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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27)화 (727/1,004)

727화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지

만약 해마다 각국 장병들이 모두 비무를 한다면 그것은 서로 장비나 개인의 실전 능력을 비기는 것이었다.

무기, 군사 장비 등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이외 각국에 노름판을 벌여 국가별 순위 알아맞히기를 할 수도 있었다.

월령안은 대번에 흥미가 생겨 두 눈을 반짝이며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흥미를 가지자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금나라든 북요든 모두 주나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소. 만약 자주 전쟁이 벌어지면 백성들을 고생시키고 재부를 낭비하게 되며 수많은 사상자를 내게 되오.

그래서 나는 폐하께 제안했소. 금나라, 북요와 협상해 매년 장병을 보내 국경에서 대련하기로 말이오. 이렇게 되면 각국의 실력을 보여 주는 동시에 수많은 피해를 줄이게 되잖소.

폐하께서도 내 제안이 마음에 들어 북요, 금나라에 국서를 보내셨소. 금나라는 곧 답장을 보내왔지. 금나라 황제는 암살당하기 전에 국서를 보내왔소. 동시에 주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장병들의 비무를 상담하는 것을 동의했소. 그래서 내가 온 것이오."

월령안은 죽을 마시던 것을 멈추고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대단해요!"

육장봉이 감히 와서 금나라 황제를 암살한 것이 이상할 게 없었다. 진작 퇴로를 준비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가면을 쓰고 금나라 황제를 암살한 뒤, 가면을 벗어던지고 금나라 수도에 정정당당하게 나타나 다시 금나라에서 당당하게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금나라가 주나라와 정면충돌하고 싸우려는 게 아닌 이상,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금나라는 금나라 황제를 암살한 사람이 육장봉이라고 짐작해도 그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대단한 건 당신이오. 당신은 금나라 수도에서 너무나 잘 해냈소."

그는 황제에게 필요할 경우, 완안경을 금나라로 돌려보내 금나라의 황위 다툼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고 암시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금나라가 정말로 혼란에 빠질 수 있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달랐다.

그녀가 손을 쓰자 금나라는 정말로 혼란에 빠졌다.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금나라 황제는 죽지 않았어요."

"짐작했소. 그래서 당신이 대단하다는 거요. 당신이 없었으면 금나라가 혼란에 빠지지 않았을 거요."

세 황자가 황위를 다투지 않고 이곳저곳 그를 죽이려 쫓아다닐 때, 이미 금나라 황제가 죽지 않았음을 짐작했다.

"금나라가 망하면 저에게도 이익이에요."

월령안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육장봉에게 그녀가 금나라 수도에서 어떤 살풍경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모든 게 지나갔고, 그녀는 무사했다. 이것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말하지 않아도 육장봉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위로하는 말을 따로 건네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일 금나라 수도에 가면 내가 당신을 위해 화풀이를 해 주지."

"좋아요!"

월령안은 한창 고개를 숙이고 죽을 먹다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고 눈을 깜박여 보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식탁을 사이 두고도 그녀는 육장봉의 눈에 비낀 안타까움과 자책감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물론 단 한 순간뿐이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순간 육장봉은 눈 속의 감정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아무 일도 없는 척했다.

'아닌 척하긴!'

월령안은 잠깐 멍해 있다가 입술을 깨물며 가볍게 웃었다.

"흠흠……!"

육장봉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어서 식사하시오. 시간이 늦었으니 빨리 먹고 잠을 자야지."

"좋아요."

월령안은 나무 숟가락을 깨물며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장난기가 넘쳐흘렀다.

육장봉은 힐끔 보고는 천연덕스럽게 죽을 마셨다.

월령안은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그러나 그녀는 육장봉의 도도하고 반전이 있는 성격을 떠올리고 억지로 참아냈다.

육장봉은 체면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의 체면을 손상시킬 수는 없었다.

월령안은 기분 좋게 죽을 먹은 뒤 손을 툭툭 털고는 육장봉을 남겨 두고 홀로 가서 쉬었다.

육장봉이 바래다주려고 '내' 자를 말하는 순간, 월령안은 이미 가 버리고 없었다.

육장봉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금나라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처리하지 못한 사무가 쌓였다는 것을 떠올리고 무리하지 않았다.

그는 육삼을 손짓하여 불렀다. 육삼더러 월령안을 호위하여 가서 쉬게 했다. 그리고 그는 엄숙한 모습으로 서재에 들어갔다.

"대장군"

서재에서는 육이, 육사, 육오와 십이가 이미 기다린 지 한참 되었다. 그들은 모두 엄숙한 표정이었다.

육십이도 고분고분 서서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감히 어리석은 짓을 하지 못했다.

"앉아라."

육장봉은 첫머리에 앉으면서 육이 등 네 사람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육이는 자리에 앉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육장봉에게 그가 금나라에 머무는 동안 발생했던 주나라 군중의 사무와 조정의 동향에 대해 보고했다.

육이는 조리 있게 하나하나씩 육장봉에게 보고했다. 그의 보고가 끝나자 육삼이 돌아왔다.

"대장군, 마님은 이미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음."

육장봉은 대답하고 나서 차가운 눈매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육이 등 몇은 서재의 분위기가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고 살짝 느슨해졌다.

다음 순간, 육장봉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서 손가락으로 탁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좀 전보다 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해!"

"예, 대장군!"

육이 등 몇은 흠칫 떨고서 정신을 바싹 차리고 더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월령안이 잠들었으므로 그들의 대장군을 달랠 사람이 없었다.

* * *

월령안은 간밤에 금나라의 사사들에게 쫓겨 모든 것을 버리고 궁색하게 도성을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늘, 그녀는 주나라 사절단 수행 인원이라는 명분으로 금나라 관리들의 영접을 받으며 입성했다.

물론 가장 위험했던 사람은 육장봉이었다.

그는 오늘 이전까지만 해도 금나라 세 황자에게 쫓기던 자객으로 금나라에서 이리저리 숨어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주나라의 사신이 되어 나타났다. 금나라의 황자, 관리들은 그를 건드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귀빈으로 접대해야 했다.

"대장군의 명성을 오래 듣기만 하다가 오늘 드디어 뵙게 되었습니다. 역시 대장군은 소문처럼 위풍당당하고 기품이 뛰어나 풍채가 남다릅니다."

금나라의 관리들은 완안유의 인솔하에 성문 입구에서 육장봉을 맞이했다.

금나라의 이황자, 삼황자, 사황자는 이미 금나라 수도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수행 인원이 많다 보니 육장봉처럼 밤낮없이 달릴 수 없어 수도에 도착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육장봉은 신분이 평범하지 않은 데다 또한 주나라 대표이기도 했다.

세 황자가 없는 가운데, 수도에서 육장봉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승상 오림뿐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림은 어젯밤 암살로 크게 부상 입어 일어나지 못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금나라 관리들은 부득불 완안유를 모셔 육장봉을 맞이하게 했다.

물론 어찌 보면 금나라 관리들은 완안유가 육장봉을 맞이하게 함으로써 육장봉의 속을 뒤집어 놓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완안유의 출신은 각국 고위층에서도 잘 알려진 추문이었다.

육장봉의 생부가 불분명한 것 역시 각국의 고위층에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금나라 관리들이 완안유더러 성 밖에서 육장봉을 맞이하게 한 것은 고의적으로 육장봉의 비위를 상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음!"

육장봉은 말 등에 앉아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완안유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는 완안유에겐 치욕스러운 처사였다.

물론 육장봉이 노린 것은 완안유 혼자가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든 금나라 사람이었다.

말 등에 앉은 육장봉은 금나라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실력으로 무엇이 안하무인인지를 보여 주었다.

완안유에게 한 음절로 대답한 이후로, 뒤이어 금나라 관리들이 무슨 말을 해도 육장봉은 입을 열지 않았다. 물론 시선도 주지 않았다.

내내 육이가 금나라의 관리들을 상대했다.

완안유와 함께 육장봉을 맞이하는 관리들 중에는 문관도 무장도 모두 있었다. 관직도 최저 삼품 이상에 달했다. 금나라 수도에서 나름 한자리하는 인물들로 평소에 모두 떠받들어지는 편이었다. 금나라 황제도 육장봉처럼 안하무인은 아니었다. 육장봉의 오만한 거동은 금나라 관리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한 무장이 참지 못하고, 이상한 말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하, 개잡놈도 감히 우리 앞에서 거들먹거리는군. 떨어져 죽는 게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지?"

이에 대답한 것은 육장봉의 말채찍이었다.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육장봉 수중의 말채찍이 그 무장의 뺨을 후려갈겼다. 마침 그의 얼굴 한가운데에 핏자국을 남겨 놓았다.

"너, 너…… 네가 감히 나를 때려."

그 무장은 손을 들어 얼굴을 훔치더니 손에 묻은 피를 보고 분노했다.

"너 같은 놈은 전쟁터에서 단 한시도 살 수가 없다."

육장봉은 날카로운 눈썹에 차가운 눈초리를 하고서 그 무장을 흘겨보았다.

"눈에 거슬리는군."

찰싹!

또다시 채찍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면으로 후려친 것이 아니라 가로로 후려쳤다. 그 무장은 멀리 날아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악……"

그 무장은 한쪽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속으로 내던져졌다.

"앗!"

구경하던 백성들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무장은 땅에 떨어져 혼절하고 말았다.

"이건……."

성문 입구, 구경꾼이나 장병 그리고 관리들까지도 모두 한껏 숨을 들이쉬었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 앞에 서 있던 문관들은 온몸이 저도 모르게 으스스 떨리는 바람에 하나같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육장봉의 이 거동에 두려운 것이 틀림없었다.

완안유 역시 미간을 찌푸리고 억지로 화를 참으며 물었다.

"육 대장군!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육장봉은 살짝 몸을 기울이고 완안유를 바라보며 냉랭한 말투로 그 무장의 말을 되풀이했다.

"하, 개잡놈도 감히 우리 앞에서 거들먹거리는군. 떨어져 죽는 게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지?"

똑같은 말도 무관이 내뱉었을 때는 원망이 가득 차서 듣기 구차했다.

하지만 육장봉이 하자 싸늘한 살기가 서려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하게 했다.

"당신……."

완안유는 육장봉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순간 이 말이 그를 비웃는 것인지 아니면 그 무장의 죄증을 되풀이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혹시 둘 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육장봉이 아니었다. 육장봉처럼 한 번의 채찍질로 그 말을 한 사람을 날려 버릴 수는 없었다.

"당신네 금나라는 내게 해명을 해야 하는 입장 아닌가?"

육장봉은 도로 자리에 앉더니 내려다보며 말했다.

"대장군,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먼저 들어가서 이야기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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