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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44)화 (744/1,004)

744화 오월동주(吳越同舟)

양기 관 가게는 눈에 띄지 않는 한구석에 있었다. 구멍가게라 극히 작고 어두컴컴하여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가게 앞을 지나가더라도 주의를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가게는 모든 면에서 거점의 조건에 맞았다.

시정거리에 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않았다.

파는 물건도 삼 년 동안 물건을 팔지 않다가 한 번 물건을 팔면 삼 년 동안 먹고살 수 있는 아주 비싼 관들 뿐이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설사 들어갈지라도 관 가게에서 함부로 돌아보지 않을 것이었다. 또한 무슨 타당하지 않은 점이 있더라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않을 것이었다.

"대장군, 밀실은 뒤뜰 관을 만드는 방에 있습니다."

육삼은 육 대장군의 뒤를 따르며 그를 위해 길을 안내해 주었다.

육 대장군은 말없이 곧장 뒤뜰로 갔다. 완안유도 묵묵히 뒤를 따랐고 흘석열은 좌우를 살폈지만 아무 의문점도 발견하지 못한 채 따라갔다.

밀실 입구에는 관이 한 채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육삼이 힘으로 부숴 버렸고 집 안쪽에 큰 구멍이 하나 남아 있었다.

뛰어내릴 필요도 없이 바로 위에 서서도 한눈에 지하 밀실에 반쯤 파괴된 장치가 보였다.

눈앞에 확실한 증거가 나타난 이상, 흘석열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안유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다. 설령 사전에 아무 정보를 받은 것이 없어도 제작이 정밀하고 범상치 않은 장치를 보고, 그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금나라 수도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이런 정밀한 장치를 설치할 수 있는 사람은 금나라 황제뿐이었다.

그는 반드시 이곳을 모든 이의 눈앞에 노출해야 했다. 특히 곧 귀성할 세 '조카'에게 이곳을 알려야 했다.

그는 마음속 흥분을 감추고 평소처럼 물었다.

"내가 내려가서 볼 수 있을까요?"

"나리, 군자는 위태로운 담벼락에 서지 않습니다."

완안유가 알아챌 수 있으면 흘석열도 당연히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어지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짐작은 그를 매우 불안하게 해 감히 더 깊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죽은 줄 알았던 황제가 실제로는 죽지 않고 몰래 숨어 일을 벌이고 있었다. 세 아들이 죽기 살기로 싸우게 하고 조정이 난장판이 되게 내버려 두었다.

그들의 황제는 미친 것인가.

"육 대장군의 사람이 이미 내려갔습니다. 아마 별일 없을 것입니다. 육 대장군, 아닌가요?"

비록 협력 관계이기는 하지만 완안유는 육장봉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육 대장군은 담담하게 완안유를 흘겨보고는 차갑게 비웃었다.

"이곳은 금나라입니다."

완안유에게 일이 생기든 말든 그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완안유가 누군데 그 생사를 그가 책임져야 하는가.

'염치가 참 대단하군.'

"그래요. 이곳은 금나라입니다."

완안유가 아무리 침착한 척해도 아직 소년이었다. 육 대장군에게 자극을 받자 금세 투지가 불끈 솟았다.

"육 대장군께서는 기억해 주세요. 당신이 서 있는 이곳은 우리 금나라입니다. 우리 금나라에서 금나라의 용사들은 육 대장군의 안위를 지켜줄 수 있습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육 대장군께서는 제멋대로 섣불리 행동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보내 우리에게 알려 주면 됩니다. 우리가 처리할 것입니다."

"그럼 힘내시지요!"

육 대장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손을 올려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완안유에게 뛰어내려도 된다고 눈짓했다.

완안유는 육 대장군이 반박하기만 하면 기회를 빌려 그의 오만방자한 기염을 꺾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육 대장군은 전혀 그와 논쟁하려 하지 않았다.

완안유는 주먹으로 솜을 내리친 듯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는 몰래 육 대장군을 노려보고는 힘껏 뛰어내렸다.

완안유는 너무 빨리, 급하게 뛰어내리다 보니 착지할 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결국 똑바로 섰지만 낭패감이 들었다.

완안유가 한창 번민하는데 머리 위에서 육 대장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나라에 있어서 다행이군요."

이 말에 완안유는 부끄러움과 분노가 교차하여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다가 무엇엔가 걸려 다시 한번 넘어질 뻔했다.

이번에 육 대장군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가볍게 콧방귀만 뀌었다.

하지만 이 하찮아는 듯하면서도 빈정거리는 듯한 콧방귀는 어떤 말보다도 사람을 난감하게 했다.

흘석열은 갑자기 완안유가 더없이 가련해 보였다. 그는 참지 못하고 완안유를 위해 한마디 했다.

"육 대장군, 저희 섭정왕께서는 아직 어리십니다."

'이렇게 어린애를 놀리니 재미있는가?'

육 대장군은 흘석열을 흘겨보며 말했다.

"우리 주나라는 타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당신네 금나라의 사무인 만큼 저는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이 일을 어떻게 떠들썩하게 하고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는 금나라 사람들의 일이었다. 육장봉은 그렇게 한가할 겨를이 없었다.

육장봉은 흘석열에게 만류할 기회를 주지 않고 뒤돌아 떠났다.

물론 흘석열도 만류할 의향이 없었다.

남아서 무슨 할 일이 있는가.

육 대장군더러 십육 전하를 비웃게 하겠는가.

비록 금나라 전체에서 십육 전하를 안중에 두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업신여기는 것은 그들만의 일이고 남들이 비웃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육장봉, 이 걸어 다니는 흉기의 간섭이 없자 완안유도 괄목할 만한 활약을 보였다.

그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밀실 안의 장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발견을 하게 되었다.

"흘석열 대인, 내려와 보세요. 이게 무엇인가요?"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뛰어내리다가 넘어질 뻔한 완안유의 전례가 있기에 흘석열은 자신의 늙은 팔, 늙은 다리를 전혀 믿지 않았다. 측근더러 사다리를 가져오게 한 뒤 사다리를 타고 기어 내려갔다.

흘석열은 완안유의 곁에 이르러 그가 가리키는 흔적을 보았다. 그는 비록 놀라지 않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이건……."

금나라 황제만을 위해 일하는 기술 장인인 복산(僕散) 대가의 암인(暗印 - 은밀히 사용하는 인장)이었다.

"아니, 아니, 아니! 이것은 가짜일 것입니다."

흘석열은 이 암인이 진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관 가게는 십중팔구 금나라 황제가 키우는 정탐꾼들의 소굴이었다.

하지만 금나라 황제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이곳이 다시 사용되려면 진짜도 반드시 가짜여야만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완안유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군가 폐하의 기술 장인으로 사칭했습니다. 이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배후 주모자를 찾아내기 전에 흘석열 대인께서는 현장을 봉쇄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막을 아는 모든 이의 입을 막아 주십시오. 세 황자가 수도로 돌아온 다음 이 일을 다시 논의합시다."

그는 흘석열이 줄타기를 잘해 금나라 황제의 예쁨을 받지 못하지만 세 황자와 사이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흘석열의 됨됨이와 영리함으로 이변이 없는 한, 완안영 세 사람은 입성하기 전에 모두 금나라 황제가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이미 선의를 보였다. 이 일은 그들이 연합하여 처리해야 한다고 암시했다. 완안영 그들이 어리석지 않으면 먼저 그를 찾아올 것이다.

흘석열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포권하여 예를 올렸다.

"나리, 영명하십니다."

이는 흘석열이 처음으로 완안유에게 정식 예를 올리는 것이었다. 완안유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저는 대인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완안유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담담한 척했다. 타고난 총명을 가진 듯했다.

월령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적의 적은 바로 벗이었다.

흘석열의 행동을 보고 그는 자신의 세 '조카'를 설득해 손을 잡고 먼저 금나라 황제, 이 큰 적수를 해치울 수 있다는 신심이 생겼다.

* * *

육장봉은 양기 관 가게 일을 완안유와 흘석열에 맡기고는 손을 놓아 버렸다.

그는 주나라는 타국의 내정을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니 결코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육 대장군은 흘석열과 완안유가 그 뒤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금나라의 황위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그럴 여유가 있으면 그는 차라리 월령안을 따라가기로 했다.

"갑시다. 같이 도박장으로 갑시다."

육 대장군은 서재에서 장부를 보는 월령안을 찾았다. 그는 다시 한번 한창 계산하는 그녀를 단순무식하게 중단시켰다.

"구경거리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방해가 잦아지자 월령안은 이 골치 아픈 남자를 대비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녀는 육 대장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주판을 한번 훑어보고는 숫자를 기억했다.

"구경거리는 거기에 그대로 있잖소. 좀 늦게 봐도 마찬가지요."

육 대장군은 다가가 월령안을 도와 탁상을 정리하고 장부들을 모두 거두었다. 절대 그녀가 장부만 보고 그를 외면하게 두지 않았다.

"드디어…… 오게 된 건가요?"

월령안은 긴장을 풀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면서 오랫동안 고개를 숙여 시큰시큰한 목을 움직였다.

"음."

판을 짠 지가 언젠데 이제는 올 때가 된 것이다.

육 대장군은 확실히 익숙했다. 얼마 안 되어 월령안의 탁상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월령안은 힐끗 바라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일어섰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금나라의 역사에 참여한 셈이네요."

지난번 금나라 황위 다툼에도 월씨 가문이 참여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변경 그분의 그녀에 대한 경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장을 바꿔 만약 그녀의 수하가 이렇게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녀 또한 전적으로 믿음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음."

그들은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금나라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육 대장군은 앞으로 나아가 월령안의 얼굴 쪽 잔머리들을 세심하게 정리하고 나서야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별원 밖에서는 여전히 금나라 병사들이 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나서서 외출하는 육 대장군과 월령안을 막지 않았다.

지난번 육 대장군을 막았던 병사들은 아직도 의관에 누워서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더는 걸핏하면 사람을 패는 육 대장군을 막아 나설 담이 없었다.

순시하던 금나라 병사는 묵묵히 뒤돌아섰다. 그냥 육 대장군이 밖으로 나가는 것도, 육삼이 마차를 몰고 오는 것도 못 본 척했다.

봤으면 또 어떠한가. 막을 수도 없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할 것이다.

윗사람들도 방법이 없는데 그들 병사 몇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역시 주먹이 세군요."

월령안은 금나라 병사의 피하는 듯한 눈빛을 보고 부러운 시선으로 육 대장군을 바라보았다.

분명 그녀도 금나라에서 강력한 기세를 선보였다. 심지어 매우 신속하게 해주 공주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녀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먹이 센 것은 그냥 무인이오."

육 대장군은 월령안을 부축해 마차에 올랐다.

"나는 이 금나라에서 주나라의 대표요."

주먹만으로 그가 몇 명을 때릴 수 있겠는가.

타향에서는 결국 배후의 국가만이 강대한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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