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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35)화 (735/1,004)

735화 감히 당신을 막는 사람이 있군요

"삼황자 완안기(完顔琪)……."

월령안은 하찮다는 듯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자는 정말 황자인지 아니면 기루의 이름난 명기인지 구분이 안 가요. 그자는 외모가 출중하여 미색으로 권력과 세력이 있는 여인 여럿을 맞아들였어요. 그리고 어떻게 구슬려 모두 그에게 일편단심이에요.

완안기의 여인들은 모두 배후에 적지 않은 세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들 배후 처가의 지지가 있기에 완안기는 우리를 눈에 차 하지 않죠. 금상첨화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려울 때 손을 내미는 게 어려울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금나라의 황자들은 참…… 답이 없군."

이게 모두 다 무슨 인간들인가.

금나라 황제는 낳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 * *

육장봉은 사황자 완안영의 됨됨이를 알자 물론 그와 합작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직접 나서서 거절하지는 않았다.

육장봉은 원래의 결정대로 사황자의 사람과 한 번 만나 보는 것에 동의했다.

좌우간 한번 만나 본다고 해도 그들의 계획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사황자의 사람을 만나 서로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완안유를 자극할 수 있었다. 완안유더러 더 큰 대가를 지불하고 그들을 잡게 할 수도 있었다.

월령안도 이에 대해 아무 이견이 없었다.

그녀는 사황자를 싫어하지만, 만나기만 해도 죽이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설령 그 정도로 싫어한다고 해도 사황자를 건드릴 힘이 없을 때는 여전히 미소를 보여야만 했다.

육장봉이 사황자의 사람을 한번 만나겠다고 승낙했다. 하지만 사황자의 사람이 미처 오기도 전에 재상 오림 댁에서 명첩과 함께 마부를 보내왔다.

오림의 부인은 월령안을 댁으로 초청했다. 그녀는 월령안이 가지 않을까 걱정되어 명첩에 특별히 초청하는 이유를 밝혔다.

남편이 전에 작은 술집에서 월령안와 함께 술을 맘껏 마시지 못한 게 유감스러워 집에 돌아와서도 줄곧 말한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초청해 그때 그 한잔 술을 보충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상처를 입어 월령안과 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남편을 대신하여 그 술을 보충하려 하니 월령안더러 꼭 체면을 봐 달라고 했다.

오림의 부인은 월령안의 거절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부까지 보내왔으니 그녀가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었다.

월령안은 명첩을 읽고 나서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이제 와서 따지려는 모양이군요."

그녀는 오림 이 늙은 여우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령 수횡천이 일을 성사시킨 뒤 곧바로 금나라를 떠나 그녀와 만나지 않아도 소용없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증거가 필요 없었다. 오림이 그녀라고 확신하면 설령 그녀가 아니더라도 그녀여야만 했다.

"가기 싫으면 가지 마시오."

육장봉은 명첩을 건네받아 한번 훑어보고 금세 얼굴을 굳혔다.

"당신이 가겠다면 나도 같이 갑시다!"

명첩은 오림 부인의 명의로 보내왔다. 하지만 위에 쓴 글을 보면 오림의 뜻임을 알 수 있었다.

역시 금나라 황제의 뒷받침이 있는 사람은 달랐다. 오림의 태도는 보통 강경한 것이 아니었다.

"필요 없어요. 금나라에서 오림은 아직 저에게 직접 손대지 못해요."

월령안은 일어서서 옷자락을 정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녀에게 명첩까지 보내왔으니 분명 다녀와야 했다. 하지만 정말 육장봉이 같이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무슨 일에 봉착하면 어른이 나서야 하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곽하 같은 멍청이가 또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소?"

육장봉도 덩달아 일어나며 그녀를 혼자 보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음……!"

월령안은 뭐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오림은 승상이에요. 그리 어리석지는 않겠죠?"

"같이 갑시다. 큰일도 아니잖소."

이런 일은 만일의 경우가 가장 무서웠다.

그는 모험할 수 있지만, 월령안은 안 되었다.

월령안은 한마디 구시렁거렸다.

"당신이 직접 찾아가면 오림의 체면을 너무 살려 주는 거 아닌가요."

흘석열은 연이어 닷새 동안 별원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서 육장봉의 옷자락도 구경하지 못했다.

육장봉은 고개를 저으며 비밀스럽게 말했다.

"오림과 무슨 상관이오? 이건 당신의 체면이오!"

그는 금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똑똑히 알려 줄 것이다. 그를 만나려면 먼저 월령안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말이다.

월령안은 잠시 멍하게 있다가 곧 즐거워했다. 짐짓 부잣집 도련님처럼 허공에 대고 육장봉의 턱을 받쳐 드는 동작을 했다.

"좋아요. 내가 자비롭게 당신의 체면을 봐주죠. 저와 함께 다녀오는 것을 허락할게요."

"소생 아가씨의 깊은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육장봉은 장단을 맞춰 앞으로 다가갔다. 냉담한 얼굴에는 가벼운 웃음기를 띠고 그녀에게 서생의 읍례를 했다.

월령안은 소리 내어 웃었다.

"착하군. 계속 이대로 하면 돼요. 나중에도 말 잘 듣고 사리 분별을 잘하세요. 나를 화나게 하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깊은 사랑이 무정이 될지도 모르니까. 알겠어요?"

"무정이라고?"

따스하게 미소 짓고 있던 육장봉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는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으나 그의 표정이 굳자 주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돌변했다.

월령안은 영문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곧장 임기응변하여 그에게 비위를 맞추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농담이에요. 어찌 진담으로 여기세요."

"농담인 줄 알고 있소. 하지만…… 여기가 아프오."

육장봉은 월령안의 손을 잡아 자기의 가슴에 얹었다.

"이놈은 남에게는 냉담하지만 당신 앞에서는 약하기 그지없소.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한다오. 알겠소?"

월령안만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도 불안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짐들을 지고 있었다. 소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월령안을 위해서 살 수만은 없었다.

그는 월령안이 냉정을 되찾은 뒤, 자신을 좋아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녀가 헌신한 데 비해 얻는 것도 훨씬 못하다는 것을 알까 두려웠다.

또한 그 때문에 그녀가 지쳐서 손을 놓을까 두려웠다.

필경 그를 좋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령안에게 있어서는 더구나 쉽지 않았다.

월령안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육장봉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그런 말 하지 않을게요."

"정말 고맙소."

육장봉은 월령안의 머리를 가볍게 다독였다. 마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달래는 듯했다.

육삼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안고 있던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할 말이 없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지금 몰래 빠져나가면 괜찮을까?'

육삼은 어떻게 하면 장군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몰래 화청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궁리했다.

이때 육장봉이 월령안을 풀어 주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육삼, 마차를 대기시켜라."

"네!"

육삼은 높은 목소리로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즉각 반응은 육 대장군의 칭찬을 얻지 못했다.

육 대장군은 싫은 기색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다음에는 눈을 감고 있어. 알았냐?"

"알겠습니다!"

육삼은 억울한 대로 눈물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묵묵히 물러서면서 마음속으로 빨리 도망친 육이와 간사한 육사, 육오를 원망했다.

십이에 대해서는, 허허, 그는 자신보다 더 비참해서 미워할 수가 없었다.

십이는 어제 슬금슬금 대장군의 눈을 피해 몰래 월 낭자를 찾아갔다. 그녀에게 관성 가게에 대해 묻다가 결국 대장군에게 현장에서 덜미를 잡혔다.

대장군은 월 낭자의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육이를 찾아 그에게 십이의 최근 훈련량이 너무 적어 한가하니 십이의 훈련량을 늘리라고 말했다.

지금 십이는 아직 별원을 에돌아 뛰고 있었다.

십이의 비참한 모습을 떠올리자, 육삼은 순식간에 기쁨에 겨워 경쾌한 발걸음으로 마차를 준비하러 갔다.

육삼은 오림 댁에서 보낸 마차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장군과 마님이 함께 길을 나서는데 어찌 남의 집 마차를 타겠는가. 장군은 까짓 마차조차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월령안과 육장봉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마침 육삼도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다만 약간의 번거로움을 만났다.

별원 밖에는 아직 금나라의 병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별원에서 누구도 출입할 수 없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육삼이 마차를 몰고 나오자 금나라의 병사들은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육삼뿐만 아니라 월령안과 육장봉도 막히고 말았다. 두 사람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월령안은 앞에 가로놓인 긴 창을 보고 잠시 멍해 있다가 웃고 말았다.

"참 생각지도 못했네요…… 정말 감히 당신을 막는 사람이 있군요."

금나라의 병사들은 정말 담이 컸다.

육장봉은 그들의 체면을 봐주어 요 며칠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그들은 정말로 육 대장군이 만만해진 줄 아는 모양이었다.

육 대장군은 군인이 되어서부터 줄곧 북요를 상대하며, 북요를 공격하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다른 나라의 사람과 일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다.

육 대장군의 드센 명성은 밖으로 전해져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얼마나 상대하기 어렵고 얼마나 잔인한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적어도 금나라의 병사들은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별원을 포위한 지도 며칠이 지났지만 육 대장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금나라의 병사들은 우쭐거리며 명성이 드높은 육 대장군도 그저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북요가 육 대장군에게 패배당한 것은 육 대장군이 강해서가 아니라 북요가 너무나 약해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보라. 그토록 잔인하기로 명성을 날린 육 대장군도 금나라에 와서는 벌레처럼 꼼짝 못 하고 그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가.

육장봉과 월령안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본 금나라 병사들은 시선조차 똑바로 주지 않았다. 긴 창을 뻗어 두 사람의 앞을 막으며 거만하고 방자한 태도로 말했다.

"뭐 하는 것이냐? 누가 너희들을 나가라고 했어? 당장 들어가거라. 못 들었느냐?"

그들은 그나마 몸에 군인 복장을 걸치고 있지 않았다면 월령안은 그들을 어느 패거리의 불량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월령안은 주나라에서 이처럼 껄렁껄렁하고 품위가 없는 병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웃겨서 참지 못하고 농을 던졌다.

"생각 밖이네요. 정말 감히 당신을 막는 사람이 있군요."

그런데 다음 순간, 월령안은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그들 가운데 우두머리가 눈알을 굴리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만지려 들었다.

"하, 이년 참 예쁘네. 이 가슴, 이 몸매…… 흐흐, 아주 농익었군그래. 잠자리에서도 아주 죽이겠는데? 오늘……."

'이 자식이 미쳤나?'

월령안은 깜짝 놀라 멍해졌다. 그녀는 전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감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육장봉의 코앞에서 그녀를 농락하려고 하다니. 그녀는 너무 놀라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행히도 육장봉은 반응이 빨라 그 병사가 그녀를 건드리기 전에 발로 냅다 차서 날려 버렸다.

"!"

여태껏 기분을 겉에 드러낸 적이 없던 육 대장군은 이 순간 폭발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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