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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70)화 (770/1,004)

770화 날 가르쳐 주시오

서역이 흔들리자 많은 나라의 상황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상인 대오'의 발걸음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또 월령안이 가져온 '화물'의 인기에도 지장을 주지 못했다.

심지어 전쟁과 정권 교체로 인하여 새로운 귀족들이 생기면서 월령안이 가져온 자기와 비단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월령안이 줄곧 출하량(出貨量)을 공제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가져온 몇십 차의 화물은 몇 개 나라를 돌았을 때 이미 매진되었을 것이다.

"서역의 귀족들은 참 부유하네."

상 관리인이 월령안에게 파견되어 떠나간 뒤, 상인 대오의 일은 진주 등 사람들이 맡게 되었다.

물론, 장사를 하는 일에는 진주 그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역 사람들과 거래를 할 때는 모두 월령안이 나섰다. 진주 등 사람들은 황금과 보석을 받는 일만 책임졌다.

월령안이 주나라에서는 보통 품질에 속하는 비단과 자기를 보석과 황금으로 바꾸는 것을 보고 진주 그들은 처음에는 무척 놀랐으나 점차 무감각해졌다.

보석이든, 황금이든, 많이 보면 평범해 보이는 법이었다.

그러나 무감각해지기는 했지만, 월령안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들은 오기 전에는 서역의 상로(商路)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전에는 왜 이토록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에 상인 대오가 오는 경우가 별로 없을까 하고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월령안을 따라서 서역을 태반 돌아다니고 나서야 진주 등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서역의 상로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으나 모든 사람들이 다 서역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그들이 월령안의 뒤를 따르면서 월령안이 서역의 상인, 귀족들과 거래를 하는 것을 보아도 이 돈을 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그들끼리만 왔다면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서역의 서른여섯 개 나라는 거의 각 나라마다 자기들만의 언어가 있었다. 그리고 서역에서는 주나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 가끔씩 한두 명을 만난다 해도 한두 마디밖에 할 줄 몰라 정상적인 교류를 아예 할 수 없었다.

전에 무뢰국과 포리국에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두 나라는 주나라와 가깝게 있는 탓에 귀족들은 모두 주나라어를 한두 마디는 할 줄 알아서 그들은 별로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인 대오'를 따라 서역 깊숙한 곳에 들어오면서 본국 언어밖에 할 줄 모르는 서역의 여러 나라에 도착하게 되자 그들은 불편함을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들 일행은 거의 벙어리가 되었다.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는 것 말고는 외부와 전혀 교류할 수 없었다.

월령안과 그들의 대장군만 서역 현지의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장군도 몇 개 대국의 언어만 할 줄 알았다. 외딴곳의 소국에 도착하게 되자 대장군도 그들과 교류할 수 없었다. 그러자 기댈 사람은 월령안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거의 서역 모든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알았다. 그다지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교류할 수는 있었다. 또 말하면 말할수록 점점 더 잘했다.

진주는 월령안의 뒤를 따르며 월령안이 전혀 몰랐던 나라의 언어로 서역의 귀족들과 교류하는 것을 보고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월령안에게 무릎을 꿇을 뻔했다.

아무 곳에서나 잘 먹을 수 있고 아무 곳에서나 말이 통하는데 이것이 사람이란 말인가?

그는 전에 월령안이 자기네 대장군보다 못하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장군이 월령안보다 못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월령안은 손쉽게 소완국(小宛國)의 언어로 자기(瓷器) 두 벌과 비단 한 상자를 가지고 소완국 귀족들의 손에서 대량의 황금과 종자를 바꾸었다. 이를 본 진주는 끝내 참지 못하고 거래가 끝난 뒤, 몰래 월령안에게 물었다.

"월 낭자, 서역의 언어는 배우기 어렵나요? 얼마나 배워야 낭자처럼 서역의 여러 나라들과 교류를 할 수 있나요?"

서역 여러 나라들의 언어를 배운다면 나중에 전쟁이 없어지고 그들도 갑옷을 벗고 귀농하게 되었을 때, 그는 서역으로 와서 장사를 하여 돈을 벌 수 있었다.

"어렵지 않을 거예요. 저는 어렸을 때 서역에서 일 년간 있으면서 각 소국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현지인들과 기본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전 대단한 편이 아니에요. 영감님…… 그러니까 염 황숙이야말로 대단하시죠. 그는 서역 서른여섯 개 국의 언어를 할 줄 아실 뿐만 아니라 일부 소부락의 언어도 하실 줄 알아요."

월령안은 노인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추억에 잠긴 미소를 지었다.

"염 황숙은 아주 대단하세요.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대단하신 분이에요. 그는 못하는 게 없어요!"

그때 노인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녀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재주는 대부분 노인이 가르친 것이었다.

월령안은 웃고 난 뒤, 더 이상 염 황숙 얘기를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진주에게 말했다.

"배우고 싶으시면 제가 가르쳐 드릴 수 있어요."

"그는 배우고 싶지 않을 거요!"

진주가 대답하려고 할 때, 뒤에서 육장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장봉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와 손에 든 피풍의를 펼쳐 월령안에게 씌워 주었다.

"내가 배우고 싶소. 날 가르쳐 주시오."

진주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니야, 난 배우고 싶다고!'

진주는 정말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월령안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진주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난 배우고 싶지 않아!'

"날 가르쳐 주시오!"

육장봉은 월령안의 손을 잡고 밖으로 걸어갔다.

"난 서역 말도 아주 빨리 익힌다오."

"좋아요, 가르쳐 드리죠."

월령안은 대범하게 승낙했다. 육장봉이 배운다 해도 그녀의 장사를 빼앗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진주는 뒷전에서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또 제자리에 남겨진 낙타와 화물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는 방금 전까지 자기가 쓸데없는 사람이라고 여겼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대장군은 이미 그를 잘 안배한 것이었다. 그는 아주 쓸모가 있었다!

진주는 순순히 바꿔온 황금, 종자와 나머지 화물들을 가지고 돌아갔다.

화물을 가지고 가는 진주의 발걸음은 아주 느렸다. 소완국에서 머무르는 거처에 도착한 진주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진주는 이상하게 생각되어 몰래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물어보았다.

"월 낭자…… 마님께서 방금 전에 피를 토하셨어."

남아서 거처를 지키던 주심(周深)이 무거운 얼굴로 대답했다.

"피를 토하셨다고?"

진주는 멍해졌다. 손에 든 상자가 '콰당'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상자 안의 금괴들이 땅에 흩어졌으나 진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급히 물었다.

"마님께서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왜 피를 토하신 거야?"

"장군과 마님이 돌아오신 뒤, 편지를 한 통 받았어. 마님은 편지를 보시고 피를 토하신 거야. 구체적인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주심의 눈에는 온통 수심뿐이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장군과 마님은 다툰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내가 가서 물어볼게……."

진주는 다리가 나른해져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는 주심을 잡고 똑바로 선 뒤, 안뜰로 달려갔다.

진주는 월령안이 묵는 곳을 왔으나 감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밖에서 나지막하게 불렀다.

"장군, 마님! 황금과 종자를 모두 가져왔습니다. 이 종자들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오셨어요?"

월령안이 문을 열고 육장봉과 앞뒤로 서서 나왔다.

방금 전에 피를 토한 탓인지 월령안의 안색은 창백했다. 또 눈은 약간 빨갛고 목소리가 쉰 것이 아마도 운 것 같았다.

진주는 의아한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며 한마디 물어보고 싶었다.

그려나 온몸으로 한기를 내뿜으며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모습을 한 육장봉을 보자 진주는 도저히 물을 수 없었다. 그저 조심스럽게 한마디 할 뿐이었다.

"마님,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월령안은 가볍게 대답하고 진주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밖으로 걸어갔다. 전 과정에서 그녀는 육장봉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진주는 옆에 서서 월령안을 바라보다가 또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 사람 사이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왜 이렇지? 방금 전까지 좋았잖아. 대장군께서는 월 낭자에게서 서역 말을 배우겠다고 하셨고. 그런데 왜 돌아오니까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거지?'

장군과 월령안 사이의 분위기가 왜 이상한지 진주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황제의 사람이 월씨 가문이 병기를 호송하던 상인 대오를 죽인 것이었다.

월씨 가문이 마련한 병기를 빼앗은 것은 물론이고 화물을 호송하던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 이 일을 책임진 정 관리인도 죽었다.

그리고 황제의 사람은 전혀 숨기지 않고 떠들썩하게 움직였다. 월령안이 아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은 듯했다.

소식이 월령안에게 전해진 뒤, 월령안은 화가 나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그렇다, 월령안은 단지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을 뿐, 피를 토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로 월령안이 피를 토하도록 화나게 한 것은 그녀가 보복하려고 했을 때, 육장봉이 안 된다고 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다투었고 월령안은 화가 나다 못해 왈칵, 피를 토한 것이었다!

이 소식들은 모두 진주가 편지를 전한 사람을 찾아서 알아낸 것이었다.

듣고 난 뒤, 진주는 그만 얼이 빠졌다.

"폐하의 사람이…… 이게 정말 폐하의 뜻이라고?"

만약 이게 정말 황제의 뜻이라면 황제는 정말 너무한 것이었다!

서역에 병기를 팔자고 먼저 제안한 것이 바로 월령안이었다. 황제가 월씨 가문을 제치고 월씨 가문 상사가 참여하지 못하게 한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선을 넘었다.

월씨 가문 상사에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한 일이다. 황제가 기분이 나빠서 제압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것은 너무한 것이었다.

여기는 서역이지 주나라가 아니었다!

서역은 주나라의 땅이 아니었다. 월씨 가문이 서역에서 세력을 발전시키려는데 주나라는 간섭할 권리가 없지 않는가?

간섭하더라도 직접 손을 써서 살인하고 강도질을 하다니. 이건 원수를 지겠다는 말인가?

"소인도 모릅니다."

월령안에게 편지를 전한 사람이 바로 월씨 가문 상사의 사람이었다.

조정이 금방 월씨 가문 상사의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았는데 월씨 가문 상사의 사람이 진주의 말에 대답한 것은 이미 육장봉의 체면을 봐준 것이었다.

상사의 사람도 이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진주는 편지를 전한 사람의 싸늘한 얼굴을 보자 더 물어도 더 이상 알아내지 못할 것을 알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묵묵히 소완국에서 바꿔온 황금과 종자를 정리했다.

'이 일은 너무 커. 난 끼어들 수 없으니 열심히 일이나 해야겠다.'

진주가 고개를 숙이고 일을 하자 주심 등 몇 명이 이를 보고 다급히 달려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열심히' 진주를 돕기 시작했다.

뜰 안의 분위기는 너무나 좋지 않았다. 그들도 지금 감히 한가하게 보내다 대장군의 눈 밖에 날까 봐 두려웠다.

진주는 주심 등 몇 명이 온 것을 보고 서로 힐끗 보고 묵묵히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속으로 묵묵히 대장군이 월 낭자를 잘 달래기를 기도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도 잘 지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이 아름다운 만큼, 현실은 잔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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