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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17)화 (717/1,004)

717화 더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오림 대인. 밥은 아무거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죠. 십육 전하가 금군을 거느리고 공주부를 포위 공격한 것은 정상적인 사무입니다. 저와는 상관이 없어요. 저는 기껏해야 십육 전하께 선물을 보냈을 뿐입니다. 그리고 똑같은 선물을 저는 이황자 전하, 삼황자 전하, 사황자 전하께도 모두 보냈습니다. 운을 어찌 네 곳에나 걸 수 있습니까? 그리고 참. 제가 오림 대인께도 선물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월령안은 옷소매에서 작은 나무함을 꺼내 오림 앞으로 밀어 주었다.

"오림 대인, 약소하지만 받아 주세요."

월령안은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마치 방금 전 오림과 서슬 퍼렇게 맞서며 일촉즉발의 태세까지 갔던 사람은 그녀가 아닌 듯싶었다.

"이건……."

월령안이 이렇게 말을 막자 오림도 더는 심문하는 자세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이 가는 대로 나무함을 열고 안에 든 종이를 꺼내 보고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관성 무역지역의 수익 반 할이라니?"

"오림 대인도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관성에 무역지역을 열게 되었습니다."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전하 네 분과 만난 것도 모두 이 장사 거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육 나리께 운을 걸었다고 하시는 건…… 대인께서 괜한 생각을 하신 겁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정력이 없거든요. 돈을 어디서 벌어도 다 똑같은 거죠. 제가 꼭 금나라에서만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월씨 가문은 금나라에서 사업도 모두 철수했습니다. 앞으로 저의 월씨 가문은 북요에서 주로 장사 기회를 찾을 겁니다."

그녀가 장사 거래를 하러 왔다고 하면 장사만 이야기할 것이다. 다른 일은 조금도 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완안유를 괜찮게 본다고 해도 결국 완안유를 위해 유세하는 일 같은 바보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완안유의 신하가 아니었다.

"북요라고요?"

오림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상 밖인 모양이었다.

"네, 바로 북요입니다."

월령안은 느긋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앉았다. 제멋대로인 가운데 나른함이 있어 마치 한담을 하는 듯했다.

"당신네 월씨 가문은 금나라에서 백 년을 경영했어요. 이렇게 포기하기에 아깝지 않나요?"

오림은 월령안의 어느 말이 진실이고 어느 말이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건 모두 그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는 이미 월령안에게 호의를 보였다.

나머지 시간에 그는 자신의 책임을 다해 물어봐야 할 것을 모두 물어보면 되었다. 월령안이 한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금나라 황제가 판단할 일이었다.

월령안은 물음마다 반드시 답했다.

"북요의 삼황자 야율헌일의 어머니는 제 어머니와 이모 사촌 자매예요. 장사라는 것은 물론 자기 식구들을 먼저 생각해야죠. 오림 대인, 제 말이 맞죠?"

"그랬군요."

오림은 더 이상 다그쳐 묻지 않았다. 월령안의 말을 믿는 듯 그는 탁자 위의 나무함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이건 무슨 뜻인가요? 전하 네 분께도 똑같은 분량으로 선물을 보냈나요?"

"그들은 오림 대인의 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네 사람에게 모두 반 할을 준다면 모두 합쳐 이 할의 수익이 된다.

만일 그 네 명이 모두 죽지 않는다면 그녀는 손해를 엄청나게 볼 것이다.

그녀는 계약서에도 덫을 놓았다. 얼마간의 수익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고 계약서가 아닌, 사람을 인정하는 것으로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 상인으로서, 화목하면 재산이 불어나므로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있으면 될수록 남과 얼굴을 붉히지 말아야 했다.

"왜요?"

오림이 물었다.

"따로 원인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월령안은 변함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견고한 강산이지만 물처럼 쉼 없이 흘러 바뀌는 것이 제왕이잖아요."

"으음……."

오림은 불편하게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이 말을 그는 정말 받아칠 방법이 없었다.

월령안은 정말 못 하는 말이 없었다.

"흠흠……."

오림은 멋쩍게 기침을 하더니 계속해 물었다.

"그럼 해주 공주는요? 왜 해주 공주한테는 보내지 않았나요? 비교해 보면…… 해주 공주의 배후 세력이 전하 네 분에 못지않잖습니까."

월령안은 해주 공주와 죽기 살기로 맞서면서 값진 선물을 완안유에게 보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금나라 황제뿐만 아니라 오림 자신도 무척 궁금했다.

두 사람을 비교할 때, 해주 공주는 모든 면에서 완안유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해주 공주의 부마가 제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게 되면 제가 왜 해주 공주한테 선물을 보내지 않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또다시 해주 공주를 짓밟아 줄 기회가 찾아왔다.

오림 대인은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눈치 있게 한마디 물었다.

"고 부마가 무슨 말을 했나요?"

"고 부마는……."

월령안은 비웃는 듯한 미소를 떠올렸다.

"해주 공주는 여 황제가 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더러 월씨 가문의 모든 힘을 기울여 해주 공주를 보좌하고, 목숨을 바치라고 하더군요. 제가 감히 거절한다면 좋은 끝장을 보지 못할 거라고 했어요. 오림 대인. 이게 무슨 뜻인가요? 저희 월씨 가문이 완안 가문의 노비인 것도 아닌데 제가 왜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그녀가 대체 뭔데요? 아닌가요?"

고현광은 물론 이렇게 예의를 차려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뜻은 같았다.

그녀는 기억력이 좋지 않았다. 들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시 되풀이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이해대로 재해석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잠깐 멈추었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저희 월씨 가문이 목숨을 바치더라도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지 어찌 폐하의 여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대인, 안 그런가요?"

오림은 잠자코 있었다.

이 말은 월령안이 그분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월령안의 표정은 워낙 진지하고 진실되게 보였기에, 만약 월령안이 그의 암시를 알아차렸다는 것을 몰랐다면 그녀의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이 월씨 가문 가주는 어린 나이임에도 이렇게 대단하니, 월씨 가문은 번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내뿜는 위압감에도 여전히 가볍게 웃으며 차분한 월령안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신의 자식을 떠올렸다.

'남의 집 자식 걱정은 무슨. 우리 집 자식은……. 휴.'

오림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계속해 금나라 황제가 궁금한 문제를 물었다.

"해주 공주는 평소 이처럼 방자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월 낭자, 혹 뭔가 오해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고 부마가 공주를 모함한 건 아닐까요?"

"대인께서는 잊으셨나요? 제가 해주 공주를 거절한 다음 날, 해주 공주가 군대를 파견해 저를 잡으려 했어요. 죄명은 폐하를 암살한 흉수를 은폐한 죄였습니다."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듯이 말했다.

"대인께서는 남자를 잘 알지만 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실 겁니다. 해주 공주의 배후 세력은 여러 황자보다 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주는 수도에 있었죠. 좋은 기회에 지리적으로 유리한 조건까지 모두 차지했죠. 그녀가 일개 여 상인의 체면을 봐줄 필요가 있겠어요?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여자를 더 시기하거든요. 모든 여자들이 자기 자신보다 뛰어난 여자가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림은 이 말도 받아칠 수가 없었다. 그는 확실히 해주 공주가 왜 월령안을 쓰려고 하면서 또 한편 질투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만 해주 공주의 아량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제왕이 가져야 할, 모든 것을 포용할 만한 흉금은 없었다.

오림은 곧 이 화제를 건너뛰고 계속해 물었다.

"해주 공주는 고 부마가 북요의 첩자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오림은 고현광이 북요의 첩자이자 주나라의 첩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주 공주는 그와 한 베개를 베고 살면서 모를 수가 없었다.

"전 모릅니다. 그건 해주 공주께 물어야죠. 제가 해주 공주가 아닌 이상, 정말 어리석어서 몰랐는지, 아니면 영리하게 모른 척했는지 어떻게 알겠나요."

월령안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녀는 해주 공주를 향한 적대감을 감추지는 않았지만, 해주 공주에게 아주 불리한 말은 하지 않았다. 오림은 그런 그녀가 의외로 느껴졌다.

월령안의 여러 가지 거동으로부터 볼 때, 그녀는 하찮은 원한도 꼭 갚는 사람이지 덕으로 원한을 갚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오림은 월령안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아무튼 고현광이 죽었으니 해주 공주가 뭐라 말해도 진실이 되겠죠. 그 몇 황자들은 해주 공주 배후 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 분명 그녀를 위해 좋은 말을 할 거예요.

해주 공주는 사랑에 빠진 바보 모습을 하고서 모든 일을 고현광에게 밀면 되죠. 그리고 두어 번 울면서 하소연하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일은 다 고현광이 나서서 한 것이라고 말하고요. 자신은 사랑에 빠진 여인일 뿐이라고 하면 되는 거예요.

어쩔 수 없어요. 세상은 여자들에게 불공평하죠. 끊임없이 여자들의 생존 공간을 빼앗아 여자를 남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약자로 만들었어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세상은 어떤 면에서는 여자에게 유리하기도 해요. 세상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이 힘이 약하고 멍청해, 마음속에는 사랑만 있고 안목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남자들에게 의지해 살 수밖에 없다고 여기죠. 때문에 힘없고 애처로우며 가련하면서도 또 사랑에 빠진 여인은 언제나 대다수 남성의 동정과 보호를 받거든요.

잠깐만요…… 해주 공주는 반드시 유약하고 억울함을 당했으며 깊은 사랑에 빠진 듯이 연기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 전하 세 분의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며 죄명을 모두 고현광에게 뒤집어씌울 겁니다. 죽은 사람이야말로 죄를 뒤집어씌우기가 가장 적합하죠. 아닌가요?"

월령안은 오림에게 다시 물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말을 마치자 일어나서는 오림에게 공수했다.

"한담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림 대인, 시간도 늦었으니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월 낭자, 우리들의 거래에 대한 건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채 묻지도 못했는데 월령안이 가 버리면 그는 금나라 황제에게 무어라 보고한단 말인가.

"거래에 대한 건 더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성의는 이미 제가 보여 드렸고요. 대인께서 저와 협력하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상단을 관성 무역지역으로 보내면 됩니다. 생각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또 협력할 기회가 또 있을 겁니다."

월령안은 뒤돌아 떠나려 했다.

오림은 서둘러 불렀다.

"월 낭자, 그래요. 당신이 말한 그 거래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안할 거래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월령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탁자 위 술 사발로 눈길을 돌렸다.

"대인께서 저와 이야기하려는 게 이 술 사발의 장사입니까?"

말하는 사이 월령안은 그중 사발 하나를 들었다. 오림은 그녀가 마시려는 줄 알고 귀띔을 해줘야 할지 망설였다. 이때 그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옛날에는 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삼았죠. 대인, 이 두 술 사발은 혹시……."

"하지 마……."

오림은 서둘러 저지했지만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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