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6화 좋지 않은 예감
이번 일로 월령안은 더 이상 육장봉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예전대로 화해하였다. 그리고 말을 잘못한 대가로 월령안은 병기 사업에서 자기 이익을 삼 할 꺼내 육장봉 아래의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다.
진주 일행은 화가 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월령안이 돈을 내고 자기들을 사겠다고 하자 못내 자랑스러웠다.
월령안처럼 안목이 있는 상인이 다 돈을 내고 그들을 사고 싶어 하니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월령안은 그들더러 억지로 받게 했다.
이것은 그녀가 말을 잘못한 대가였다. 이 '대가'를 치른 뒤, 그녀는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 * *
'상인 대오'가 요새를 나선 뒤, 계속하여 서쪽으로 갔다. 그러나 서쪽으로 갈수록 쓸쓸한 벌판이 보였다. 눈에 들어온 것은 끝이 전혀 보이지 않는 황토뿐이었다.
누런 사막에서 연속 아홉 날이나 걸었다. 길 가는 내내 산 사람 한 명, 파란 식물 한 포기도 보지 못한 진주 일행은 자기들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열흘째 저녁이 되어서야 그들은 녹주(綠洲 - 오아시스)를 보았다.
서역의 서른여섯 나라 중에 많은 유목 부락은 나라를 세우면 세웠지, 도시를 세우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번에 만난 무뢰국(無雷國)은 한 유목국(遊牧國)이었다.
무뢰국에서는 내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월령안 일행이 상인 무리라는 것을 알고 열정적으로 접대했다. 그리고 보석, 황금, 낙타로 월령안의 상인 무리에서 많은 비단과 자기, 장신구들을 바꾸었다.
다음날, 월령안 일행이 떠나려고 하자 무뢰국의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그들에게 건조 식량을 준비해 주고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주머니에 물을 가득 담아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직도 닷새 정도 더 가야 포리국에 도착할 수 있으며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수원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무뢰국과 작별한 일행은 화물을 싣고 다시 길을 떠났다.
길가는 내내 모래 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햇볕이 따가워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걷다가도 밤이 되면 한기가 엄습했다. 심지어 조심하지 않아 잠이 들면 황사에 파묻히기도 했다.
진주 등 사람들은 잘 훈련된 장병들이었다. 평소에 훈련하며 한 고생은 결코 이것보다 적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고생스러웠으나 버틸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연약한 소녀인 월령안이 힘들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월 낭자는 아무리 보아도 연약한 소녀인데 어떻게 이토록 고생을 잘 견디는 거지?'
"다른 사람의 돈을 벌려면 힘들고 고생스럽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이 정도 고생이 다 뭐라고요. 우리 큰아가씨는 열몇 살 때부터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어요. 지금보다 더 힘들고 고생스러울 때도 많았어요."
월씨 가문 상사의 관리인은 이 말을 꺼내면서 월령안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장사하러 돌아다니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어요. 큰돈을 벌려고 하면 더 힘들고요.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아요. 돈을 벌 수 있는 장사에는 모든 사람들이 끼어들고 싶어 하죠. 다른 사람보다 고생을 더 견딜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벌겠어요?"
그들이 이 큰아가씨를 따른 것은 그녀가 월씨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만약 능력이 없다면 월씨는커녕 조씨였다 해도 그들은 대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큰아가씨가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피와 눈물로 바꿔 온 것이었다.
* * *
닷새 동안 황사에서 헤매던 육장봉 일행은 드디어 포리국에 도착했다.
포리국은 무뢰국과 같이 유목국이었다. 나라 인구가 오천 명 남짓한 것이 무뢰국보다 조금 더 컸고 무뢰국보다 더 부유했다.
포리국은 이미 도시의 형태를 갖추었고 성벽은 돌로 만들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육장봉 일행은 여전히 상인 대오의 명의로 입성했다. 그러나 무뢰국에서의 대우와는 달리 그들은 포리국에 도착하자마자 감시당하고 말았다.
"기다려라!"
일을 관리하는 사람은 그들을 돌로 된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한마디만 남기고 떠나고 말았다.
월령안은 상사의 관리인에게 눈치를 주었다. 관리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화물에서 정교한 함을 꺼내 들고 따라갔다.
진주를 비롯한 몇몇은 관리인과 잘 아는 사이였다. 관리인의 행동을 보고 그들은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무뢰국에서 관리인이 무뢰국의 총관에게 뇌물을 먹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무뢰국 전체와 한데 어울려 순조롭게 많은 소식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들도 이렇게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아무 말이나 나눌 수 있는 재주를 배우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정말 쉽지 않았다.
그들이 가까이하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방어적으로 굴었다. 사이가 가까워지기는커녕 속내가 들키지 않으면 대단한 것이었다.
관리인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일각 뒤에 돌아와 월령안에게 보고했다.
"큰아가씨, 소인이 알아보았습니다. 지금 포리국에서 집정하는 사람은 전임 국왕의 동생이랍니다. 전임 국왕의 일가족은 모두 죽었다고 하나 시신을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새 국왕의 배후에 큰 인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으며 포리국에서의 위신도 아주 높다고 합니다. 전에 금방 즉위한 국왕이 암살을 당하여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포리국이 외래 인구에 대한 조사가 엄격하며 쉽게 위부인을 성안으로 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큰 인물이라고?"
월령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내란이 일어난 나라 중에서 포리국만 유목국이라고 육일이 그랬죠?"
육장봉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소."
월령안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요……."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월령안에게 그녀의 예감이 정확하다고 알려 주었다.
포리국은 누군가에게 겨냥당한 것이 분명했다. 예외가 없는 이상, 분명 그들 때문일 것이다.
월령안은 속이 갑갑해져 우울하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는 먼저 아포의 소식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먼저 진주 그들이 소식을 알아보게 해야 하오."
그는 아포를 믿지 않았다.
예전에 변경에서 아포는 월 삼낭을 구하기 위해 최일에게 독을 썼다. 그 일로 그들은 아포를 믿을 수 없었다. 지금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하지 않았다.
월씨 가문의 관리인은 친화력이 좋았고 뇌물을 주는 것에 능했다. 그러나 몰래 정보를 알아내는 일은 진주 등 사람들이 능한 것이었다.
그날 밤, 진주를 비롯한 사람들은 풀려났다.
월령안이 창문 앞에 서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진주 등 사람들을 보며 불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전 자꾸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당신과 상관이 없소."
육장봉은 월령안 옆으로 다가가 월령안의 어깨를 다독이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다.
월령안은 고개를 돌리고 쓴웃음으로 화답했다.
스슥…….
돌집 밖에서 갑자기 작은 소리가 나더니 집 밖의 벌레들과 개구리 울음소리가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월령안을 얼굴을 굳혔다. 그러자 육장봉이 돌아서서 입구와 말하는 것이 보였다.
"왔으면 들어와."
그러자 흑의를 입은 아포가 그의 은뱀을 데리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들어오지 않고 밖에 서서 말했다.
"내일, 유시(酉時 - 17시~19시) 삼각에 너희들 나와 함께 어디 가자."
아포는 온몸을 흑의로 꽁꽁 싸매고 있었다. 손에 있는 은빛의 뱀만 밖에 드러났다.
육장봉은 아포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네 가족은 죽지 않았지?"
"맞아!"
아포는 숨기지도 않았고 감히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육장봉, 월령안과 처음 왕래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 두 사람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될 수만 있다면 그는 절대 이 두 사람과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육장봉이 물었다.
"이게 조건인가?"
아포는 잠깐 멈칫하더니 말했다.
"너희들 늦게 왔어. 혈옥주의 해독약은 전부 망가졌어. 유일한 한 알이 조운충의 손에 있어."
"네 삼촌을 도운 큰 인물이 조운충이냐?"
포리국의 인구는 오천 명이었고 병사는 이천 명이었다. 조운충이 포리국에 손을 쓴다면 포리국은 전혀 당해낼 힘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조씨 가문이 동시에 서역의 열 개도 넘는 나라를 휘저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역의 나라들은 곳곳에 흩어진데다 혼란스럽기도 하여 이 정도까지 휘저으려면 적어도 서역에서 십 년 정도 머물러야 했다.
청주 조씨 가문은 서역과 만 리나 떨어져 있었고 서역은 청주 조씨 가문의 세력 범위 안에 있지도 않았다.
"내 형님과 동생들이 모두 그의 손에 있다. 다른 것은 난 모른다."
아포는 길게 말하지 않고 또 길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월령안과 육장봉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그가 실력이 부족하여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육장봉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유시 삼각에 다시 와."
"그러지."
아포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확답을 들은 그는 또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월령안은 육장봉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너무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요?"
"천 일 동안 도둑질을 하는 사람만 있을 뿐, 천 일 동안 도둑을 방지하는 사람은 없는 법. 조운충이 포리국에 손을 썼다 한들 당신과 무슨 상관이오? 애초에 아포가 먼저 당신을 건드려서 당신은 반격한 것뿐이지 않소. 포리 왕실이 탓하려면 아포를 탓하고 자기들이 아들을 잘 가르치지 못한 것을 탓해야지."
뿌린 대로 거두는 법. 아포가 순진하게 이용당하지 않았더라면 포리 왕실도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 말이 맞아요!"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그녀는 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를 잘 보호하고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아포에 대해서는…….
그녀는 아포에게 미안한 짓을 한 적이 없었다!
아포가 먼저 한 일로 봤을 때, 그때 그녀가 아포를 죽이지 않은 것은 육장봉과 아포가 아는 사이라는 것을 감안한 것이었다.
아포는 그녀의 사람이 아니었고 그녀도 아포에게 빚을 진 것이 없었다. 그녀는 아포를 보호할 의무가 없었다.
"내일 조운충을 만나고 일을 매듭지을게요."
월령안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뭔가가 떠오른 듯,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매듭지을 수 있다면요."
서역의 일은 절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이 말해 주었다.
포리국 배후의 큰 인물이 조운충이 맞는지 아닌지도 정확하지 않았다.
"내일이면 알게 될 것이오!"
육장봉은 조운충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급할 것이 없었다.
그들은 이미 서역에 도착했으니 제대로 조사를 마칠 것이다.
"응."
월령안은 가볍게 대답하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여 육장봉의 어깨에 기댔다.
이런 때에 기댈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월령안은 천천히 눈을 감고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게 내버려 두었다.
바로 이때, 돌집 밖에서 벌레들과 개구리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한 번 또 한 번,
아포가 진짜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