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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28)화 (728/1,004)

728화 경거망동하지 마라

부승상 흘석열(紇石烈)은 줄곧 완안유의 뒤에 티를 내지 않고 숨어 있었다. 육장봉이 문책한 후에야 나서서 일을 무마하려 했다.

육장봉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육이가 앞으로 나서며 차갑게 비웃었다.

"흘석열 대인! 연세가 있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군요. 제가 그 사람을 끌어다가 다시 한번 대인께 말해 주라고 하겠습니다."

말하는 사이, 육이는 앞에 있던 사람들을 밀어내고 한쪽에 쓰러진 그 무장에게 걸어갔다.

"섯……."

성을 지키던 장병들은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그제야 앞으로 다가가 육이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자 육삼, 육사, 육오, 십이가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밀쳐냈다. 심지어 얻어맞기 딱 좋은 말투로 말했다.

"우리는 일을 만들지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금나라의 장병들은 육삼 등 몇의 뻔뻔스러운 언사를 듣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일을 만드는 게 아니면 어떤 게 일을 만드는 것인가.

육이는 온몸으로 살벌한 기운을 내뿜었다. 구경하던 백성들은 연신 뒷걸음질했다. 육이는 손쉽게 그 무장을 잡아끌고 흘석열과 완안유의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그들 앞에서 그 무장의 귀뺨을 여러 번 호되게 후려갈겼다.

"일어나!"

그 무장은 얻어맞아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다. 간신히 눈을 뜰 수는 있지만 사람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침 완안유의 앞에 서 있었다. 입을 벌리고 완안유에게 침을 뱉으며 한마디 했다.

"너……들…… 개잡종!"

완안유는 곧 안색이 바뀌었다.

그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때 육이가 갑자기 높게 외쳤다.

"역시 오해였군요. 원래 귀국의 관리께서는 귀국의 전하를 부르는 것이었어요!"

'감히 우리 마님을 괴롭혀. 오늘 내가 너 완안유의 체면을 짓뭉개지 못하면 성을 갈 거다.'

육이는 그 무장을 한쪽에 던져 버리고 완안유와 흘석열에게 공수하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주나라 사람들이 처음으로 금나라에 오다 보니 귀국의 예의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개잡종이 귀국에서는 귀국 전하를 부르는 호칭인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모르면 죄가 아니라고 하잖습니까. 개잡종, 흘석열 대인, 두 분께서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육이는 말하면서 완안유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대놓고 그를 겨냥했다.

"너……."

완안유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두 눈은 핏발이 가득 섰다.

흘석열도 화가 난 듯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였고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이 커졌다.

육이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오해가 풀렸습니다. 개잡종, 흘석열 대인. 아니, 표정이 왜 그리 안 좋으신가요. 기분이 좋지 않으세요?"

완안유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육이를 때리려 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흘석열이 한사코 잡아당겼다.

"전하, 고정하십시오! 제발 고정하십시오."

그들이 먼저 무례하게 굴어서 주나라 사람들에게 꼬리를 잡혔다.

그들은 이 시기에 주나라 사람들과 정면충돌을 해서는 안 되었다.

육장봉은 성문 앞에서 완안유와 오래 실랑이하지 않고 살짝 맛보기로만 본때를 보여 주었다.

그는 육이더러 국서를 건네라 하고는 거만한 표정으로 금나라 관리들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그는 금나라, 그것도 금나라의 수도에 한동안 머물 것이므로 금나라 사람들을 손봐 줄 시간이 충분했다.

육장봉은 시종일관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설령 입성하고 나서도 금나라의 관리들을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냉담하고도 오만했다. 온몸으로 당신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과 말할 자격이 없다는 듯한 거만함을 선보였다.

금나라의 관리들은 원래부터 성문 입구에서 육장봉의 방자한 거동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금나라의 정세가 불분명한지라 주나라와 정면충돌을 할 수가 없어 억지로 참았다.

육장봉은 입성한 뒤에도 조금도 겸손한 멋이 없이 안하무인으로 오만하게 나오자 금나라의 관리들도 동반하려 하지 않았다.

육장봉 일행을 별원에 데려다 놓고는 오느라 힘들었다는 이유로 더는 관계하지 않았다.

무슨 환영회고 승상과의 만남이고 모두 물 건너간 셈이었다.

자리를 뜨면서, 한 금나라 관리가 별원을 향해 침을 뱉으며 한마디 했다.

"퉤! 개잡종 자식! 감히 우리 금나라 땅에서 위세를 떨치다니. 내가 두고……."

탕!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완안유가 발길질해 날려 버렸다.

완안유는 사람을 차 던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두 눈이 새빨개서 떠나갔다.

관리들은 제자리에 멍해 서서 완안유와 바닥에 쓰러진 죄 없는 관리를 번갈아 보며 한동안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흘석열은 장탄식만 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완안유의 뒤를 따랐다.

* * *

육장봉과 월령안이 별원에 안착하자마자 육삼이 입구에서 발생한 일을 두 사람에게 보고했다.

육장봉은 눈을 들어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선택한 사람이 별로인 것 같소?"

완안유는 아량이 없고 자존심만 강한 데다가 무능하기까지 했다.

월령안은 찻주전자를 들어 육장봉에게 한 잔 따라 주고는 웃으며 말했다.

"월씨 가문을 위해 계승자를 고르는 것도 아닌걸요. 금나라의 황제일 뿐이에요. 그 사람이 어떻길 바라겠어요? 그리고 그가 정말로 황위에 오른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요."

육장봉은 잠깐 멍해 있다가 곧이어 가볍게 웃었다.

"당신 말이 맞소. 그가 아주 괜찮소."

월령안은 찻잔을 들고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당신은 오늘 성문 입구에서 금나라 사람들의 체면을 구겨 놓았어요. 금나라의 관리들은 절대 당신을 상대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 당신이 성사시키려던 일도 진행할 수가 없을 거예요. 내일 제가 태후 마마를 뵈러 가는데, 뭐 제가 전해 드릴 말씀이라도 있나요?"

육장봉은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했다.

"그분더러 아들을 좀 똑똑하게 가르치라고 하시오."

월령안은 차 마시던 것을 잠깐 멈추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말았다.

* * *

이튿날 월령안이 입을 열기도 전에 태후가 성지를 내려 주나라의 사신인 월령안을 불러들였다.

월령안이 황궁에 들어갈 때, 적지 않은 관리들이 보게 되었다.

그녀가 보란 듯이 궁에 들어가는 것을 보자, 관리들은 주나라가 금나라를 너무 업신여긴다고 여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도박장에서 하숙을 하던 여 상인이 오늘은 주나라의 사신이 되었다.

주나라는 조금도 그들 금나라를 안중에 두지 않고, 마음대로 농락하는 것이었다.

특히 호표영의 사람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기만 했다.

어젯밤에 그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출동시켰는데도 결국 월령안을 잡지 못하고 도망치게 했다.

오늘 월령안이 그들의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건드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궁중에서 그녀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다.

어디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단 말인가.

월령안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고 한 병사가 참지 못하고 상사에게 물었다.

"대장, 그냥 보고만 있나요? 손쓰지 않을 겁니까?"

우두머리는 병사를 흘겨보았다.

"태후 마마께서 저 여자의 주나라 사신 신분을 인정했다. 뭐 어쩌려고?"

양국이 교전 상태라 해도 사신을 죽이지 않는다. 평화 시기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병사는 분을 삭이지 못해 한마디 했다.

"태후 마마께서 혹시 나이가 드셔서……."

"입 닥쳐!"

우두머리는 병사를 한껏 노려보았다.

"귀인들의 일에 네까짓 게 웬 참견이냐."

병사는 입을 다물었으나 마음속으로 여전히 불평이 가득했다.

월령안이 그의 옆을 지나가자 그는 그녀를 한껏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모습이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활짝 웃어 보였다.

병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았다. 월령안이 멀리 간 다음에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약이 바싹 올라 말했다.

"대장, 분명 우리를 도발했어요. 어제 일을 아는 것이 틀림없어요. 대부 도박장의 사람들이 우리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병사는 조급해서 말했다.

"대장, 우리는 저 여자를 잡아들여야 해요. 잡아들이지 않으면 저 여자가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호표영의 우두머리는 경고 어린 눈빛으로 병사를 노려보았다. 그런 다음 조용히 인파를 피해 한 냉궁(冷宮)으로 갔다. 그곳의 한 내관에게 월령안을 잡아들일지 물어보았다.

"기다리시오."

내관은 곧 후궁으로 달려갔다.

반 시진이 지나 내관이 돌아오더니 호표영 우두머리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전했다.

* * *

월령안은 태후궁에서 반 시진도 채 안 돼서 나왔다.

때마침 그녀가 출궁할 때, 호표영 우두머리도 돌아왔다.

월령안은 그 병사와 우두머리 옆을 지나다가 다시 한번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웃어 보였다.

"대장!"

병사는 긴 창을 꽉 움켜잡고 화가 나서 눈동자가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두머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태후는 종실 친왕과 부승상인 흘석열을 황궁에 불러들였다. 우선 먼저 흘석열에게 금나라 황제의 빈소를 불태운 배후 주모자를 언제쯤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흘석열은 또다시 무성의한 대답으로 넘어가려 했다.

이에 태후는 폭발하고 말았다. 머리의 비녀를 뽑아 내동댕이치며 바닥에 주저앉더니 울면서 종실의 친왕에게 하소연했다. 금나라 황제가 죽자마자 조정의 대신들이 완안 가문의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고 넋두리했다.

분명 사신을 맞이하러 나간 무장이 폭언을 해 육장봉에게 밉보였건만 결국에는 그녀의 아들이 대신 죄를 뒤집어쓰게 하고, 남에게 '개잡종'이라는 욕까지 듣게 했다.

그녀도 아들의 배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선황의 유복자로 알려졌지만 실은 죽은 금나라 황제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 그녀를 탓할 수 있는가.

그녀는 연약한 아녀자로서 황궁에서는 마냥 장식품과 다름없다. 금나라 황제가 그녀의 부족을 인질로 잡고 그녀를 위협하는데 그를 따르는 것 외에 또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설령 그녀 아들의 출생이 불명예스럽다 하더라도 결국 완안 가문의 핏줄이고 성씨도 완안이며 황실의 사람이다.

그런데 조정의 관리들은 그녀의 아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만나기만 하면 조소와 풍자로 일관했다. 그녀와 아들은 자신들의 허점을 알기에 수년 동안 조정의 대신들이 어떻게 조롱하고 멸시하든지 모두 참았다.

그들 모자가 십여 년을 참고 있었지만 얻은 것이 무엇인가.

태후가 상심해 울면서 체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늘어놓았다.

태후와 금나라 황제의 추문은 모두 잘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과거 태후는 체면을 생각해 늘 숨기며 말하지 않았다.

대신들은 태후의 그런 모습을 마음속으로는 하찮게 여겼다. 때문에 태후나 완안유를 대할 때 모두 오만한 표정이었다. 당신네 모자가 아무리 잘 꾸며도 얼마나 천한 도도함인지 다 알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태후가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다짜고짜 모든 사실을 까발리자 이제 난처한 쪽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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