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5화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소
그가 정신을 차리고 육장봉과 따지려고 했을 때는 이미 육장봉이 마차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온조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떡 벌어진 입을 한참이나 다물지 못했다.
"내가 귀신이라도 본 건가? 계집이나 마차에 오른다면서 죽어도 마차에 안 타겠다던 사람이…… 마차에 들어가?"
"우리 대장군께서는 마차를 타실 뿐만 아니라 거금을 들여 마차를 한 대 구입하셨습니다."
옆에 유령처럼 서 있던 호위병이 어느새 불쑥 나타났다.
"온 대인, 우리가 모셔다드릴까요?"
"아니……."
온조는 멍하니 한마디 대답했다. 호위병도 사양하지 않고 바로 온조가 가져온 말을 타고 온조와 그의 호위를 제자리에 남겨 둔 채, 떠나갔다. 그 속도가 아주 빨라 온조와 온조가 데려온 두 호위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말! 내 말……."
온조와 호위는 정신을 차리고 뒤쫓으려 했지만 육장봉의 호위병은 이미 말을 타고 가버린 뒤였다. 천 명의 사람이 반 리나 달렸으나 먼지만 뒤집어쓴 꼴이었다. 육장봉의 호위병은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대인, 우리 이젠 어떡하죠?"
온조의 호위는 지쳐서 숨을 헐떡였다. 온조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호위의 부축만 없었어도 그는 쓰러졌을 것이다.
"어떡해? 뭘 어떡해? 이 황폐한 들에서 하늘도 땅도 편을 들어 주지 않는데 우리가 뭘 어쩌겠어? 당연히 걸어서 돌아가지!"
온조는 화가 나 입이 비뚤어졌다. 그는 사납게 호위를 노려보았다.
"쓸데없는 녀석들 같으니라고. 육장봉의 호위병조차 이기지 못해!"
호위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리도 육 대장군을 못 이기시잖아요?'
온조도 그것을 떠올렸는지 씩씩거리며 호위를 물리치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어서, 발이 빠른 사람을 보내 말을 보내오게 해야지."
온조는 호위를 두 명밖에 데리고 오지 않았다. 한 사람이 떠나자 온조의 곁에는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 온조는 걸으면서 욕을 했다.
운선산은 성 밖에 있었다. 말을 타고 귀성해도 두 시진이 넘게 걸렸다. 두 다리로만 걷는다면 날이 저물어도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먼저 떠난 그 호위의 발걸음이 빨라도 그가 사람을 데리고 말을 탄 채로 돌아온다 해도 날이 저문 뒤일 것이다.
온조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는 급히 사람을 마중하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해도 오늘 하루는 낭비하는 꼴이었다.
"육장봉! 내가 오늘 널 기억해 두었어!"
화가 잔뜩 난 온조는 참지 못하고 욕을 했다.
* * *
온조는 무거운 두 다리를 이끌고 강렬한 햇볕을 쬐며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육장봉과 월령안은 마차에 편히 누워 자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태수부에 도착했다.
"가서 너희들의 대인을 모셔오거라."
육장봉은 온조에 대해 그나마 후한 편이었다. 그는 즉시 마부더러 한 번 더 다녀오라고 했다.
마부가 온조를 다시 데려와도 온조는 공무를 논할 기운이 없을 테니까.
월령안은 그제서야 육장봉이 온조를 성 밖에 내버려 두었을 뿐만 아니라 마차와 말을 빼앗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온 태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만족하지 못한 남자의 분노는 항상 큰 편이다. 온 대인이 마침 걸려든 것이기에 육장봉을 탓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마차에서 한잠 잤더니 기운이 났다. 목욕을 마친 그녀는 쉬러 가지 않고 옆방의 서재로 들어가 온조와 상의할 얘기를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그녀와 익숙한 상인들에게 편지를 써 그들더러 서둘러 돈을 가지고 관성에 오라고 재촉했다.
돈을 버는 일에도 서두르지 않으면서 부자가 되기를 바라다니?
연속 수십 통의 편지를 쓰자 날이 저물었다. 월령안은 그제서야 붓을 멈추고 편지를 하나씩 잘 봉했다. 그리고 태수부의 하인에게 건네주며 가장 빠른 속도로 편지를 전하라고 했다.
관가에서 편지를 전하는 통로는 별로 안전하지 못하여 편지에 기재된 내용이 누설될 가능성이 있는 것 말고는 다 좋았다. 그녀는 편지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의 통로를 이용해 편지를 전하지 않았다.
편지를 보낸 월령안은 그제서야 여유가 생겨 하인과 육장봉이 어디 갔는지 물어보았다. 씻으러 간다던 사람이 한두 시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월 회장께 아룁니다. 대장군께서는 지금 앞뜰에서 온 대인, 척 대인과 함께 술을 마시고 계십니다."
세 사람은 술을 아주 사납게 마셨다. 모두 단지째로 들고 마셨다. 그러나 대인은 그더러 월 회장이 묻지 않는다면 굳이 이 말을 꺼내지 말고 술을 마신다는 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월 회장이 자기네가 손을 잡고 대장군을 취하게 하려는 것을 알고 막을까 걱정되어서였다.
"온 대인은 언제 돌아오신 것이냐?"
'반나절이나 걷고 술을 마실 기분이 있다니. 온 대인도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나 보네.'
"온 대인께서 한 시진 전에 돌아오셨습니다. 대인께서는 길에서 척 수비를 만나시고 함께 오셨습니다."
하인은 온 태수가 돌아올 때의 초라한 몰골과 척 수비 곁을 따르던 그 몇몇 건장하고 위엄이 넘치는 젊은 군관을 떠올리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월령안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멀쩡하더니 왜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 그래? 나까지 쑥스러워져 말을 못하겠네.'
월령안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한마디 분부했다.
"주방에 술 깨는 국을 준비하게 하거라. 그리고 식사를 올리라고 하거라. 배가 고프구나."
육장봉은 내일이면 떠날 것이다. 의외가 없는 이상, 오늘 아마도 온조, 척연과 함께 늦게까지 술을 마실 것이니 오늘 밤에는 그녀를 찾아와 작별 인사 따위를 하지 못할 것이다.
월령안은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좀 했다. 그러다가 세수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당탕탕!
한창 곤히 자고 있는데 술 냄새를 잔뜩 풍기는 육장봉이 내는 소리에 화들짝 깨고 말았다.
"미안하오. 깨우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
육장봉은 월령안 방 문가에서 넘어진 듯 휘청이며 일어났다.
"갑자기……, 당신이 너무 보고 싶고 서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소."
월령안은 말을 하지 못했다.
누구라도 곤히 자고 있을 때, 갑자기 술주정뱅이의 주정에 깨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육장봉을 달래어 되돌려 보내려 일어서려 했다. 그때 육장봉이 갑자기 다가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서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날 위해 직접 집을 꾸며 주었고 직접 옷을 지어 주었으며 직접 나에게 많은 편지를 써 주었소. 당신은 정성을 쏟아 날 위해 내가 좋아하는 양고기를 준비했고 큰돈을 들여 좋은 말을 찾아 주었고 당신은…… 당신은 날 위해 아주 많은 것을 해 주었소.
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내가 다쳤을 때 직접 날 보살핀 적이 없소. 내가 술에 취했을 때 날 보살핀 적이 없소. 그 삼 년 동안 당신은 비록 날 남편으로 섬겼으나 또 날 낯선 사람으로, 주나라의 대장군으로도 대했소.
당신은 살뜰하고 모든 것이 타당했지만 난 당신에게서 존경심밖에 보지 못했소. 당신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소. 월령안, 난 아주 슬프오……. 그 삼 년간 우리 둘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놓쳤소."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를 놓쳤고 서로를 알아 갈 기회를 놓쳤다. 또 삼 년 동안 서로를 사랑할 기회를 놓쳤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몸에 얼굴을 문지르며 '나도 서운하다'는 모습을 했다.
월령안은 우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육장봉을 밀치지 않았다.
"죄송해요, 저도 처음 누군가의 아내가 된 것이라서 잘하지 못했네요. 대장군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술주정뱅이와 도리를 따질 수 없었다. 달래는 것 말고 그녀가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좋소. 용서해 주겠소!"
육 대장군은 아주 대범했다. 말을 마친 그는 또 당당하고 당연하게 말했다.
"월령안, 걱정하지 마시오. 비록 나도 처음…… 처음 뭐요?"
술에 취한 육장봉은 원래의 강경한 자세와 자신감 대신 얼떨떨하고 다소 어리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육장봉은 곧 떠올리고 패기 넘치게 말했다.
"기억이 났소. 나도 처음이오. 그런데 걱정하지 마시오. 난 천부적인 기질이 뛰어나 뭐든 배우면 금방 익히오. 절대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겠소."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리가 지금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게 맞나?'
월령안은 화가 나서 육장봉을 밀쳤다. 그러나 겨우 육장봉의 머리만 옆으로 조금 민 셈이었다.
육장봉도 화를 내지 않고 진지하게 옮겨 왔다. 그리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월령안, 두려워하지 마시오……. 난 아주 가볍고 부드럽게 절대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겠소. 나도 당신이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아오. 걱정하지 마오. 나는 좋은 사내이니 당신의 말만 듣겠소."
그러나 육장봉도 입으로만 말할 뿐이었다. 말만 하고 몸은 월령안의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육장봉의 서운함을 듣고 그녀는 직접 보살피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금 마음이 아팠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는 단지 육장봉의 얼굴에 물을 끼얹고 싶을 뿐이었다!
'술에 취했다면서 이렇게 말을 똑바로 할 수 있는 건가?
술에 취했다면서 이렇게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골라서 할 수 있는 건가? 술에 취했다면서 한 글자마다 얼버무리지 않고 이렇게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건가?'
육장봉은 완전히 술기운을 빌려 앙탈을 부리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화가 나 육장봉을 밀치고 말했다.
"당신 일어나지 않으면 난 당신이 취한 척하는 줄로 알 거예요.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저한테 허튼수작을 하려는 것으로 생각할 거예요."
"취한…… 척하지 않았소. 정말 취했소."
육장봉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척연과 온조는 날 질투하오. 내가 당신과 혼인한 것을 질투해서 나한테…… 술을 열 항아리나 마시게 했소!"
"그들이 마시게 한다고 마셨어요? 전 당신이 그렇게 멍청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요!"
월령안은 육장봉 몸에서 풍기는 술내를 맡고는 그 열 항아리의 술이 적지 않은 양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육장봉은 조금밖에 안 취해놓고 내 앞에서 많이 취한 척하는 거구나.'
"난 그들에게 당신을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소."
육장봉은 월령안을 꽉 끌어안았다.
"관성에서 그 둘이 당신을 보호한다면 난 좀 시름을 놓을 수 있소."
그래서 그는 오늘 온조와 척연이 술을 얼마 권하든 다 마신 것이다.
만약 그가 저자세로 나와서 월령안이 관성에서 편히 지낼 수 있다면 그는 온조와 척연 앞에서는 저자세일 것이다.
월령안이 떠나면 그때 가서 그들을 혼내면 되는 것이었다!
월령안은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손을 들어 육장봉을 안았다. 그녀는 육장봉과 고맙다고 말하지 않고 대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이 지켜 주시니 너무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