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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53)화 (753/1,004)

753화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요?

그러나 완안유는 그 타 버린 시신이 금나라 황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사람을 시켜 몰래 금나라 황제의 시신을 찾게 하지도 않았다. 그는 예부(礼部)더러 가짜 시신을 황릉에 묻으라고 했다.

오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금나라 황제가 묻히는 날 밤, 오림은 기름 한 통을 들고 자기 집에 있는 밀실로 왔다. 그리고 가운데에 놓인 관을 보며 송구하다고 중얼거린 뒤, 기름을 부었다. 그는 돌아서서 높이 걸려 있는 횃불을 내린 뒤, 관을 등지고 횃불을 던졌다.

화락!

기름을 만난 불은 곧바로 크게 타올랐다.

오림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냉정하고도 절제된 모습으로 밖으로 나갔다.

화르륵…….

오림이 밀실을 나가자 거대한 바위가 천천히 떨어져 뒤에 있는 불길을 조금씩 가렸다.

오림은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대인!"

얼굴에 흉터가 있는 한 우람한 남자가 돌 더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림은 잠시 멈춰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밀실을 봉쇄하고 다시는 열지 말거라."

천자가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 그가 황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을 봉쇄하여 다른 사람이 황제의 깊은 잠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네."

흉터 얼굴의 장사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오림은 금나라 황제의 시체를 불태운 뒤, 바로 병으로 쓰러졌다.

* * *

완안유는 그 소식을 듣고 차갑게 비꼴 뿐이었다.

"충성스럽긴 하군. 그래서 월령안은 그가 노친네의 심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협력하기를 원했었나 봐. 확실히 흘석열 그 도둑놈보다 오림이 더 사람 같기는 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완안유가 흘석열의 말을 꺼내자마자 내관이 와서 보고했다.

"폐하, 흘석열 대인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들라 하라!"

완안유는 비록 흘석열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흘석열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오림처럼 금나라의 승상이었다.

완안유가 건드리기 싫은 것이 아니라 지금의 그의 입지로는 조정의 오래된 대신들을 건드릴 수가 없었다.

"신,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흘석열은 허리를 굽히고 궁전으로 들어가 완안유에게 절을 올렸다.

용포를 입고 옥좌에 앉은 완안유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흘석열을 바라보며 입가에 냉혹한 미소가 피어올렸다. 그러나 부드럽게 말했다.

"흘석열 대인, 어서 일어나세요. 짐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적으로 짐을 만날 때는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다고."

황위에 올라서 예전에 자기를 무시하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생사조차도 자기의 뜻에 따르는 것을 보자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는 이 기분에 중독되어 끊을 수 없었다. 또 끊고 싶지도 않았다.

"폐하의 성은에 망극하오나 신은 감히 교만하고 방자하게 굴 수가 없습니다!"

흘석열은 늙은 여우 같은 사람이다. 완안유가 말뿐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팔자를 고친 노예는 노예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완안유는 팔자를 고친 노예가 아니었지만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만약 정말로 완안유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조정에는 그라는 사람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폐하, 주나라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삼국이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군사 훈련의 안배에 대해 폐하께서 어떤 의견이 있으신지 묻고 있습니다."

흘석열은 말은 듣기 좋게 했으나 사실은 국서를 재촉하러 온 것이었다.

완안유가 자리에 오르자마자 육 대장군은 앞서 주나라와 금나라 황제가 얘기를 마쳤던 주나라, 금나라, 북요 삼국의 군사 훈련을 안배하는 국서를 궁에 보내와 완안유더러 도장을 찍게 하였다.

그러나 완안유는 금나라 황제의 장례식까지 마쳤는데도 국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

육 대장군이 완안유가 일부러 미루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도 완안유와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바로 금나라 조정에 연락하여 압력을 가했다.

그러면 오림이 병들자 흘석열 이 부승상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궁에 들어와 완안유를 재촉하지 않겠는가.

"삼국의 군사 훈련 일은 선황이 동의한 것입니다. 짐은 허락한 적이 없지요."

그는 육장봉이 사람을 시켜 재촉하러 올 줄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육장봉에게 당한 치욕을 잊지 않았다.

그때 그는 권력도, 세력도 없어서 육장봉에게 수모와 무시를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금나라의 황제였다!

'난 그 육씨놈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빌게 할 것이다!'

완안유는 아주 오만하게 말했다.

"짐의 허락이 필요하다면 주나라의 육씨더러 직접 와서 짐과 얘기하라고 하거라!"

"폐하……."

흘석열은 고개를 홱 들어 완안유를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폐하께서는 우리가 예전의 금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잊으신 건가?'

지금의 금나라는 둘로 나뉘었다. 금나라의 절반 정도만 그들의 것인 이런 상황에 그들은 주나라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런 시기에는 적극적으로 주나라에게 호의를 보여 관계를 좋게 해야 하거늘, 그러지 않고 주나라 사신에게 난감하게 굴려고 하다니. 정말 미치신 것이 아닌가?'

흘석열이 완안유더러 단념하라고 설득하려는 순간, 완안유가 입을 열었다.

"됐습니다……."

그러나 흘석열이 아직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전에 완안유가 또 입을 열었다.

"먼저 그 육씨더러 입궁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대인이 먼저 태후의 명의로 월령안을 궁에 불러들이시오. 짐이 월령안과 단둘이 할 말이 있으니까요."

흘석열은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십시오!'

"짐은 '예' 이외의 대답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흘석열 대인, 알겠습니까?"

완안유는 음산한 시선으로 흘석열을 바라보았다.

"짐은 황제이니 대인께서 짐을 가르쳐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흘석열이 무릎을 꿇고 얼굴을 바닥에 들이댔다. 그는 불안하고 황공하게 입을 열었다.

"폐하,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용서해 주십시오!"

"일어나시오!"

완안유는 손을 들으며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성은이 망극합니다!"

흘석열은 떨리는 몸으로 일어나 허리를 숙인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궁전을 나갔다.

완안유는 옥좌에 앉아 이 장면을 보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가 미처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궁전을 나가자 흘석열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냉소를 지었다.

'꼬맹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 * *

월령안은 별원에서 궁에서 전한 소식을 듣고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태후가 날 만나자고 한다고?"

그녀와 태후의 거래는 이미 끝이 났는데 또 무슨 일로 그녀를 찾는다는 말인가?

그녀가 금나라를 곧 떠난다는 것을 알고 태후가 직접 작별 인사를 하려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태후의 모든 약점을 알고 있었으나 태후는 그녀를 어찌할 수 없었다. 아들이 황제가 되어 하루아침에 후궁의 주인이 된 태후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네, 월 낭자, 태후 마마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지금 바로 입궁하시지요!"

별원에 말을 전하러 온 사람은 월령안이 본 적이 없는 어린 내관이었다.

궁 안의 내관은 천 명이 못 되어도 팔백 명은 되었다. 완안유가 즉위한 뒤, 후궁을 피로 씻어냈으니 그녀가 이 내관을 모르는 것도 정상이었다.

'그런데 태후가 날 부르는데 왜 낯선 내관더러 말을 전하게 할까? 이건 태후가 할만한 일이 아닌데.'

월령안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태후께서 날 만나시려는 것이 확실하느냐?"

"네, 네……. 네, 태후 마마……."

내관은 처음에 확신하더니 월령안의 위압을 받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었다. 그는 월령안이 묻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소인은 감히 월 낭자를 속이지 못하겠습니다. 흘석열 대인께서 소인더러 별원으로 와 태후 마마께서 낭자를 부르시니 어서 입궁하라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흘석열이?"

흘석열은 조정의 중요한 대신이었다. 태후는 흘석열에게 심부름을 시킬 정도의 체면이 없었다.

흘석열에게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은 완안유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냉소를 지었다.

"그래, 너와 함께 입궁하지."

'완안유가 날 만나서 뭘 할 것인지 어디 한번 보자고.'

육삼의 안색이 급변했다.

"마님, 이 일은 심상치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대장군은 오늘 성밖으로 나가 비밀리에 삼황자와 만나기로 되어 있어 한동안은 돌아올 수 없었다.

완안유와 비했을 때, 삼황자는 더욱 사리에 밝았다. 금나라를 절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황제여도 주나라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삼황자는 황제로 불리자마자 날 듯한 속도로 육 대장군에게 편지를 써 주나라와 가까이할 뜻을 밝혔다.

심지어 성의를 표하기 위해 삼황자는 모험을 무릅쓰고 변장을 한 채로 육 대장군을 만나러 금나라 수도까지 왔다.

삼황자가 이토록 성의를 보이니 육 대장군은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침 오늘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금나라예요! 전 한 번 거절할 수 있어도 두 번은 못 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절 건드릴 수 없어요."

육삼은 미간을 찌푸리고 인정하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마님, 만약의 경우에는 어떡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우리 대장군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릴 수 없나요?'

"궁에 한 번 들어가는 것뿐이에요. 일을 크게 만들지 마세요."

완안유는 태후의 이름을 빌려 그녀를 불러들였다. 걱정하는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입궁을 거부하여 완안유를 화나게 한다면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완안유가 강경한 수단으로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일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완안유가 육장봉이 별원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오히려 더욱 안 좋아질 것이다.

"네, 마님."

육삼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마차로 월령안을 궁까지 바래다주었다.

월령안을 금나라 황궁까지 바래다준 육삼은 주나라 사신의 명분으로 억지로 월령안을 따라 입궁하였다. 그러나 대전(大殿)에 들어가려고 할 때, 금나라의 시위에게 저지당했다.

육삼은 불복하며 시위와 '도리를 따지려' 하다가 월령안에게 저지당했다.

"괜찮아요!"

'완안유는 감히 날 어쩌지 못해. 그가 황위에 있기 싫어진 게 아닌 이상.'

육삼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내관의 인솔을 받으며 주전(主殿)에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상석의 완안유에게 예를 올렸다.

"소인,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넌 짐을 보았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는구나?"

월령안이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을 본 완안유의 눈에 한 줄기 불만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즉위한 뒤로, 그의 어머니를 제외하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은 월령안이 처음이었다.

월령안은 완안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물었다.

"폐하께서 무슨 일로 소인을 부르셨는지요?"

"네가 이렇게 총명하니 맞추어 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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