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화 금나라로
노인은 월령안의 약점이었다. 노인은 월령안이 변경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또 황제가 노인을 이용하여 월령안을 핍박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요, 잠시 믿을게요."
월령안은 변경에서 온 편지를 받고 불안했던 마음을 절반 정도 내려놓았었다. 지금 서 선생의 말을 듣자 나머지 절반도 내려놓았다.
육장봉은 지금 금나라에서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또 서 선생이 관성을 지킨다면 관성에서도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완안경을 넘겨받은 이튿날, 상인 무리와 함께 서하, 북요와 금나라로 무역지역의 호시에 대해 상의하러 간다고 선포했다.
상인 무리가 성을 떠나는 날, 많은 사람들이 배웅하러 나왔다. 월령안은 사람들과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하고 서쪽으로 떠났다.
관성은 네 나라와 인접한 변방에 위치하여 있었다. 서하의 황도(皇都)와 가장 가까웠다. 상인 무리가 가장 먼저 갈 곳이 바로 서하였다. 그다음이 북요고 맨 나중에 갈 곳이 금나라였다.
월령안은 상인 무리를 거느린 채, 자연스럽게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곧게 서하로 향했다. 하지만 사실상, 상인 무리가 서하 국경에 들어선 뒤, 월령안은 수횡천과 소육자를 데리고 완안경을 압송하여 금나라로 떠났다.
돈으로 길을 여니 서하 변방의 장수들은 월령안의 편의를 봐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적을 감춰 주기도 했다. 그래서 월령안 일행이 금나라 국경 안에 들어가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조정의 사람들은 완안경을 데려오고 비밀 서신도 하나 보내왔다.
서신에는 이름이 하나 있었는데 조정이 금나라에 파견한 첩자였다. 또 이번에 그녀를 맞이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조정의 뜻은 그녀가 완안경을 그 사람 손에 넘기기만 하고 물러나면 된다고 했다.
이 일은 사실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조정이 준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금나라의 부마 고현광(高懸光)이었다!
그녀가 그때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죽음을 조사할 때, 고현광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는 주나라가 금나라에 파견한 첩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북요에게 매수된 사람이었다.
그녀가 만약 황제의 뜻대로 사람을 상대방에게 넘긴다면 완안경이 죽을 뿐만 아니라 육장봉 또는 남상권도 끝장날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금나라에서 봉변을 당할 것이다.
비밀 서신의 이름을 보고 월령안은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적어도 황제가 말했듯이 단지 그녀의 신분을 빌려 금나라로 한 번 다녀오는 것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알아챈 것은 알아챈 것이고 월령안은 금나라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황제가 그녀에게 넘겨준 방법대로 고현광과 연락했다.
그녀가 그 사람을 조사했던 방식은 떳떳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현광은 주나라가 금나라에 파견한 첩자들을 휘어잡고 있었다. 그가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녀가 맨입으로 고현광이 북요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황제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황제와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할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상대방의 계략을 역이용하는 것이 나았다!
고현광은 곧 특별한 경로를 통해 그녀에게 회답했다. 그녀더러 완안경을 데리고 탑탑아부(塔塔兒部)로 가라고 했다. 그와 금나라 대공주가 전력으로 금도(金都)로 가고 있고 닷새 후에 탑탑아부에서 하루 머물 것이라고 했다. 월령안이 사람을 보내면 맞이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 오라버니, 수고스러운 대로 완안경을 데리고 탑탑아부에 한 번 다녀오세요."
물고기를 잡으려면 미끼가 있어야 하는 법. 완안경이 바로 그녀의 미끼였다.
그녀가 금나라에 온 목적은 단지 육장봉을 구하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육장봉을 구할 수만 있다면 완안경을 누구에게 어떻게 넘기든 다 상관이 없었다.
수횡천이 고현광 앞에서 허점을 드러낼까 걱정되어 월령안은 그에게 고현광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완안경의 생사 따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오라버니는 오라버니의 목숨만 지키세요."
비록 고현광은 믿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수횡천의 무공으로 다른 건 몰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고스란히 물러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정의 사람을 못 믿는 거야?"
수횡천이 예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멍청하지는 않았다.
"너 홀로 가서 육장봉을 구하려는 거야?"
"두 가지 준비를 하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저도 혼자가 아니에요. 금나라에 저희 월씨 가문의 첩자가 있어요."
금나라에 있는 월씨 가문의 세력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했다.
금나라의 황제조차 두려워할 정도였다!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죽은 뒤, 금나라에서의 월씨 가문 세력 중 절반 넘는 이가 금나라 황제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나 남은 세력도 그녀가 금나라에서 자유롭게 오가기에는 충분했다.
수횡천을 안심시키기 위해 월령안은 또 한마디 덧붙였다.
"수 오라버니, 제가 금나라에 온 것은 조정을 위해 일을 하려는 것뿐만이 아니에요. 전 또 거래에 대해서도 의논해야 해요."
"위험이 없을 거라고 확신해?"
금나라의 이목을 끌지 않으려고 그와 월령안만이 완안경을 데리고 금나라로 왔다.
월령안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면 누가 그녀를 보호한다는 말인가?
"내일 절 맞이할 사람이 올 거예요. 수 오라버니께서 걱정되신다면 내일 보셔도 됩니다."
'수횡천의 눈에는 난 목숨으로 모험을 하는 사람인가?'
월령안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다. 수횡천이 뭘 더 할 수 있다는 건가?
그는 지금까지 월령안의 마음을 바꿀 방법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월령안의 안전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그날 저녁, 월령안은 검은 옷을 입고 귀신처럼 세 사람이 잠시 묵는 오두막에서 멀어졌다. 수횡천은 미리 월령안이 보낸 신호를 받고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수횡천을 월령안을 일각 동안 따라갔다. 그리고 그녀가 강변에 도착하더니 쪽배에 올라타는 것을 보았다.
수횡천은 자신의 경공(輕功 -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무예)이 대단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가 쪽배를 따라 일주향도 가지 않았는데 수면 위의 쪽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사라진 것인지, 어디로 간 것인지 그는 전혀 보지 못했다!
'귀신이라도 들린 건가?'
수횡천은 자기가 본 것이 차마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훌쩍 날아올라 수면 위를 지났다. 그러나 수면은 평소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그럴 리가! 난 분명 월령안이 배에 오르는 것을 보았고 배가 수면 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
수횡천은 수면 위에서 여러 걸음 오갔지만 물보라만 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수횡천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물속은 어둠컴컴했다. 수횡천은 오랫동안 힘들게 찾았지만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숨을 쉴 수 없어 수면 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숨을 돌린 수횡천은 또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반복하여 전체 강을 다 한번 찾아보았으나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물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 추적을 피할 수 있다니. 보아 하니, 세상에서 너의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사람도 몇 없을 것 같구나. 그럼 나도 별로 걱정할 것이 없지."
수횡천은 물속에서 뛰쳐나온 뒤, 몸의 물방울을 말끔히 털어냈다. 그리고 고요한 수면 위를 바라보며 성큼성큼, 떠나갔다.
'령안이 스스로 계획이 있으니 난 령안을 믿어야 해. 또 령안의 믿음을 저버려서도 안 돼.'
* * *
땅속 깊은 곳의 강에서 월령안을 태운 쪽배가 천천히 뭍에 다가가고 있었다.
구레나룻이 짙은 남자가 강변에 서서 월령안을 맞이하고 있었다.
월령안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남자는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오른손 주먹을 왼쪽 가슴에 대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로한(阿鲁罕)이 주인님을 뵙습니다."
"나한테 신분을 하나 준비해 줘. 난 금도로 갈 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해."
월령안은 뭍에 오른 뒤, 상대방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아로한은 월령안 뒤를 따랐다.
"주인님, 지금의 금나라는 안전하지 못합니다."
"안전하지 못하기에 내가 가려는 것이다."
월령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금나라의 황제는 정말 죽은 것이냐?"
아로한은 잠시 멈칫하다가 말했다.
"금나라에서 전해온 소식으로는 죽었습니다. 황제를 죽인 사람은 그 급소를 정확히 찔렀습니다."
"금나라 황제의 목을 베었느냐?"
월령안이 또 물었다.
아로한은 고개를 저었다.
"금나라 황제의 심장을 명중시켰습니다."
월령안은 피식, 비웃었다.
"만약 그가 죽었다면 불자(佛子)가 손을 쓰게 설득한 것은 어느 황자일 것 같느냐?"
아로한은 제자리에 멍해졌다.
"그래서 나는 직접 금도로 가려는 것이다. 금나라 황제가 정말로 죽은 건지 아니면 죽은 척하는 것인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월령안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아로한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월령안의 뒤를 따랐다. 월령안이 그에게 지금 금나라가 무슨 상황인지 묻고 나서야 아로한은 월령안에게 보고했다.
"주인님께 아룁니다. 금나라 조정은 지금 대신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황제에게 갑자기 일이 생긴 것이라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못했습니다. 황제의 네 아들은 모두 모족(母族)과 처가 쪽 부락의 지지를 받고 있어 세력이 막상막하입니다.
그들은 원래 초원에서 규칙대로라면 격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정의 몇몇 대신들은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황제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하며 네 황자의 격투를 황제를 죽인 범인을 잡는 것으로 바꿀 것을 제기했습니다. 누군가 황제를 죽인 범인을 잡으면 황위는 그 사람이 계승하는 것이라고요. 네 황자들도 동의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네 황자가 불자를 움직인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황제를 죽인 범인을 찾는 사람이 바로 다음 황제니 말이다.
그러나 월령안이 말하자 그는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불자의 지위는 아주 높았다. 그는 각 부락의 보호를 받고 있어 황자에게 빌붙을 필요가 없었다.
만약 불자가 네 황자의 부탁을 받아 범인을 찾으러 떠난 것이라면 불자가 범인을 찾았을 때, 황위는 누가 계승한다는 말인가?
금나라의 사람은 죽은 뒤, 귀족들은 천장(天葬 - 시체 처리를 조류에게 맡기는 장례법)을 치르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보통 백성들만이 땅에 매장할 뿐이었다.
그러나 금나라의 전임 황제는 주나라의 문화를 숭배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을 위해 능묘를 지었다. 그리고 죽은 뒤에 주나라 제왕의 예법대로 매장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전임 금나라 황제는 주나라에서 예전에 폐기한 악습인 살아 있는 사람을 순장하는 풍속도 보류했다.
윗사람이 하는 대로 아랫사람이 본받는 법. 전임 황제가 떠들썩하게 높은 수준의 장례식을 치른 뒤로 고리타분한 귀족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귀족들은 모두 죽은 뒤에 파묻힐 능묘를 짓기 시작했다.
금방 살해당한 금나라 황제도 즉위하자마자 바로 자기를 위해 능묘를 지었다. 비록 능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순장하는 것도 없어서는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