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화 환영회
월령안의 슬픔은 마치 잠깐의 반짝임 같았다.
그녀가 일어나서 척연에게 사과할 때만 해도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슬픔이 묻어 있었고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말을 타고 성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처음처럼 회복되어 있었다. 두 눈은 맑았고 얼굴은 전혀 이상함을 보아 낼 수 없었다.
척연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히려 육장봉이 그에게 한 번 인정을 빚지게 하고 싶었다. 육장봉을 도와서 월령안을 좀 더 돌보고 싶었지만 월령안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척연은 가기 전에 한마디 했다.
"제수씨, 무슨 일이 있다면 말씀하세요. 절대 저와 온씨를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요."
월령안은 척연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척 오라버니가 걱정하시게 했네요. 방금 전에는 변경에 있는 제 가족이 아프다는 소리에 조급해져서 그만 실례했어요."
"가족이 편찮으세요? 아주 심한가요? 경성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척연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다급하게 물었다.
관성에 벌여둔 일은 월령안이 없이는 안 되었다. 월령안이 이런 시기에 경성으로 돌아가게 되면 무역지역이든 관성의 기초 건설이든 모두 멈추게 된다.
이렇게 멈춘다면 그의 병사들의 돈은…….
척연은 난폭하게 머리를 쥐어뜯고 긴장된 시선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의 가족이 아프다는데 그도 사람을 붙잡을 염치가 없었다.
그러나 척연은 말만 하지 않았을 뿐, 얼굴에는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젓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상인은 이득을 중히 여기고 이별은 가볍게 여기지요. 관성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전 가지 않을 거예요."
물론 아니었다!
만약 다른 일이었다면 그녀는 신중했겠지만 노인이 병든 것이었다. 다른 일이 아니라…….
노인이 그녀가 경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진작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노인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노인은 그녀가 경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았다.
노인은 황성사의 사람더러 그녀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그녀가 만약 관성을 떠난다면 손불사가 궁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말이었다.
노인의 병은 보통 의원들이 치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노인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척연은 월령안의 이 말을 듣고 무척 안도했지만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할까 걱정되어 얼굴의 표정을 거두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그…… 제수씨, 걱정하지 마세요. 길인(吉人)은 하늘의 보호를 받으니 제수씨의 가족분은 분명 괜찮으실 거예요."
"척 오라버니의 덕담 감사합니다."
그녀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었다. 노인이 무사하기를 기도하는 것.
척연을 보낸 뒤, 월령안은 억지로 버티며 수횡천을 안배하고는 서재에 틀어박혔다. 하인이 이제는 준비하지 않으면 저녁의 환영회에 늦을 것이라고 일깨우고 나서야 월령안은 서재에서 나왔다.
반 시진 뒤, 화려하게 꾸민 월령안은 수횡천이 함께 가자는 것을 거절하고는 하인을 데리고 태수부로 향했다.
태수부 안에서는 가무와 술자리가 진작에 준비되어 있었다.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월령안도 반 정도는 주최자나 다름없었기에 가장 먼저 태수부에 도착했다.
온조는 아주 섬세한 사람이었다. 여인이 월령안 하나라서 불편할까 봐 자기의 부인과 척연의 부인을 불러 자리를 함께했다.
온조의 부인과 척연의 부인은 조금도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두 사람은 특별히 수화문(垂花門)까지 와서 월령안을 맞이했다. 월령안이 두 사람에게 예를 올리려고 하자 두 사람은 다급히 월령안을 저지했다.
"모두 한 식구인데 월 동생, 우리와 격식을 차리지 말아요. 우리는 그런 허례허식을 따르지 않아요."
"맞아요, 맞아요. 우리 그이는 벌써 저한테 월 동생을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어요. 월 동생, 갑시다. 제가 모시고 들어갈게요."
척연의 부인은 무장 가문 출신이었다. 우아하고 점잖은 온 부인보다 더욱 열정적이었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오자마자 월령안의 팔을 잡으며 살갑게 굴었다.
월령안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거절하지 않았다.
길에서 척 부인은 전혀 내외하지 않고 대놓고 물었다.
"월 동생, 우리 그이가 집에서 자꾸 무슨 표호 얘기를 꺼내는데 그 표호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월령안은 낮은 소리로 설명했다.
"대략적으로는 제가 표호를 사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리는 것이에요. 표호는 차용증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월씨 가문의 표호는 보통 차용증이 아니에요. 제가 발행하는 표호는 저당 잡힌 물건이 있지요. 저는 무역지역의 부동산과 점포를 담보로 하여 표호를 사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리는 거예요. 일 년 뒤, 본전에 이자를 더해 돌려줘야 해요. 돌려주지 못한다면 무역지역의 점포와 땅, 그리고 제 개인 재산은 모두 관청에 몰수당해 표호를 산 사람들의 손해를 보상하는 데 쓰일 거예요."
비록 직접 물은 것은 척 부인이었지만 온 부인도 똑같이 궁금했다. 그녀는 원래 앞에서 길을 가고 있었는데 월령안의 말을 듣고 바로 돌아왔다. 그리고 관심 있게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이 월씨 가문의 표호는 적은 돈으로 큰돈을 벌 수 있으며 손해를 보지 않는 장사라는 말씀인가요?"
"표호가 돈을 벌 수 있을지, 없을지는 십리타의 무역지역이 공사를 마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 하고 무역지역 주변의 땅과 점포가 팔릴지, 말지를 봐야 해요. 만약 그럴 수 없다면 표호는…… 다른 가문의 표호는 몰라도 우리 월씨 가문의 표호는 반드시 현금으로 바꿀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큰돈을 버는 것은 힘들어요."
그녀가 관성에서 월씨 가문의 표호를 발급하는 것을 온조가 쉽사리 허락한 것은 십리타의 무역지역을 좋게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욱 크게는 그녀가 발행하는 것이 '월씨 가문 표호'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무역지역을 담보로 내놓은 것이 아니라 월씨 가문의 백 년 된 신용을 담보로 내놓았다.
온조가 믿은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월씨 가문 사람들이 수 대에 걸쳐 내려온 상업적 영예를 망가뜨리지 않을 것을 믿었다.
"큰돈을 번다니요? 무슨 뜻인가요?"
척 부인과 온 부인은 역시 예리했다. 순간적으로 월령안이 채 맺지 못한 말을 포착했다.
월령안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이건…… 어떤 말은 제가 할 수 없어요. 다만, 만약 무역지역이 지어지면 표호의 수익은 일 할의 이자뿐만이 아니라는 것만 말씀드릴게요."
세 사람은 말하는 사이, 어느새 연회청의 입구로 왔다. 하인이 미리 나와서 월령안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 온 부인과 척 부인은 월령안을 여기까지 데려다주면 되었다.
그러나 온 부인은 월령안을 가로막았다.
"령안…… 저도 령안과 내외하지 않을게요. 이렇게 된 일이에요. 뒤뜰에 몇몇 부인들이 오늘 밤 령안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함께 따라왔어요. 혹시…… 같이 뒤뜰에 가서 잠시 앉았다 가지 않으실래요?"
월령안은 거의 머뭇거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마침 저 홀로 앞뜰에 있으면 어색할까 걱정하고 있었어요."
오늘 밤의 환영회에는 온조와 척연이 있었다. 이미 그 몇몇 귀족 자제들과 상인들에게 충분히 체면을 세워 준 상황이었다. 그녀가 연회에 출석을 하든, 말든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십리타 무역지역의 땅과 점포를 파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지금은 그녀가 상인들에게 사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인들이 그녀에게 팔아 달라고 매달리는 꼴이었다.
그녀가 나가지 않고 거드름을 좀 피워도 비난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하인과 한마디 한 뒤, 온 부인, 척 부인과 함께 뒤뜰로 갔다.
그녀는 줄곧 관성 현지의 부유한 상인들과 얼굴을 익히고 싶었으나 줄곧 기회가 없었다.
오늘 밤에는 어쩌면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온조는 하인의 보고를 듣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상인들과 교제하는 데 능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월령안을 데려간 것을 어떡하겠는가?
그는 억지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 환영회의 명분은 장군왕 세자와 변경에서 온 상인들을 환영하기 위해서였지만 더욱 큰 목적은 십리타의 무역지역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었다.
오늘 밤의 연회에는 변경의 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청주의 상인도 초대를 받았다.
청주의 상인들은 그날 소갑의 소개를 받고 가버렸다. 그리고 먼저 월령안을 찾아오지도 않고 거만한 자세를 취하며 월령안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십리타의 무역지역이 일단 공사를 시작하게 된다면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 될 것이다. 매일매일 대량의 돈이 필요할 것이고 월령안 수중의 돈은 며칠 버티지 못하고 거덜이 날 것이다. 관성의 사람들은 부유하지 못하여 큰돈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그들밖에 없었다.
월령안이 무역지역을 예정대로 짓자면 그들과 타협하여 무역지역 외곽의 땅을 그들에게 헐값에 넘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청주의 상인들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자신만만하게 월령안이 찾아와 그들에게 크게 떼어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던 월령안은 찾아오지 않고 그들한테서 장사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낮에 변경의 상인들이 관성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청주의 사람들은 당황했다. 몇몇은 심지어 마음이 급한 나머지 당장 월령안을 찾아가 그녀에게서 십리타의 땅을 예약하려고 했다.
그러나 월령안도 금방 상업계에 발을 들인,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가 아니라서 그들의 몇 마디 말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월령안은 아예 그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바쁘다고 했다!
월령안은 바쁘다고 했다!
하인은 밖에서 가로막은 채, 그들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월령안이 언제 또 시간이 되는지 약속을 잡을 수 있냐고 물으니 하인은 귀찮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 아가씨께서는 최근에 아주 바쁘십니다. 언제 시간이 나실지 몰라서 약속을 잡으실 수 없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시면 먼저 배첩을 남겨 주세요. 우리 아가씨께서 보신다면 제때 회답을 하실 겁니다."
이는 그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청주의 상인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아주 총명했다. 만약 그들이 총명하지 않았더라면 전에 자기들이 '유일'하게 큰돈을 내놓을 수 있는 상인 단체라고 자부하며 가격을 깎으려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월령안이 왜 만나지 않는지 그들은 속으로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알기에 조급해졌다.
전에 그들은 자기들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며 가격을 깎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변경의 상인들이 오자 가격을 깎기는커녕 전에 월령안이 먼저 말했던 부분을 그들에게 남겨 줄지도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