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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34)화 (734/1,004)

734화 하지만 난 급하단 말이오

육장봉은 고개를 숙여 턱을 월령안의 정수리에 고인 채 그녀를 품 안에 그러안았다.

"령안, 폐하는 나에게 폐하일 뿐만 아니라 사촌 형이기도 하오.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오. 나한테 실망하지 말고 중도에서 손을 놓지 말아 주오. 안 되겠소?"

월령안은 온몸이 육장봉에게 감싸여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진실성이 떨어졌으나 그녀는 아련하게 그의 슬픔과 무기력함을 읽을 수 있었다.

월령안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육장봉을 밀쳐냈다.

별로 힘을 쓰지 않았으나 육장봉은 그녀를 풀어 주었다.

그러나 그저 풀어 주기만 했을 뿐,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그녀의 어떤 사소한 표정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월령안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그녀는 그의 가련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저는 급하지 않아요. 당신도 천천히 하세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어요."

그녀는 정말 조급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육장봉보다 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황제는 결코 쉽게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

불가능함을 뻔히 아는 이상, 그녀는 당연히 육장봉을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급하단 말이오!"

육장봉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월령안이 조금도 불쾌해하지 않자 도리어 마음속으로는 살짝 상실감을 느꼈다.

사리 분별이 너무 밝고, 이지적인 부인은 정말로…… 사랑과 미움이 뒤엉켜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이 일은 조급해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당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이고 계속 노력해 봐야죠. 살면서 이겨 내지 못할 고비는 거의 없어요. 정말 이겨 내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아요. 그럼 우리는 평생 이 고비와 싸우죠 뭐."

그녀는 육장봉이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육장봉의 말처럼 두 사람의 혼사는 한 번에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입 밖에 꺼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는 육장봉이 포기했다고 여기고 두 사람의 일을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다.

황제의 승낙을 받기 위해서, 육장봉은 황제에게 수시로 두 사람의 혼사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황제에게 그의 결심을 보여 황제가 두 사람의 혼사를 중시해 조금씩 허락하게 해야 했다.

그리고 적합한 시기도 찾아야 했다.

예를 들면 이번이 딱 적격이었다. 육장봉이 금나라에서 공을 세우면 황제에게 한 번쯤 말할 수 있었다.

이다음 서역에서 돌아와 조정을 위해 공을 세운다면 계속하여 한 번 더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황제의 뇌리에 박힐 것이다. 동시에 육장봉의 공로를 허물어뜨릴 방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육장봉이 공을 세울 때마다 황제는 상을 내려야 한다. 결국 언젠가는 내릴 상도, 봉할 것도 없으면 안 되니까.

육장봉이 말끝마다 황제를 '사촌 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의 말속에서 황제에 대한 경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 육장봉은 여전히 예전의 육장봉으로, 황제의 좋은 점과 그가 그를 위해 해 준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황제는 이미 예전의 황제가 아니었다. 이제 더는 그를 위해 조정의 문무백관과 맞서던 황제가 아니었다.

육장봉은 젊은 나이에 권력을 장악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황제마저도 어떤 경우에는 육장봉과 타협해야 했다.

권신으로서 육장봉은 황제와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지엽적인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황제가 이 약점으로 수시로 그를 억눌러 제왕으로서의 권력을 과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정의 대신들도 안심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육장봉이 에둘러 말했지만 월령안은 그 속뜻을 알아챘다.

육장봉은 그녀를 약점으로 삼음으로써 그에 대한 황제의 경계를 늦추고 대신들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려는 것이었다.

주나라는 문관을 중시하고 무장을 경시했다. 무장은 전쟁을 할 때만 병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병권을 내놓아야 했다.

병권을 잡고 있는 육장봉은 조정에서 살아 있는 표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의 어떤 사소한 행동도 누군가에 의해 확대 해석될 수 있었다.

설령 황제가 아무리 그를 신임해도 대신들의 잇단 '참언'에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육장봉이 병권을 쥐고도 황제의 신임을 잃지 않으려면 반드시 어느 정도 타협해야 했다. 황제와 대신들이 그를 공격할 수 있는 결점을 드러내 보여야 했다.

매번 공을 세울 때마다 사혼해 달라고 요구하면, 황제에게 육장봉의 결심을 보여 주는 한편 황제가 그에게 화를 낼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대신들에게 황제가 비록 육장봉을 중용하지만 그를 편파적으로 신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한편 육장봉도 아직 손으로 하늘을 가릴 정도에 이르지 않았음을 보여 줄 수도 있었다.

월령안은 이런 도리를 다 알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의 개인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조정의 싸움에 연루되고 조정에 내놓아 사람들의 이야깃거리로 되어야 한다니. 월령안은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마치 가슴속에서 화가 꿈틀대지만 터트리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이성은 그녀에게 육장봉이 이렇게 하는 것은 옳은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 모두에게 유리한 일이기도 했다.

월령안은 자신이 참지 못하고 육장봉에게 화를 낼까 두려워 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부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아까 육삼은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어렴풋하게 흘석열과 사황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것 같은데?"

육장봉은 마음속으로 월령안에게 미안하다고 사죄했다. 그러고는 그녀의 기분을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대답했다.

"흘석열은 사황자를 좋게 보고 있소. 내가 사황자의 사람을 만나 주기를 바란다고 하오."

"사황자 완안영(完顔瑛)?"

월령안은 미간을 잔뜩 찡그리면서 냉담하게 말했다.

"그자는 안 돼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거요?"

본래는 화제를 바꾸려고 한 것뿐이지만, 순간 육장봉은 진지해졌다.

월령안은 사황자를 매우 싫어하는 것 같았다.

"문제가 엄청나죠."

월령안은 혐오감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그자를 지지해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결코 그자와 같은 패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요. 지금 말해 둘게요. 흘석열이 무슨 이익을 약속해도 저는 사황자를 지지하지 않을 거예요. 지어는 온 힘을 다해 그자를 밟아 죽일 거예요."

"그자가 뭘 한 것이오?"

월령안은 애초 완안경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해도 이처럼 혐오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 댁의 뒤뜰 정원에는 적어도 백 구 이상의 유골이 묻혀 있어요. 그것도 모두 여섯 살 내지 열 살 정도의 아이들 유골이에요."

월령안은 사황자 이야기를 꺼내자 분을 삭이지 못하고 다시 한번 태도를 분명히 했다.

"제가 비록 상인으로서 이익을 중히 여긴다고 하지만 절대로 인간쓰레기와는 협력할 수 없어요. 그자와 협업하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금나라의 황위가 정해지면 그자를 철저하게 끌어내리고 싶어요."

"완안영은 정말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군. 한계도, 도덕성도 없는 자는 좋은 상대가 아니지."

그는 전쟁터를 누비다 보니 부지기수의 죽음을 보았다. 하지만 그와 그 수하의 병사들은 아이들에게 손대는 법은 없었다.

설령 월령안이 말하지 않더라도 육장봉은 알 수가 있었다. 사황자의 손에 죽은 아이들은 횡사했을 뿐만 아니라 죽기 전에 비인간적 고통을 당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흘석열은 완안영의 일을 모른단 말이오?"

흘석열이 이러한 인간을 그에게 추천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완안영은 일 처리가 깔끔하지 못했어요. 저조차도 알아낼 수 있는데 흘석열이 모를 수 있을까요?"

월령안은 조소 어린 냉소를 지었다.

"금나라는 우리 주나라와 풍속이 달라요. 주나라 사람들은 예의, 의리, 염치를 따지고 일 처리에도 도가 있어야 하죠. 그래야 바르고 정직한 군자의 풍모를 숭상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금나라에서는 강자가 존중을 받아요. 일 처리에 있어서도 원시적인 야만성과 약육강식을 따르죠.

윗사람들에게 있어서 백성 몇이 죽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에요. 죽은 게 그들의 자식이 아니고 일이 밖으로 새지 않았다면 완안영 저택에 백골이 얼마나 묻혀 있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심지어 일부 사람들의 숭배와 동경을 받을 수도 있어요."

"십 리마다 풍격이 다르고, 백 리마다 풍속이 다르다더니. 여기가 금나라라는 것을 깜빡했군. 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금나라 사람들에게는 또 달리 보일 수도 있겠어."

육장봉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완안영과 같은 사람은 금나라에서나 따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주나라에 간다면 진작 문관들에게 찢어발겨졌을 것이다.

월령안은 크게 한숨을 쉬고는 화가 나서 말했다.

"정말이지 완안경과 죽을 원한이 없고, 그의 야심이 그토록 크지만 않았다면 그야말로 가장 최적의 협력 상대예요. 적어도 금나라 황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정상인인 것 같아요. 다른 세 사람은……."

"이황자와 삼황자도 무슨 큰 문제가 있소?"

육장봉은 금나라 세 황자의 성품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다만 월령안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숨기고 혼자서 울분을 삭이지 말고 화풀이해 얼마간이라도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황자는 난폭하고 호전적이며 살인을 일삼아요. 그는 사람을 사냥감으로 삼아 살해하는 즐거움을 누리죠. 산 하나를 사냥터로 만들어 수시로 친구를 불러 사냥하러 가요. 그 안의 사냥감은 모두 산 사람이에요."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스스로 터득해 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그 일이 없어도 이황자와 협력할 생각은 없어요. 내 수하 호위 아로한의 부락이 이황자에게 멸족되었어요. 저는 저의 사람을 아끼는 사람이거든요. 이황자는 원래부터가 좋은 인간이 아니에요. 설령 그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아로한이 내 사람인 만큼 절대 그의 원수와 합작하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사실 확실히 불쾌했다. 그렇다고 그녀는 육장봉에게 비아냥거리고 화풀이를 할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남에게 화풀이하는 것으로 마음속 울화를 삭히는 수밖에 없었다.

"사황자 이야기는 방금 전에 했었죠…… 그자가 한계도, 도덕성도 없이 아이에게 손대는 것을 보고 절대 협력할 수 없어요. 수 오라버니더러 암암리에 죽이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제가 많이 참은 거예요."

월령안은 이를 갈았다. 사황자 이야기를 꺼내면 눈 속의 분노가 더욱 심해졌다.

육장봉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불똥이 튈까 두려웠다.

사실 육장봉 그야말로 월령안을 불쾌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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