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화 당신을 찾으러 왔소
월령안은 그렇게 성 밖으로 나가기 전에 모든 것을 안배해 두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준비해 둔 모든 것들은 곧 필요 없게 돼 버렸다.
성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그녀를 찾아 달려온 육장봉과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성 밖에서 육장봉을 보는 순간, 월령안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언제 금나라 수도에 도착했나요? 지금 입성하려는 건가요?"
"음, 당신을 찾으러 왔소."
월령안을 본 육장봉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기쁨이 더 컸다.
달빛 아래 육장봉은 날카로운 눈썹에 빛나는 눈을 하고서 늠름한 풍채로 말 등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왕좌에 앉아 있는 왕처럼 차가운 도도함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월령안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눈 속의 넘치는 깊은 정이 그의 냉랭한 눈매를 부드럽게 해 주었다.
"저를 찾아온 건가요?"
월령안은 변경에서 그가 일부러 그녀의 집에 찾아가면서도 오만하게 다른 볼일 때문에 겸사겸사 온 거라고 하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금치 못했다.
"전 또 당신이 저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고 얘기할 줄 알았어요."
육장봉은 나지막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당신을 보러 온 것이오."
달빛 아래 육장봉의 이 웃음은 온몸의 도도함과 차가움을 쓸어 버리고 대신 형언할 수 없는 유혹을 더해 주었다.
이 남자는 지금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월령안은 눈빛이 살짝 멍해지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
다음 순간, 육장봉은 월령안의 손을 잡고 말 위에 태웠다. 그리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으며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는 오래 머물 곳이 아니오. 안전한 곳으로 가지."
두 사람은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제멋대로 월령안을 자기 품속으로 끌어들인 다음 채찍질하여 떠나갔다.
아로한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말에 채찍질해 쫓아가려 했다.
"주인님……!"
채찍을 휘두르자마자 갑자기 튀어나온 암위에게 잡혔다.
"형씨, 우리 장군이 계시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아로한은 잠자코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나?'
* * *
육장봉은 월령안을 말에 앉히고 수림 속에 뛰어들었다. 말을 몰아 질주하자 새들이 깜짝 놀라 날갯짓을 했다.
월령안은 배고프냐고 묻는 육장봉의 말에 배고프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손 가는 대로 꿩 두 마리를 잡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육장봉이 그녀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신경 쓰지 않고 그의 품속에 안겨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얼마 안 되어 곧 잠이 들었다.
사실 그녀는 금나라에 온 후부터 줄곧 경계를 늦추지 않다 보니 눈을 감아도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 너무 피곤했다. 푹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제 육장봉이 왔으니 그녀는 마음 놓고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육장봉은 품속의 무게가 조금 무거워진 것을 알아차리고 속도를 늦추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면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수고했소."
그는 세찬 바람에 월령안의 피부가 상할까 두려워 피풍의를 끌어 그녀를 꽁꽁 싸안았다. 또한 조심스럽게 몸을 옆으로 하여 그녀가 편히 기대게 했다.
육장봉은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달렸다. 내내 흔들리지 않게 조심한 덕분에 몇 시진을 달려도 월령안은 잠에서 깨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성 밖의 역참에 이르러 말을 멈추고서야 그녀는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는 어디에요?"
월령안은 아직 잠에서 채 깨지 못한 듯 눈동자에 잠 기운이 가득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육장봉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정수리에는 머리카락 한 줌이 치켜들려 있어 멍해 보였다.
육장봉은 고개를 숙여 월령안의 귓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금나라에 있는 주나라 역참이오."
"아?"
따뜻하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왔다. 목소리와 함께 따뜻한 기운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갑자기 이런 목소리로 속삭이다니 정말, 잘못하면 사람이 설레서 죽겠어.'
그녀는 육장봉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는 살며시 육장봉에게서 떨어지며 다시 물었다.
"어디라고요?"
"역참이오."
육장봉은 웃음기를 감추고 참을성 있게 말을 되풀이했다.
"역참이라고요?"
월령안은 깜짝 놀라 정신이 바짝 들었다.
"당신, 역참에 이렇게 나타나도 괜찮은 건가요?"
육장봉은 말에서 내리면서 월령안도 안아서 내렸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군. 나는 지금 어명을 받고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거요."
"뭐라고요?"
월령안은 땅바닥에 내려섰지만 두 발에 힘이 빠져 일시에 제대로 서지 못하고 육장봉을 향해 쓰러졌다.
육장봉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 품속에 안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아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좀 조심하지 그러오."
"당신이 있잖아요. 무서울 게 뭐가 있어요."
월령안은 고개를 들었다. 마침 육장봉의 턱이 보였다.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귀신에 홀린 듯이 그의 턱을 깨물었다.
"장군……!"
육이는 기척을 듣고 육장봉이 돌아온 줄 알고 급히 마중 나왔다. 그 광경을 보고 놀라서 연거푸 뒷걸음질했다.
"어……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장군님, 마님, 계속하십시오."
육이 뒤를 바싹 따르던 육사와 육오도 급히 손으로 눈을 막았다.
"저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마님과 장군은 계속하세요. 저희를 신경 쓰지 마세요."
월령안은 민망하기만 했다.
'어떻게 계속하라는 말이야?'
"월 누님……!"
육십이는 맨 꼴찌로 오다가 모두가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맨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육십이는 육장봉의 품에 안긴 월령안을 보자 잠깐 멍해 있다가 관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월 누님, 몸이 편찮으세요? 병이 난 건가요? 심각한가요? 어…… 장군, 턱에 어떻게 잇자국이 있나요? 어떻게 된 거예요? 수양이 대단해지면 혹시 스스로의 턱을 물 수 있는 건가요?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육십이는 말하면서 이로 힘껏 아래턱을 물려 했다. 얼굴이 한참 길어졌으나 여전히 자신의 턱 부분을 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육십이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열심히 시도했다.
"어…… 나는 왜 못 하지?"
육이, 육사, 육오는 어이가 없어 잠자코 있었다.
세 사람은 일제히 육십이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고 말았다.
'너무 수치스러워!'
월령안은 어이가 없었다.
'십이는 지금 진지한 건가? 나를 조롱하는 건 아니겠지?'
월령안은 육장봉의 품에 얼굴을 묻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했다.
'내가 왜 참, 무슨 생각으로 육장봉을 깨물었지?'
육삼은 묵묵히 구석으로 물러서다가 뭇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서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이런 때는 존재감을 없애는 것이 상책이었다.
"흠흠……!"
육장봉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사코 고개를 들지 않는 월령안을 보면서, 입가의 웃음기를 누른 채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일부러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제자리로!"
"예, 장군."
육이, 육사, 육오는 금세 도망쳤다.
세 사람은 뒤돌아서 그들과 함께 왔던 육삼이 진작 도망친 것을 발견하고는 참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한마디 욕했다.
"간사하기는!"
둬 걸음을 걷고 육십이가 따라오지 않은 것을 보고 육사와 육오는 되돌아와서 여전히 자기의 턱을 물려고 애를 쓰는 있는 그를 양쪽에서 잡아끌고 갔다.
육십이는 깜짝 놀랐다.
"어, 어…… 뭐 하는 거예요? 저 아직 월 누님과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월 누님, 월 누님! 살려 주세요!"
월령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네 월 누님은 너를 구해 줄 생각이 없단다.'
육십이의 구조 요청 소리가 점차 멀어지자 앞뜰이 조용해졌다. 그제야 육장봉은 월령안에게 한마디 귀띔했다.
"자, 이제 다 갔소. 숨이 막혀 힘들었겠소."
"당신 친위대는 정말 말을 할 수가 없네요!"
월령안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답답해서인지, 창피해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으음…… 너무 버르장머리가 없지. 나중에 그들더러 예의를 배우라고 하겠소."
육장봉은 턱에 난 옅은 잇자국을 매만지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필요 없소. 당신이 이리 예의를 차리지 않는 것을 나는 아주 좋아하니까!"
월령안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왠지 자신이 희롱을 당한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이 역참에 도착했을 때는 깊은 밤이었다. 이 시간에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은 무리였다. 육장봉이 길에서 잡은 꿩 두 마리는 먹을 수 없었다.
육삼은 두 사람에게 죽 두 그릇과 간단한 밑반찬을 가져다주었다. 꿩 두 마리는 내일 월령안에게 국 끓여 줄 생각으로 주방에 놓아두었다.
육삼이 혼자 준비하다 보니 그가 뜨거운 죽을 가져왔을 때는, 이미 이각이 지난 뒤였다.
다름 아니라 육이, 육사, 육오와 육십이는 월령안의 '창피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당분간 그들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가 없었다.
오직 육삼만이 그 자리에 없었다.
월령안은 육삼이 진짜 그녀가 육장봉에게 입맞춤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육삼은 영리한 사람이라 그녀의 앞에서 아무 일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 또한 그가 모르는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좌우지간 그녀는 낯가죽이 두꺼워 앞에서 까발리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할 수 있었다.
"마님, 마님의 호위는 앞뜰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저한테 분부하시면 됩니다."
육삼은 죽과 반찬을 내려놓고 한마디 말한 뒤 입구까지 물러갔다. 두 사람만의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야말로 살뜰하기 그지없었다.
"당신 수하의 사람들은 십이를 제외하고 모두 세상 물정을 훤히 꿰뚫고 있네요."
식사 자리, 잠자리에서는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월령안에게는 그런 습관이 없었다. 그녀는 죽을 식혀 먹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당신은 십이를 가장 좋아하잖소."
좋은 물건만 있으면 남겨 두었다가 십이를 주었다. 어떤 것은 그마저도 없었다.
십이가 다른 속셈이 없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면, 그는 진작 십이를 그의 어머니에게 보내 버렸을 것이다.
"바보에게는 바보의 복이 따로 있죠."
그녀는 은혜와 원한을 분명히 하는 사람이었다. 남이 그녀를 잘 대해 주면, 그녀도 반드시 그만큼 남에게 돌려주었다.
육십이는 육장봉의 친위대 중에서 유일하게 편견을 가지지 않고 그녀를 대해 준 사람이었다. 그녀도 당연히 편견 없이 그를 대했다.
월령안은 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아 차분하게 말머리를 돌렸다.
"아까 말씀하셨던 주나라를 대표해 금나라에 사신으로 간다는 얘기는 무슨 뜻인가요? 육이 등도 모두 사절단의 수행 인원인가요? 당신들은 금나라에 와서 금나라 황제를 추모하는 건가요?"
육장봉은 고개를 저었다.
"사신으로 가는 데 대해 결정지을 때, 금나라 황제는 아직 죽지 않았었소. 나는 주나라를 대표해 금나라 황제와 각국 장병들 간 매년 비무에 대해 상담하기로 했소."
"전에 주나라와 북요의 비무처럼요?"
월령안이 자세히 생각해 보니 이건 괜찮은 장사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