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화 소년이여, 힘내라!
육십이는 검을 잡고 앞장서서 호표영에 쳐들어갔다. 길을 막는 자는 모두 그의 칼에 베였다. 그 용맹스러움이 가히 신이 막으면 신을 죽이고 불이 막으면 불을 죽일 것 같았다.
"정말 대단한 검이에요."
월령안은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서서 긴장을 한 채 앞쪽을 바라보았다.
육십이의 검은 예리하고 속도가 비할 바 없이 빨랐다. 한 번 휘두르면 꼭 피가 묻고, 거두면 꼭 피 안개가 끼었다.
잠깐 사이 육십이는 호표영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병사들에게 포위되었다.
그의 검은 옷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계단에 선 월령안은 그의 몸에 묻은 피가 적의 것인지 아니면 그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만 십이가 용맹한 병사 삼백 명을 이끌고 청주에서 종횡했던 사람이 확실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었다. 전에는 늘 십이를 어린애로 보았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이 어린애는 전쟁터로 가자 걸어 다니는 살인 무기가 되었다.
그는 마치 칼집에서 금방 뽑아낸 보검같이 예리하고 살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가 포찰량의 수급을 취하는 순간, 핏방울이 땅을 적셨으며 전쟁터의 모든 사람들에게 포찰량의 피가 튀었다.
월령안은 계단에 서 있어 피가 그녀에게까지 닿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짙은 피 냄새를 맡았다.
"참수했어요."
포찰량의 수급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환희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눈에는 기쁨이 넘실댔다.
그녀는 십이가 단칼에 포찰량의 수급을 쳐 날려 버리고는, 또 공중으로 뛰어올라 눈앞의 장애물을 쓸어버리고 수급이 떨어지는 것을 다시 받아 쥐는 것을 보았다.
전반 과정에서 호표영의 병사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거의 백 명에 달하는 병사들은 마치 발에 못이라도 박힌 듯이 꼼짝하지 않고 포찰량의 수급이 십이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육십이는 수급을 받아 들고 되돌아가려 했다. 그제야 병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육십이에게 검을 휘둘렀다.
"포찰 장군의 수급이 저자의 손에 있다. 저자를 막아라."
"포찰 장군이 죽었다. 형제들…… 같이 덤비자. 저자를 죽이고 포찰 장군의 원수를 갚자."
호표영의 병사들은 다시금 육십이를 겹겹이 포위했다. 하나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육십이에게 달려들며 손에 든 칼로 그의 급소를 공격했다.
반면 십이는 한 손에 검을 들고, 한 손에 포찰량의 수급을 들고 있어 아무래도 좀 거치적거렸다.
몇 번이고 병사의 큰 칼이 육십이의 요해처를 스치며 지나갔다.
월령안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으나 십이를 방해할까 봐 감히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몰래 십이를 걱정할 뿐이었다.
육십이는 주변 한 바퀴의 사람을 죽이고 포찰량의 군마에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포찰량의 수급을 말 옆에 걸어 더는 거치적거리지 않게 했다. 또한 군마의 우세에 힘입어 병사들이 가까이하지 못하게 했다.
그제야 월령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십이, 진짜 대단하구나!"
그제야 그녀는 십이의 실력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육장봉 역시 육십이의 활약에 만족했다. 하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진중했다.
"그런대로 괜찮군."
"당신은 기준이 너무 높아요."
월령안은 육장봉을 흘겨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기준이 높은 거요?"
육 장군은 되물어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열다섯에 이미 저 정도로 했소."
그렇지 않으면 황제가 황태자의 자리를 걸고 약속해도 선황과 대신들은 그가 군사를 거느리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가 처음 전쟁터에 나가면서 병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황제의 추천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그가 훌륭하지 않으면 황제가 아무리 그를 추천해도 소용없었다.
조정에서는 수만 명 장병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칠 수 없었다.
월령안은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상인들이 그녀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느냐고 묻자 그녀가 '장사해서 돈 버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요?'라고 되물었을 당시, 그 상인들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육장봉을 두들겨 패서 그의 기준이 높은지 아닌지를 똑똑히 알게 해주고 싶었다.
바로 이때, 육십이는 호표영의 병사들을 모두 검으로 베여 죽였다.
그는 말을 달려 앞으로 오더니 계단에서 멈추었다. 그러고는 포찰량의 수급을 들고 말 등에서 뛰어내렸다. 곧이어 탕, 탕, 탕 계단을 뛰어올라 복명했다.
"대장군, 소인이 명령을 완수했습니다."
육십이는 금방 전의 격전을 거쳐 온몸이 시큰시큰하고 피로했다. 하지만 정신은 오히려 극도로 흥분 상태였다. 기운이 넘치고 의기양양해져서 환하게 웃었다.
월령안의 얼굴에 미소도 저도 모르게 커졌다. 눈에는 자랑으로 넘쳤다.
육십이는 혼자서 한 개 대대의 군마와 대결하는 일을 해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적군의 수급을 취하는 것도 해냈다.
그는 육장봉의 연마를 통과했고 불합리한 요구도 완수했다.
온몸이 피범벅이 된 육십이를 보니, 월령안은 걱정되는 한편, '우리 집 아들'이 드디어 다 컸다는 뿌듯한 기쁨도 맛보았다.
월령안 앞에서는 '그런대로 괜찮다'던 육 대장군은 육십이 앞에서 더 각박했다. 기쁨도 슬픔도 없이 '음' 하고 대답하고는 일언반구의 칭찬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주 냉혹하고 무정하게 십이를 일깨워 주었다.
"백 바퀴 돌기, 절대 잊지 말아라."
월령안은 어이가 없었다.
'육장봉은 정말 사람인가?'
"예, 대장군."
육십이는 이미 습관이 돼 있었다. 얼굴에 놀라움이 전혀 없었다. 다만 웃는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풀이 싹 죽고 말았다. 마치 꾸중 들은 큰 강아지같이 좀 전의 생기를 찾아볼 수 없게 고개를 푹 떨구고 서 있었다.
월령안은 동정 어린 눈길로 십이를 바라보았다. 참 가련한 녀석이었다.
"육삼, 차를 몰아."
육 대장군은 아무 위로의 말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십이를 지나쳤다. 마치 십이가 하찮은 일을 한 것만 같았다.
월령안은 육장봉을 한번 보고 다시 십이를 바라보고는 얼굴의 기쁨을 거두었다.
그녀는 육장봉이 십이를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기세를 억누르는 것은 십이가 잘해 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기준이 더 높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십이는 싸움에 능하지만 심성은 여전히 소년과 흡사했다. 소년의 촐싹거림과 가벼움을 지니고 있어 작은 승리에 우쭐거리거나 심지어 자만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십이는 선봉이 될 수 있고, 육장봉 수하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될 수는 없고 한 지역을 지킬 수 있는 장군이 될 수도 없었다.
육장봉이 십이를 칭찬하지 않는 것은 십이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십이의 의지를 단련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군사를 잘 모르기에 육장봉을 도울 수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발목을 잡지 않는 것이었다.
월령안도 육장봉이 하는 대로 십이의 오늘 '성적'을 일상적인 일로 대했다. 십이에게 고개만 끄덕이고 육장봉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백 바퀴, 어이, 소년! 힘내."
육삼은 십이의 옆을 지나면서 그의 어깨를 다독이려고 손을 들었다. 그러다 십이의 온몸이 피범벅인 것을 보고는 말없이 손을 거두어들이며 그에게 웃어 보였다.
"소년이여, 힘내라! 백 바퀴야."
육사와 육오는 십이에게 찡긋거리며 능글맞게 웃었다.
육 대장군은 줄곧 십이를 단련시켜 그가 한몫 맡기를 바랐다. 이에 대해 육삼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또한 잘 협조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도 그저 대장군을 따르고 싶을 뿐이었다. 십이처럼 대장군님의 '두터운 사랑'을 받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대장군이 십이를 단련하는 데 대해 불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매우 지지했다. 대장군이 따로 훈련이 있으니 망정이지, 그들은 대장군을 도와 함께 십이를 단련시키고 싶었다.
십이를 단련시키고 나면 그들은 갑옷을 벗어버리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즐거웠지만 핍박에 못 이겨 단련을 받는 십이는 도무지 웃을 수가 없었다. 특히 지금, 백 바퀴라니.
육십이는 백 바퀴라고 말한 자신을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당시 그는 왜 입이 가벼워서 백 바퀴를 달린다고 했을까.
* * *
육장봉은 금나라에 도착한 뒤, 줄곧 별원에 머물면서 두문불출했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누구도 그를 볼 수가 없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오림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만 금나라 황제가 육장봉이 바로 그날 자신을 암살한 사람으로, 별원에 숨어 나오지 않는 것은 상처를 치료하고 쉬기 위해서라고 짐작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금나라 황제는 육장봉의 부상 여부를 알아보려고 남몰래 별원에 많은 사람을 보냈다. 하지만 모두 그의 곁에 접근하지도 못했다.
할 수 없이 금나라 황제는 이 일을 오림에게 맡겼다. 그더러 육장봉의 부상 여부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오림 자신이 큰 부상을 입어 외출할 수 없어 어떻게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군대를 파견해 육장봉이 머무는 별원을 포위 공격해 그가 손을 쓰게 핍박하겠는가.
그런 장난을 칠 수는 없었다. 육장봉은 주나라의 사신으로 주나라의 체면을 대표하기도 했다. 금나라가 주나라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 한, 서로 척을 지어서는 안 되었다.
육장봉은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오림은 자신의 체면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가 중상을 입고 채 낫지 않은 몸을 이끌고 찾아간다면 누구든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육장봉이 그를 만나 주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이모저모 생각하다가 오림은 결국 아내더러 월령안을 부르라고 했다.
그가 칼에 찔려 상처를 입은 사건은 비록 범인을 찾지 못했고, 이 일이 월령안과 관련된다는 아무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그를 습격한 자가 월령안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월령안을 찾아가서 괴롭히지도 않고 이 일로 그녀를 문책하지도 않았다.
월령안은 그에게 커다란 인정 빚을 진 것이었다. 이 인정 빚을 월령안은 반드시 갚아야 했다.
어떻게 갚을지는 이번 만남의 결과에 달려 있었다.
오림은 이미 어떻게 월령안과 담판해야 할지 잘 생각해 두었다. 그녀더러 육장봉을 설득해 앞에 나서게 하려 했다.
생각 밖으로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월령안이 육장봉을 데리고 방문했다.
그에게 분명히 알려 준 것이다. 인정 빚은 이리 사람을 데려다 놓았으니 갚은 것이고, 받을지 안 받을지는 그에게 달린 것이었다.
오림은 갑갑하기만 했다.
"과연 세상 물정에 도가 텄구먼."
그는 칼에 맞았다. 그 원인으로 조정의 다툼을 피하고 자신이 금나라 황제와 여러 황자들 간의 싸움에 휘말릴 걱정이 없게 되었다. 또한 줄을 잘못 서 차기 금나라 황제가 그를 찾아 따지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오림은 왠지 무척이나 손해 본 느낌이었다.
그는 진짜로 칼을 맞았다. 원래는 이 기회를 빌려 월령안에게 양보를 얻어 내려 했다.
생각 밖으로 월령안이 직접 육장봉을 데리고 방문하는 바람에 그는 입을 열 기회조차 없게 되었다. 물론 값을 마구 부르고 흥정할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받아들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