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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702)화 (702/1,004)

702화 울지 마, 다 지나갔잖아

월령안의 예상대로 나가자마자 보이는 곳에 그 소녀가 비참하게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온몸은 멍으로 가득했고 커다랗게 뜬 두 눈은 보기에도 무척 무서웠다.

월령안은 차분하게 다가가 그 소녀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그녀의 숨결을 살펴보았다.

"너 역시 죽지 않았구나."

월령안은 몸을 일으켰다.

"죽지 않았으면 일어나. 여기 누워서 사람 놀라게 하지 말고."

"너……."

그 소녀는 고개를 돌려 월령안에게 눈을 부릅떠 보였다. 그리고 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너…… 그러고도 사람이야?"

그녀가 이토록 비참한 것을 보지 못했다는 말인가?

가엾게 여기거나 동정하지 않아도 겁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요즘 여자애들은 모두 이렇게 겁이 없단 말인가?

"사람이 아닌 것은 내가 아니라 너지."

월령안은 내려보며 한기를 띤 목소리로 말했다.

"애써 이런 연기를 하는 것은 일부러 우리를 겁 주려는 거잖아. 너의 목적을 이루고도 여기에 누워서 누구를 더 놀라게 하려는 거야?"

이 소녀가 뛰쳐나올 때부터 그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싸늘하게 상대방이 시달리는 것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너…… 어떻게 안 거야?"

소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네가 뛰쳐나갈 때, 발걸음을 아주 빨리 뗐잖아. 궁의 그 늙은 내관이 널 벌하려고 할 때도 넌 전혀 머뭇거리지 않았어. 이건 아주 부자연스러워."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그때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나서서 이 소녀를 위해 사정했을 것이다.

그녀는 구리파의 비극이 다시 그녀의 앞에서 재연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걱정하고 신경 썼기에 이 소녀의 이상함을 발견했다.

"역참 모든 소녀들은 폐하께 순장 되러 가는 사람들이야. 우리 중에는 남는 인원이 없어. 폐하께 순장하는 소녀들은 반드시 몸과 마음이 깨끗해야 해. 네가 순장되기 싫어서 뛰쳐나와 소란을 피웠으니……."

월령안은 소녀를 힐끗 보고 냉소를 지었다.

"원래대로 하면 궁의 사람은 널 때리더라도 네 몸을 망가뜨리면 안 되는 거야. 일단 네가 순결을 잃는다면 순장할 수가 없잖아. 늙은 내관은 우리더러 내일 아침 일찍 입궁하라고 했어. 하룻저녁밖에 남지 않았는데 한 명 줄어든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을 데려올 수 있겠어?"

늙은 내관이 호령 한마디 하지 않고 바로 소란을 피운 소녀를 끌어가라고 한 것을 보고 월령안이 알아챈 것이다.

이는 단지 겁을 주려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대담하게 추측한 거야. 폐하께 순장하는 사람은 백 명이 아니라 아흔아홉 명이고 넌 원래 순장 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넌 우리들 중에 섞여서 일부러 우리들에게 순장되는 것을 거부하며 소란을 피운 결과를 보여 준 거야. 우리가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게 하려는 거지. 맞아?"

"너 아주 똑똑하구나!"

바닥에 누워 있던 소녀는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고 화를 내며 일어났다. 그리고 이를 악문 채, 월령안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이미 눈치챘다니 알 거야. 너희들은 순순히 순장 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너희들이 문제 없이 순장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우린 뭐든 해낼 수 있어!”"

"여기로 보내진 뒤로는 살아서 나갈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 그러나 난 처참하게 죽고 싶지는 않아. 우리 거래를 하는 게 어때?"

월령안은 상대방이 자기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생각이 없는 것을 보고 자기가 건 도박이 맞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순장되는 소녀 아흔아홉 명은 이 시기에 한 명도 적어서는 안 되었다. 한 명도 일이 생겨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상대방의 꼼수를 까발려도 이 소녀는 그녀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거래? 한낱 순장인(人殉 - 순장 당하는 사람.)인 주제에 감히 나와 거래를 하겠다고?"

순장인은 그들 눈에 가축과 다름없었다. 모두 약이 주입된 채,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난 저 소녀들이 말을 듣게 할 수 있어. 저자들이 순순히 네 말을 따르게 하고 중도에 아무런 예외도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어."

월령안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 소녀는 몸에 걸친 옷을 여미고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 네가 없어도 우리는 저자들이 순순히 따르게 할 수 있어."

"반대로, 난 저들이 소란을 피우게 부추길 수도 있어. 심지어 순장하기 전에 집단 자살할 수도 있어. 내가 저들을 불러 함께 죽을 수도 있어."

말을 마친 월령안은 일부러 매섭게 소녀를 노려보았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지금 그저 열네 살 된 소녀일 뿐이었다. 그녀는 총명할 수도, 침착할 수도 있었으나 속셈이 있을 수는 없었다.

예상대로 그 소녀는 월령안을 안중에 두지 않고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널 구해 주는 것은 불가능해. 너희들의 수는 사주팔자를 모두 계산해 결정된 거야. 한 명도 적어서는 안 돼."

"날 구해 달라는 게 아니야. 난…… 난 네가…… 한 사람을 죽여 줬으면 해!"

월령안은 소녀의 경계를 풀려고 감정을 가다듬어 자기의 '증오'를 드러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열네 살 때의 순진함을 흉내 낼 수 없었다. 그녀는 단지 자기가 열네 살 때 모습을 흉내 낼 뿐이었다.

월령안은 정말 누구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줘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려는 것이었다.

말을 마친 월령안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누구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

그녀가 말하는 그 사람은 반드시 그럴듯해야 했다. 그게 아니면 상대방이 조사했을 때,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긴박하여 월령안은 깊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상대방이 누구를 죽일지 묻기 전에 월령안이 먼저 입을 뗐다.

"내 약혼자를 죽여 줘!"

"좋아!"

그 소녀는 월령안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대답했다.

월령안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왜 이유를 물어보지 않아?"

'이번 관문은 통과한 것이네.'

소녀는 비꼬며 말했다.

"무슨 이유라고 할 것이 있겠어? 그 남자가 널 배신했겠지."

"너, 너! 어떻게 안 거야?"

달님이의 약혼남은 좋은 사람이 아닌 것이 확실했다. 월령안은 그를 이런 식으로 말해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이게 뭐가 어려워."

소녀는 비웃고 자기 몸의 흔적을 가리키며 눈물이 고인 채로 웃음을 터뜨렸다.

"넌 내 출신을 알아? 넌 내가 원해서 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고 그 남자들에게 몸을 주는 거라고 생각해?"

여인은 빨개진 눈으로 흐느끼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는 부락 수령의 딸이야. 어느 개 같은 놈이 우리 어머니를 맞아들였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는 부락의 수령이 되었어. 우리 어머니 덕에 말이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죽었어. 난 그 사람들의 계략에 빠져 말 도둑들에게 납치당했어. 내가 말 도둑들을 죽이고 돌아왔을 때, 내 약혼자는 내가 더러워졌다고 내 의붓언니를 맞아들였어! 나보다 두 살이나 많지만 나와 어머니 모두 몰랐던 의붓언니를 말이야!"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내가 더럽긴 뭐가 더러워! 개 같은 놈들, 하나같이 거칠고 염치없는 것은 물론, 주나라 그 얌체 같은 놈들 따라서 툭하면 우리 여인더러 더럽다고나 하지. 우리 여인들이 아무리 더러워도 지들만 하겠어? 언젠가 여자 뱃가죽 위에서 죽어 버릴 겁쟁이들!"

소녀는 얼굴의 눈물을 세게 닦고 거의 미친 듯한 고함을 질렀다.

"하! 내가 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리겠어!"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고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소녀를 안았다.

"울지 마, 다 지나갔잖아!"

월령안이 대체한 소녀에게는 부모가 맺어 준 약혼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조정에서 순장할 소녀를 찾는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달님이를 떠밀었다.

그래놓고는 달님이가 가는 것이 확실해지자, 부락의 사람들 앞에서 약혼녀가 가는 것이 정말 슬프지만 모두를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그때 달님이의 부락에 있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있었더라면 그녀는 기필코 그 개놈들의 머리를 박살 냈을 것이다.

"지나가긴!"

소녀는 월령안의 포옹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월령안의 어깨에 기대 눈물이 흐르게 내버려 두었다.

"난 그 개 같은 약혼자와 그 천박한 여인을 죽였어. 그런데 우리 어머니를 이용했던 그 개자식은 아직 살아 있어. 게다가 멀쩡한 부락의 수령이기까지 해! 그들이 모조리 죽지 않았다면 이 일은 지나간 게 아니야!"

월령안은 어깨 한쪽이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 그녀는 소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지나갈 거야. 네 복수도 할 거야."

여인은 고개를 들고 차가운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복수를 한다고? 네가 내 복수를 해 줄 거야? 그의 작은 딸은 삼황자의 여인이야. 삼황자는 황제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인데 나더러 어떻게 복수하라고? 난 평생 복수도 못 한 채, 이렇게 무능하게 살아갈 거야."

"네가 내 복수를 도와준다면 나도 도울게."

그녀는 이 소녀의 복수를 돕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말 도둑들에게 납치당하고도 살아 돌아왔고 배신한 남자를 죽인 여인이었다. 이 여인에게 기회를 준다면 반드시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이런 여인이라면 월령안은 한번 도와줄 만했다.

여인은 얼굴의 눈물을 닦아 버리고 비웃었다.

"네가 어떻게 날 도와줘? 넌 곧 죽을 사람이야. 네가 날 돕는다고? 네가 이렇게 말한다고 내가 널 살려 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꼬마야, 알려 줄게. 너희 같은 사람들은 입궁한 뒤, 깨끗한 몸으로 죽기도 힘들어. 알겠어?"

소녀는 독살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말속에는 암시로 가득했다. 월령안은 알아들었다.

월령안은 더 이상 고집스럽게 소녀를 설득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 계속 거래를 하자고. 네가 기회가 된다면 그 사람을 죽여 줘. 그럼 우린 입궁한 뒤에 절대 너한테 폐를 끼치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을게."

"좋아! 네가 해낼 수만 있다면 반드시 네 원수를 갚아 주겠어."

소녀는 단언하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옷깃을 여민 뒤, 돌아서서 떠나갔다. 두어 걸음 걷다가 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꼬마야, 기억해. 난 오기격(烏其格)이라고 해."

말을 마친 소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나갔다.

월령안은 제자리에 서서 티가 나지 않게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제 그녀는 곧 순장될 소녀들이 불쌍한지, 오기격이 더 불쌍한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여인은 힘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약했다. 여인은 태어날 때부터 남자보다 신체적으로 약했다.

그러나 남자는 여인을 억누르기 위해 많은 제한을 내걸었다.

과거, 벼슬, 장사……. 이런 돈을 벌 수 있고 지위도 올릴 수 있는 일들은 전부 여인이 못 하게 했다.

몸에 돈이 없고 수중에 권리도 없이 시간이 오랫동안 흐르다 보면 여인의 지위는 점점 낮아지게 된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완전히 남자의 소유물로 전락하고 남자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여인은 반드시 자립하고 스스로 강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기격이나 순장 당하는 소녀들 같은 여인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하기는 쉬웠으나 행동으로 옮기기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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