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화 당신은 이용당한 것이오
월령안은 곽하에게 목이 졸려 거의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게 명령했다.
"가서…… 곽 장군 일가를 있는 대로 다 데려오라."
"월령안, 네가 감히!"
곽하는 힘을 더 주어 월령안을 들어 올렸다.
"허억……!"
월령안은 얼굴색이 검푸르게 변했고, 이미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용서를 빌지 않고 힘겹게 손을 들어 아로한에게 사람을 잡아 오라고 했다.
모두들 그녀가 만만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해주 공주의 끝장을 보고서도 이들은 아직도 그녀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단 말인가.
아로한과 월령안은 주종 사이로서 호흡이 잘 맞았다.
월령안의 손짓을 보내자 아로한은 곧 그녀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가지 않고 곽하의 앞에서 높은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사람을 데리고 곽 장군 집에 가서 곽 장군 일가족을 모두 데려와라. 기억해. 곽 장군은 춘엽(春葉) 골목에 첩실을 하나 두었다. 첩실의 애도 데리고 와. 산 채로 데려오지 못하면 죽은 것이라도 가져와."
곽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이 어떻게 알……."
아로한은 차갑게 비웃었다.
"금나라 수도에서 우리가 원하면 무슨 일도 숨길 수 없습니다. 곽 장군,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온 가족을 다 데리고 오겠습니다."
"이건 우리 사이 일이니 내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
곽하는 분노하여 울부짖었다.
"무슨 자격으로 가족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세요?"
아로한은 그에게 납치된 월령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곽 장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죽일 생각은 없었어."
곽하는 월령안의 목을 조르던 손을 무의식중에 풀었다.
"어휴……"
신선한 공기가 몰려들자 월령안은 그제야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뒤, 곽하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로한이 말한 바와 같이 금나라 수도에는 영리한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곽하처럼 가족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그녀를 찾아온 멍청이는 정말이지 평생에 딱 이번 한 번만 만나도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다.
"주인님을 죽이고 싶지 않으면 놓아 주시지요. 우리 앉아서 한번 이야기해 봅시다."
아로한은 곽하의 말을 믿지 않았다. 곽하가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어떻게 갑옷을 입고 올 수 있는가.
곽하는 분명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찾아왔다. 다만 사람이 좀 멍청해서 가족들을 챙기지 못한 것이었다.
"이야기할 수 있지. 그냥 이렇게 얘기하면 돼. 제대로 이야기하면 놓아 줄 것이다."
곽하는 또 한 번 힘을 주어 월령안의 목을 조였다.
월령안의 금방 회복되었던 얼굴빛이 또다시 안 좋아졌다. 아로한은 조급해져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손에 든 칼이 가볍게 떨리면서 촛불 아래 차가운 빛을 뿌렸다. 그는 곽하를 능지처참하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바로 이때, 월령안은 입 모양으로 반복해서 '이용'을 되뇌었다.
아로한은 월령안의 입술을 주시하며 한 번 따라 되풀이하더니 이내 침착해졌다.
"곽 장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누가 당신더러 우리 주인님을 찾아가라고 하던가요? 그 사람은 우리 주인님에게 밉보인 결과를 얘기해 주던가요?"
아로한은 곽하의 반응을 놓칠까 두려워 줄곧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곽하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자 그는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
"곽 장군,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 주인님은 당신과 원한도 없고, 대황자 전하와도 접촉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우리 주인님한테서 답을 찾으려고 하십니까? 당신을 주인님에게 보낸 그 사람은 과연 당신을 위해서 그런 걸까요?"
월령안은 매사에 극히 신중하고 조심했다.
그녀는 완안경을 황제의 수중에서 넘겨받았지만, 그를 만난 적은 없었다.
금나라에 도착하자마자 곧 완안경과 떨어져 있었다. 그를 압송하거나 인계하는 과정에도 그녀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고, 나서지도 않았다.
곽하는 물론이고, 고현광과 완안경도 월령안이야말로 완안경을 금나라로 압송해 고현광에게 인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곽하가 이 시기에 월령안을 찾아온 것은 남에게 이용당한 것이 분명했다.
곽하는 바보처럼 줄곧 남에게 이용당하고 있지만 완전히 바보 멍청이는 아니었다.
아로한이 살짝 귀띔하자 곽하는 저도 모르게 자세히 돌이켜 보게 되었다.
'내가 또 이용당한 건가?'
그러나 곽하가 잠깐 정신을 판 순간, 검은 그림자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더니 그를 습격했다.
검은 그림자는 기세등등하고 속도가 아주 빨랐다. 마치 한 줄기의 빛과도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곽하의 눈앞에 다가가 그의 얼굴에 일격을 가했다.
"누구냐?"
곽하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반격했다. 그러나 검은 그림자의 목표는 그가 아니라 그 수중의 월령안이었다.
검은 그림자는 언뜻 움직이더니 곽하가 반격하는 틈을 타 그의 손에서 월령안을 빼앗아 갔다.
검은 그림자는 월령안을 빼내 오자 발로 곽하를 걷어차 날려 버렸다.
쿵…….
곽하는 등 뒤에 있는 기둥에 부딪치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검은 그림자는 월령안을 아로한에게 떠밀더니 날아가 떨어진 곽하를 쫓아갔다. 곽하를 죽이고 나서야 그만두려는 모양이었다.
월령안은 두어 걸음 비틀거리다가 아로한의 몸에 기대어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수횡천이 곽하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에 일 장(一掌)을 날리려는 것이 보였다.
월령안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수…… 죽이지 마세요!"
탕!
수횡천의 일 장은 곽하와 겨우 한 손가락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월령안의 말을 듣자 미처 거두어들일 수가 없어 손목을 돌려 곽하 옆쪽 바닥을 내리쳤다.
탕!
손바닥이 닿자 땅바닥이 움푹 들어가더니 깊은 손자국이 남았다.
이 일 장이 곽하의 얼굴을 내리쳤으면 그의 머리는 그냥 납작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신들……."
곽하도 나름 생사에 익숙한 대장군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놀라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방금 전에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했다. 만약 월령안이 입을 열지 않았다면, 그는 아주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령안, 괜찮아?"
수횡천은 일 장을 거두고 곽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몸을 돌려 걱정스러운 눈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의 목에는 짙은 자색으로 목이 졸린 흔적 두 줄 나 있어 보건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 곽 장군이 사정을 봐줬어요."
뼈가 부러지지 않아 치명적이지 않았다.
"미안하다. 난 네가 금나라 수도에서 이처럼 위험할 줄은 몰랐어."
수횡천은 자책하며 말했다.
"이번은 의외예요. 여기는 그나마 안전해요. 이곳에서 누구도 쉽게 손쓰지 못해요."
월령안도 일이 이렇게 공교롭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가 방금 수횡천과 금나라 수도에서 얼마나 위험한지를 털어놓았는데 때마침 곽하가 찾아왔다.
"저 사람이 바로 곽하예요. 그가……."
월령안은 잠시 멈추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의 행방을 알 수도 있어요."
후자의 '그'는 당연히 육장봉을 가리켰다.
"당신이 곽하인가? 금나라 대황자의 외삼촌? 왜 령안을 찾아오셨지?"
수횡천은 당연히 곽하가 월령안을 찾아와서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때에는 반드시 멍청한 척해야 했다.
곽하는 바닥에서 가까스로 기어 일어나 가슴을 움켜잡고 거칠게 숨을 쉬며 말했다.
"누군가 저에게 대전하의 죽음은 월령안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더군."
수횡천은 어두운 얼굴로 엄숙하게 말했다.
"그 사람은…… 금나라에 있는 주나라의 정탐꾼이 아니오?"
"어떻게 알았소?"
곽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금나라 대황자는 내가 고현광에게 맡긴 거요."
수횡천은 떳떳하게 일을 자신이 떠안았다.
월령안은 수횡천을 힐끔 보고는 잠깐 망설이다가 끝내 말하지 않았다.
아홉 가지가 진짜고 하나가 가짜여야만 비로소 남을 속일 수가 있다.
수횡천이 일부 진실을 폭로하는 건 그녀에게도 이로웠다.
"고현광에게 맡기다니?"
곽하의 말투가 갑자기 높아졌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오? 왜 대황자를 고현광에게 맡긴 것이오?"
수횡천은 여전히 자신의 신분을 말하지 않고 다만 이처럼 말했다.
"고현광은 주나라 사람이오."
"말도 안 돼. 그는 북요의 첩자요. 그는 북요의 대장군 신호의 아들이오."
이 소식은 이미 확정된 것이었다. 적어도 금나라 내부에서는 이미 확정되었다.
"그는 동시에 주나라의 정탐꾼으로 금나라에서 정보를 책임졌소."
수횡천은 확신 있게 대답했다.
"당신네 주나라……."
'무엇을 하려는 거요?'
북요 대장군의 아들을 금나라에 있는 주나라의 첩자가 되게 하다니.
주나라는 지금 장난하는 것인가.
수횡천은 얼굴빛이 나빠졌다.
"주나라는 고현광이 북요인인 줄 몰랐소. 우리도 고현광에게 속은 것이오. 당신에게 정보를 준 주나라 사람을 잘 조사해 보시오. 이변이 없는 한, 당신은 이용당한 것이오."
"그럼 당신은? 당신은 또 누구시오? 당신의 신분은? 당신과 월령안은 함께 있었소. 월령안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오?"
곽하는 자신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수횡천은 일을 행함에 줄곧 떳떳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남들이 그의 신분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곽하가 두 번이나 물었으나 수횡천은 줄곧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당당한 무림 맹주가 조정을 위해 일을 하다니 도저히 말하기가 민망했다. 그래서 회피하고 신분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곽하는 또다시 정중하게 물었다.
수횡천도 더는 못 들은 척할 수가 없어 아예 대범하게 인정했다.
"수횡천이오."
"수횡천?"
곽하는 어리둥절해서 수횡천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무림 맹주 수횡천인가?"
"음."
수횡천은 불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범하게 곽하가 훑어보게 내버려 두었다.
그는 언제나 처세가 광명정대했다. 체면이 깎이는 건 하는 수 없었다.
"수 맹주, 당신…… 당신은 조정을 위해 일하는 것이오?"
곽하는 수횡천의 신분을 재빨리 인정했다. 그는 수횡천과 겨루어 보았다. 이름은 가짜일 수 있지만 실력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정말 이름을 사칭한다고 해도 다른 누구도 아닌 무림 맹주를 사칭하겠는가. 무림맹의 추격을 당할 것이 뻔한데 말이다.
"아니오."
수횡천은 재빨리 부정하다가 이렇게 말해도 옳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아니, 완전히 아닌 것도 아니지. 내가 조정에 인정 빚을 진 것이 있어서…… 됐네. 그냥 내가 조정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게."
수횡천은 한참 동안 해명했지만 스스로도 설득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예 자포자기한 채 인정하고 말았다.
좌우지간 그는 무림 맹주이다. 그가 조정을 위해 일하는 데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누가 감히 그와 싸울 것인가.
감히 싸워도, 싸워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