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화 그 배상으로 네가 나한테 와라
금나라 황제는 계속 비밀리에 주시하며 그가 탐색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육장봉이 찾아왔는데 그가 만나지 않으면 금나라 황제는 그를 찢어 죽이려 할 것이다.
오림은 먹장구름이 가득 낀 얼굴로 아랫사람에게 들려서 화청에 들어섰다. 육장봉 혼자만 있는 것을 본 오림은 얼굴빛이 더 보기 흉해졌다. 그는 대충 육장봉에게 공수하며 인사했다.
"대장군, 실례했습니다."
"청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와서 악객(惡客)이 되었으니 외려 제가 오림 대인께 폐를 끼친 것이지요."
육장봉은 오림을 힐끗 쳐다보았다. 눈빛은 거리감이 느껴지면서도 거만했다.
그는 전혀 손님으로서의 자각이 없이 태연자약하게 자리에 앉아 있어 주인보다 더 위엄 있어 보였다.
이에 오림의 기세는 대번에 압도되었다.
오림은 마음이 울적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관리인의 부축을 받아 상석에 앉았다.
기선 제압할 기회를 놓친 그는 주인의 위엄을 내세워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어찌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냐. 어서 대장군께 차를 대접하지 못할까."
오림의 기세가 일시에 높아지자 관리인은 깜짝 놀라 흠칫 떨며 즉시 무릎을 꿇고 죄를 청했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엄포를 놓으려던 사람은 마치 웃음거리를 보듯이 그를 보았다.
오림은 순간 속내가 당장에서 들켜 얼굴을 들 수 없는 창피함을 느끼게 되었다.
다행히 권신이 될 만한 이들은 하나같이 낯가죽이 두껍고 속이 시커멨다. 다음 순간 오림은 평상시의 안색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대장군께서는 월 낭자와 함께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월 낭자는 어디로 가셨는지요?"
"당신의 부인께서 명첩을 보내 령안을 초청한 게 아닙니까? 령안은 물론 당신 부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육장봉은 군인 출신으로 아무렇게나 앉아 있어도 군인의 늠름함과 강직함이 엿보였다.
그는 손을 탁자 위에 놓아두고 드문드문 가볍게 탁자를 두드렸다. 대수롭지 않아 하는 느긋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렇게 무심코 하는 행동이 오림에게는 영문 모를 압박감을 주었다. 떠보려던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직감적으로 육장봉이 그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아는 것만 같았다. 육장봉이 먼저 찾아온 것은 믿는 게 있어서 그들의 탐색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오림은 자신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육장봉은 모든 것을 다 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떠보려 했다.
하필이면 육장봉의 떠보는 수단이 대단했다. 그는 육장봉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줄곧 자신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되레 육장봉에게 의중을 읽혔다는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육장봉이 떠나면서 그에게 공수하며 감사의 한마디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이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승상 나리의 초대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림은 그 자리에 굳어졌다. 다시 오후에 육장봉과 한 이야기들을 곰곰이 되새기자 갑자기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그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았다.
오림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뭐라도 말해 조금이라도 만회하려 했다. 바로 이때, 서쪽 뜰에서 갑자기 하인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백호! 큰아가씨가 키우는 백호가 탈출했다! 어서 마님을 보호해라. 백호가 마님을 상하게 해서는 안 돼!"
크엉…….
같은 시각, 서쪽 뜰에서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호랑이의 울부짖음과 함께 하인, 안식구들의 놀란 비명 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자신의 아내를 미끼로 삼을 수 있다니. 오림 대인은 과연 충성심이 대단하군요."
육장봉은 얼굴빛이 금세 차가워졌다. 서슬 퍼런 눈빛으로 오림을 흘겨보고는 훌쩍 몸을 날려 서쪽 뜰로 달려갔다.
"아니……."
오림은 육장봉에게 자기는 그런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그러지 않는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바로 그때, 그는 갑자기 육장봉이 무엇을 말했는지 알아차렸다.
백호가 사람을 습격한 것을 미끼로 육장봉이 손쓰게 하려 했다.
이는 그가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금나라 황제가 준비한 것이었다.
그가 충성을 바친 주인이 그의 아내를 미끼로 하고, 그의 딸이 키우는 백호를 칼로 삼은 것이다.
오림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몸에 상처에도 불구하고 재빨리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서! 빨리 시위를 불러 서쪽 뜰로 보내라. 마님을 보호해! 마님을 보호해야 한다."
그의 부인에게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의 부인에게 사고가 생기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의 딸은 또 어떡하는가.
오림은 미친 듯이 서쪽 뜰로 달려갔다. 몸의 상처가 터져 피가 옷에 흠뻑 배어들었지만 그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갔다.
"나리, 나리, 좀 천천히……."
상처가 하나도 없는 관리인이 오림을 뒤따르면서도 줄곧 따라잡지 못한 것을 보면 그가 목숨을 내걸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목숨을 내건 성과도 있었다. 사력을 다해 서쪽 뜰로 달려간 그는 마침 육장봉이 아내를 구하고, 맨손으로 무지막지하고 용맹하기 그지없는 백호를 한 주먹에 때려죽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육장봉은 다치지 않았다.
육장봉이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지, 아니면 그의 집안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오림은 이 광경을 보고, 또 월령안의 품에 쓰러진 아내를 보면서 긴장을 늦추더니 그만 기절해 버렸다.
백호가 갑자기 뛰쳐나와 마님은 하마터면 백호에게 목숨을 빼앗길 뻔했다. 그리고 주인은 그 자리에서 혼절해 버렸다. 이에 하인들은 허둥지둥하며 아우성을 쳤다. 오림의 저택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나 장본인이자 호랑이를 잡은 영웅, 육 대장군은 일이 끝나자 옷자락을 털고 가 버렸다. 공과 이름을 깊이 감추고 차분하게 백호의 시체를 한쪽에 내팽개친 채, 월령안을 데리고 활개 치며 밖으로 나갔다.
오림 저택에서는 누구도 감히 막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호위 몇은 육장봉을 바라보는 시선에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들도 맹호 한 마리를 죽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한 주먹에 때려죽일 수는 없었다.
만약 육 대장군의 주먹이 그들의 머리를 친다면 어떠할까.
아마 머리가 터지고 묵사발이 되어 흩뿌려질 것이다.
호위들은 저도 모르게 흠칫 떨고는 더는 생각하기조차 싫어했다. 물론 육장봉과 월령안을 막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두 사람이 떠나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바로 이때, 붉은 옷의 여인이 늠름하고 씩씩한 여병들을 데리고 두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붉은 옷의 여인은 화려하고 방자했으며 기개가 넘쳤다. 그녀는 육장봉의 앞에 걸어왔다. 항상 거만하고 안하무인이던 그녀의 눈에는 경이로움이 스쳐 지나갔다.
"네가 내 소백(小白)을 죽인 건가?"
"비켜라."
육 대장군은 그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그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붉은 옷의 여인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뜨거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내 소백을 죽였으니 그 배상으로 네가 나한테 오면 되겠네. 너 나랑 결혼하자! 아버지더러 너를 왕으로 봉해 달라고 할게. 이처럼 잘생겼는데 목숨을 걸고 노력할 필요 없어. 넌 그냥 소백처럼 나를 기쁘게 해 주면 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있어. 얼마나 좋으냐!"
아름답고 요염한 붉은 옷의 여인은 오림의 딸 오유유(烏幽幽)였다.
백호는 바로 그녀가 키우던 애완동물이었다. 그녀는 백호가 행패를 부리다가 한 주먹에 맞아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사람을 거느리고 육장봉에게 따지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육 대장군을 보는 순간, 그녀의 시선은 그의 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던 남자를 드디어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앞의 이 강하고 잘생긴 남자만이 그녀 오유유에게 어울릴 것이다.
육장봉은 지금까지 여인들에게 적지 않게 고백을 받았다. 하지만 누군가 감히 그를 기생오라비로 취급하며 얼굴을 믿고, 여자를 꼬드겨 먹고살라고 하기는 처음이었다.
육장봉은 얼굴빛이 더욱 어두워지고, 목소리도 더욱 차가워졌다.
"꺼져."
월령안은 한쪽 옆에 서서 육장봉의 냉랭한 얼굴을 보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이럴 때 웃으면 너무 의리 없어 보이니까.
"싫어요!"
오유유는 육 대장군의 냉랭한 얼굴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를 보는 눈빛이 더욱 뜨거워졌다.
"네가 내 소백을 때려죽였잖아. 그럼 소백 대신 너를 나한테 배상해야지. 아니면, 내가…… 내가 저 여자를 죽일 거야."
오유유는 갑자기 월령안을 가리키며 독기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
"주나라 사내. 저 여자가 죽지 않기를 바라면 고분고분……."
"시끄럽군."
육 대장군은 원래부터 여자라고 특별히 아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품위를 갖춘 군자도 아니었다.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오유유를 한 발에 날려 버렸다.
"큰아가씨."
"큰아가씨."
오유유의 뒤에 있던 여병들은 보기에는 늠름하고 씩씩하지만, 막상 일이 생기자 새색시처럼 비명을 지르며 오유유에게 달려갔다.
육 대장군은 담담하게 발을 거두더니 월령안의 손을 잡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구경은 재밌었소?"
"흠, 흠……!"
월령안은 몰래 웃다가 육 대장군이 갑자기 바라보는 바람에 사레들 뻔했다.
"구경이 재미없었소?"
육 대장군은 온화한 표정이었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는 온화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월령안은 흠칫 떨며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그녀는 서투르게 화제를 돌렸다.
"그 있잖아요……. 오림 대인과 부인은 금슬이 아주 좋다고 해요. 오늘 일은……."
"재미없었소?"
육 대장군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목소리는 온화하고 눈빛은 정이 넘쳤다.
한순간, 월령안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긴장을 늦추었다. 하지만 곧 육십이의 '비참'한 결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임기응변하여 거듭 말했다.
"재미있었어요. 당신이 가장 멋져요! 세상에서 제일로 멋졌어요."
"멋있으면…… 앞으로 배우시오. 알겠소?"
육 대장군은 땅바닥에 쓰러져 한동안 일어서지 못하는 오유유를 가리키며 말했다.
"눈치도 없고 딴마음까지 품은 사람을 대할 때는, 나처럼 추풍낙엽을 쓸어버리듯이 대하라는 말이오. 그런 자식하고 같이 춤을 추지 말고."
"알겠어요."
월령안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그러니까 육 대장군은 아직도 청주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질투가 참 심하고 오래가기도 했다.
육 대장군은 그제야 만족해하며 월령안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과연 오늘은 성과가 적지 않군."
겨우 정신을 차린 오유유는 여병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그녀는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자 다시 고함을 질렀다.
"저자를 막아라! 두 사람을 막으라고!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남겨!"
하지만 그녀의 뒤에 있던 여병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큰아가씨. 그 두 사람 중 하나는 주나라 대장군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부 도박장의 주인입니다. 저희는…… 저희는……."
육장봉과 월령안은 뒷말을 듣지 못했다. 두 사람이 대문을 나서자 육삼이 마차를 몰고 왔다.
오림 저택 밖의 호위는 진작 육삼이 모두 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