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8화 월씨 가문의 표호
온조에게 길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월령안은 바로 말을 이었다.
"무역지역이 순조롭게 공사를 시작하게 하기 위해 저는 무역지역의 향후 삼 년 동안의 수익을 담보로 잡을 거예요. 그리고 오백만 냥의 표호를 발급할 겁니다. 온 대인께서 저한테 장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역 지역의 가게를 사거나 무역 지역에서 거래할 경우 모두 반드시 월씨 가문 표호로 결제해야 하며 월씨 가문 표호는 한 냥에 한 냥씩 환전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도 속이지 않는 공정한 거래죠."
"월씨 가문의 표호를 발급하라고?"
온조는 월령안의 말을 듣고 온몸이 불편해졌다.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아냐고요? 당신의 이런 행위는 돈을 빼앗는 것과 무슨 다른 점이 있는 거예요?"
월령안의 이 수법은 정말이지 너무 염치가 없었다!
무역지역에서는 월씨 가문의 표호로만 거래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상인들이 반드시 월씨 가문의 표호가 있어야만 무역지역에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은표로 월씨 가문이 제멋대로 찍은 표호를 바꾸는 월령안의 이 행위는 돈을 빼앗는 것과 무슨 구별이 있다는 말인가? 오, 다르긴 하지…….'
돈을 빼앗으면 관가의 추궁을 받지만 월령안은 무역지역에서 표호를 발행하고도 관가의 지지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하면 오백만 냥이었다.
'내가 틀렸어! 월령안은 우리 관성에 돈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돈을 빼앗으러 온 거야!'
"전 오기 전에 대인께 말씀드렸어요. 전 돈이 없어요. 그러나 대인께서 지지만 하신다면 전 대인의 돈을 한 냥도 쓰지 않고 무역지역을 지을 수 있다고요."
월령안은 하마터면 직접적으로 돈을 빼앗으러 온 것이라고 말할 뻔했다.
돈을 빼앗지 않고는, 돈이 없는 그녀가 돈이 없는 관성에 어떻게 백만 냥이 넘는 돈을 필요한 무역지역을 지을 수 있겠는가?
온조는 그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는 월령안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안 돼요! 전 허락하지 않겠어요. 사사로운 표호는 위험이 너무 커요."
"위험이 크긴 하죠. 그러나 우리 월씨 가문의 표호가 없이는 관성의 무역지역이 지어져도 소용없어요."
월령안은 온조를 급하게 설득하지 않고 천천히 생각을 말했다.
"대인,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게요. 우리 주나라에는 서하, 북요와 금나라가 없는 찻잎과 소금이 있어요. 대인의 무역지역이 지어지면 그 상인들은 이익을 위하여 분명 올 거예요. 그러나 서하, 북요와 금나라의 황제들은 왜 당신이 일 할의 돈을 벌게 그들의 상인을 우리 무역지역으로 보내 거래를 하게 하겠어요? 왜 스스로 무역지역을 지어 우리의 상인이 그들의 곳으로 가서 거래를 하게 만들지 않고요? 그들도 일 할의 돈을 받을 수 있겠는데도요?"
"이것이 당신이 표호를 발급하는 것과 무슨 상관인데요?"
온조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당연히 상관이 있지요!"
월령안은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표호가 발급되면 모든 사람들이 바로 표호를 은표나 돈으로 바꾸는 것이 아닐 거예요. 심지어 그들이 오랫동안 무역지역에서 거래를 하려면 월씨 가문의 표호는 은표보다도 쓰기 좋을 거예요. 그때면 그들은 표호를 가지고 있고 저는 은표를 가지고 있겠죠. 저는 상인이니 손에 돈이 있으면 돈으로 돈을 벌게 하는 방법은 많고도 많지요."
온조가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월령안은 친절하게 덧붙였다.
"다른 말로 하면, 전 그들의 돈으로 제 돈을 번다는 말이죠."
"전 그래도 모르겠어요. 이것과 서하, 북요, 금나라의 황제가 그들 나라의 상인들이 우리 무역지역으로 오게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는 단지 월령안이 강도보다 더 무섭게 돈을 약탈하는 것만 보였다.
조정도 월령안처럼 약탈을 잘하지 못했다.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상관이 있죠. 제가 돈을 벌어야 각 곳의 세력에 돈을 먹일 수 있거든요. 전 해마다 각 나라의 황실에 십만 냥의 표호를 조공할 거예요. 그리고 각 나라의 귀족과 권신들에게도 하나하나 뇌물을 줄 거예요! 이런 일들은 돈 없이 해낼 수가 없어요. 다른 세 나라의 황실은 도모할 이익이 없이는 상인들이 무역지역에 오는 것을 지지하지 않을 테니까요."
무역지역을 짓기는 쉬우나 운행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로 이것이 월령안이 온조에게 이 모든 것을 털어놓은 저력이었다.
온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안들 무엇 하리?
온조가 해낼 수나 있을까?
"당신…… 각 나라의 황실에 뇌물을 줄 능력이 있어요?"
온조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이 연약한 어린 여인이 이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말인가?'
월령안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북요 삼황자 야율헌일, 금나라의 삼황자 완안기와 모두 말을 할 수 있어요. 전 그들이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요. 서하라면…… 전 서하의 사람을 잘 알지 못해요. 그러나 괜찮아요. 북요와 금나라가 허락한다면 서하의 의견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은 처음부터 무역지역에서 월씨 가문의 표호를 쓸 것을 다 계획하고 있었던 거죠?
온조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월령안의 계략에 놀아난 것이다.
"물론이죠!"
이런 일을 어찌 갑자기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한 가문의 표호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씨 가문이 전장(錢莊 - 옛날, 개인이 운영하던 금융 기관. 금융업 점포.)을 했던 경험이 있더라도 표호를 만들려면 쉽지 않았다.
"왜 처음부터 얘기하지 않으셨어요?"
진작 알았더라면 그는 절대 월령안의 이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악랄해! 자기 사람까지 함정에 빠뜨리다니. 월령안은 너무 독해!'
"제가 처음부터 얘기했더라면 무역지역을 짓는 일을 허락하셨겠어요?"
월령안이 우습다는 듯이 물었다.
'날 바보로 아나?'
"당연히 허락 안 하죠!"
월령안의 표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맨입으로 큰 이득을 취하겠다는 것이었다. 저금 한 냥도 없이 오백만 냥의 표호를 발급하겠다니. 완전히 무역지역의 이름으로 돈을 빼앗는 행위였다. 그가 허락한다면 미친 것이었다.
"그래서 기다렸다가 지금 말씀드린 거예요."
그녀는 온조가 철저하게 함정에 빠지고 또 기어 나올 수 없게 되어야만 말할 수 있었다.
온조가 시름을 놓게 하기 위해 월령안은 한마디 덧붙였다.
"온 대인, 대인께서는 월씨 가문 사람이 상업계에 세운 신용을 믿으셔야 해요. 제가 표호를 연다고 해도 막 나가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표호를 남발하지는 않겠어요. 전 가진 재산만큼의 표호를 발급할 거예요. 대인께서는 이 점을 조정에 보고하셔서 호부의 관리들이 감독하게 할 수 있어요."
월령안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장사를 원하는 것이었다. 돈을 조금 사기 치고 도망치려는 게 아니라.
다시 말해, 그녀는 처음부터 오백만 냥의 표호를 발급할 것이니 적어도 손에 오백만 냥의 은표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이것으로 어떻게 해도 돈을 벌 텐데 굳이 자기의 명성을 더럽힐 필요가 있겠는가?
무역지역을 짓고 각 나라의 인맥에 뇌물을 주는 것. 어느 것도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 돈은 보통 상인들이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인들이 꺼낼 수 있다 해도 도모할 이익이 없는데 왜 그리하겠는가?
이치로 따지면, 관성에서 네 나라가 무역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형태는 조정이 나서서 북요, 서하, 금나라와 담판하는 것이다. 무역지역도 조정에서 돈을 내 짓는 것이 맞았다.
이렇게 하면 전체 무역지역은 조정이 통제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을 것도 없이 온조는 알 수 있었다. 조정은 돈을 내 무역지역을 짓기는커녕, 다른 사람이 돈과 힘을 쏟는다 해도 그들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큰 문제였다.
그래서 월령안이 말한 표호는 피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온조는 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입으로는 발악했다.
"표호의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니 제가 결정할 수 없어요. 제가 상주서를 올려 폐하께 여쭈어보게 해 주세요."
"대인, 잘 생각해 보세요."
월령안은 온조의 '마지막 발악'을 보고 웃고 싶어졌다.
"상주서는 아무리 빨라도 변경에 도착하려면 닷새가 걸리겠죠. 폐하께서 상주서를 보시고 바로 신하들을 불러 일을 상의한다고 가정하죠. 결과가 어찌 되는지는 둘째치더라도 문관들의 그 대단한 능력으로라면, 열흘에서 보름은 끊임없이 다툴 거예요. 폐하께서 강하게 나오셔서 사흘에서 닷새 안에 결과가 나온다 해도 상주서가 다시 관성으로 오는데…… 자세히 세 보면 어떻게 해도 한 달은 걸려요."
월령안은 조목조목 자세하게 세어 보고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전 급하지 않아요. 올해 돈을 못 벌어도 내년에는 저에게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인은요?"
월령안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알기로는 대인이 문관들 사이에서의 명성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더군요. 온씨 가문은 비록 대인께 힘을 보태지만 온씨 가문의 후계자는 대인의 큰형이라서 모든 자원이 큰형에게 지원되고 있다면서요.
만약 소식이 변경까지 전해져 사람들이 관성의 태수가 누워서도 정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 관성이 여전히 조정에서 사람마다 기피해 마지않는 곳일까요?"
상인은 이익을 좇고 관리는 권력을 좇는다. 모두들 같은 사람이었다. 누구도 누구보다 고귀하지 않았다.
조정이 허락한다면 관성에 네 나라가 서로 무역할 수 있는 구역이 세워지는데 온조와 척연 이 두 불쌍한 사람들이 관성 태수와 수비의 관직을 굳건히 버텨 낼 수 있을까?
조정의 대신들이 이 둘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다.
중권을 움켜쥔 조정의 관리는 물론이고 그녀가 뇌물을 조금 먹여도 충분히 이 둘을 관성에서 보내버릴 수 있었다.
온조는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표호의 인쇄권은 당신 손에 있으니 원하는 만큼 인쇄하세요. 그러나 이 일은 위험이 너무 커서 일이 생긴다면 전 감당할 수 없어요."
'속사정까지 다 들키다니, 이 일은 분명 육장봉의 짓일 거야! 친구라더니 이게 무슨 친구야?'
"그럼 이렇게 하죠. 전 대인의 지지가 필요하지 않아요. 대인께서 묵인만 하시면 됩니다."
월령안은 온조의 마음이 흔들린 것을 알고 통쾌하게 한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온조에게 다른 수를 제시했다.
"무역지역의 일에 관해서는 대인께서 폐하께 상주서를 올려 보고드릴 수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자세하게 쓰실 필요는 없죠. 또 일을 크게 말씀하실 필요도 없어요. 대인께서는 그저 상주서에 한 구절만 쓰시면 됩니다.
'백성들이 겨울을 편히 나게 하기 위해 장병들이 황폐한 곳에 시장을 세우고 매달 첫날과 십오 일에는 변방의 백성들이 금나라, 서하의 백성들과 가죽옷 등을 바꾸게 할 것이다.' 상주서를 올릴 때, 서하의 약재와 북요의 가죽옷, 금나라의 말도 함께 경성에 보내시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