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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21)화 (721/1,004)

721화 나는 어린애가 아니야

월령안은 숨을 가다듬고 수횡천을 위해 한마디 변명했다.

"곽 장군, 수 맹주는 사적인 사정으로 이번에 오게 된 것이에요. 이 세상에서 그의 수중에서 사람을 빼앗을 사람은 없잖아요. 다만 저희는 고현광이 북요의 첩자일 줄은 몰랐어요. 대전하의 일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해요."

"당신의 말을 믿어도 될까? 지금 당신은 나에게 그전까지 고현광이 북요 첩자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인가?

그러나 사실상 십육 전하가 고현광이 북요 첩자인 것을 조사해 내게 된 것도 당신이 누설한 소식 때문이네. 아니, 그보다 썩 먼저…… 당신은 그날 공주부로 갈 때부터 고현광이 북요의 첩자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잖소?"

곽하는 수횡천을 믿었다. 수횡천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믿을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곽하가 어쨌든 병권을 쥔 장군이기에 끌어들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곽하가 분수를 알고 물러서면 그녀 또한 대범하게 더는 따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곽하는 분수를 모를 뿐만 아니라 남의 호의를 알아 주지도 않았다.

월령안은 곧바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곽 장군은 제가 왜 그날 당신께 편지를 보내고, 당신더러 고현광한테 가서 전하를 찾아오라고 했을 거 같나요?"

곽하는 자신이 무고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녀는 곽하가 무슨 배짱으로 그녀한테 따지려고 드는지 의문스러웠다.

"진작 알고 있었어? 왜 미리 이야기해 주지 않았나?"

곽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미리? 얼마나 더 먼저요? 저는 일찍 당신한테 편지를 보냈어요. 바로 당신 자신이…… 분명 공주부에 도착해 그곳 사람들과 싸우면서도 자그마한 이익을 위해 대황자 전하의 생사를 돌보지 않았죠. 누가 대황자 전하를 죽음에 몰아넣었는가를 말하려면, 곽 장군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 봐야 하는 게 아닌가요?"

곽하가 분수를 모르니 그녀가 사정없이 많은 사람 앞에서 그의 체면을 구긴다고 탓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곽하는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순식간에 울화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그때 나에게 고현광이 북요 첩자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면 일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거야."

월령안은 차디찬 얼굴로 말했다.

"제가 왜 그걸 당신한테 말해 줘야 하나요? 당신이 저와 무슨 사이인데요? 왜 제가 힘들여 알아낸 정보를 당신에게 알려드려야 하나요?"

곽하는 이미 기세가 약해졌다. 그는 가까스로 버티며 말했다.

"당신이 다만……."

월령안은 그에게 체면을 남겨 주지 않았다.

"그 정보는 제가 인력, 물력을 소모해서 알아낸 거예요! 대황자 전하와 안면이 있는 것을 봐서 당신에게 소식을 전해 준 건, 제 됨됨이가 의를 지키고 대범해서거든요. 당신은 제가 베푼 은덕에 감사를 표해야 옳아요. 거꾸로 저를 탓하는 게 아니라요."

그녀는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기세로 사람을 짓눌렀다.

"곽 장군, 아시나요? 이 세상에서 아무도 당신에게 빚지지 않았어요!"

"당신이 한마디만 더 말해 주었다면 대황자 전하는 죽지 않았을 것이오."

곽하는 허세 가득하게 월령안에게 소리를 지르고는 상심한 동시에 화가 나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월령안은 화가 나서 웃었다.

"제가 왜 그 한마디를 더 해야 하나요? 당신 수중에도 제가 원하는 소식이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제게 말해 주었나요? 당신이 한마디만 더 해 주면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금나라 수도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어요. 당신은 그 한마디를 더 해 주었나요?"

"나는…… 당신은…… 이건 다르지! 상황이 다르다고!"

곽하는 비틀거리더니 뒷걸음질했다. 얼굴에는 난감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속이 켕겼다.

"무엇이 다르나요? 다 같은 사람 목숨 아닌가요? 왜요? 완안경의 목숨은 목숨이고 저 월령안의 목숨은 목숨이 아닌가요?"

월령안은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곽 장군, 자기기만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당신 마음속으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잖아요. 대황자 전하를 죽게 한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에요. 당신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속이 켕겨 바람 소리를 들으면 비가 온다고 하는 식으로 기꺼이 남에게 이용당하는 거잖아요. 저를 찾아와 모든 잘못을 저한테 떠넘기려 하죠.

제가 그 가운데서 조금이라도 역할이 있었다면 당신은 뻔뻔스럽게 완안경은 당신 욕심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제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려고 말이에요. 그러면 당신은 마음 편히 계속해 정이 깊고 의를 중히 여기는 곽 장군, 그리고 대황자 전하의 친외삼촌으로 남으면 되는 거죠."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야……."

곽하는 끊임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곽하는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했다. 슬프고 가련해 보이지만 월령안은 그를 동정할 수가 없었다.

"아닌지 맞는지는 당신 자신이 저보다 더 잘 알 거예요. 그날 당신이 그렇게 탐욕스럽지 않고, 해주 공주의 약속에 눈이 멀지 않았다면 완안경은 아무 일도 없었을 거예요. 바로 당신…… 곽 장군이에요. 당신이 완안경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그를 죽게 만들었어요. 바로 당신……."

"아니다. 나는 아니다! 나는 모른다! 나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어…… 절대 그럴 생각이 아니었어……."

곽하는 비틀거리더니 바닥에 넘어졌다. 그는 그 단 한 순간에 의지를 잃었다. 의지를 잃고 자책하는 그에게는 어둡고 퇴폐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한눈에 봐도 이제 곽하는 폐인이 된 듯싶었다.

월령안은 아로한에게 그를 묶어서 데려가라고 시키려다가 갑자기 창문에 나타난 그림자를 보았다. 그녀는 눈에 빛을 반짝이더니 즉시 생각을 바꾸어 살기등등하게 곽하에게 접근했다.

수횡천은 그녀의 안위를 걱정해 잠깐 막아 나섰다. 월령안은 대수롭지 않게 밀쳐냈다.

"바보가 두 번이나 저를 협박할 수 있겠어요."

처음에는 그녀가 곽하의 어리석음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더는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곽하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탐욕스럽고 어리석으며 무능하고. 게다가 독선적이기까지…… 완안경이 당신 같은 외삼촌이 있는 건 그야말로 재수에 옴 붙은 거예요."

그녀는 곽하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곽하 자신이 기회를 놓쳤다.

곽하는 자기가 어리석고 탐욕스러워 일을 그르치고 완안경을 해쳤으면서도 감히 그녀를 찾아와 괴롭혔다. 오늘 그녀가 곽하를 철저하게 폐인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성을 갈아야 할 것이다.

"아니, 아니야! 내가 아니야. 일부러 한 거 아니야. 그럴 생각이 아니었어……."

말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월령안의 언어 공격에 곽하의 심리적 방어선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자기기만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가련하게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쪼그리고 있었다. 보건대 막막하고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쌀쌀하게 말했다.

"저에게 그 가운데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 물었죠? 알려드릴게요. 십육 전하께 해주 공주와 완안경만 제거하면 그들의 세력을 넘겨받아 가장 유리한 황위 계승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암시했어요."

다만 그 그림자가 완안유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이렇게 많은 말을 한 것은 모두 헛수고가 될 것이다.

월령안은 한참 말하다가 손목의 팔찌를 끌어 손에 잡았다.

"당신은 완안경이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 알고 싶어 했죠. 누가 손썼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그는 자신의 야심 때문에, 그리고 당신의 탐욕 때문에 죽었다는 거예요! 곽하. 인정하세요.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이 완안경을 죽게 만들고, 당신이 자기 미래를 망친 거예요. 당신이……."

"입 닥쳐!"

곽하는 갑자기 고함을 지르더니 고개를 들었다. 두 눈에는 포악한 기운이 흘렀다.

"당신이지. 모든 건 당신이 짠 거지."

월령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인정했다.

"네, 저예요! 그래서 저를 어찌 할 수 있나요?"

"나쁜 년!"

곽하는 벌떡 일어나 월령안에게 덮쳐들었다.

"죽여 버릴 거야!"

월령안은 일찍부터 방어하고 있었다. 몸을 옆으로 비키면서 동시에 팔찌를 던졌다.

"내 목숨을 노려? 당신에게는 기회가 없어!"

팍!

한 줄기 은빛이 곽하의 얼굴을 호되게 후려쳤다.

"당신네 조카, 외삼촌은 정말 재미있군. 둘 다 가만히 있던 나를 건드리다니. 내가 고아라서 만만해 보이나?"

"아악!"

곽하는 몸이 굳어지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비명을 질렀다.

쿵!

아로한은 앞으로 나아가서 곽하를 걷어찼다.

이 순간의 곽하는 말로에 이른 영웅처럼 기력이 모두 소진되어 아로한 앞에서 싸울 힘도 없었다.

그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마치 죽은 개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월령안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문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십육 전하, 구경 다 하셨나요? 증인, 증거…… 심지어 곽 장군이 저를 죽이려고 하는 것까지 직접 목격했죠. 이 증거들이면 이자의 목을 칠 수 있나요?"

무엇보다도 곽하가 이미 계략으로 해주 공주와 완안경을 제거한 사람이 완안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안유가 만약 사람을 제대로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후환이 끝이 없을 것이다.

"내가 온 걸 언제 알았지?"

완안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촛불의 빛으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얼굴 반쪽이 어둠 속에 묻혀 그를 신비롭게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제 곁에 있는 분이 무림 맹주예요! 당연히 알 수 있죠."

완안유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마치 귀신처럼 아무 기척도 내지 않았다. 월령안은 그가 언제 도착했는지 몰랐다. 또한 그녀는 수횡천도 완안유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수횡천이 완안유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는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무림 맹주는 무슨 개똥 같은 무림 맹주냐."

완안유는 수횡천을 흘겨보더니 더없이 혐오하며 말했다.

"저자는 그냥 등신일 뿐이야."

수횡천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당신……."

"왜? 인정하기 싫어?"

완안유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발했다.

"당신이 등신이 아니면, 월령안이 어떻게 다쳤지? 등신! 이 등신! 쓸모없는 등신!"

수횡천은 손을 들어 완안유를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월령안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십육 전하께서는 화가 나서 하는 말이에요. 수 오라버니는 마음에 두지 마세요."

"흠…… 나도 어린애하고 따지고 싶지 않아."

수횡천은 손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월령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완안유는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매섭게 말했다.

"월령안, 화가 나서 한 말이 아니야. 그리고 나는 어린애도 아니란 말이다. 알고 있어. 당신이 일찍부터 내 존재를 발견했다는 걸. 또 알아. 당신이 곽하와 일부러 그런 말을 해서 나를 끌어내고 내 손을 빌려 곽하를 죽이려 한다는 걸. 잘 들어.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난 다 안다고. 나는 어린애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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