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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57)화 (757/1,004)

757화 짐을 많이 가르쳐 주시지요

내관도 약삭빠르게 즉석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폐하, 용서해 주십시오. 소인이 아둔해서 하마터면 폐하의 큰일을 지체할 뻔했습니다."

"고얀 놈, 벌 받으러 썩 꺼지거라."

완안유는 짐짓 난폭하게 내관을 쫓아내고는 돌아서서 오림에게 어색하게 말했다.

"오 승상 좀 보시오. 짐이 너무 바빠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이미 벌어진 이상, 누가 틀리고 맞는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돌이키는 것이었다.

오림은 완안유와 내관 사이의 연극을 까발리기도 귀찮았다. 그는 무거운 얼굴로 권고를 했다.

"폐하, 주나라 사신이 말도 없이 떠난 것은 우리에게 불만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렇게 보낼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지금 어서 성을 나가셔서 그들을 데려오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완안유는 화가 나 안색이 어두워졌다.

"주나라 사신이 말도 하지 않고 떠난 것은 짐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것인데 대인은 짐더러 성 밖으로 가서 데려오라고 했나요? 오 승상, 늙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인가요?"

육장봉은 임무를 가지고 금나라로 온 것이었다. 그가 국서에 도장을 찍지 않은 이상, 육장봉은 출사(出使)한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니 주나라로 돌아가면 분명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육장봉이 이번에 출사한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꼭 다시 나한테 사정하러 올 텐데, 우리가 왜 조급해하지?'

"폐하, 신은 비록 늙었으나 머리가 어떻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림은 억지로 마음속의 울화를 억눌렀다.

"폐하, 잊지 마십시오. 우리 금나라에는 서금이 있습니다. 주나라로 놓고 말할 때, 우리 금나라와 동맹을 맺든지, 삼황자의 서금과 동맹을 맺든지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건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나라와 협력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주나라가 서금과 협력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대인의 뜻은…… 그들이 셋째와 동맹을 맺을 것이라는 건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들은 처음에……."

'짐을 지지한다고!'

다행히 완안유는 멍청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 나라의 제왕이 다른 나라 대신과 결탁을 맺어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려던 말을 눌러 삼켰다.

어떤 일들은 할 수는 있으나 말해서는 안 되었다.

오림은 지친 얼굴로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 영원한 친구는 없고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입니다. 서금이 주나라에게 주는 이익이 더 크다면 주나라는 왜 서금과 손을 잡을 수 없겠습니까?"

완안유가 더 생각하기 전에 오림은 또 중대한 소식을 던졌다.

"폐하, 신이 방금 전에 입수한 소식에 의하면, 주나라의 사신은 이미 비밀리에 삼황자와 만난 적이 있답니다. 양측이 어떤 합의를 보았는지 신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방금……."

그러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완안유가 다급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주나라의 사신이 셋째와 만났다고요? 어디서 만났는데요? 왜 짐은 모르고 있었죠? 언제 일이에요? 셋째가 금도로 왔어요?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폐하, 신은 삼황자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만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신은 다만 우리가 주나라의 사신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주나라의 지지를 얻을 수 없고 이어서 올해의 추세는 물론, 명년 봄의 추세도 못 거둘 수 있다는 것은 압니다. 그때가 되면 폐하께서는 무엇으로 강산을 다스리시려는 것입니까?"

오림은 흘석열이 아니었다. 흘석열은 이기적이라서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지만 오림은 국면을 살폈고 종묘사직의 안정을 더욱 중히 여겼다.

그는 마음속의 짜증을 억지로 누르며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

"그리고 폐하, 빚을 진 사람의 친지와 친구들이 돈을 갚게 하려는 생각을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폐하, 돈을 가장 많이 빌린 사람은 바로 네 황자와 해주 공주입니다. 가까운 사이로 따지려면 그들의 삼촌이신 폐하께서 그 돈을 갚으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빚을 갚으라는 재촉 명령을 내리셨는데 만약 가장 크게 빚진 사람인 폐하께서 돈을 갚지 않으면 누가 갚기를 바라시겠습니까?"

"그, 그러면…… 이제 어떡하죠?"

완안유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멍해졌다. 곧이어 그는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쥐구멍으로 숨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는 드디어 흘석열이 왜 갑자기 쓰러졌는지 알 것 같았고 호부상서가 왜 성지를 들고서 한참이나 반응이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멍청했다.

오림이 기다리던 것이 바로 이 말이었다.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설득했다.

"폐하, 주나라에 돈을 빌리십시오."

황위를 굳건하게 지키는 것과 비교했을 때, 체면이 다 무엇이겠는가?

제왕은 더없이 높은 권리를 누리는 한편, 종묘사직의 무거운 짐을 져야 했다.

완안유는 이 도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오 승상, 정말 이 지경까지 온 것인가요? 반드시 짐이 주나라에 돈을 빌려야 하는 것인가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요?"

'어엿한 한 나라의 지존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야 할 정도로 궁핍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주나라 사신이 가기 전에는 이 지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떠났으니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오림은 완안유가 이 자리에 앉기 전에 아무런 황실과 연관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쁘게 말해서, 완안유는 일반 가정의 공자보다도 못했다.

그가 모른다고 해서 그를 탓할 수 없었다.

완안유의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고 오림은 차근차근 설득했다.

"폐하, 국고에 돈이 없는 것은 작은 일입니다! 돈이 있다면 돈이 있는 생활 방식이 있고 돈이 없다면 돈이 없이도 살 방법이 있습니다. 추세 한 번 적게 받는 것의 영향이 아무리 크더라도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탐관오리, 간악한 상인의 집을 몇 곳 털다 보면 어떻게든 이겨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국고에 돈이 없는 것이 큰일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그럼 무엇이 큰일인가요?"

완안유는 자기가 황제 노릇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

'내 눈에는 큰일이던 것이 사실 모두 큰일이 아니라는 것인가?'

"주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주나라가 전폭적으로 서금을 지지하고 서금이 우리를 압박하는 것을 돕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큰일입니다."

오림은 완안유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랫사람과 묻는 것을 보자 그를 가르칠 마음이 들었다.

완안유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파악한 오림은 툭 까놓고 말했다.

"폐하, 신이 폐하더러 주나라에 돈을 빌리라고 한 것은 우리가 정말로 주나라에게까지 손을 벌릴 정도로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빌리는 것은 자세이고 떠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우리 금나라가 주나라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을 때, 주나라가 우리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우리와 서금 사이에서 주나라가 완전히 서금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지요."

"그렇군요……."

그가 반드시 굽신거리며 주나라에 돈을 빌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완안유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또 물었다.

"그럼 만약 주나라가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찌하나요?"

"주나라는 반드시 빌려줄 것입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림은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완안유가 재빨리 움직이게 하려고 오림은 한마디 덧붙였다.

"폐하, 북요를 잊지 마십시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승부는 간단한 모 아니면 도가 아니었다.

금나라가 둘로 나뉘어 실력이 예전보다는 못했지만 비굴하게 허리를 굽히고 주나라에 기대야만 살아갈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이 먼저 주나라에게 약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주나라의 동조를 얻지 못한다면 그들이 돌아서서 주나라의 등에 칼을 꽂아도 탓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겠어요!"

완안유는 탁자를 탁, 치며 일어났다. 그는 더 이상 고민 따위는 없이 흥분해서 말했다.

"말을 준비하거라. 짐이 지금 바로 주나라의 사신을 따라잡을 것이다."

비록 육장봉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점은 화가 났지만 주나라가 하는 수 없이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폐하, 영명하십니다!"

오림은 진심으로 완안유에게 절을 올렸다.

'폐하는 비록 아무것도 모르시지만 권고를 들을 줄 아시고 가르침을 받아들이시니 이것으로 충분해. 내 나이가 아직 많지 않으니 그래도 폐하를 두어 해는 더 가르칠 수 있어.'

"오 승상, 절대 이러지 마십시오."

완안유는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직접 오림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리고 진실하고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짐은 비록 제왕의 집에서 태어났으나 신세가 평탄치 못했어요. 기댈 아버지나 형님들이 없었고 가르침을 받을 어른이 없었지요. 그래서 조정의 일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극히 적어요. 즉위 후에 신하들은 짐을 비웃을 생각이나 하고 뭐든 짐더러 수를 생각하라고 하지 짐에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어요.

짐은 줄곧 조금이라도 잘못하여 황실의 체면을 구길까 노심초사했어요. 오늘 오 승상의 말을 듣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 오 승상께서 짐을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완안유는 오림이 대답하기도 전에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정중하게 오림에게 읍했다. 오림이 대답하지 않는다면 일어나지 않을 기세였다.

오림이 어찌할 수 있겠는가?

제왕이 겸손하고 배우려 들며 먼저 스승이 되어 줄 것을 청하는데 신하가 되어서 다른 주인을 섬기려는 생각이 없는 이상, 응할 수밖에 없었다!

완안유는 고집이 아주 셌지만 또 아주 총명했다.

앞서 그는 갑자기 즉위했다 보니 일시적으로 거만해졌을 뿐이다. 또 신하들은 하나같이 제 잇속을 차리려고 그를 구슬리기만 했지 누구 하나 그에게 어떻게 황제 노릇을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심지어 조정의 일에도 개입하기 어려웠다.

그는 믿을 사람이 없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금나라 황제의 자세를 본받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제왕의 거만한 자세만 취했다.

세금과 차용증의 일로 재차 충격을 받은 완안유는 무너질 뻔했다. 그는 자신이 황제 자리를 며칠 지키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의 오만한 기운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의 완안유는 퍽이나 듬직하고 온화해졌다. 또 약간의 제왕적 위엄도 갖추었다.

이것 또한 오림이 말을 올려 그를 가르치려는 이유기도 했다.

좌절을 겪고 잘 배우려고 애쓴다면 구할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만약 좌절을 겪고 자포자기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한다면 오림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삼황자의 포섭을 받아들여 삼황자를 따랐을 것이다.

입궁하기 전에 오림은 삼황자와 만난 적이 있었다. 삼황자는 능력 있는 신하인 오림을 끌어들이려고 좋은 조건을 내걸었지만 오림은 응하지 않았다.

삼황자의 처가가 너무 많았고 서금의 세력 분포는 지나치게 복잡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는 절대 서금의 진흙탕에 발을 담그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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