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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31)화 (731/1,004)

731화 나에게는 아주 간단하오

월령안은 차를 다시 끓였다. 그리고 공도배(公道杯 - 차를 담아 식히는 다구)에서 차를 한 잔 부어 육장봉에게 건넸다.

"흘석열의 배후에는 각 부락 수령들이 있어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금나라의 황제는 각 부락의 수령들에 대해, 억압을 주로 하고 끌어들이는 것을 부차적으로 하고 있어요. 요 몇 년 사이, 초원의 각 부락은 모두 생활이 어려워졌어요. 싸울 때는 앞장서야 하지만, 이익을 나눌 때는 항상 뒤로 밀리죠.

그 몇몇 황자들은 금나라 황제의 영향을 받아 각 부락을 대하는 태도가 그와 같아요.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칠 수는 없죠. 흘석열을 비롯한 각 부락의 수령들은 자신의 살길을 찾으려고 하는 거예요. 완안유의 신분이 어정쩡하다 보니 폐단이 있지만 유리한 점도 있죠. 그들에게 있어서는 괜찮은 선택일 수도 있어요."

"난 당신이 오림 쪽으로 기울 거라고 생각했소."

육장봉은 찻잔을 건네받아 단번에 들이켰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오림은 확실히 협력할 만한 상대예요. 하지만 그는 담이 너무 작고 야망이 크지 않아요. 그를 설복해 합작하려면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해요. 이건 상인에게 있어 수지가 안 맞죠. 게다가, 완안유 같은 사람은 자기를 억누르는 오림을 오래 살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차를 다 끓이고 나서 손을 닦았다. 눈매에는 어두운 기운이 흘렀다.

"완안유는 자비심이 강한 동시에 자부심도 강해요. 그는 황위에 오르기 위해 인내하고 숨기며, 심지어 거만함을 버리고 바둑돌이 되어 오림과 그 배후 금나라 황제의 꼭두각시로 움직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사람은 득세하면 안 돼요. 일단 득세하면 전에 자신을 짓밟았거나 자신의 초라했던 일면을 봤던 사람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물론 이 사람들 중에는 월령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 좋은 협력 상대를 찾을 수 있다면, 그녀는 절대 완안유처럼 불안정한 사람과 합작하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이 차갑게 웃었다.

"완안유와 같은 사람을 대하려면 말이오, 영원히 그자보다 한 수 위에 서서, 꼭꼭 눌러서 감히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면 되오."

"그렇게 쉽지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충분한 자금이 있으면 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손에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려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아주 간단하오."

돈으로는 직접 권력에 대항할 수 없다. 하지만 무력은 가능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그자를 꼼짝하지 못하게 할 거요."

"안 돼요. 먼저 그자가 위세를 세워 조정에 발을 붙일 수 있게 해야죠. 그래야 경쟁할 기회가 있어요."

월령안은 가볍게 웃었다. 눈매에 서렸던 가벼운 걱정도 함께 사라졌다.

육장봉은 잠깐 멈칫하더니 가볍게 대답했다.

"좋소!"

* * *

흘석열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별원을 포위했다. 그러고는 주나라의 전신(戰神) 육장봉에게 성문 앞에서 완안유를 욕보인 육이를 내놓으라고 했다.

주나라는 당연히 거절했다. 흘석열은 곧 병사들에게 별원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별원 안, 주나라 사신들은 반항하지 않았다. 또한 사람을 보내 금나라와 교섭하지도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금나라 전체에서 주나라 사신이 조만간 타협하고 양보할 거라고 여길 때, 국경 지역에서 나쁜 소식이 전해져 왔다.

주나라에서 갑자기 금나라 국경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주나라는 무슨 뜻이지?"

금나라의 관리들은 이 소식을 듣고 당황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주나라는 왜 싸우겠다는 건가? 사신 하나 때문에 우리와 싸우겠다는 건가?"

"그 사신은 평범한 사신이 아니지. 주나라의 전신 육장봉이잖아."

"그게 뭐 어때서? 사소한 일 때문에 주나라가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다니. 주나라의 사람들은 미친 거 아닌가? 우리와 전쟁을 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나 있나 몰라?"

"무엇을 의미하는데? 주나라가 바보인 줄 아나 봐? 지금 전쟁을 하면 우리에게 극히 불리하네.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절대 주나라와 싸워서는 안 되네."

그들이 특별히 주나라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형편으로 보아 싸움이 시작되면 그들에게 대단히 불리했다.

나라에는 군주가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금나라는 보름이 넘도록 군주가 없었다. 군주가 없다는 것은 곧 각 부락을 동원해 출병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금나라와 주나라의 경우는 달랐다. 주나라의 병마는 모두 조정에 의해 관리되었으며 조정에서 먹여 살리고 조정의 명령에만 복종했다.

금나라의 병마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금나라 황제가 직접 관리하는 조정의 병마이고, 다른 하나는 금나라 병력의 가장 큰 원천이 되는 각 부락의 사병이었다.

각 부락의 사병은 부락의 명령에만 복종했다. 그들은 금나라가 전쟁을 치를 때만 조서를 받고 금나라를 위해 출전했다.

매번 출전할 때마다, 금나라 황제는 각 부락을 출병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이익을 주었다. 만약 주나라가 지금 금나라와 전쟁을 벌인다면, 금나라에는 군주가 없어 여러 부락들을 출병시키기가 어려웠다.

원로대신들은 화가 나서 한참 동안 성토했지만 아무 제대로 된 의견을 내는 이가 없었다.

바로 이때, 오림을 지지하는 관리들이 갑자기 흘석열을 지목했다.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시 부승상께서 백관을 데리고 성문에 나가 주나라 사신을 맞이했습니다. 뒤이어 역시 부승상께서 병사를 이끌고 주나라의 별원을 포위하고 사람을 내놓으라고 강요했습니다. 맞으시죠?"

이 한마디가 나오자 이에 호응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오림 파벌의 관리들뿐만 아니라 중립을 지키는 관리들도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맞습니다. 주나라와의 교섭은 처음부터 끝까지 흘석열 대인이 담당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역시 대인께서 주나라 사람들과 교섭하게 해야 합니다."

우려를 금치 못하던 뭇 대신들은 흘석열에게 이 일을 떠밀고서 금세 배짱이 두둑해졌다.

"흘석열 대인, 주나라가 아무 이유 없이 변경 지대에 병력을 증가시켰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주나라는 반드시 우리에게 합리적인 해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싸움으로 말하자면, 우리 금나라는 그 누구도 무서워한 적이 없습니다. 주나라에서 합리적인 해명을 하지 못하면 그냥 싸웁시다."

말로는 못 할 말이 없었다.

좌우지간 일이 생겨도 그들이 책임지지 않으니까.

흑석열을 옹호하는 무리도 있었다. 이들은 사람들이 흘석열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자 소매를 걷고 나섰다.

"흘석열 대인이 사신을 맞이한 것은 공적인 사무입니다. 그 뒤에 병사를 데리고 별원을 포위한 것도 태후의 명을 받든 것입니다."

"주나라의 사신이 십육 전하를 욕보여서 흘석열 대인이 십육 전하 대신 화풀이를 한 것입니다."

"십육 전하, 주나라 사신과 교섭하는 일은 지금까지 오림 대인이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오림 대인께서 주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일을 오림 대인에게 물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예, 예, 맞습니다. 오림 대인에게 물어봅시다."

"오림 대인께서는 많이 다쳐 조용히 쉬어야 합니다. 이런 작은 일로 오림 대인에게 폐를 끼칠 필요는 없습니다. 주나라 사신이 금나라 수도에 도착해서부터 줄곧 흘석열 대인이 교섭해 왔잖습니까. 이번에 온 주나라 사신에 대해서는 흘석열 대인이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오림 대인은 승상입니다. 이런 큰일은 당연히 오림 대인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오림 파벌은 흘석열이 주나라와 교섭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흘석열 파벌은 오림에게 일을 떠밀었다.

아무튼 양측은 모두 섭정왕 완안유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에게 결정을 맡기려는 뜻이 전혀 없었다.

완안유도 모르는 척하며 미소를 지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옷소매 속에 숨긴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아주 불쾌한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한참 동안 말씨름을 했지만 여전히 아무 결론도 짓지 못했다. 결국 쌍방 모두 오림을 찾아가 그의 지시를 받는 데 동의했다.

완안유는 의견이 없었다. 물론 그의 의견을 들을 사람도 없었다. 뭇 대신들은 대전에서 오림의 저택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림은 조용히 휴식을 취해야 했다.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택으로 몰려드니 쉴 수가 없었다. 그는 허약한 몸으로 억지로 버티며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일어난 일의 경과를 파악한 뒤, 오림은 곧 결정을 내렸다.

"흘석열, 당신이 주나라 사신들과 교섭하게나. 꼭 기억하게. 태도는 꼭 강경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물러서서도 안 되네. 자네가 전에 말했던 주나라 사신이 사람을 내놓지 않으면 철수하지 않는다는 이 점에서 흔들려서는 안 되네. 주나라가 우리를 만만하게 보게 해서는 안 되네.

세 황자에게 전갈을 보내게. 주나라의 태도를 세 황자에게 말해 주고 그들더러 전반적인 정세를 중시해야지 주나라에서 웃음거리로 삼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게.

국경으로 병력을 증가한 데 대해 주나라에서는 아마 대충 이유를 찾아 둘러댈 거네. 기억하게! 주나라에서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말게. 지금 바로 각 부락에 징병해 국경으로 보내라고 명령하게.

주나라는 자칭 기백과 위엄이 넘치는 대국으로 인의 도덕을 입에 달고 살며 체면을 중시하네. 주나라와 교섭할 때, 우리는 주나라의 체면을 세워 줘 표면적으로는 양보하는 척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이익은 조금도 양보해서는 안 되네. 특히 이번 출병에 따른 비용을 어떻게 해서라도 주나라에서 지출하도록 해야 하네. 흘석열, 이 일은 반드시 당신이 해야 하네. 알겠는가?"

오림은 그야말로 금나라 사람들 중에서 주나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냥 몇 마디 말로 주나라의 대외적인 태도와 형상을 선명하게 그려 냈다. 또한 재빨리 대응책을 내놓았다.

부승상으로서 흘석열은 오림의 명령을 들어야만 하므로 명령을 거역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될수록 각 부락들을 출병하게 설득하겠지만 꼭 성공한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림은 흘석열이 지금 출병 조건을 협상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흘석열은 초원의 각 부락과 훌륭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금나라 황제가 없는 상황에서, 각 부락을 출병시킬 수 있는 사람은 흘석열뿐이었다.

오림은 흘석열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말했다.

"내 몸이 불편해 조정의 공무에도 마음뿐이지 힘에 부치네. 해주 공주 사건은 흘석열 대인께서 지켜봐 주시게나."

해주 공주 사건은 종실에서 맡아 전혀 심사할 것이 없었다. 이와 연관 있고 또한 각 부락의 이해관계와도 연관되는 일은 오직 대부 도박장 일이었다.

오림이 이렇게 말한 것은 더는 대부 도박장과 따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대부 도박장은 금나라 수도에서 명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흘석열은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어 당장에 대답했다.

금나라의 두 승상은 곧 일을 결정지었다. 섭정왕으로서 완안유는 시종일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이 결정된 뒤, 그의 의견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흘석열은 떠나기 전에 완안유를 흘끗 바라보더니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 오림 저택에서 떠나자마자 월령안은 소식을 접했다.

대부 도박장이 무사할 뿐만 아니라 호표영에서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 저도 모르게 감개무량해졌다. 역시 권세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무력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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