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4화 피의 치욕은 피로 씻어야 한다
일을 마치자 월령안은 음식과 물을 가지고 소녀들이 묵는 궁전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많이 늦은 탓에 월령안은 그 소녀들이 진작에 잠들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월령안이 들어가자 소녀들은 전부 일어났다.
소녀들은 월령안을 둘러싸고 먹을 것을 찾았냐고 물었다. 그녀들은 배고 고픈 나머지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 있어."
월령안은 손에 든 찐빵과 물을 쳐들었다. 그러자 소녀들이 환호하며 뛰었다. 그녀들은 자기들이 순장될 사람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달님이가 최고라고, 달님이의 말을 듣기 잘했다고 환호했다.
월령안의 기분도 좋아졌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사람들을 일깨웠다.
"쉿! 조용히 해. 밖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말고. 우리 몰래 먹자고. 찐빵이 많지 않아. 두 사람이 하나씩이야. 천천히 먹어. 그럼 더 쉽게 배불러질 수 있으니까."
소녀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스로 옆사람과 나누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다투거나 빼앗는 사람이 없었다. 마지막에는 찐빵 하나가 온전히 남았는데, 소녀들은 하나같이 월령안이 그 하나를 다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월령안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했다.
다음 날, 소녀들은 날이 밝자마자 깨워졌다. 사람마다 물을 한 사발씩 마시고 영당으로 보내졌다. 여전히 하루 종일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젯밤에 찐빵 반 개가 허기를 달래 줬기에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다른 소녀들은 물론, 월령안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영당에서 떠날 때, 소녀들은 얼굴 가득 빛을 잃고 누르스름해 있었다. 하나같이 기운이 없어서 서로서로 부축한 채로 밖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길에서 태후궁의 궁녀가 다가왔다. 그녀는 태후가 소녀들을 만나고 싶어 하니 지금 바로 가라고 했다.
길을 안내하는 내관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누님, 이 소녀들은 모두 폐하와 함께 묻힐 사람들이에요. 이 애들이 무슨 복이나 능력이 있어 태후를 만나 뵙겠어요?"
"태후 마마께서 직접 보겠다 하셨다. 태후 마마께서는 너희들이 고른 사람이 폐하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계신다."
태후의 지위는 아주 높았다. 궁에서 아무런 실권이 없더라도 아래 노복들은 감히 태후와 드러내고 척을 지지 않았다. 특히 황제가 이미 죽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내관은 감히 더 막지 못했다. 그저 울상을 한 채로 궁녀가 월령안 일행을 데려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월령안은 사람들 뒤에서 가고 있었다. 몇몇 소녀들도 일부러 뒤떨어져서 낮은 목소리로 월령안에게 물었다.
"달님아, 태후께서 우리를 힘들게 하실까? 우리는 대범하게 웃어야지 울면 안 되겠지? 태후께서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으니까?"
"대범하기만 하면 돼. 억지로 웃을 필요는 없어."
이 소녀들은 모두 곧 황제의 시신과 함께 순장된다. 그런데 또 웃기까지 하라니. 월령안은 그 흰 눈썹의 늙은 내관이 사람을 너무나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좋아, 우린 달님이의 말을 들을래."
소녀들은 월령안의 말을 듣고 모두 긴장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앞의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맨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궁녀는 발걸음을 쉬지 않고 앞으로 가느라 소녀들의 행동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소녀들은 긴장하여 피곤과 허기를 완전히 잊었다. 하나같이 침착한 걸음으로 걷는 것이 활기차 보였다.
그러나 태후는 모든 사람을 불러들이지 않았다. 다만 각 줄에서 한 사람만 불러들였다. 모두 열한 명이 궁전에 불려 들어갔다. 월령안은 맨 마지막의 한 명이었다.
열한 명은 동시에 궁전으로 들어가 태후에게 예를 올렸다. 태후는 한 명 한 명 앞으로 불러 이름, 나이, 사주팔자와 어느 부락에서 왔는지, 집에는 누가 있는지, 자발적으로 온 것인지 물었다.
다 물은 뒤, 사람들을 물러가게 했다.
앞의 열 명이 차례가 끝난 뒤, 월령안이 앞으로 다가갔다.
이때, 대전 안에는 태후의 사람을 제외하고 외부인이 월령안 한 명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태후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예를 올렸다.
"월씨 령안이 태후를 뵙습니다."
"네가 온갖 꼼수를 부려 날 찾은 것은 무슨 일이냐?"
금나라 태후는 희고 고운 외모에 더없이 화려하기까지 해서 삼십 대 초반처럼 보였다. 그녀에게서는 성숙한 여인의 매혹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또 황족의 접대를 받은 덕에 우러나오는 귀티가 느껴졌다.
월령안은 시선을 들고 태후를 직시하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금나라 황제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태후의 반응은 너무 격했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손에 든 찻잔을 깨트렸다.
태후는 황제가 죽지 않은 것을 몰랐던 것이 분명했다.
"제가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관 안의 시신은 황제가 아니었어요. 태후 마마께서 믿을 수 없으시다면 친히 가서 보시지요. 태후 마마께서는 황제의 몸은 낯설지 않을 테니까요."
월령안은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태후는 갑자기 화를 냈다.
"닥치거라!"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마, 어떤 일은 마마께서 귀를 막고 안 들으신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금나라 태후는 황제의 노리개였다. 금나라에서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금나라 태후는 예전에 초원 제일의 미인이라고 불렸다. 전임 황제는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우연히 태후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대신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태후의 의지도 무시한 채, 태후를 후궁에 들이고 황후로 세웠다.
태후는 전임 황제보다 무려 오십 살 가까이 어렸다. 입궁한 뒤, 전임 황제의 사랑을 받아 후궁에서 수년간 총애를 독차지했다. 그러나 한 번도 임신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태후가 임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임 황제가 태후를 맞아들였을 때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일부 기능은 쓸 수가 없었다. 물론, 그는 태후를 임신시킬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전임 황제가 죽자마자 태후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새 황제는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임 황제의 유언도 무시한 채, 억지로 태후를 남겼다. 그리고 태후가 아이를 낳은 뒤에 그 아이를 왕으로 봉했다. 심지어 이 아이가 자기와 닮았다는 말도 했다.
그 후로 황제는 더욱 거리낄 것이 없이 자주 태후의 궁에서 밤을 보냈다. 전혀 사람들의 소문을 신경 쓰지 않았다.
금나라에서는 아버지의 처와 첩실도 유산으로 쳤다. 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물려받는 식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전임 황제는 아들에게 태후를 유산으로 남기지 않았다. 심지어 눈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황제가 이미 아버지가 죽기 전부터 태후와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일은 금나라에서 비밀이 아니었다. 금나라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만 태후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자기가 듣지 못했으니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월령안은 금나라 태후의 앞에서 이 일을 콕 찍었다. 그녀는 태후에게 수치심을 안겨 주려는 생각이 없었다. 다만 태후를 부추기려는 것뿐이었다.
태후의 살인적인 눈빛을 무시한 채, 월령안은 여유롭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마마…… 피의 치욕은 피로 씻어야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감추고 숨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마마께서 이런 얘기를 듣기 싫으시고 조정 대신들의 지적 속에서 살기 싫으시다면 오직 지위가 높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들이 마마를 존경하고 두려워하며 마마 앞에서 감히 마마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못 하고 마마께서 원하시는 말만 할 것입니다."
"너…… 뭘 하려는 거야?"
태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마음이 움직인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이는 월령안의 설득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야망의 힘이었다!
태후는 야망이 있는 여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 치욕을 참으면서 살아남지 않았을 것이다.
"금나라 황제께서 죽고 싶어 하시니 마마께서 완전히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황제가 죽게 하면 되는 겁니다. 조정 대신들은 황자들이 싸우는 것이 싫어 황제를 암살한 자객을 잡는 이유로 황자들을 잡아 두었습니다. 우리는 범인을 내놓아 마마의 아들이 황위에 오르게 하면 됩니다."
일국의 제왕이 바뀌는 것은 큰 일이지만 월령안의 입에서는 더없이 작은 일이었다.
태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아들은…… 단지 한량에 불과해. 권력도 없고 병사도 없는데 황위에 앉은들 어쩌겠느냐?"
자기의 아들을 황제로 세운다?
금나라 태후는 물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생각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궁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은 황후가 아닌 태후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후궁의 가장 비천한 비빈들보다 더 비천했다. 존귀하기는커녕 존엄조차 전혀 없었다. 그녀는 꿈에도 자기의 아들을 황위로 떠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금나라 황제는 줄곧 그녀를 경계하고 그녀의 아들을 경계했다. 그녀의 아들이 자기의 아들인데도 그는 경계했다. 또 그들 모자가 그의 제어에서 벗어날까 두려워 그들 모자에게 조금도 권리를 주지 않았다.
"마마께서 앞의 일만 하시면 됩니다. 황제의 죽음을 사실로 만드는 것이지요. 다른 것은……."
월령안은 입꼬리를 올리고 가볍게 말을 던졌다. 그녀의 표정은 여유롭고 자신만만했다.
"저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금나라의 병마는 조정의 병사와 부락의 병사로 구성되었다.
마침, 월씨 가문과 각각의 큰 부락은 관계가 아주 좋았다.
곧 월령안은 태후와 거래를 약속했다.
그날 저녁, 태후는 명령을 내렸다. 황실의 은덕을 표하기 위해 순장하는 소녀들에게 매일 맑은 죽과 찐빵 하나를 준다고 했다. 그리고 아흔아홉 명은 세 조로 나누어 복을 기원하는 스님들처럼 교대한다는 것이었다. 매일 영당에서 황제를 위해 네 시진만 경을 읊으면 된다고 했다.
태후는 아랫사람들이 겉과 속이 다르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히 의지(懿旨 - 황태후나 황후의 명령)를 내렸다.
소녀들은 의지를 받고 하나같이 태후가 인자하다고 외쳤다. 의지를 전하는 내관이 떠나간 뒤, 소녀들은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들은 울면서 너무 잘됐다고, 배를 곯지 않고 몸을 혹사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기뻐했다.
'이 정도로 만족해?'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상은 바로 이렇게 이상했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 많은 것을 가졌으나 만족할 줄 몰랐다. 그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가지지 못한다면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원망했고 가졌다고 해도 만족하지 않았다. 도리어 원래부터 자기들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살아 있을 권리조차 없었다.
"달님아……."
월령안과 함께 태후를 만나러 갔던 소녀는 월령안의 손을 잡고 머리를 월령안의 팔에 기댔다.
"네가 태후 마마께 말씀드린 거야? 태후 마마께서는 절대 이유 없이 우리들에게 음식을 주시지 않으셨겠지. 내가 태후 마마를 뵌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어. 그녀들도 나처럼 태후 마마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대."
"그래. 내가 말한 거야."
월령안은 통쾌하게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