖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상이 험악한 남자가 월령안을 혼내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고 말았다.
척 보아도 싸움을 아주 잘하게 생긴 그 남자는 가게에 쳐들어가자마자 월령안에게 당해 쓰러졌다. 월령안은 사람들 앞에서 남자의 목을 그어버렸다.
"또 나를 혼내 줄 사람이 있느냐?"
"으악……!!"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빨간 피가 쏟아져 바닥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러나 월령안의 몸에는 한 방울도 튀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 손에 있는 비수에도 피가 묻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이 칼을 휘두를 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던 것은 모두를 두렵게 만들었다. 마치 더없이 일상적인 일을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의 목숨을 사겠다!"
월령안은 금 덩이 열 개를 꺼내 남자의 시체 옆에 던졌다.
서역에서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평민을 죽이면 금으로 속죄할 수 있었다. 설령 관아에 고발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 나 안 할래. 난 이 일을 할 수 없어!"
밖에 있던 깡패들은 손쉽게 이득을 얻으려고 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월령안이 두말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고 놀라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돌아서서 냅다 도망쳤다.
곧, 가죽 가게 밖에 있던 사람들은 모조리 도망치고 가게 주인 한 사람만 남았다.
"이것이 너한테 주는 마지막 기회다!"
월령안은 흰 천을 꺼내 비수의 피를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닦았다. 그녀는 바닥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인내심은 한계가 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쓸 만한 사람을 봐야겠다. 그러지 않는다면 넌 이 자식과 함께 세상을 떠나야 할 것이다!"
"낭자…… 아니, 협객, 협객, 살려 주세요! 날이 저물기 전에 반드시…… 반드시 만족할 만한 사람을 찾아오겠습니다."
가게 주인은 연신 읍하며 용서를 빌었다. 월령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날 듯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가게 주인은 더 이상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현지인 서른 명을 구해 왔다.
이 서른 명은 검고 말랐다. 월령안은 백곰 가죽을 입고도 추위를 느꼈으나 이 사람들은 맨발에 얇은 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추위에 그들의 입술이 자주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척 보아도 싸움을 못하게 생겼지만 월령안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즉석에서 사람마다 금 덩이를 하나씩 나눠 주고 가게 주인더러 옷 두어 벌 꺼내 그들에게 주라고 했다.
"너희들에게 하루 시간을 줄 테니 집의 일을 잘 마무리하고 배낭과 건량을 챙겨 오거라.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것이다!"
금 덩이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서로서로 바라보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성실한 사람들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미 돈을 받았는데 굳이 목숨을 걸어야 하나?'
월령안은 이 장면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