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화 그가 모르는 사이에
조계안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오만하기 그지없는 자세를 취했다. 발을 제외한, 그의 온몸은 어둠 속에 놓여 있었다.
"오직 그녀만이 짐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해도 짐은 그녀를 쓰지 않을 것이다. 금나라에서 그녀가 한 짓을 짐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또 짐의 힘을 빌려서 서역으로 가 휘젓고 싶은 것 같은데 짐을 바보로 아느냐!"
황제는 월령안이 금나라에서 성공적으로 황위 계승자를 좌지우지한 것을 떠올리자 화가 나 배가 아팠다.
한낱 여인이 이렇게도 야심이 크다니. 떨어져 죽을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황제는 마음속의 울화를 억지로 누르며 말했다.
"이 일은……."
"아니요, 저한테 맡기지 마세요. 저더러 사람을 죽이라고 해도 되는데 사업상의 일은 전 할 수 없어요."
조계안은 느릿느릿 의자에서 일어났다.
"황형이 월령안에게 이득을 내주기 싫다고 하시니 제가 가서 장봉에게 답장을 보낼게요."
말을 마친 조계안은 대충 예를 올리고 돌아서서 떠나갔다. 그는 황제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황제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짐이 가라고 말했느냐?"
청주에서 돌아온 뒤로 그의 이 동생은 줄곧 괴상야릇했다. 정말이지 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계안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황제의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혼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조!"
황제는 화가 나 조계안을 불러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조계안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계안은 비록 예전처럼 어두운 곳에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나 예전의 그는 어두운 곳에 있어도 존재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마치 어둠과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설령 그가 궁전문을 나서서 햇빛 아래에 서 있다 해도 눈 부신 햇빛이 그의 몸에서 풍기는 한기를 몰아내지 못했다.
그의 동생은…….
그가 모르는 새에 두 번째 염 황숙, 뛰어난 암황이 되었다.
"계안……."
황제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조계안이 몸을 돌리자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황제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조계안이 사라지는 방향을 보자 황제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암실에 갇혀 있던 아이가 그를 볼 때마다 두 눈을 반짝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동생은 예전에는 빛이 안 드는 암실에 갇혀 있으면서도 여전히 밝고 희망으로 가득했다.
지금, 그의 동생은 설사 햇빛 아래에 서 있게 되어도 어둠과 함께했다.
그는 마치 동생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계안."
황제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고 시선에 드리운 고통을 숨기려고 했다.
궁전의 화랑에서 조계안은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을 걷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 가면을 써서 말라 버린 우물같이 고요한 눈 말고는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 있던 빛은 죽어 버렸다.
* * *
육장봉과 월령안은 곧 조계안의 답장을 받았다.
황제는 육장봉이 군에서 필요 없어진 병기를 서역에 파는 계획을 허락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일은 황제가 스스로 사람을 보내서 할 테니 육장봉과 월령안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주나라를 대표하여 포리국의 내란을 잠재우고 서역에서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을 돕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서역의 나라들이 주나라가 그들에게 악의 없이, 선의를 가지고 도와주러 왔다는 것을 알리라고 했다.
"보아하니, 당신은 그 칠 할의 이익을 가지지 못할 것 같네요."
조계안이 육장봉에게 보낸 답신을 월령안도 보았다.
육장봉은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께서는 이 년 사이에 점점 더 황제다워지고 있소."
'황제는 줄곧 이랬잖아?'
월령안은 놀라운 얼굴로 육장봉을 힐끗 보았다가 곧이어 황제가 오랫동안 육장봉을 형제로 여겼다는 것이 떠올랐다. 육장봉이 낯설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을 달래지 않고 말했다.
"주나라에서 저더러 개입하지 말라고 했으니 전 저만의 장사를 해도 되지 않을까요?"
"당신은 폐하의 장사를 빼앗아서 하겠다는 것이오?"
그는 월령안이 포기하지 않을 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의 손에 병기의 공급원이 있었는데 그를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 그더러 참여하라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월령안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업계의 일은 각자의 능력에 달렸어요."
빼앗는다고 말하면 듣기 거북했다. 서역에 병기를 파는 계획도 그녀가 제안한 것이었다. 황제는 그녀의 계획을 이용하면서도 그녀를 따돌리려고 하다니.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육장봉은 반박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일 할?"
이 일은 황제가 잘 처리하지 못한 것이었고 사람 마음을 서운하게 만든 것이었다.
"당신은 개입하지 마세요. 저 혼자 해요."
'일 할도 당신에게 내주기 싫어요. 누가 당신의 그 황제 사촌 형더러 절 차 버리고 국물도 남기지 말라고 했어요?'
"서역은 아주 혼란스럽소. 상인 무리는 서역에서 아주 안전하지 못할 것이오."
육장봉은 월령안의 기분이 상한 나머지 그에게도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 그도 피해자였다.
'여인은 역시 도리를 따지지 않는군.'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월씨 가문의 상인 대오는 아주 노련하니까요. 이까짓 작은 일은 절 막을 수 없어요."
이까짓 어려움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녀는 어찌 바다를 건너서 병기를 팔겠는가!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기회도 주지 않고 깔끔하게 거절했다. 심지어 나중의 일은 육장봉을 피해서 그녀의 두 관리인하고만 의논했다.
월령안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육장봉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에게 내버려 두는 것 말고 다른 수가 있을까?
월령안의 일 처리는 아주 빨랐다. 그녀는 육장봉을 따돌리고 단독으로 일을 할 것을 결정하고 나서 바로 한 관리인을 파견하여 이 일을 하게 했다. 그리고 관리인 하나만 남겨서 그들과 함께 서역으로 들어가게 했다.
일행은 계속해서 앞으로 갔다. 관리인 한 명이 빠진 것 말고는 다른 점이 없었으나 진주를 비롯한 병사들은 날카롭게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은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다.
진주는 형제들의 의뢰를 받고 몰래 관리인을 찾아가 소식을 알아보았다. 관리인도 숨기지 않았다. 다만 그의 큰아가씨에게 규모가 더 크고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사업이 있어 다른 관리인을 보냈다고만 말했다.
"그 규모가 더 큰 사업을 우리 대장군과 협력하는 게 아닌가요?"
진주는 비록 사업을 잘 몰랐으나 병사의 우두머리로서 예리함은 가지고 있었다.
한순간에 그는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관리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협력하려고 했으나 폐하께서 홀로 하시는 게 더 좋다고 여기셔서 우리 큰아가씨를 차 버렸어요. 우리 큰아가씨께서는 하는 수 없이 다른 협력자를 찾고 있으시죠."
진주는 말이 없었다.
그는 도리를 따질 처지도 못 되었다.
진주는 자기가 알아낸 소식을 형제들과 말하자 장병들은 서로서로 바라보며 잠깐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누군가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홀로 하신다면 우리가 칠 할의 이익을 나눌 수 있는 거야?"
그들은 그날 들은 것이 있었다. 육장봉이 그들을 위해 다투지 않자 월령안이 먼저 나서서 칠 할의 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며칠간 속으로 칠 할의 이익이라면 그들은 돈을 얼마씩 받을 수 있는지 계산해 보았다.
그런데 이제 아무것도 없게 되지 않았는가?
"네 생각은 어때?"
진주는 그 사람을 힐끗 보았다.
장병들은 다시 서로서로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너무 힘들었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잘 훈련된 정예 병사이자 강한 장수들이었다. 그들은 몸이 강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도 아주 강대했다.
그들은 실망하긴 했으나 마음을 재빨리 다잡고 다음 날 출발할 때는 하나같이 기운이 넘치고 상태가 아주 좋았다. 조금도 불만스러운 기색을 눈치챌 수 없었다.
"당신의 병사들을…… 저에게 팔 생각은 없으세요?"
월령안은 탐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들은 주나라의 장병들이오! 물건이 아니라! 저들은……."
육장봉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값을 매길 수 없소!"
월령안이 말한 '팔다'는 그의 병사들에게 모욕이었다.
월령안은 표정을 바꾸며 진지하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전 그들에게 모욕을 줄 생각이 없었어요. 전 단지 그들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당신! 다시 한번 말하시오!"
육장봉은 온몸으로 얼어붙을 듯 한기를 내뿜었다.
월령안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자기의 사과에 담긴 성의가 부족한 줄 알고 다시 읍했다.
"전 그들에게 모욕을 줄 생각이 없었어요. 또 그들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거래할 뜻도 없었고요. 제가 그 말을 한 것은 단지 그들을 좋아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어요. 제가 지금 가서 그들에게 사과할게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
잘못을 했으니 인정해야 했다. 말을 잘못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면 '농담이다' 거나 '내 성격이 원래 이렇다'로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육장봉을 감도는 한기는 더욱 심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물었다.
"당신이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아시오?"
"전……."
월령안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자세하게 생각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또 말을 잘못한 건 아니죠?"
'육장봉의 이런 모습, 너무 무섭잖아!'
그녀가 어떻게 해야 육장봉이 믿을 수 있을까? 그녀가 전에 말한 그 말은 완전히 상인의 입장에서 한 말이었다. '좋은 물건'을 보고 참지 못하고 손에 넣고 싶어서 육장봉과 팔 수 없냐고 물은 것이었다. 진주 그들을 모욕할 생각은 정말 없었다.
"당신 생각에는?"
육장봉은 굳은 얼굴로 말하면서 또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차가워졌다.
"그들이 너무 좋아? 그들을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육장봉의 강한 기세에 눌려 월령안은 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육장봉의 말을 들은 월령안은 바로 이마를 짚고 어처구니가 없어 했다.
"이 두 마디 때문인가요?"
"그러면 안 되오?"
'말끝마다 '좋아한다'를 남발하면서. 월령안은 날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잖아.'
"그럼 제가…… 당신이 좋다고 하면요?"
월령안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육장봉에게 눈을 깜빡여 보였다. 육장봉에게는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흠흠……."
육장봉의 몸을 감돌고 있던 한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우아하게 말했다.
"그건 되오. 앞으로……."
그러나 육장봉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월령안은 폴짝 뛰며 도망갔다.
"제가 진주 일행에게 사과하러 갈게요."
육장봉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월령안이 날 좋아한다고 한 말이 날 달래기 위해서 한 빈말이었군!'
그러나 돌아선 그는 월령안이 진지하게 진주 일행과 진지하게 사과하는 것을 보고 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령안이는 참! 이렇게 대범하고도 정직하니 내가 어찌 안 좋아할 수가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