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701)화 (701/1,004)

701화 순장을 위해 보내진 소녀들

금나라 황제가 진짜로 죽었든, 죽은 척하는 것이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니 설령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장례식은 치러져야 했다.

며칠 전, 각 부락에는 금나라 조정의 명령이 도착했다. 각 부락에서 처녀를 한 명씩 바쳐 황제를 위해 순장해야 한다고 했다.

금나라의 황궁에 숨어들기 위해 월령안은 그들 중에 섞여 초원의 외딴곳에서 보내온 순장 소녀로 위장하였다.

월령안이 위장한 신분은 타목극(朵木克) 부락의 작은 귀족의 딸이었다. 그녀의 아명은 달님이(小月亮)였다.

달님이는 생모가 일찍 죽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늙은 하인에게 던져져 자생하고 자멸했다.

초원의 생존 환경은 악랄했다. 금방 태어난 갓난아기는 부모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이 없다면 아주 쉽게 요절했다.

원래의 달님이는 돌이 되기 전에 그만 죽고 말았다. 월씨 가문의 상인 무리는 뜻밖에 이 신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정탐꾼 한 명이 늙은 하인을 대신하고 한 여아를 찾아 달님이를 대신했다.

달님은 무리를 떠나서 살았는데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외출한 적이 없었다. 가끔 사람을 만나도 지저분한 상태였기에 본래의 모습은 알 수 없다.

월령안이 그녀의 신분을 이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달님이가 순장 소녀가 된 뒤, 월령안의 신분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누가 죽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순장되는 소녀가 된 월령안은 곧 타목극(朵木克) 부락에 의해 역참에 보내졌다.

역참에는 월령안처럼 부족에서 보내온 순장 소녀가 많았다.

타목극 부락은 금나라의 중심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월령안은 늦게 도착한 편이었다.

그녀는 역참에서 하루 동안 궁중 예절을 배웠다. 이튿날 그녀들더러 다음 날 아침 일찍 입궁할 테니 준비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열몇 살밖에 안 된 소녀들이었다. 그녀들은 이번 여정이 황제를 위해 순장하기 위한 것이고 언젠가 죽게 되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일 바로 입궁할 것이라는 소식을 갑작스럽게 접하자 각 부락에서 보내온 소녀들은 역시나 겁을 먹고 말았다.

간이 큰 소녀는 떨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우리 안 갈 수는 없나요? 우리는……."

죽고 싶지 않았다.

소심한 소녀는 이미 울음을 터뜨렸다.

"저…… 전 궁에 들어가기 싫어요. 전 무서워요. 무서워요……."

"어머니, 어머니……. 전 어머니가 그리워요……. 전 죽기 싫어요. 죽기 싫어요."

역참에는 백 명의 소녀가 있었다. 땅에 주저앉아 말을 할 수 없는 몇몇 소녀를 제외하고 나머지 소녀들은 모두 울고 애원했다.

월령안은 특별해 보이고 싶지 않아 따라서 겁을 먹은 척, 구석에 주저앉았다.

한 소녀는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 간이 부은 건지 그들에게 알리러 온 늙은 내관 앞을 덮치며 울부짖었다.

"전 자진해서 온 것이 아니에요. 부족 사람들이 핍박해서 온 거예요. 제발 절…… 풀어 주세요. 전 순장되기 싫어요. 제발요……."

"뭐라고 했나? 순장되기 싫어?"

늙은 내관은 두 눈썹이 새하얗고 눈꼬리가 위로 쪽 째진 험상궂은 족제비상이었다. 또 사람을 볼 때 음험한 기운이 배어 있다.

소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내관의 얼굴에 순간 짜증이 서리더니 발을 들어 소녀를 걷어찼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끌어가거라. 너희들에게 상으로 주는 것이다."

소녀는 건물 밖으로 끌려간 뒤, 곧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잇따른 것은 처참한 비명 소리였다.

건물 안에 있던 소녀들은 겁을 먹었다. 울음소리와 애원하던 소리도 일제히 멈추고 말았다.

늙은 내관은 음산하게 웃고 괴상야릇한 말투로 물었다.

"또 누가 있느냐? 또 누가 폐하를 모시고 싶지 않은 거냐? 어서 나오거라!"

소녀들은 부둥켜안고 몸을 덜덜 떨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월령안은 절대 나서지 않고 묵묵히 그 사이에 숨었다.

그녀는 기회를 빌려 입궁하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영웅이 되어 무고한 소녀들을 구할 생각이 없었다.

늙은 내관은 손에 든 불진(佛塵 - 내관이 손에 들고 다니는 먼지떨이 모양의 막대)을 쳐들며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기억하거라! 폐하를 모시는 데 뽑힌 것은 너희들의 영광이다! 모두들 잘 듣거라. 누가 감히 또 울고 난리를 친다면 밖에 있는 저것이 바로 너희들의 결과이다. 알겠느냐?"

"알, 알겠어요……."

소녀들은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늙은 내관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고 호통쳤다.

"하나같이 굶은 것이냐?"

"알겠어요!"

소녀들은 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알았으면 눈물 깨끗이 닦고 웃어 보여라! 궁의 귀인들은 우는 것을 가장 싫어한단다. 너희들이 내려가 폐하를 모신다면 그건 바로 폐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무한한 은총인 것이다. 내일 입궁했는데 누군가 감히 운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늙은 내관은 날카로운 기세로 음산하게 소녀들을 바라보았다.

"웃어라!"

"네. 네."

소녀들은 하나같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월령안은 그중에서 눈에 띄는 편이 아니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았다.

늙은 내관은 소녀들을 훈계한 뒤, 기세등등하게 떠나갔다. 그러나 그가 가져온 어두운 그림자는 소녀들의 머리 위에 드리워졌다.

내관이 떠난 지 한참 지났지만 소녀들은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다. 누군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려서야 다른 사람들도 옮은 것처럼 따라서 울기 시작했다.

역참은 곧 소녀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운다고 한들 그녀들이 순장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까?

없다!

그러나…….

이 소녀들이 우는 것 말고 또 뭘 할 수 있는가?

그녀들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능력이 없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도망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녀들을 대체할 것이다.

순장하는 풍속이 바뀌지 않는 이상, 순장되는 이 소녀들처럼 서글픈 사람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녀들은 오랫동안 울었지만 역참의 사람들은 그녀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오늘이 그들이 울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내일 입궁하면 그녀들은 울 자격조차 없었다.

순장되는 소녀들은 무려 오후 내내 울고도 계속해서 더 울 것 같았다. 월령안은 그 안에서 우는 척하기도 지쳤다. 그러나 소녀들이 울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자 월령안은 하는 수 없이 일깨워 주었다.

"내일 입궁할 것인데 더 울다가는 목청과 눈이 다 부을 거야. 그러면 내일 입궁해서 귀인들의 미움을 살 게 분명해."

"그러나 난 무서워……."

소녀들의 울음소리는 바로 낮게 흐느끼는 것으로 바뀌었다.

"난 무서워. 난 참지 못하겠어."

"참지 않아도 돼. 너희들이 지금 바로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월령안은 일어섰다. 그러면서 옆의 한 소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가족들이 우리를 보냈을 때, 우리는 이미 선택할 기회가 없었던 거야. 돌아가자. 내일 입궁도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난 그냥 지금 죽을래."

월령안의 부축을 받은 소녀가 월령안의 손을 꽉 잡았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락의 늙은이한테서 들은 것인데 순장되는 소녀들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머리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무슨 약을 부을 거래. 그 약이 우리의 몸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아주 고통스러우나 단기간 내에는 죽지 않을 거래. 난, 난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 난 무서워."

"머리에 구멍을 뚫는다고?"

"고통스럽게 해서 죽인다고?"

소녀들의 나지막한 흐느낌이 이 순간, 모두 멈췄다.

그녀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멍하게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불쌍하게 애원했다.

"우린 어떡해야 해? 너…… 우리를 구해 줄 수 있어?"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뭘 했다고? 왜 다들 날 쳐다보는 거지?'

이 소녀들이 무엇을 보고 그녀가 자기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건지 월령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단지 이 소녀들이 너무 운 나머지 눈과 얼굴이 퉁퉁 부어 내일 입궁한 뒤, 궁중 귀인의 불만을 사서 순장하기도 전에 죽임을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녀는 연루되기 싫어 한마디 귀띔한 것뿐이었다.

단지 이랬을 뿐인데 이 소녀들은 그녀가 천부적으로 비범하다는걸, 그녀가 자기들을 데리고 황실에 반항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는 말인가?

그러나 월령안이 뭐라고 하든 소용이 없었다. 소녀들은 이미 그녀를 구세주로 굳게 믿고 있었다.

"너, 달님이라고 했지? 넌 비록 나이는 많지 않아도 우리보다 용감해. 널 좀 봐, 입궁하는 소식이 전해진 뒤, 너는 유일하게 당황하지 않은 사람이야. 심지어 우리들에게 내일의 입궁을 위해 준비하라고 귀띔하기까지 하잖아. 넌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아도 우리는 네가 우리 중에서 가장 총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달님아, 우린 정말 무섭고 도저히 뾰족한 수가 없어. 제발 우리를 모른 척하지 마."

"달님아…… 우리를 좀 도와줘. 아니, 우리를 도울 필요가 없어. 우리는 그냥 네 말을 들을게.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아무튼 죽을 텐데, 결국 머리에 약이든 뭐든 넣게 되더라도 뭐라도 해 보는 게……. 마냥 주저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 나아."

"그래, 달님아, 우리 앞으로 네 말을 들을게. 결과가 어떻든 우린, 우린 절대 널 탓하지 않을 거야. 우리를 모르는 척하지 마. 나 무서워……."

말을 하는 도중, 소녀들은 자기가 맞닥뜨린 일을 떠올리자 또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마. 내가 있잖아."

월령안은 손수건을 꺼내 옆의 소녀를 위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소녀들이 말을 이렇게까지 하는데 그녀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녀 혼자의 힘으로 전체 왕조와 황제가 정한 규칙과 대항하여 그녀들을 전부 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조그마한 위로와 희망을 주어 잠시나마 기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그녀는 할 수 있었다.

모두 어린애인데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싶었다.

그때, 노인이 그녀를 돕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월령안도 없었을 것이다.

월령안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옆의 소녀들을 일일이 달랬다.

소녀들은 비록 심하게 울었지만 달래기 쉬웠다.

부락에서 순장하러 보내진 소녀들이니 출신이 모두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집에 있어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게 아니면 부모도 그녀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월령안은 소녀들을 달랜 뒤, 그녀들더러 급히 떠나지 말고 대청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먼저 나가서 둘러보겠다고 했다.

그녀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전에 끌려간 그 소녀는 이 소녀들에게 겁을 주는 용도로 밖에 버려졌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