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8화 어떤 요구든지 다 들어주겠어
조의박은 낡은 옷을 입고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며 행동거지가 동네 노인과 같아서 소박하게 보였다. 하지만 사실상 그의 각종 거동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눈에는 허장성세하고 위선적인 것이었다.
"만약 북요가 금나라와 손을 잡는다면 우리는 위험해. 너희들도 알다시피 서하도 그렇게 본분을 지키는 곳이 아니야. 그리고 조정의 대신들은 다시 전쟁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을 거야."
척연은 육장봉과 온조에게 구석에 웅크리고서 존재감이 극히 낮은 서하를 잊지 말라고 상기시켰다.
서하는 국력이 강하지 않아 주나라에 굴복했다. 그러나 일단 기회가 주어지면 그들 역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주나라에서 고기 한 덩어리라도 물어뜯어 내려 할 것이다.
주나라가 패배하면 다가올 것은 치욕적인 노역뿐일 것이다.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월령안을 데리고 관성으로 왔잖나."
육장봉은 냉담하게 두 사람을 흘겨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둘 다 내가 월령안을 너희에게 소개하는 것은 그녀를 돕는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래서 너희가 편견을 가지고 그녀를 안팎으로 견제했잖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장봉, 우리는…… 네가 미인계에 빠져 향락에 취해 있을까 봐 걱정했었어."
척연은 멋쩍어하며 코를 매만졌다.
온조는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온화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장봉, 장사는 장사이고 사적인 교분은 사적인 교분이야. 이건 월령안이 한 말이다."
"내가 월령안을 너희에게 소개한 것은, 월령안이 아닌 너희들을 돕는 일이었다."
육장봉은 두 사람을 하찮게 쳐다보면서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싫어 한마디만 했다.
"사국 호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생각해 봐."
"무엇을 의미하는데?"
척연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냥 장사해서 돈을 버는 거잖아. 오, 맞다…… 또 정탐꾼들이 정보를 쉽게 주고받을 수도 있어."
온조는 눈동자에 영리한 빛이 반짝였다.
"네 뜻은…… 상업으로 북요를 비롯한 주변 나라들을 잠식하고 마비시킨다는 말이냐?"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길에 월령안이 나에게 사국 호시의 깊은 의미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 주었어."
육장봉이 좀 전에 월령안을 도와 말하지 않은 것은 월령안의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어떤 말은 사적으로 하는 것이 더 적합했다.
그가 많은 사람 앞에서 월령안을 도와 말한다 해도, 온조와 척연의 눈에는 그가 미인을 위해 강산을 말아먹는 얼간이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적으로 말하면 입장이 공정한 것이다.
온조와 척연의 표정이 엄숙해지자 육장봉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북요인들은 유목을 생업으로 삼고 있지. 하지만 겨울이 되면 날씨가 추워진다. 소와 양은 먹을 풀이 없어 대량으로 얼어 죽거나 굶어 죽지. 소와 양이 없으면 그들은 살아가기 어렵고 초원의 생존 법칙에 따라 남의 재산을 약탈해 먹고살 수밖에 없어. 이전에 그들은 부락 사이에서 서로 약탈했지. 야율 가문이 각 부락을 연합해 북요를 세운 뒤, 그들은 주나라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 시기에 관성의 사국 호시가 열린다면, 그들은 일부 소와 양만으로도 평소에 막대한 인력과 물자를 소모해야만 빼앗을 수 있는 양식과 의복을 바꿀 수 있어. 그렇다면 이익을 위해 야율 가문을 지지하는 부락들이 어떤 선택을 할 거 같나?"
육장봉은 말을 마치고 입꼬리를 살짝 올려 능글맞게 웃었다.
그는 온조와 척연의 놀란 표정을 전혀 의로 여기지 않았다.
"잊지 마. 북요는 우리 주나라와 다르다. 북요는 여러 부락이 자치하므로 북요 황제의 수중에는 병마가 그리 많지 않아. 주나라를 공격하려면 각 부락에서 출병해야 해.
그 부락들이 예전에 출병했던 것은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야. 만약 그들이 겨울만 되면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소와 양으로도 원하는 물자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어?"
"당연히 물물교환을 하지! 그 부락들이 멍청한 것도 아니잖아. 출병하여 주나라를 침략하면 손해 보는 것은 자기 백성이니까."
척연은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제수씨, 이건…… 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거잖아! 정말 고수야!"
따로 선택할 것이 있겠는가. 평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면 누가 싸우기를 원하겠는가.
북요의 기병들도 부모가 낳고 기른 사람들이다. 많은 부락은 병마 자체도 많지 않았다. 어떤 부락은 심지어 많은 용사들이 전쟁터에서 죽어 다른 부락에 침략당하기도 했다.
그 부락들이 출병해서 싸우는 것은 부족한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서였다. 싸울 필요 없이, 겨울철에 먹여 살리기도 힘든 소와 양으로 충분한 자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이 왜 싸우겠는가.
온조는 줄곧 차분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 그는 오히려 척연보다 더욱 흥분했다.
그는 두 눈으로 빛을 뿜으며 육장봉의 팔을 와락 잡고 감격스레 말했다.
"장봉! 월 회장에게 전해 줘! 그녀의…… 어떤 요구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겨울이 오기 전까지 사국 무역지역을 지으면 돼! 오십 년 경영권은 물론, 백 년 경영권이라도 내가 조정에서 받아다 줄 거라고."
어쩐지 월령안은 사전에 그들에게 계획을 알려 주는 것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자기편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그녀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월령안은 준비 없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관성으로 오기 전에 이미 충분한 준비를 했다. 일찍 관성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온조와 척연의 가문, 경력, 성품까지도 낱낱이 조사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알아내지 못한 것은 온조와 척연이 놀랍게도 육장봉과 친한 사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품을 한결 덜 들일 수 있었다.
어떤 말은 육장봉이라는 친한 친구가 두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이 그녀가 하는 말보다 훨씬 무게감이 있고 믿음이 가는 것이다.
육장봉은 의심할 바 없이 이 일을 아주 멋지게 해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온조와 척연이 먼저 찾아왔다.
온화하면서도 거리감을 두고, 열정적인 가운데 얕잡아보는 눈치를 보이던 전과는 달리 두 사람은 멀리서 월령안을 보자 의욕이 충만해 앞으로 다가왔다. 말끝마다 제수씨를 부르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들이 헤어진 지 몇 년은 되는 남매인 줄 알 정도였다.
온조는 그나마 조신하여 그녀가 여자인 것을 유념했다. 설령 아무리 흥분하고 열정적이라도 시종일관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척연은 이런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오자마자 그녀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어깨동무를 하려고 했다.
다행히 육장봉이 반응이 빨라 척연의 목을 끌어안고 그를 데리고 나가 '감정 교류'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하마터면 척연에게 '형제' 대우를 받을 뻔했다.
척연은 육장봉에게 끌려 나가면서 내내 아우성을 쳤다. 큰 소리를 말했다.
"제수씨, 구해 주세요. 목숨을 구해 주세요."
예의상 월령안은 온조에게 한마디 물었다.
"온 대인,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둘이 어려서부터 맞지 않아서 자주 싸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척연은 육장봉에게 세게 나가지 않을 겁니다."
온 태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투도 자연스러웠다. 어제처럼 거리감을 두지 않았다.
월령안은 온조가 먼저 호의를 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농담조로 말했다.
"대인께서 농담하시군요. 저는 대장군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척 수비를 걱정하는 겁니다."
"그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척연은 얻어맞을 만큼 얻어맞아 이미……."
'적응되었죠.'
뒷말은 미처 뱉기도 전에 척연의 비참하고 막막한 목소리에 의해 중단되었다.
"육씨! 사람을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얼굴에 상처가 나면 네 형수한테 어떻게 설명하라는 거야. 온씨, 이리 와 봐…… 육씨가 미친 것 같아. 꼭 내 얼굴만 후려갈긴단 말이야. 그것도 힘도 쓰지 않고 살짝살짝 친다고.
아, 악, 아악…… 내가 잘못했어! 육씨, 좀 살랑살랑 쳐! 얼굴, 이건 내 얼굴이잖아. 주걱이 아니라고. 좀 살살 쳐!
빌어먹을, 육씨, 자네 얼마 동안 참은 거야? 얼마 동안 욕망을 분출하지 못한 거야? 혹시 제수씨가 침대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니겠지?
하하하…… 내 말이 적중했나 보네? 육씨, 자네 되긴 되는 거야? 제수씨가 자네 잠자리 능력에…… 아,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장봉, 형님! 앞으로 형님으로 모실게. 육씨 형님! 내가 잘못했어!"
육장봉 보다 나이가 많은 척연의 비명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육장봉이 데리고 멀리 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가 해야 할 말이든, 하지 말아야 할 말이든 모두 말하고 난 뒤였다.
월령안은 이미 말하기가 싫어졌다.
그녀는 속으로 이미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척하며 담담하게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잠자리? 하!'
온조도 그녀만큼 어쩔 줄 몰랐다. 부자연스럽게 헛기침을 하고서 말했다.
"저기…… 제수씨, 우리 공당에 갈까요? 일단 본론부터 이야기할까요?"
"좋아요."
월령안은 이미 화가 나서 제수씨라는 호칭을 따질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가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 * *
사국 호시에 관한 일은 월령안이 오랫동안 준비해 왔으므로 머릿속에 완벽한 계획이 있었다. 온조는 이 거래를 성사시키려 마음먹자 더는 그녀를 난감하게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순조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전 동안에 큰 틀을 정했다.
월령안은 오전 내내 온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편견을 갖지 않는 온 태수는 그야말로 훌륭한 협력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부귀한 가문 출신으로서 어려서부터 모자람이 없이 자랐다. 금전과 권세보다는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려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더욱이는 주나라의 백성, 주나라의 강산과 사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했다.
물론 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온조가 하는 말에서 속뜻을 알아차린 월령안도 그에게 약속했다.
"이 일이 성사되면 대인께서 청사에 이름을 남기실지, 주나라 역사에 한 획을 그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이 일은 나라와 백성에 이익이 되는 좋은 일입니다. 제가 비록 상인이지만 주나라 강산에 손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수씨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그럼 아무 걱정도 하지 않겠습니다."
온조는 눈앞의 여유 있고 침착한 월령안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감개무량해졌다.
월령안은 외모가 화사하게 아름다웠다. 눈동자에는 자신감이 차 넘쳤으며 규방 여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빛과 생기가 반짝였다. 보기만 해도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