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8화 그 둘이 다른 겁니까?
육 대장군과 월령안은 비록 하루만에 바로 떠나며 급한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그들은 급히 길을 재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미친 듯이 질주한 것이 아니라 편히 마차를 타고 갔다.
그러나 완안유의 운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육 대장군과 월령안을 빨리 따라잡기 위해 완안유는 시위를 데리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저녁이 되어서야 성문과 백 리 정도 떨어진 것에서 완안유 일행은 육 대장군과 월령안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금방 현실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고 또 오림에게서 심각한 가르침을 받은 완안유는 그들을 아주 깍듯하게 대했다.
그는 거만하게 육 대장군과 월령안이 자기를 만나러 오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고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이 자기를 만날 수 있는지 먼저 묻게 했다.
떠나기 전에 오림은 티를 내지 않고 완안유에게 귀띔을 해 주었다. 그가 육장봉에 대해 어떤 적의를 숨기고 있든, 월령안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든, 전부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제왕은 제멋대로 굴 수 없었다. 특히 강대하지 않는 소국의 제왕은 더했다.
소국은 소국의 자세가 있어야 했다. 완안유는 아직 거드름을 피울 자격이 없었다. 제멋대로 굴며 그 누구의 제약도 받고 싶지 않다면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 말이 완안유를 철저하게 정신 차리게 했다.
그는 비록 황제지만 예전에 열여섯 번째 왕일 때보다 처지가 약간 더 좋아졌을 뿐이었다.
금나라의 황제가 된 것은 그의 인생의 시작점이지 종착역이 아니었다. 그의 미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지금의 그는 예전에 몸을 사리고 있으며 사람들 앞에서 수모를 당하고도 묵묵히 참던 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먼저 육 대장군과 월령안을 만나려고 사정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심하게 들지 않았다.
완안유가 성을 나서자마자 육 대장군과 월령안은 소식을 알게 되었다. 또 이에 대해 놀랍게 여기지 않았다.
완안유는 한심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멍청하더라도 조정의 대신들이 그에게 됨됨이를 가르쳐 줄 것이니 쫓아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완안유가 쫓아온 뒤, 아주 겸손한 저자세를 취한 것에 대해 두 사람은 퍽 놀라웠다.
물론, 그들이 놀란 것은 완안유의 변화가 아니라 오림의 수단이었다!
"오 승상이 뭘 한 거죠? 반나절밖에 안 됐는데 완안유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네요!"
연기라고 해도 완안유를 연기하게 만든 것도 능력이었다.
완안유는 지금 황제였다.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를 변하게 할 사람은 없었다.
"시기를 잘 선택한 것이오."
육 대장군은 비록 금도에 있지 않았으나 금도에서 일어난 일들은 육 대장군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곧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흘석열은 참 대단하군요!"
"그건 그자의 생존 방법이오."
간신(諫臣)은 간신의 길이 있고 영신(佞臣)은 영신의 길이 있는 법.
흘석열 같은 사람이 없이 어찌 오림의 고상함이 돋보이겠는가?
월령안은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평론하지 않고 육 대장군에게 이렇게 묻기만 했다.
"그럼 당신은 완안유를 만나실 건가요?"
"그가 겸손하게 나오지 않소? 어디 끝까지 겸손해 보라지."
육 대장군은 차갑게 비꼬고는 고개를 돌려 육삼에게 말했다.
"금나라의 황제 폐하를 만나러 가거라."
"네, 대장군."
육삼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에게서 일국의 제왕은 만날 때 가져야 할 긴장과 당황함을 전혀 보아 낼 수 없었다. 또 완안유와 만나러 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 육 대장군의 호위병은 이렇게 대단했다.
"전 당신이 어린애를 괴롭히는 것 같은데요. 저한테는 증거도 있다고요."
육삼이 떠나간 뒤, 월령안은 참지 못하고 비웃었다.
자기의 호위병더러 일국의 제왕을 만나게 하고는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라니. 이 일은 육장봉이어야 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인간 됨됨이를 가르치는 것이오."
육 대장군은 입꼬리를 올리고 차갑게 웃었다.
"모든 인내가 성공을 바꿔 올 수 있는 것은 아니오. 완안유가 수모를 견디는 제왕이 되려고 하는데 내가 그렇게 대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소?"
완안유가 먼저 찾아와 기꺼이 얼굴을 내밀고 때리라고 하고 있었다. 그들이 때리지 않는다면 완안유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일각 뒤, 육삼은 육장봉을 실망시키지 않고 완안유의 도장이 찍힌 국서를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육장봉에게 보고했다.
"대장군, 금나라에서 주나라에 황금 백만 냥을 빌리고 오십 년에 거쳐 갚겠다고 합니다."
육장봉은 육삼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금나라 국고에는 정말 돈이 없소?"
금나라의 재정 상황을 월령안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금나라의 추세를 삼황자가 거두어 간 것은 바로 월령안이 삼황자에게 건넨 제안이었다.
그녀는 이 추세가 완안유의 금나라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바로 알기 때문에 그녀는 삼황자더러 추세를 거두어 가라고 제안한 것이었다.
금나라가 둘로 나뉘었으니 가장 좋은 것은 바로 두 나라의 세력이 비슷하여 모순이 많고 서로를 계속 견제하느라 누구도 누구를 삼켜 버릴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금나라의 국고에 돈이 없긴 해요. 그러나 돈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그가 돈을 빌리라고 말하고, 그것도 황금 백만 냥을 요구한 것은 오림 그 늙은 여우의 짓일 가능성이 커요."
주나라가 이렇게 많은 황금을 금나라에게 빌려준다면 외부에서는 주나라가 틀림없이 완안유를 지지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완안유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이 돈을 빌려준다면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도 주나라는 완안유의 금나라가 삼황자의 서금에 멸망당하도록 두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주나라의 이익에 지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최대한 완안유에게 치우쳐서 그가 돈을 갚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어떨 때는 채권자가 가까운 이익 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먼저 고개를 숙여 주나라에 돈을 빌리며 주나라와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 것……. 오림은 묘한 수를 두었다.
"그럼 이 황금을 빌려줄 수 있는 것이오?"
전문적인 일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법.
금전적으로 월령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뜻을 묻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와 월령안은 남남이 아니었다.
"당연히 빌려줄 수 있죠. 그러나 그가 빌려달란다고 덥석 황금을 빌려주면 안됩니다. 황금 백만 냥이 적은 돈도 아니고 우리 주나라가 아무리 부유하다 해도 호구가 될 수는 없어요."
주나라가 비록 부유하나 국고의 저금은 많지 않았다.
주나라의 부유함은 백성들에게 있었다.
국고에서 이 돈을 꺼내려면 무척 힘들 것이다.
"음, 그럼 어떻게 빌려줘야 하오?"
육장봉은 겸손하게 가르침을 청했다. 월령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당신이 뭘 가지고 싶은지 봐야죠. 만약 저라면 금나라에서 철광산 다섯 채와 병사 십만 명을 담보로 맡기라고 할 거예요. 또 오십 년에 걸쳐 갚길 기다릴 필요도 없고요. 금나라가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우리가 사용권을 가지고, 그들이 돈을 마련하면 그때 철광산과 병사들을 되돌려 받으면 되니까요."
'맨입으로 이익을 얻으려고 하다니. 꿈 깨라고 해.'
"좋소!"
육장봉은 생각하지 않아도 월령안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철광산과 병사들은 한 나라의 생명이었다.
완안유가 황금을 빌려달라고 한다면 주나라는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완안유가 주나라에서 받은 황금으로 자국의 실력을 강하게 한 뒤, 나중에 주나라를 난처하게 하는 것은 절대 안 되었다.
육장봉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육삼을 바라보았다.
"마님의 말을 들었느냐?"
육삼은 잠깐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장군께 아룁니다. 소인, 들었습니다!"
"마님의 뜻대로 하거라!"
육장봉이 말했다.
"네, 장군!"
육삼은 마음속으로 성난 파도처럼 놀라면서도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국가의 중대사가 이토록 가볍게 결정지었다고? 이래도 되려나? 난 왜 우리 대장군이 혼군(昏君)의 자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에잇! 혼군은 무슨, 우리 대장군이 군왕도 아니시고. 아무리 어리석어도 '혼군'은 안 될 거야. 기껏해야 '혼장(昏将)'이지.'
이렇게 생각하니 육삼은 곧 침착해졌다.
위에 황제가 있으니 그의 대장군은 아무리 어리석어도 괜찮을 것이다.
육삼은 마음을 다잡고 완안유를 찾아갔다. 그리고 월령안의 말을 조금만 고쳐서 완안유에게 전했다.
월령안이 말한 철광산과 병사 인수를 육삼은 간 크게 두 배로 보고했다.
'나서서 돈을 빌려달라고 한 사람은 무려 일국의 제왕인데 담보로 맡기라는 물건이 적으면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뭔가? 또 우리도 금나라와 흥정할 여지라도 있어야 그때에 가서 양보를 할 수도 있지. 아니면 강경한 자세로 나오기만 하다가 상대가 겁에 질려 도망가기라도 하면 어쩌겠어?'
"우리 금나라의 철광산과 병사를 담보로 하라고?"
완안유는 이번에 자진하여 육장봉을 찾아왔다. 육장봉이 호위병을 보내 그를 상대하게 했어도 그는 꾹 참고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아주 신사적이었다고 생각했고 오 승상이 이 모습을 보아도 자기의 트집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육장봉은 정말이지 너무 심했다!
완안유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이를 악물고 물었다.
"이건 너희 장군의 뜻이냐? 아니면 주나라의 뜻이냐?"
육삼은 평온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 둘이 다른 겁니까?"
주나라에서 그의 장군의 뜻을 거스를 사람이 없었다. 그의 장군이 결정한 일은 폐하라도 타협해야 했다.
그의 장군의 뜻이 바로 주나라의 뜻이었다.
완안유는 이것도 모른다는 말인가?
육삼이 꺼낸 조건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완안유는 응할 수도 없었고 응할 리도 없었다.
그러나 오림의 '가르침'을 떠올리자 완안유는 마음속의 울화를 억누르고 육 대장군과 직접 얘기하고 싶다는 제안을 꺼냈다.
육삼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으나 태도는 매우 확고했다.
"죄송합니다, 우리 대장군께서는 시간이 없으십니다."
그는 예전에 월 낭자가 왜 매번 웃는 얼굴로 차갑고 매정한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분통이 터지나 참을 수밖에 없는 완안유의 모습을 보자 육삼은 그 재미를 알 것 같았다.
'역시, 상대가 화가 나지만 어찌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기분이 좋구나. 웃음이 나올 만해.'
"그럼 너희 대장군께서는 언제 시간이 되시냐? 짐은 기다릴 수 있다."
완안유는 기분이 상했으나 여전히 웃는 얼굴을 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문제는 육삼이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가서 육 대장군에게 물어야 했다.
말을 마친 육삼은 돌아서서 떠나갔다. 완안유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
완안유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했다. 그에게서는 냉대를 받은 난처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꽉 움켜쥔 주먹이 그의 기분을 드러냈다.
완안유는 전에 흘석열의 말을 무시하고 국서에 도장을 찍지 않은 것이 무척 후회되었다.
진작 그 일을 해결하고 육장봉 이 화근을 보냈더라면 그도 지금 여기서 한 호위병에게 재삼 굽신거리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