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3화 금나라 황제의 비밀
이때, 하늘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다. 월령안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청 안의 소녀들이 모두 돌아가게 눈치를 주었다.
'오늘 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잘 쉬자. 잠을 푹 자야 정신을 차리지. 내일 입궁한 뒤에 다시 생각하자.'
소녀들은 월령안이 다시 들어왔을 때, 당황한 표정 없이 평온한 얼굴인 것을 보고 영향을 받아 같이 차분해졌다. 몇몇 낙관적인 소녀는 주먹을 움켜쥐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기도 했다.
"잘될 거야. 다 잘될 거야!"
기껏해야 죽을 뿐이었다. 그녀들은 죽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데 또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소녀들의 회복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밤에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난 소녀들은 하나같이 눈이 초롱초롱했으며 얼굴이 발그레했다. 전혀 겁을 먹은 것 같지 않았다.
아침에 소녀들을 데리고 입궁하려고 찾아온 사람은 여전히 어제의 그 눈썹이 하얀 늙은 내관이었다.
늙은 내관은 소녀들을 일렬로 줄을 세우고 소녀들 앞으로 일일이 지나다니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야지! 입궁한 뒤, 너희들 모두 내 체면을 세워 주면 나도 너희들을 섭섭지 않게 대할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어요!"
소녀들은 씩씩하게 높은 소리로 대답했다.
눈썹이 하얀 늙은 내관은 얼굴의 기쁨을 억누르지 못했다.
월령안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몰래 힐끗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금나라의 풍속 문제인가? 황제가 죽었는데 궁의 사람들이 이토록 기뻐할 수 있는 건가? 또는 정말 내 추측대로 금나라의 황제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겠어. 그는 단지 일부러 소문을 퍼뜨려 이 기회에 야심이 있는 사람들을 한번 정리하려는 것인가?'
월령안은 마음속에 생각이 가득한 채로 흰 눈썹의 늙은 내관을 따라 궁으로 들어갔다.
궁으로 들어간 뒤, 궁에는 그녀들을 신경 쓰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들 일행은 영당(靈堂 - 영구나 영정을 모신 방.)에 던져졌다. 그녀들더러 금나라 황제에게 복을 기원하고 경을 읊으라고 했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건 기회인가 아니면 함정인가? 내가 도박을 걸어 봐야 하나?'
금나라 황제의 생사를 확인하면 그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처럼 월씨 가문과 가까운 금나라 황자를 황위에 올릴 수 있었다.
결국엔 제왕이기에 진짜로 죽은 것이든, 죽은 척하는 것이든, 장례식을 치르기 시작했으면 있어야 할 예식은 허술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영당 안에 아흔아홉 명의 순장 소녀들을 제외하고 또 아흔아홉 명의 큰스님이 관을 둘러싸고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이 스님들은 밤낮 쉬지 않았고 지치면 교대했다.
월령안과 순장될 소녀들이 영당에 있을 때, 마침 스님들이 교대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이 시간을 기억했다.
순장될 소녀들은 모두 아흔아홉 명이었는데 그녀들과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들은 물 한 방울 먹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영당에 꿇어앉아 있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서야 그녀들은 떠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소녀들은 배도 고프고 지쳐 있었다. 행수 내관을 따라 머무는 곳으로 돌아온 소녀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 어린 내관이 그녀들에게 가져온 것은 멀겋다 못해 바닥이 보이는 쌀죽 한 그릇뿐이었다.
그 내관은 으스대며 말했다.
"너희들은 내려가서 폐하를 모실 사람들이니 반드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해야 한다. 이 마흔아홉 날 동안 너희들은 매일 한 끼, 쌀죽을 먹게 될 거야. 만약 먹기 싫다 하면 바로 버릴 거야. 이 궁에서 너희들을 봐줄 사람은 없어. 알겠어?"
소녀들은 말을 하지 않고 일제히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그릇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그릇의 변두리를 가볍게 한 번, 또 한 번 쳐 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릇 안의 쌀죽을 홀짝홀짝 들이켰다.
소녀들은 뭐든 월령안의 말을 들었다. 월령안이 마시는 것을 보자 곧 자기의 몫을 들고 두세 입에 멀건 죽을 다 마셨다.
어린 내관은 난화지(蘭花指 - 검지와 소지를 펼치고 여성스럽게 무언가를 잡는 모양새)를 쳐들고 다른 사람들을 불러 그릇과 수저를 챙겨 갔다. 그리고 소녀들더러 빠져나갈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얼른 자라고 엄포를 놓았다.
내관은 가면서 모든 문과 창문을 잠갔다.
소녀들은 울상을 하고 두리번거렸다. 방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주린 배를 움켜쥔 채 말했다.
"너무 배고파, 목도 너무 마르고. 달님아, 우리 어떻게 해야 해? 이제 첫날인데 나 벌써부터 못 견딜 것 같아."
"너희들이 밤에 날 엄호해 줘. 내가 나가서 먹을 것 좀 찾을 수 있나 둘러보고 올게."
월령안은 밤에 무슨 이유를 대고 외출할지 고심하던 차였다. 핑계도 생겼으니 잘 되었다.
"가능하겠어? 위험하겠지?"
소녀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달님아, 위험하다면 가지 마. 배가 고픈 것뿐이잖아. 오랫동안 배고프다 보면 익숙해져."
"맞아, 맞아, 우린 굶는 게 두렵지 않아. 우리는 대부분 굶는 것에 익숙해. 집에서도 자주 굶었는걸. 두어 날 굶는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나 마흔아홉 날을 굶는 것은 너무 힘들 것이다.
소녀들은 배가 고파 기운이 하나도 없으면서 꿋꿋하게 정신을 가다듬고 월령안을 위로했다. 그녀들은 월령안이 모험하러 가는 것이 싫었다.
월령안 얼굴의 미소는 퍽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한번 시도해 볼게. 정 안 되면 돌아오고. 난 모험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하자 소녀들도 억지로 월령안이 몰래 먹을 것을 찾으러 가는 것에 동의했다.
밤이 깊어지자 월령안은 소녀들의 엄호를 받으며 몰래 밖으로 빠져나갔다.
"큰아가씨."
월령안이 나가자 구석에서 어린 내관 하나가 앞으로 다가와 월령안에게 예를 올렸다.
달빛이 어린 내관의 얼굴을 비추었다. 저녁 무렵에 소녀들에게 죽을 가져왔던 그 내관이었다.
이때의 그는 얼굴에 중성적인 기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직 강인함과 침착함뿐이었다.
내관은 손에 든 보따리를 월령안에게 바쳤다.
"큰아가씨, 영당 쪽에는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일각 뒤, 영당에서 백촉(白燭 - 흰 초)을 바꿉니다. 아가씨께서 가장하실 사람은 소명자라는 내관입니다. 그는 평소 다수간(茶水間 - 탕비실)에서 시중을 드는 터라 다른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쉽게 들키지 않을 것입니다."
월령안은 보따리를 받고 열더니 안에서 옷을 꺼냈다. 그리고 옆으로 가서 갈아입었다.
다시 나왔을 때, 그녀는 청조하고 잘생긴 어린 내관으로 변해 있었다.
월령안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어린 내관과 말했다.
"찐빵 한 소쿠리와 물 두 주전자를 얻어 오너라. 반 시진 뒤,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너 먼저 떠나거라. 흔적을 모두 치우고."
"네, 큰아가씨."
어린 내관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월령안의 분장이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월령안을 데리고 영당으로 갔다.
월령안이 도착했을 때, 당직을 서는 내관들은 모두들 손에 백촉을 들고 마지막 검사를 하고 있었다. 월령안이 늦게 온 탓에 우두머리인 내관이 두어 마디 욕설을 퍼부었다. 월령안은 설설 기며 고개를 수그린 채, 사정했다.
그 내관은 더 욕하고 싶었으나 앞에서 폐하께 백촉을 바꾸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빨리하라고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내관은 더 이상 욕하지 못했다. 또 월령안이 손에 든 백촉을 살펴볼 시간도 없었다. 그는 사람들더러 어서 앞으로 가라고 재촉했다.
월령안은 백촉을 든 채, 맨 뒤에 있었는데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일행 아홉 명의 내관들이 줄지어 들어와 하나씩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관 주위의 백촉을 하나하나 차례로 바꾸었다. 전체 과정이 여유롭고 빨랐으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월령안은 묵묵히 내관들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앞으로 다가갔을 때, 그녀도 긴장하지 않았다. 다만 행동이 다른 사람들보다 느렸다.
월령안이 바꾸려는 그 백촉은 관의 왼쪽 위에 위치해 있었다. 그녀의 자리에 서서는 관 안의 사람 얼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월령안은 백촉을 바꾸는 빈틈을 타서 빠른 속도로 한번 훑어보았다.
그녀는 금나라 황제를 본 적이 있었다. 비록 십 년 전이었으나 성인의 외모 변화는 그리 크지 않았다. 관 안의 사람이 금나라 황제인지 아닌지 판단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관 안의 금나라 황제는 얼굴에 금색 가면을 하고 있어 얼굴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월령안은 시선을 살짝 옮겨 황제의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금나라 황제의 오른손 손가락이 여섯 개라는 것을 알았다. 이상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가 태어나자마자 생모는 직접 그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잘랐다.
손가락은 비록 잘렸으나 상처는 여전히 있었다.
금나라 황제가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은 오른쪽에 있었다!
그녀가 금나라 황제가 심장이 검에 찔려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죽은 척하는 것이라고 의심하는 이유가 이것이기도 했다.
금나라 황제가 왼쪽 가슴이 찔린 것이라면 절대 즉사하지 않을 것이다.
관 안의 시신은 왼쪽 가슴을 다쳤다. 얼굴에 가면을 하고 오른손은 엉망진창으로 그어졌다.
감추려 할수록 더 드러나는 법이다!
월령안의 시선에는 조롱의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낡은 백촉을 들고 침착하게 물러갔다.
나갈 때, 그의 동작이 너무 느린 탓에 행수 내관에게 욕을 먹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숙인 채, 잘못을 인정하며 연신 빌었다.
그녀가 나갔을 때, 다른 사람은 이미 돌아가고 월령안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이 월령안을 편리하게 했다.
반 시진 뒤, 월령안은 내관과 만나서 자기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내관이 찾아온 찐빵과 물을 받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나라 태후한테 전갈을 하거라. 내가 한번 만나고 싶어 한다고."
금나라 태후는 금나라 황제의 생모가 아니었다. 태후는 황제보다도 나이가 어렸다. 전대 금나라 황제가 말년에 세운 황후였다. 황후를 세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임 황제는 죽고 말았다.
죽기 전에 태후를 순장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당에서 태후가 임신한 것이 밝혀졌다. 황제는 이로 인해 다수의 의견들을 물리치고 태후를 지켰다.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니 금나라 태후와 황제의 사이는 아주 좋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