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이화소
대전은 잠깐 죽은 듯이 적막에 싸였다.
몇몇 관리들이 일제히 완안유를 바라보았다. 새로 취임한 섭정왕이 이 기회를 빌려 위엄을 세울지 궁금한 것이었다.
하지만 완안유는 표정도 변하지 않고 너그럽게 흘석열을 위해 변명해 주었다.
"흘석열 대인이 요즘 주나라 사신을 접대하느라 피로한 모양이군."
조정의 대신은 일시에 이 사람은 강자가 아니며, 권력을 빼앗아 위엄을 세울 생각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완안유는 기회를 틈타 위엄을 세우지 않았다. 대신 저택에 가서 중병을 앓고 있는 오림 승상을 병문안할 생각인데 대신들에게 동행할 수 있겠는지 물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군말 없이 따라 나섰다.
일행은 기세 드높게 오림 승상의 저택으로 갔다.
오림은 상처가 가볍지 않았으나 억지로 버텨 가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완안유는 오림 앞에서 조금도 섭정왕으로서의 위세를 떨치지 않았다. 마치 조카처럼 직접 오림이 약을 마시는 것을 도왔다. 또한 대신들 앞에서 처음으로 정사를 맡아 모르는 곳이 많으니 오림 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자신이 매일 찾아오는 것을 허락해 주기를 부탁했다.
오림은 자기의 신체를 생각해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조정에 몸을 담은 사람으로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은 과로하고 싶지 않지만 배후의 주인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정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완안유를 순수하고 거짓이 없다고 칭찬했다.
뭇 대신들도 따라서 칭찬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들 완안유를 멍청하다고 욕했다. 손에 들어온 권력을 이렇게 마다하다가는 언젠가 그가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직 오림만이 뭇사람들이 돌아간 뒤, 몰래 월령안의 안목이 좋다고 탄식했다.
'십육 전하는 야심이 있으면서도 인내심이 있다. 게다가 귀인이 도와주고 있지. 이런 사람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반드시 큰일을 할 것이다.'
완안유는 순조롭게 섭정했다. 오림의 지지 하에 조정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 * *
별원 정원, 육삼은 한창 육장봉에게 금나라 조정의 동향을 보고하고 있었다. 월령안이 걸어오자 육장봉이 눈치 줄 필요도 없이, 그는 재빠르게 보고를 마치고는 영리하게 물러갔다.
"제가 혹시 폐를 끼친 게 아닌가요?"
월령안은 손에 간식 한 접시를 들고 육장봉의 맞은편에 앉았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오."
곧이어 육장봉은 육삼이 보고한 일을 월령안에게 들려주었다.
"완안유는 나름 잔머리가 있군요."
월령안은 들고 온 간식을 집어 들고 육장봉에게 줄 듯이 그에게로 가까이 가져갔다.
그에 기분이 좋아진 육장봉은 얇은 입을 살짝 벌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월령안이 먹여 주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더니 약 올리듯 새침하게 간식을 제 입에 넣었다.
육장봉은 그런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원망을 쏟고 말았다.
"당신이 나를 위해 만든 줄 알았는데."
"내가 한 것인지 어떻게 알았어요?"
월령안은 간식을 삼키고 나서 놀란 듯이 물었다.
"이화소(梨花酥 - 배꽃 과자)."
월령안을 제외하고, 누구도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또 누구도 그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이는 주변의 시중드는 사람들이 그를 정성 들여 돌보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었다. 다만 세인들의 눈에 육장봉은 주나라의 전신(戰神), 기개가 굳은 대장군이었다. 신에게는 개인적인 욕망이 필요 없었다.
남들은 물론, 육일을 비롯한 친위대들도 그를 보통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당연히 보통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그의 기호에 주의를 돌릴 수 없었다.
월령안은 유일하게 그를 보통 사람으로 여겨 그의 기호에 따라 의식주를 준비한 사람이었다. 그가 '아무렇게나'라고 말하더라도 결코 아무렇게 넘어가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 자신도 아무렇게 지내도 된다고 여겼다.
그는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없고 음식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태어나서부터 그는 자신의 기호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의 기호에 따라 일상생활을 돌보지 않아도 잘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런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물건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주변의 사람들이 실력 향상에 시간과 정력을 쏟기를 바랐다.
그는 변경의 대장군부로 돌아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탁상과 의자 등등이 모두 본인이 좋아하는 모습이고, 음식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의 구미에 맞는 것을 보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실 그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외면하는 게 습관이 되었을 뿐이었다.
자신의 기호, 자신의 욕망을 외면했다.
월령안이 나타나 그를 보통 사람으로 여겨 그의 의식주를 챙겨 주고 나서야 그는 알게 되었다.
그는 신이 아니었다. 그 역시 피와 살로 만들어진 보통 사람으로서, 그도 좋아하는 것이 있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마음에 두고 생각해 주는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마치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다.
이화소 한 접시 때문에 그의 마음속은 뭉클해지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꽉 찼다.
물론 방금 전에 월령안이 이화소를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면 그 기쁨은 배가되었을 것이다.
육장봉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다시 한번 이화소를 집어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그더러 머리를 숙이고 입을 벌리라고 말했다.
월령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육장봉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월령안이 먹여 주기도 전에 먼저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손가락과 함께 이화소를 입에 물었다.
월령안은 순간적으로 손가락 끝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을 느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 열기가 확 몰려왔다. 육장봉은 그런 그녀를 보더니 혀끝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살짝 건드렸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힘껏 손을 빼내고는 화가 나서 말했다.
"그만 하세요!"
"아주…… 달군."
육장봉은 월령안이 다칠까 두려워 감히 힘을 주지도 못했다. 그녀가 살짝 힘을 주자 금방 놓아 주었다.
월령안의 손가락은 다시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불에 덴 듯이 화끈하고 저릿저릿한 그 느낌은 줄곧 손가락에 남아 한참이 지나도 가시지가 않았다.
"육 대장군, 자중하세요."
월령안은 괜히 손가락을 등 뒤로 가져가 문지르며 손끝의 불편한 그 느낌을 쫓으려고 했으나 점점 더 초조해지기만 했다.
육장봉은 이화소를 입에 물고 아까워 삼키기도 않았다. 그러고는 다정하게 말했다.
"당신도 얼마든지 나에게 똑같이 해도 괜찮소."
월령안은 말문이 막혔다.
'이화소를 먹을 수가 없잖아!'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이화소를 먹여 주다가 손가락을 물린 뒤에 더는 먹여 주려 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아무리 생떼를 써도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이 안 먹으면 제가 혼자 다 먹을 거예요."
육장봉을 단념시키기 위해 월령안은 이화소를 하나하나씩 입에 구겨 넣었다.
"분명 나를 위해 준비한 거면서……."
자기 몫은 확실히 챙기는 육 대장군은 월령안이 먹여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말로 이화소를 다 먹을 것처럼 굴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월령안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얼마 안 되어 접시에는 이화소가 하나만 남았다. 월령안은 양보하는 데 습관이 된 터라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차를 마시면서 느끼함을 해소하려는데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입을 벌리시오."
"어?"
월령안은 눈을 들어 눈앞에 다가온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잠깐 멍하게 있다가 입을 벌렸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오라버니, 언니들에게 양보하는 데 습관이 되었다. 월씨 가문이 몰락한 후에는 맛있는 것이 있으면 먼저 어머니에게 드렸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노인에게 먼저 드렸다.
그녀의 교양은 그녀로 하여금 접시에 남은 마지막 간식을 탐내지 못하게 했다. 설령 그것이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고 간절히 먹고 싶은 것이라 해도 절대 욕심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습관이 깨지자 그녀는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이화소를 문 것을 보고 이화소를 놓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눈빛이 살짝 어두워지더니 엄숙하게 말했다.
"기억하시오. 앞으로 오직 나만이 당신을 위해 남기고 양보할 수 있다는 걸. 당신은 나에게 남겨 주고 양보하면 안 되오."
월령안은 고개를 뒤로 젖혀 이화소를 두어 번 씹더니 삼켜 버렸다.
"당신만 저한테 양보할 수 있다고요?"
"당신을 아끼고 당신한테 양보하는 건 내가 할 일이오."
육장봉은 손가락을 가볍게 비벼 간식 부스러기를 털었다. 하지만 어찌해도 손가락의 열기를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의 입술에 스친 손가락은 화인이 찍힌 듯 뜨거웠다.
육장봉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갈 곳 없는 갈증이 몰려들어 시선을 비스듬히 다른 곳으로 옮겼다.
월령안은 입안의 이화소를 삼켰다. 그러자 육장봉은 또 앞의 찻잔을 들어 가볍게 불어 식히고는 그녀에게 먹여 주었다.
월령안은 그가 먹여 주는 대로 한 모금 마시고는 웃으며 말했다.
"저도 당신을 아끼고 당신에게 양보하고 싶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남자는 바깥에서, 여자는 안에서."
육장봉의 입매가 살짝 떨렸다. 그는 잔을 거두고 그녀가 마신 자리에 입술을 대고 가볍게 한 모금 홀짝이고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밖에서는 내가 당신에게 양보하고 당신을 아끼고, 안에서는 당신이 나한테 양보하고 나를 아끼고."
"그럼 밖은 무엇이고, 안은 또 무엇인가요?"
월령안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육장봉의 손가락을 걸어 당겼다.
육장봉은 자신의 손 위에 얹어진 그 가녀린 감촉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을 잡아 입에 넣고는 살짝 깨물었다.
"예를 들면……."
"대장군, 마님……! 어…… 저기,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육삼은 급하게 뛰어 들어오다가 놀라서 손으로 눈을 가리고는 연신 뒷걸음질을 쳤다.
"흠……!"
육장봉은 곧바로 진지함을 되찾고 자리에 도로 앉더니 냉담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월령안은 담담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식어 버린 차를 쏟아 버리고 다시 물을 끓여 차를 우렸다.
육삼은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내가 방금 잘못 본 건가?'
아니었다. 애당초 오지 말았어야 했다.
육이를 불쌍하게 여겨서 그를 대신해 오지 말았어야 했다.
'월 낭자와 대장군이 함께 정원에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뛰어오다니, 정말……. 자초한 일이야!'
"말해 봐!"
육장봉이 언짢아하며 탁자를 힘껏 두드리자 육삼은 놀라 흠칫 떨며 서둘러 말했다.
"대장군, 흘석열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별원을 에워쌌습니다. 둘째 형님께서 성문 앞에서 완안유를 모욕했다며 당장 둘째 형님을 내놓으라고 하네요."
육장봉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더러 그러면 주나라에 국서를 보내라고 해라. 그리고 나는 오직 주나라의 명령만 듣는다고 전해라. 흘석열은 아직 내게 명령할 배포가 없다. 그냥 내버려 둬."
육삼은 대답과 함께 물러갔다.
육장봉은 느긋하게 다구를 매만지며, 한가롭게 즐기는 월령안을 바라보며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흘석열은 완안유의 사람이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절대로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눈앞에서 담담하게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이 아름다운 여자가 바로 금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냥 협력 관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