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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55)화 (755/1,004)

755화 나랏일을 중히 여기시지요

"너…… 지금 짐을 협박하는 것이냐!"

완안유는 두 손을 꽉 움켜쥐고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는 온몸의 힘을 다 쓰고 나서야 떨지 않을 수 있었다.

'주나라에서는 서금을 지지하기로 생각을 바꾼 건가? 왜 난 전혀 몰랐지? 서금은 원래도 많은 부락의 지지를 받았는데 또 주나라의 지지까지 받는다면 내 황위는 안전할 수 있을까? 안 돼! 절대 주나라가 서금으로 치우치게 해서는 안 돼!'

"폐하, 폐하께서는 정말 저를 너무 낮잡아 보시네요. 또 자신을 너무 대단히 여기시고요!"

월령안은 일어서더니 싸늘한 시선으로 완안유를 바라보았다.

"진짜 협박은……. 폐하, 올해 추세(秋稅 - 세금의 일종)를 받으셨나요? 올해 겨울에 나누어 줄 군비는 있나요?"

"추세라고? 무슨 말이냐?"

완안유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대충 예를 올렸다.

"폐하, 소인은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월령안이 돌아서자 완안유가 다급히 월령안을 붙잡았다.

"월령안, 말을 똑바로 해! 우리 금나라의 추세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냐?"

"폐하께서 호부의 대신을 찾아 물어보시면 바로 알게 되실 일이 아니겠나요?"

월령안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완안유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비꼬듯 귀띔을 해 주었다.

"폐하, 폐하께서는 아직 젊으시니 부디…… 나랏일을 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친 월령안은 돌아서서 떠나갔다. 이번에 완안유는 사람을 시켜 월령안을 막게 하지 않았고 시위도 감히 막지 못했다.

월령안이 아직 문턱을 넘지도 않았는데 완안유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렸다.

"호부상서를 부르거나! 바로 호부상서가 입궁하여 짐을 만나도록 전하거라."

월령안은 냉소를 지었다.

'즉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한 황제가 감히 내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다니. 그럴 주제가 되겠어?'

* * *

월령안이 궁문을 나서자마자 육장봉이 말을 몰고 다급히 궁문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육……."

월령안이 입을 떼자마자 육 대장군이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월령안을 와락, 품에 안았다.

"월령안! 놀라 죽을 뻔했잖소!"

그가 별원에 들어가자마자 월령안이 입궁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하늘만 알 것이다.

남자는 남자를 더욱 잘 알았다.

비록 그의 눈에는 완안유가 코흘리개에 불과했지만 그 코흘리개는 야심이 가득했고 세상을 증오하며 모든 것에 화가 나 있었다.

거기에 그 코흘리개가 그에게 보이는 적의는 감출 수 없는 정도였다.

즉위하기 전이니 그 녀석은 그나마 조금은 참을 줄 알았지만 즉위 후, 제왕이 되자 억압이 사라진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꽉 안겨 가슴팍이 아팠다. 그녀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당신이 놀라 죽을 뻔했는지 아닌지 모르겠고, 당신이 곧 저를 숨 막혀 죽게 할 것 같다는 건 알겠네요."

"쌤통이오! 누가 당신더러 제멋대로 돌아다니라고 했소!"

육 대장군의 말투는 퉁명스러웠으나 월령안을 안은 팔뚝이 스르르 풀렸다.

월령안은 육 대장군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하지 않아요. 저도 당신 생각처럼 나약하지 않고요."

두 사람이 너무 가깝게 있었던 탓에 월령안은 육장봉의 아직 가라앉지 않은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고 한마디 덧붙였다.

"전 육삼을 데리고 왔어요. 당신이 절 믿지 못해도 자신은 믿어야죠. 직접 가르친 사람인데 절 보호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겠어요?"

육 대장군은 육삼을 흘겨보며 코웃음을 쳤다.

"곽하의 일을 잊었나 보군."

월령안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이 일은 넘어갈 수 없는 건가!'

다행히 육삼이 약삭빠르게 마침 마차를 몰고 왔다.

"장군, 마님, 마차가 왔습니다."

"아니면, 우리 먼저 돌아갈까요?"

월령안은 불쌍한 시선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내 체면을 좀 봐줘. 다른 나라, 낯선 곳인데 나도 체면이 서야 한다고.'

"그러지, 돌아갑시다."

궁문은 말을 나누기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육 대장군도 진정으로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월령안이 일이 생길 때마다 전혀 그에게 기대지 않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듯' 앞으로 뛰쳐나가니 좀 서운할 뿐이었다.

'월령안이 언제면 일이 생겼을 때, 나에게 의지해 줄까?'

육장봉은 월령안을 부축하여 마차에 탔지만 마음속의 우울한 기분은 채 가시지 않았다.

* * *

별원으로 돌아온 육 대장군은 완안유가 월령안에게 딴마음을 품고 보잘것없는 황후 자리로 억지로 붙잡으려 했다는 것을 알고는 화가 났다.

그가 월령안을 어찌할 수는 없어도 완안유를 어찌할 수 없겠는가?

육 대장군은 굳은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물건을 챙기고 주나라로 돌아간다."

'갓 황위에 앉아 자리도 잡지 못한 코흘리개가 무슨 용기로 자꾸 날 도발하는 건지. 정말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어미인 줄 아나? 양보하고 달래 주게?'

월령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요.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으나 돌아가도 되겠네요."

일찍 돌아간다면 그녀는 변경에서 두어 날 더 머무를 수도 있었다.

육 대장군 수하들은 하나같이 행동력이 아주 뛰어났다. 한 시진 만에 떠날 채비를 모두 마치고 입구에서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별원에서 '순찰'하던 금나라 병사는 주나라 장병들이 야단법석을 떨며 멀리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안해져 사람을 시켜 물어보게 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싸늘한 무시뿐이었다.

금나라 병사는 이상함을 직감했지만 주나라의 장병들이 대답을 하지 않자 감히 어쩌지 못했다. 그들은 사람을 궁에 보내 궁의 대인에게 이 일을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주나라의 장병들은 금나라 병사들의 행위를 발견했으나 힐끗 보고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한 시진 후, 도박장 관리인과 인수인계를 마친 월령안과 육 대장군은 육이, 육삼 등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밖으로 걸어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얼굴에 표정이 없어 기분을 알아볼 수 없었다. 또 옆에는 호위병이 따르고 있어 가까이할 수도 없었다.

'순찰'하던 금나라 병사들은 육 대장군과 월령안이 마차에 오른 뒤, 떠나는 것을 두 눈 뻔히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차가 멀리 떠나자 금나라 장병의 우두머리가 옆의 호위병을 잡아당기며 다급히 말했다.

"어서, 다시 한번 궁에 다녀오거라. 대인께 주나라의 사신이 모조리 가 버렸다고 보고드리거라."

말을 마친 그는 호위병을 내버려 두고 말에 올라타 육 대장군 일행을 따라갔다.

* * *

황궁 안.

완안유는 금방 호부상서를 만났다.

호부상서의 입에서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고 각 지역의 세금 징수도 순조로우며 국고에도 돈이 충분하여 올해 겨울 군비를 지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들은 완안유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 되었다.

호부상서가 떠나자 완안유는 치미는 울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탁자 위의 장식품들을 떨어뜨렸다.

"월령안, 감히 날 놀려!"

장식품을 부수고도 분이 덜 풀린 완안유는 두어 바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화가 나 그는 높은 소리로 호통을 쳤다.

"여봐라!"

"폐하!"

내관이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완안유는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월령안에게 지금 당장 입궁하라는 짐의 뜻을 전하라! 만약 거역한다면 바로…… 압송해 오거라!"

내관이 대답하려는 순간, 흘석열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뛰어 들어왔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또 무슨 일이오?"

완안유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어지럽혀진 바닥을 힐끗 보더니 내관에게 눈치를 주었다. 내관이 눈치 빠르게 앞으로 다가와 물건들을 치우자 완안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거만하게 흘석열을 바라보았다.

흘석열은 완안유의 분수도 모르고 스스로 존귀하다고 여기며 오만하기 그지없는 표정의 얼굴을 보자 몰래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의 울화를 눌렀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신이 방금 전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동군, 서군, 남군의 서른여섯 개의 성곽과 여든일곱 개 부락의 추세가 없어졌답니다!"

"뭐가 없어졌다고요?"

완안유는 멍해져서 굳어버린 몸으로 흘석열을 바라보았다.

"내가 잘 듣지 못한 것이니 다시 한번 말씀해 보세요."

"폐하……."

흘석열은 순순히 반복했다. 그의 말투와 속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경험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흘석열의 말투와 속도가 똑같은 두 번의 대답에서 그의 비웃음과 조롱의 기운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완안유는 아니었다.

흘석열 이 벼슬자리의 능구렁이에 비했을 때, 완안유는 유치하기가 어린애와 같았다. 그는 흘석열의 속셈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정신은 온통 흘석열이 방금 전에 보고한 일에 쏠려 있었다.

"추세가 없어졌다고요?"

완안유는 마음속의 울화를 누르지 못하고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추세가 어떻게 없어지냐고? 자연재해가 일어난 것이냐? 아니면 인위적인 것이냐? 너희들은 짐에게 이렇게 많은 곳에서 동시에 재해가 일어난 것이라고는 하지 않겠지?"

"폐하, 서금…… 서금의 군대가 서금 황제의 친필 지시와 병마를 이끌고 이 세 지방의 세금을 거두어 갔습니다."

흘석열은 여전히 납작 엎드린 채로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도 여전히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 질책하기 미안해질 정도였다.

물론, 완안유도 흘석열을 책망할 수가 없었다.

어느 방면으로 보나 추세를 걷지 못한 것은 흘석열과 연관이 없었다.

완안유가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흘석열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흘석열에게서 추세가 없어진 진실을 알게 된 완안유는 그만 멍해졌다. 그는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곧 투지를 불태운 듯, 개운한 미소를 지었다.

"국고에 돈이 충분하다니 추세가 없어도 연말까지는 버틸 수 있겠지. 내년 봄에 다시 세금을 거두라고 하면 된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흘석열은 어깨를 들썩이며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우리의 이 폐하는 너무 순진하신데.'

흘석열은 자신을 모질게 꼬집고 나서야 슬픈 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불안과 당황으로 가득한 얼굴을 들고 울먹이며 말했다.

"폐하, 모르십니까? 국고에는 돈이 없습니다."

'호부상서 그 멍청한 놈, 태후와 약간의 관계가 있는 데다 비위를 잘 맞추는 탓에 태후와 완안유를 아주 혼이 쏙 빠지게 구슬려서 완안유의 신임을 듬뿍 받았지. 이제 그 노친네는 끝났어.'

"그럴 리 없어요!"

완안유는 얼굴이 퍼렇게 되더니 의자의 팔걸이를 꽉 움켜쥐고 입을 열었다.

"짐이 방금 전에 호부상서를 만났는데 장부에는 천만 냥에 달하는 잔금이 남아 있다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돈이 없을 수 있나요!"

흘석열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폐하, 선황이 계실 때, 종종 대신들이 돈을 빌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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