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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56)화 (756/1,004)

756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완안유는 잠깐 멍해졌다가 곧 당황스러운 속마음을 숨기며 덤덤하게 말했다.

"당연히 알지요."

그는 몰랐다. 그는 예전에 조정과 전혀 접촉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일을 알 수 있을까?

또 그에게 알려 주는 사람도 없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완안유의 손가락이 팔걸이를 그으며 깊은 자국을 남겼다.

흘석열은 물론 완안유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그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는 황제도 아닌데다 그 돈은 그가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국고에 돈이 없는 것이 그와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흘석열은 안색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

"폐하, 국고의 장부에는 돈이 있다고 써진 것이 확실합니다만, 그 돈은 장부에만 있을 뿐, 국고에는 모아둔 돈이 없습니다. 국고에는 차용증뿐입니다! 신은 국고에 들어간 적이 없으나 추측컨데 국고의 돈은 많아야 은 백만 냥뿐입니다."

은 백만 냥은 듣기에는 아주 많으나 이 돈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부양하는 데 드는 돈이라는 것이었다.

전체 나라의 관료, 군사와 군마, 그리고……

각지에서 재해가 일어나도 구제할 돈이 필요했다.

백만 냥은 기껏해야 한두 달 버틸 수 있을 돈이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팔걸이를 잡은 완안유의 손은 피가 흥건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아픈 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흘석열에게 묻는 것 같으면서도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국고에 어떻게 돈이 없지? 짐은 모든 것을 가졌는데, 이 세상 전부가 짐의 것인데,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야말로 짐인데, 짐의 국고에 어떻게 돈이 없을 수가 있지?"

이 질문을 흘석열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완안유에게 이 세상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완안유에게 금나라는 줄곧 부유하지 않았다고, 그게 아니었다면 줄곧 주나라를 탐내지도 않았을 것이고 주나라를 공격하여 중원의 주인이 되려고 애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

완안유는 이 질문을 흘석열이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한 내관에게 손짓을 하며 차갑게 명령했다.

"호부상서는 어디에 있느냐? 가서…… 호부상서더러 당장 입궁하라고 이르거라!"

"네, 폐하!"

내관은 명령을 듣고 바로 수행하러 뜀박질하며 궁전을 나갔다.

완안유는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잠깐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은 뒤, 물었다.

"아 참, 국고의 돈이 빌려 갔다지 않았나요? 당장 그들더러 돈을 갚으라고 하세요! 빌려 간 돈을 전부 갚으라고 하세요!"

흘석열은 또 완안유에게 치명적인 충격을 안겨 주었다.

"폐하, 돈을 가장 많이 빌려 간 사람은 바로 네 황자와 해주 공주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심복 대신들이고요. 그들은 돈을 갚을 수 없습니다."

"왜 돈을 갚을 수 없다는 건가요?"

완안유는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흘석열이 대답했다.

"폐하, 그들은 죽었습니다."

완안유는 엄한 얼굴로 말했다.

"그들이 죽었다면 그들의 자손더러, 친지와 친구더러 갚으라고 하세요. 아무튼 짐은 모르는 일입니다. 짐의 돈을 빚진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갚아야 해요."

흘석열은 놀라운 얼굴로 완안유를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할 뻔했다.

'완안유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건가? 친지와 친구? 자손들이? 허허, 완안유는 방금 전, 내가 한 말을 잘 듣지 않은 것인가? 돈을 가장 많이 빌린 사람은 네 황자와 해주 공주라고. 이 다섯 명 중에서 서쪽에서 황제 노릇을 하고 있는 삼황자를 제외하고 다 죽었어.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로 완안유 자신인데 완안유는 스스로 돈을 갚으려는 것인가?'

"왜요? 안 되나요?"

완안유는 흘석열이 주저하는 것을 보자 얼굴의 표정이 점점 엄숙해졌다. 이상할 정도로 강경해 보였다.

하늘이 죄를 지으면 살 수 있어도 스스로 지은 죄는 살지 못하는 법.

완안유가 제 명을 재촉하자 그도 나쁜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다.

"폐하, 이러시면 너무 몰인정한 것이 아닐까요?"

흘석열의 얼굴이 난처해지더니 속으로는 냉소를 지었다. 그는 이미 권고를 했다.

그러나 완안유는 듣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여기고 즉석에서 내관더러 필묵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는 돈을 빌린 사람들더러 갚으라고 명령을 내릴 생각이었다.

흘석열은 이 말을 듣고 끝장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능구렁이 같은 조정의 대신들은 만약 황제인 완안유가 나서서 돈을 갚지 않는다면 절대 누구 하나 돈을 갚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완안유 이 가난뱅이에게 갚을 돈이 있으면 이상한 것이었다.

흘석열은 이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주저하지 않고 꾀병을 부렸다. 완안유가 생기발랄하게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 흘석열은 한마디만 하고 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다.

"폐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대인, 대인…… 괜찮으십니까?"

궁전 안에 있던 내관은 아주 반응이 빨랐다. 완안유는 깜짝 놀라 붓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어서 흘석열 대인이 어떤지 살피거라."

'내가 흘석열더러 일어나라는 말을 하는 것을 잊어서 흘석열이 무릎을 오래 꿇다가 쓰러진 것은 아니겠지? 조정 대신들이 내가 신하를 모질게 대한다고 탄핵하지는 않겠지?'

완안유는 순간 당황해져서 다급히 내관더러 흘석열을 부축하게 하고 또 어의를 부르라고 시키기도 했다.

어의는 아주 빨리 도착했다. 그는 흘석열의 맥을 짚자마자 속으로 어찌 된 일인지 알아챘다. 그러나 어의는 완안유에게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흘석열이 과로한 나머지 몸과 마음이 지쳐서 혼절한 것이라고 했다.

어의는 이 병이 아주 빨리 정신을 차릴 수 있으나 정신을 차린 뒤에는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완안유는 방금 전까지 흘석열이 자신을 속이느라 꾀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어의의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얼이 빠졌다.

"그……리도 심한 것이냐?"

어의는 고개를 끄덕이고 확답을 했다.

"흘석열 대인께서는 중풍에 걸리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흘석열 대인은 꾀병을 부리는 것이 맞긴 했지만 가볍게 지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 꼭 그렇다고는 하지 않았다.

나중에 흘석열 대인이 좀 더 오랫동안 아픈 척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들은 경미한 중풍이라고 진단하면 되는 것이었다. 만약 흘석열 대인이 바로 회복하고 싶다면 그들은 흘석열 대인이 착한 사람이니 하늘이 도와서 괜찮아졌다고 둘러댈 수 있었다.

어의는 진작 속으로 계획이 있었다. 또 흘석열이 당연히 협조할 것을 알고 있어 말하면서도 불안하지 않았다.

완안유는 쉽게 믿지 않았다. 그는 또 어의 여러 명을 불러왔지만 내린 결론이 다 같자 바로 의심을 지웠다. 그리고 흘석열을 저택으로 돌려보내고 어의더러 잘 보살피라고 명령했다.

* * *

흘석열이 들것에 실려 궁 밖으로 나가자 소식에 빠른 대신들이 바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실상, 추세가 빼앗겼다는 소식은 몇몇 권세 높은 대신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다들 암묵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또 아랫사람들이 뒷수습을 할 시간도 벌어 주었다.

호부상서는 두 번째로 입궁하라는 내관의 말을 듣자 추세가 빼앗긴 사실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길 가는 내내 어떻게 말해야 자기가 무고해 보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완안유는 그와 추세의 일에 대해 묻지 않고 국고에서 돈을 빌린 일을 물었다.

호부상서는 이 말을 듣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추세의 일을 따지지 않는다면 그는 괜찮았다.

호부의 그 차용증은?

그 돈들은 선황의 허락을 받고 빌려준 것이었다. 일개 호부상서인 그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호부상서는 사실대로 보고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완안유는 귀찮다는 듯이 그의 말을 자르고 성지를 꺼냈다. 그리고 그더러 돈을 빌린 사람들의 친지와 친구들에게서 빚을 받아 오라고 했다.

그렇다. 돈을 빌린 사람에게서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돈을 빌린 사람의 친지와 친구들에게서 받아내라는 것이었다!

호부상서는 성지의 내용을 보고 멍해졌다.

'폐하는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가?'

빌린 돈을 갚는 것은 당연한 일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자고로 사람이 죽으면 빚은 사라지는 것이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빚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기껏해야 아비의 빚을 아들이 갚는 것에 그쳤다. 황제가 무슨 근거로 친지와 친구들더러 돈을 갚으라는 것일까?

'이게 무슨 빚을 받아내는 거야? 이건 돈을 빼앗는 것이지! 아무리 황제라도 이렇게 염치가 없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는 흘석열 그 늙은 여우가 왜 들려서 궁을 나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도 지금 무척이나 쓰러지고 싶었고 아픈 척하고 싶었다.

아니, 그는 지금 아주 죽고 싶었다!

호부상서가 완안유의 이상한 성지를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오림이 이미 다 나은 몸을 이끌고 시위의 저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적으로 대전에 쳐들어왔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오림은 선황이 중용하던 대신이었다. 조정에서 그의 위치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 해도 과한 말이 아니었다. 시위가 막는다 해도 그러는 척만 할 뿐, 진짜로 오림의 몸에 손을 대지 못했다.

완안유는 당연히 보아 내지 못했다. 그는 손을 저어 시위더러 물러가라고 명령하고는 마음속의 불쾌감을 억지로 누른 채, 상냥하게 물었다.

"오 승상, 무슨 일이 생겼나요?"

오림과 흘석열은 달랐다. 완안유는 흘석열이 소인배고 능력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림은 진정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완안유는 줄곧 오림을 수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완안유는 오림이 아무리 싫어도, 아무리 오림이 자기를 낮잡아 보는 것 같아도 사람들 앞에서 오림을 깍듯하게 대했다.

오림도 대처를 잘했다. 그는 평소에 완안유를 위해 황제의 체면을 한껏 세워 주며 무릎을 꿇어야 할 때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지금 오림은 완안유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그는 무릎을 꿇기는커녕 예를 올리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주나라의 사신이 떠났습니다. 폐하, 알고 계셨습니까?"

완안유는 이 일을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는 옆에 있는 내관을 힐끗 보며 물었다.

"어찌 된 일이냐?"

내관은 다급히 앞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흘석열 대인께서 쓰러지셨을 때, 시위가 보고하러 한번 왔었습니다. 그때, 흘석열 대인의 상황이 위급하셔서 소인은 시위더러 나중에 보고하러 오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물론 이렇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은 시위가 보고하려고 입을 떼자마자 완안유에게 말이 잘렸다.

"짐은 주나라 사신의 소식을 알고 싶지 않다."

황제가 이렇게 말하니 아랫사람들이 또 무슨 수가 있겠는가? 보고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내관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은 오림 앞에서 완안유의 체면을 지켜 주기 위한 것이었다.

완안유도 그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짐짓 화를 내며 내관을 걷어찼다.

"고얀 놈, 이토록 중요한 일을 왜 빨리 짐에게 알리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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