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화 장사는 장사일 뿐
시신에 갑자기 불이 붙었다. 궁전을 가득 메운 수백 명 중에서 한 명도 관에 가까이 다가가서 불을 끄지 못했다. 빈소에 불이 붙은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인가.
오림은 믿을 수가 없었다.
빈소의 이 화재와 궁문 입구에 갑자기 나타난 흑의인은 결코 우연일 수 없었다.
오림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에야 겨우 냉정해졌다.
"무엇 때문에 불이 붙었는지는 조사해 냈느냐?"
"소인이 금방 들어왔을 때, 대전에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습니다. 게다가 불이 난 자리에는 모두 검은 알갱이가 있었습니다. 소인은 누군가 고의로 지른 불이라고 의심됩니다."
비록 인위적으로 낸 화재라고 해도 그들이 잘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은 모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손쓴 사람을 찾아내면 어느 정도 속죄하는 셈이었다.
설령 그들 자신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가족은 한 가닥 희망이 있을 것이다.
시위는 불이 나서부터 끈 다음까지의 이상 상황에 대해 세부적인 부분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낱낱이 오림에게 보고했다.
'역시 누군가 손쓴 거였군.'
오림의 팽팽하던 신경이 순간 느슨해졌다.
"당장 궁문을 막아라. 찾아봐! 땅을 석 자 파서라도 흉수를 찾아내라!"
누군가 손쓴 거라면 반드시 그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손쓴 사람을 찾아내면 당연히 금나라 황제의 분노를 감당할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오림은 빈소의 화재, 궁문 입구 사사의 습격이 모두 해주 공주의 짓인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모든 증거가 해주 공주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해주 공주 본인도 깨끗하지 못했다.
오림은 해주 공주를 내놓으라고 다시 한번 완안유를 압박했다. 이번에 완안유는 거절하지 않고 시원하게 해주 공주를 내주었다.
그는 해주 공주 외에도 고 부마의 시체도 함께 내놓았다.
"나는 고 부마가 북요의 첩자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네. 그의 생부는 북요 대장군 신호이다. 안타깝게도 고 부마는 심문하기 전에 죽임을 당했어. 대인이 해주 공주를 인계받은 이상, 그럼 이 사실도 확실하게 조사하기를 바라네."
해주 공주는 이번에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다.
"전하의 귀띔 고맙습니다. 제가 반드시 상세하게 조사하고 어떤 첩자든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림은 완안유에게 공수했다. 태도가 공손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처럼 그렇게 경시하지도 않았다.
금나라 승상으로서 오림은 누구보다 사실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고 부마는 아마 해주 공주가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용포와 서신을 없애고 빈소에 불을 놓은 것이 누구인지는 딱 짚어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해주 공주가 용포를 숨기고 부락 수령들과 편지 거래를 하면서 역모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번에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세상 물정에 훤한 사람들이라 아무도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 좋은 말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해주 공주 배후의 부락 수령들도 그녀를 위해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그녀를 잘근잘근 밟아 죽이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것이다.
어쨌든 그들이 해주 공주와 주고받은 서신은 모두 타 버렸다. 증거가 없기에 한사코 아니라고 잡아떼면 아무도 그들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금나라 황제는 비록 몸이 회복되긴 했지만 예전 같지가 않았다.
금나라 황제는 줄곧 나라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있다고 자부해 왔다. 그래서 그는 감히 죽은 척도 할 수 있었다. 그는 가짜가 진짜로 변할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림은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탄식하고 말았다.
그는 마차에 오르기 전에 유왕부(遺王府)를 힐끗 뒤돌아보며 속으로 한탄했다.
이렇게 범상치않은 인물인 완안유를 경시했다니, 그가 눈이 삐었었던 게 분명하다.
오림은 대군을 파견해 해주 공주와 고 부마의 시신을 종인부(宗人府 - 왕족들을 감독하는 일을 하는 관아)에 보냈다. 그리고 더는 이 일에 개입하지 않았다.
종인부에는 금나라 황제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알아서 조사할 것이다.
지금 그는 다음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 * *
월령안은 바로 이때, 오림에게 그와 장사 거래를 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오림은 편지를 잡고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월령안을 몰래 만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름 없는 주점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그 주점은 성의 북쪽에 있으며 주변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 혼란스러웠다. 귀인들은 발을 들여놓지 않는 곳이었다.
성 북쪽에 있는 작은 주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다 있었다.
월령안은 구석에 앉아 주점의 사람들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했다.
주점의 모든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렇게나 거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그녀가 나갈 수 있는 모든 출구를 막고 있었다.
"주인님, 이 사람들……."
아로한은 안절부절못하고 앉아 있었다. 월령안이 전혀 알아채지 못한 줄 알고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 귀띔해 주었다.
"괜찮아."
그녀는 반란을 꾀하러 온 것도 아니고, 장사를 하러 왔을 뿐이다. 그녀가 먼저 오림을 건드리지 않으면 오림이 멸족을 당하려는 생각이 없는 한, 그녀에게 손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단지 상인일 뿐이며, 그녀를 죽여서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로한은 월령안의 담담하고 차분한 태도에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을 줄곧 칼자루에 얹어두고 온몸도 긴장 상태에 있었다.
"월……."
주점의 심부름꾼이 다가왔다. 아로한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뽑았다.
"걸핏하면 칼을 빼지 마. 우리 동업자를 믿어야지."
월령안은 손을 들어 아로한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심부름꾼을 보며 말했다.
"아닌가요? 형씨?"
"월 낭자, 저희 대인이 초청하십니다."
심부름꾼은 고개를 숙이고 공손한 자태를 보이면서도 말투는 강압적이었다.
"혼자서만 올라오라 하셨습니다."
"좋아요!"
월령안은 술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아로한은 동의하지 않았다.
"주인님……."
월령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성 동쪽에서 파는 소병(燒餠 - 불에 구운 떡)을 먹고 싶구나. 아로한, 네가 가서 하나 사다 주렴."
"주인님!"
아로한은 화를 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장난칠 수 있단 말인가.
"어서!"
월령안의 목소리는 매우 가벼웠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금나라에서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나를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구족이 사멸되고 죽어도 몸이 묻힐 곳이 없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이 말은 아로한에게 하는 말이지만, 또한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해주 공주와 고현광은 월씨 가문이 금나라에서 한창 잘나갈 때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월씨 가문 사람의 일 처리 방식을 잘 모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월씨 가문 사람들의 일 처리 방식을 알고 있는 오림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월령안이 말을 마치자 시끌벅적하던 주점은 한순간 적막에 빠졌다.
주점 안, 외모적으로 별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월령안을 일제히 바라보았다. 눈에는 사나운 빛이 서려 있었으나 누구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아로한은 이 광경을 보고 자신의 걱정이 괜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곧 칼을 다시 꽂아 넣고 월령안에게 포권하여 예를 올렸다.
"주인님, 소인 지금 곧 가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 성큼성큼 떠나갔다.
손님들의 시선이 아로한에게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감히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자, 이제 그만 계속해 술이나 드시지요."
월령안은 평소와 다름없이 미소를 지으며 심부름꾼더러 길을 안내하라고 손짓했다.
심부름꾼도 변함없는 표정으로 월령안을 뒤뜰의 한 다락방에 데리고 갔다.
월령안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림 대인을 한번 만나뵙기가 참 힘들군요."
"월 낭자, 담력이 좋군요!"
승상 오림은 낡은 무명옷을 입고 방 안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탁자 위에는 커다란 사발 두 개에 술이 가득 담겨 있었고, 반대편에는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월령안은 오림의 맞은편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오림은 술 사발을 들었다.
"월 낭자, 자……."
"죄송합니다. 얼마 전에 독약에 중독되었습니다. 술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술은 마실 수가 없었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겠는가.
"월 낭자, 제 체면을 안 봐주시는 건가요?"
오림은 행동을 잠깐 멈추었다.
"혹시 제가 술에 무엇을 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장사일 뿐입니다. 돈만 벌면 됐지, 웬 체면 타령이세요?"
무엇을 탔는지 안 탔는지는 귀신이나 알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일이 수틀리면 그냥 장사를 하지 않으면 되었다.
이 세상에서 누구든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 정도 체면도 봐주지 않는 것이 월 낭자의 사업 태도인가요?"
오림은 여전히 술 사발을 들고서 월령안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거래를 하는 거예요. 당신이 아무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다 그녀가 꼭 함께 먹고 마셔야 한단 말인가.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오림은 술 사발을 내려놓고 월령안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월 낭자께서 저를 찾은 것은 정말로 장사 거래를 하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요. 그게 아니면 또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월령안이 되물었다.
"완안유!"
오림은 오른손으로 탁자를 잡고서 윗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기세등등하게, 심문하는 자세로 월령안에게 따지고 들었다.
"당신은 지금 그를 도와…… 또는 당신이 그에게 운을 걸었잖아요? 아닌가요?"
자세히 보면 탁자 위에 놓인 오림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한쪽으로 뻗쳐 나와 있었다.
월령안은 힐끗 보고 웃었다.
'오림 대인,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
오림 대인이 이렇게 뻔하게 암시하는데 이것도 알아채지 못하면 그녀는 바보였다.
다락방에는 제삼의 세력이 있었다.
오림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면 물론 금나라 황제뿐이었다.
'정말 아쉽군.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데도 손을 쓸 수 없다니.'
월령안은 속으로 탄식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오림의 기세등등한 심문에 대처했다. 그녀도 지지 않고 한 손을 탁자 위에 올리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완안유가 저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저는 단지 상인일 뿐입니다. 오림 대인은 생각이 참 많으시군요."
그녀는 대범하게 완안유와 접촉했다. 기껏해야 그와 두어 마디 더 했을 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결백하기에 그녀는 누가 조사하든 전혀 두렵지 않았다.
"당신이 완안유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그러면 그가 어떻게 해주 공주가 당신을 괴롭힐 때, 금군을 데리고 가서 당신을 도왔겠습니까?"
월령안의 이 말은 그도 속일 수 없었다. 그런데 금나라 황제가 어찌 믿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