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769)화 (769/1,004)

769화 또 다른 세력의 정체

월령안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지쳤고 또 너무 추웠다. 그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서 한기와 피로를 가시게 하고 싶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육장봉도 감기에 들지 않도록 약욕이 필요했다.

월령안은 씻으러 가기 전에 특별히 육장봉더러 약을 담근 물에 몸을 담그라고 당부했다.

어젯밤에 고생한 것으로 따지자면 가장 고생한 것은 그녀가 아닌 육장봉이었다.

"난 괜찮소!"

육장봉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거절했다.

밖에서 하룻밤을 보냈을 뿐이었다. 그는 이 정도로 약욕을 할 정도로 허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월령안의 걱정과 잔소리를 이기지 못했다.

월령안의 고집 때문에 육장봉은 끝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순순히 몸을 담그러 떠났다.

진주는 옆에 서서 고개를 죽이고 낮게 웃었다.

그는 자기네 장군이 이토록 마님을 무서워할 줄 몰랐다!

'역시, 아내를 무서워하는 것은 육가군의 전통이야. 위로부터 아래까지. 누구 하나 모면하지 못했지.'

반 시진 뒤, 육장봉과 월령안은 개운한 몸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간소하게 식사를 마쳤는데 진주가 다가와 보고했다.

"대장군, 우리는 이미 아포 가족들의 소재지를 파악했습니다. 만약 필요하다면 아무 때나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습니다.

조운충의 사람도 찾았습니다. 이미 조안(曹安) 그들더러 감시하라고 해서 도망치지 못합니다. 소인이 어젯밤 다시 왕궁에 잠입하여 포리국 국왕을 심문했습니다. 조운충은 그를 지지한 큰 인물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 인물이 도대체 누군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비로운 사람은 사라졌습니다. 소인의 사람은 그의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말을 마친 진주는 고개를 숙이고 매우 부끄러운 얼굴을 했다.

그들은 이 일을 너무 잘 처리하지 못했다.

대장군과 마님이 모험하러 가고 나서야 사람을 잘못짚었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참…….

모두 죽어 마땅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화를 내지 않고 덤덤하게 물었다.

"조운충의 사람들을 처리하거라. 그리고 아포의 가족들을 구해내거라.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마라."

마치 월령안이 말한 것처럼 해독약을 쥐고 있는 상대의 목적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이 애써 찾아가지 않아도 상대방은 찾으러 올 것이다.

"네, 대장군."

진주는 육장봉이 그들을 탓하지 않는 것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속으로 반드시 뒤에 숨은 사람을 찾아내야겠다고 몰래 다짐했다.

진주가 보고를 마치자 상 관리인도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월령안에게 뭔가를 보고하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영패 하나를 받쳐 올렸다.

"큰아가씨, 이건 소인이 방금 전에 받은 것입니다!"

바로 그와 진주가 들어오기 전에, 누군가 이 영패를 그에게 준 것이었다.

영패 전체는 검은색을 띠고 있었고 네 변에는 해골 머리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중간에는 빨간색의 '귀(鬼)' 자가 있었다.

그 '귀' 자는 눈을 찌르는 빨간색으로 되어 있었는데 마치 선혈에 물든 것처럼 음산한 기운을 풍겨 소름이 끼쳤다.

"염명경 귀시예요."

귀시의 영패는 식별하기 아주 쉬웠다.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다 알아볼 수 있었다.

진위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감히 염명경 귀시인 척 흉내 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염명경 귀시의 영패를 모방하여 만드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월령안은 손에 든 영패를 보고 가볍게 웃었다.

"만약 염명경 귀시의 사람이라면 말이 되네요. 서역 이곳은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좋은 곳인 것을 알 거예요. 그러나 진정으로 먹을 수 있으며 감히 손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 몇몇밖에 안 돼요."

서역은 여러 나라가 함께 있어 마치 산산이 흩어진 모래알 같았다. 만약 서역을 합병한다면 그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서역에 손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주나라, 북요, 금나라와 서하 네 나라는 서역에 손을 쓸 수 없었다. 일단 네 나라 중에 한 나라가 손을 쓴다면 나머지 세 나라가 절대 모르는 척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염명경 귀시는 달랐다.

염명경 귀시는 제삼의 세력이었고 그 어느 나라의 통제도 받지 않았다. 염명경 귀시가 서역에 손을 쓴다면 주나라든, 북요든, 또는 금나라나 서하든 모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도 절 너무 대단하게 보네요.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굳이 미리 와서 경고할 필요가 있나요? 그리고 제 해독약도 빼앗아 가고. 이건 좀 비겁하네요."

어쩐지 그녀는 조운충이 무슨 재주가 있어서 서역을 발칵 뒤집어 놓고 그녀의 해독약도 한 알만 남기고 다 없앴나 했다.

암흑가끼리 다투는 것이었다.

"무시하지 말고 먼저 연락하시오!"

월령안의 대수롭지 않은 태도와는 달리 육장봉은 엄숙한 얼굴을 했다.

월령안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해독약에 관련된 일이니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엄숙한 얼굴과 비교되는 홀가분한 얼굴로 말했다.

"급하지 않아요. 그들이 급하면 먼저 연락이 오겠죠."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생글거리며 상 관리인에게 말했다.

"정 관리인에게 편지를 보내거라. 그들더러 먼저 아무 병기나 골라서 서역으로 보내오라고 해. 반드시 빨라야 한다. 주나라보다 먼저 병기를 서역에 운반해 와야 한다."

월령안은 잠시 멈췄다가 손에 든 영패를 상 관리인에게 던져 주었다.

"너도 상인 대오를 따라가지 말거라. 몇 사람을 데리고 먼저 떠나서 각 나라에서 병기가 필요한 구매자들을 방문하거라."

염명경 귀시의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려고 하니 그녀는 그 소란을 더욱 크게 할 것이다.

"너무 위험하오."

육장봉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먼저 그들과 얘기를 하고. 먼저 해독약을 얻고 나서 다시 얘기합시다."

염명경 귀시의 사람들에게 보복하려고 해도 지금 당장 급한 것이 아니었다.

"이건 모험이 아니라 그들에게 보내는 경고예요!"

월령안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입만 웃고 있을 뿐이지 눈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

"먼저 건드렸으니 대가를 치러야죠! 그들이 먼저 제 해독약을 가져갔어요. 제가 이렇게 물러난다면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저를 협박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염명경 귀시의 사람은 자기가 주나라의 황제인 줄 아나? 두어 마디 협박하고 경고 두어 마디 보냈다고 나 월령안이 말을 들어야 하게? 정말 어이없군. 나 월령안이 그렇게 만만했더라면 오늘까지 살지도 못했을 거야.'

말을 마친 월령안은 육장봉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천천히 말했다.

"대장군, 염명경 귀시의 사람을 너무 고상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들은 조정과 달라요. 그들은 예의범절을 아예 지키지 않는다고요. 또 인의 도덕도 지킬 줄 모르고요. 그들은 강한 자들에는 약하고 약한 자들에는 강한 사람들이에요.

제가 이번에 물러난다면 그 해독약을 찾으려고 생각조차 말아야 해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대항하면서 그들을 누르고 때려서 그들이 겁을 먹는다면 순순히 해독약을 바칠 거예요."

그녀는 해독약이 필요한 것이 그녀기에 육장봉이 이토록 신중하게 나오며 전혀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해독약이 필요한 사람이 육장봉이었다면 그녀도 육장봉처럼 조금도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염명경 귀시가 그녀더러 무언가 하라고 하면 그녀는 그대로 했을 것이고 절대 염명경 귀시에 대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관심이 있으면 마음이 어지럽고 당사자는 잘 모르는 경우일 것이다.

(關心則亂, 當局者迷 - 관심즉란, 당국자미)

"음."

육장봉은 가볍게 응하고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매의 차가움과 무거운 분위기는 가실 줄 몰랐다.

그는 이 도리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걱정이 되었다. 그는 월령안의 목숨으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염명경 귀시는 절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당신은 두려워할 거예요. 그들은 감히 당신의 미움을 사지 못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정말 독이 퍼져 죽는다면 염명경 귀시도 끝장나는 거예요."

월령안은 원래 대충 해 본 말이었으나 말하고 나니 정말 상황이 이렇다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웃음이 나왔다.

"무지막지한 사람은 멍청한 사람을 무서워하고 멍청한 사람은 목숨을 내놓은 사람을 무서워하죠. 옛사람들의 말이 틀린 게 없네요!"

육장봉은 불안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화가 나기도 하며 우습기도 하여 말했다.

"허튼소리!"

월령안처럼 자기의 목숨으로 도박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이성적으로는 월령안의 이런 행동이 가장 이익을 최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월령안의 목숨이 걸린 이상, 그는 단순하게 이익으로만 국면을 가늠할 수 없었다.

육장봉은 진주에게 눈치를 주어 진주더러 염명경 귀시를 감시하게 했다.

어찌 되었든, 먼저 사람을 감시해야 했다.

진주는 명령을 받고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마님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 *

월씨 가문 사람들은 뼛속부터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하는 기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월씨 가문의 가훈에는 월씨 가문 자손들이 도박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월씨 가문 선조들은 자손들이 돈으로 도박을 못하게 할 수는 있었으나 자손들이 '노름판'에 오르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염명경 귀시의 경고는 서쪽으로 가려는 월령안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월령안의 속도를 재촉하는 꼴이 되었다. 월령안이 서역에서 판을 벌이는 것을 더욱 가속화한 셈이었다.

아포의 가족을 구해낸 뒤, 월령안 일행은 계속해서 서쪽으로 갔다. 그들은 그 누구를 위해서도 멈추지 않았다.

포리국의 국왕은 이 며칠간 줄곧 불안하게 보냈다. 그는 월령안 일행이 갔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포 그 멍청이는 이토록 큰 뒷배가 있으면서 기댈 줄을 모르다니. 내가 괜히 깜짝 놀랐잖아. 난 또 그들이 아포를 도우러 온 줄 알았어. 내가 이 왕위에 며칠 못 있을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아포 그 멍청이는 스스로 뒷배를 밖으로 떠밀었군!"

월령안 일행이 포리국을 떠나자마자 포리국의 새 국왕은 축하 연회를 열라는 명령을 내렸다.

뭘 축하하는지는 그 자신만 알고 있었다.

* * *

성밖. 아포는 월령안이 떠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형과 동생들을 데리고 성 밖에 가서 월령안을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를 만나지 않았다.

아포가 무슨 이유로 그녀를 만나려고 하든지 상관없었다.

그녀는 약자를 두둔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절대 자기 사람이 손해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포는 그녀를 너무나도 실망시켰다.

아포는 서역으로 돌아온 뒤,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해독약을 손에 넣지 못했다. 또 염명경 귀시의 사람이 모든 해독약을 망가뜨리게 내버려 두었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서 아포는 이제 그녀의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사람이 아니라면 보호할 필요도, 체면을 지켜 줄 필요도 없었다.

아포의 가족을 구한 것은 그녀가 아포에게 베푼 마지막 선의였다.

육장봉도 이에 대해 의견이 없었다.

만약 월령안이 아포의 목숨을 취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여기지 않았더라면 아포는 이미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