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화 하늘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오
십이는 대장군을 언짢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님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마님이 그들의 눈앞에서 금나라 오랑캐들에게 희롱당할 뻔한 것이다.
십이의 그 하찮은 일과 비교하면, 그들의 잘못이야말로 명을 재촉하는 큰일이었다.
십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작은 송곳니 두 개를 드러냈다.
"다섯째 형 고마워. 형이 가장 착해. 형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십이는 작은 탁자를 들고 살갑게 육사와 육오를 뒤따라가며 좋은 말을 연신 쏟아 냈다. 이에 육사가 고개를 저었다.
"대장군 앞에서 지금처럼 약삭빠르게 굴면 그렇게 자주 벌을 받지 않을 텐데 말이다."
육십이는 퉁명스럽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웃기는 소리. 누가 감히 살아 있는 염라대왕 앞에서 까불겠어."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라고?"
육장봉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나를 말하는 것이냐?"
"대, 대, 대……장군!"
육십이가 고개를 번쩍 들자 냉엄한 육장봉의 얼굴이 한눈에 안겨 왔다. 그는 순간 손을 흠칫 떨었다. 그러자 손에 들고 있던 작은 탁자가 툭, 하고 그의 발에 떨어졌다.
"아악…… 아악…… 아악……."
육십이는 아픈 나머지 입을 일그러뜨리고 발을 잡고서 뜀박질을 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잊지 않고 용서를 빌었다.
"대장군, 저, 저, 제가 잘못했습니다……."
"넌 잘못이 없다!"
육장봉은 허리를 굽혀 탁자를 줍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발을 다치면 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 역시 영리하군."
"대, 대, 대, 대장군……."
육십이는 더는 뜀박질을 못 하고 다리를 절며 눈물을 머금고 가련하게 서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제, 제가 지금 당장 뛸 겁니다…… 백 바퀴 뛰면 됩니까?"
"자네에게 달리기만 시키면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겠나."
육장봉은 육십이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얼핏 보기에는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게 그저 다독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다독일 때마다 육십이는 키가 점점 줄어들었다.
육십이는 울먹울먹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육장봉은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걱정하지 마. 내가 꼭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라는 칭호에 부응할 테니까. 네가 신경 써서 지어 준 별명에 미안하면 안 되지."
"대장군……. 제가 정말,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육십이는 다리를 굽혀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하지만 육 대장군은 억지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금나라 호표영의 사람들이 곧 도착할 거다. 자네가 말해 봐. 다같이 싸우는 것이 좋겠나, 아니면 혼자서 여럿과 싸우는 게 더 재미있을 거 같겠나?"
육십이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요놈의 주둥이가 문제야!'
'다같이 싸울 것인가, 아니면 혼자서 여럿과 싸우겠는가?
어허……
이건, 대장군께서 십이 혼자 호표영 한 무리와 싸움을 시키겠다는 것 같은데!'
그들은 오랫동안 이런 높은 강도의 훈련을 보지 못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고 그냥 십이가 참 비참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육사와 육오는 벌벌 떨며 말없이 의자를 내려놓고 조용히 한쪽으로 물러나 존재감을 낮추었다.
이것은 대장군의 '두터운 사랑'이었다. 그들은 정말 십이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십이가 스스로 버텨 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동정 어린 눈길로 십이를 힐끔 쳐다보고 육장봉의 뒤에 숨어 몰래 십이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육사와 육오와 마찬가지로 없는 척했다.
그녀도 십이를 구할 수 없었다.
그녀도 육장봉을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 십이야말로 진정한 용사였다.
혼자 여럿과 싸우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튼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많이 단련하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고생을 좀 하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육장봉이 있는 한, 십이가 목숨을 잃을 위험은 없을 테니까.
육장봉의 눈앞에서 쓴맛을 보는 것이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월령안은 담담하게 앉아서 구경거리를 기다렸다.
육장봉도 십이를 일으켜 세우고 따듯한 미소를 지었다.
"너는 잘할 수 있다. 나를 실망시키지 말도록."
"예, 장군님!"
육십이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명을 받았다.
육 대장군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탁자를 들고 입구로 가서 월령안 앞에 내려놓고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십이는 참 약삭빠르군. 우리가 구경할 줄 알고, 차와 수박씨를 둘 곳이 없을까 탁자까지 준비해 왔잖소."
월령안은 양심 없이 웃었다.
"바보 노릇도 쉽지 않군요."
십이는 아마 한동안 '약삭빠르다'는 단어를 듣기 싫어할 것이다.
육 대장군은 너무나 악랄했다.
"이제는 사적 재산도 사들이는데 그가 왜 바보요?"
그도 아직 관성에 가서 땅과 가게를 사는 것으로 월령안의 장사를 도와주지 못했다. 십이가 오히려 한발 앞섰던 것이다.
이렇게 약삭빠른데 어디를 봐서 바보란 말인가.
월령안은 잠깐 주저하다가 말했다.
"십이는 어머니가 돌아와서 변경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해요. 그래서 땅값이 아직 오르지 않은 기회를 틈타 관성에 어머니가 살 수 있게 가게를 마련하려는 거예요."
십이의 어머니가 돌아오면 당연 현음 공주도 돌아올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북요 황제가 죽으면 현음 공주는 곧 돌아올 것이다.
현음 공주는 북요에서 십 년간 주나라를 위해 많은 공을 세웠다. 그녀는 주나라의 공신이었다.
하지만 이 공신은 변경에서 편히 살기 힘들 것이다.
조정의 대신들은 본래부터 현음 공주가 북요에 시집가, 그곳에서 여러 차례 재가하며 또한 북요 귀족들과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대해 수치로 여겼다.
현음 공주가 변경으로 돌아오면 아마도 대신들의 맹렬한 공격과 수많은 힐책을 받을 것이다.
마치 육장봉이 개선하여 돌아왔을 때, 꽃과 박수갈채가 있는 동시에 온갖 고초와 위험도 뒤따랐던 것처럼 말이다.
현음 공주도 예외일 수 없었다. 심지어 현음 공주가 마주해야 할 고초와 위험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현음 공주가 북요에서 한 일에 대해, 대신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육장봉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십이 녀석이 잘한 것이오. 가게 외에 집 한 채를 더 남겨 주오. 돈이 모자라면 내가 주겠소."
그의 어머니가 변경으로 돌아오면, 분명 낯설고 답답하며 얽매인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십이의 어머니와 달랐다.
십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준비해 드릴 수 있지만 그는 안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도외시했고 심지어 이 아들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극도로 자기중심적이고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누군가 그녀의 결정을 간섭하고, 그녀의 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요. 추수를 시켜서 몇 채 더 남기고 십이더러 고르게 할게요."
월령안은 웃으면서 대답하고는 이 화제를 멈추고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육장봉의 아내가 아니고, 현음 공주도 그녀의 시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녀는 현음 공주에 대한 존경심으로 육장봉에게 귀띔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말하는 건 선을 넘는 것이었다.
"장군!"
마침 육삼이 구경할 때 먹을 수 있도록 수박씨와 차를 가져왔다.
월령안은 벽 모퉁이에 붙어 서서 묵묵히 벌을 받는, 약하고 무기력한 육십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십이가 정말 비참하군요."
"앞으로 혼자 한몫을 담당해야 할 사람으로서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요."
육장봉은 월령안에게 물 한 잔을 부어 주었다.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 연마는 그냥 연마일 뿐이고, 비합리적인 요구는 그냥 비합리적인 요구일 뿐이오. 하지만 장병에게 있어서 연마와 비합리적인 요구는 모두 훈련이오."
그는 언젠가는 반드시 병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는 육씨 가문, 주나라 그리고 자신을 위해 후계자를 찾아야 했다. 십이는 성이 육씨이고 육씨 가문의 자식이었다. 그의 신분은 후계자로서 충분했다.
십이가 부족한 것은 장군이 되기 위한 소양이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십이에 대한 훈련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십이를 그렇게 훈련시키는 것은 분명 목적과 의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십이도 분명 알고 있을 거예요."
육장봉은 결코 허투루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육장봉이 십이를 이토록 중시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십이도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척척척…….
바로 그때, 거리에서 질서 정연하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월령안은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빠르게 자세를 가다듬고 곧게 앉았다.
"왔어요!"
육장봉은 그녀의 손을 다독이며 담담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있잖소.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없을 것이오. 아니, 하늘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오."
"자!"
벽 모퉁이에 딱 붙어 서 있던 육십이는 인기척을 듣고 신속하게 앞으로 나와 섰다. 망설임 없이 과감하고 단호했다.
월령안은 한 번 쳐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장봉의 말이 맞았다. 그가 있는 한, 하늘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육십이가 나서자마자 호표영의 사람들이 거리에 나타났다. 선두에 선 사람은 전에 호표영을 거느리고 대부 도박장을 포위 공격하던 포찰량 장군이었다.
월령안은 포찰량과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찌 보면 '오랜 친구 사이'이기도 했다.
월령안은 포찰량을 보자 입을 열어 한마디 귀띔했다.
"포찰량은 대부 도박장과 원수지간이에요. 아들이 도박에 미쳤는데 짜고 치는 도박판에 걸려 가업을 모두 잃게 되었어요. 그는 도박판을 짠 사람을 어찌할 수 없으니 그 원수를 대부 도박장에 돌렸어요. 그는 금나라 황제의 심복으로 오림보다 더 신임을 받아요. 대부 도박장의 배후 실력도 만만치 않지만 이 사람을 어찌 할 수 없어요."
육장봉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물었다.
"저자의 목숨을 요구하는 거요? 그렇소?"
"아니에요. 오늘의 일은 완만하게 해결할 수가 없을 거라고 당신에게 알려 주는 거예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자 웃어 보였다.
"말하다 보니까 그러네요. 완만하게 해결할 수 없다면 손발이 묶일 필요가 없겠군요. 그럼 저자의 목숨을 여기에다 남기세요."
"십이!"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들어 육십이를 불렀다.
"소인, 여기 있습니다!"
육십이가 다가왔다. 어두운 피부의 그 얼굴은 긴장 상태로 굳어 있었으며 평소의 '약삭빠름'과 '명랑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자를 죽여라!"
육장봉은 우두머리 포찰량을 가리키며 말했다.
"할 수 있겠느냐?"
천만 명 중에서 적군의 수급을 취해야 했다.
십이가 이 싸움에서 이기면 그의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육삼 그들 앞에서 충분한 위엄과 신임을 세우게 될 것이다.
군대에서 위엄과 신임은 나이와 상관없이 오로지 재능을 잣대로 삼았다.
"죽음을 각오하고 임무를 완성하겠습니다."
육십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전혀 겁내지 않고 시원하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육장봉은 눈을 지그시 감고 무표정하게 명령했다.
"시작하라."
"네!"
육십이는 대답과 동시에 허리춤에 감았던 연검(軟劍)을 뽑았다. 쏵 하는 소리와 함께 내력(內力)이 검에 주입되더니 낭창하던 장검은 순식간에 더할 나위 없이 예리해졌다.
호표영이 다가오기 전에 육십이는 손에 장검을 들고 마치 한 줄기 빛처럼 날듯이 달려가 포찰량을 겨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