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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77)화 (677/1,004)

677화 죽마고우

월령안은 시종일관 여유 있고 차분했다. 말할 때도 기세등등한 방자함이나 거만함이 없이 느긋하게 한담하듯 말했다.

하지만 온조나 척연이나 모두 월령안의 말에 담겨 있는 무언의 조소와 살기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온조는 그래도 괜찮았다. 한 지역을 집권하는 조정의 대신이 되면서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단련되어 있었다.

반면 척연은 무안해했다. 월령안의 말에 참지 못하고 쭈뼛쭈뼛하며 물었다.

"제수씨가 말하는 무역지역을 세우려면 돈을 얼마쯤 투자해야 하나요?"

사실 그는 언제쯤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해 더 묻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가산을 탈탈 털어서라도 투자할 것이다.

월령안은 진작 척연의 물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고 척연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당신들이라면…… 팔십만 냥 내지 백만 냥 정도 투자해 잔물결이 찰랑이는 소리를 한 번쯤 있을 수 있을 거예요."

'팔십만 냥 내지 백만 냥이라고?'

척연은 가슴을 움켜잡고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

"척씨, 온씨 가문이 백 년 동안 모은 재산이 그 정도이겠지요. 게다가 대부분이 골동품이나 서화여서 금방 돈으로 바꿀 수 없을뿐더러 섣불리 팔 수도 없을 거예요."

월령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투자할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해도 그저 잔물결 소리만 듣고 성사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장사는 월령안이 없으면 정말 안 되었다.

온조는 더욱 실제적이라 구체적인 것을 물었다.

"그럼 제수씨가 하면요?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해야 돈을 거둬들일 수 있나요?"

"저는 돈이 없어요."

월령안은 두 손을 벌려 보였다. 더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

척연은 한껏 숨을 몰아쉬고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돈이 없으면서 이렇게 큰 장사를 하려는 겁니까? 어떻게 하려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당신들이 저를 버리고 직접 하게요?"

월령안이 농담조로 물었다.

척연은 살짝 민망해했다. 하지만 온조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제수씨가 이야기했잖습니까. 상업계에서 가장 값어치가 없는 건 생각이라고요? 똑같은 생각이라도 제수씨는 할 수 있지만 저희는 할 수 없잖아요."

"하지만 상업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도 생각이에요. 그리고 값어치가 없어도 제가 왜 말해야 하나요? 온 태수께서는 당신들과 장봉의 관계 때문에 제가 당신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월령안은 온조의 말을 말투까지 똑같이 따라 하여 그대로 본인에게 돌려주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본래 이렇게 옹졸한 사람이었다. 원한이 생기면 당장 갚거나 갚지 못하면 책자에다 기록해 놓고 매일 뒤적거리면서 자신에게 잊지 말라고 되뇌었다.

월령안은 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온 대인, 지역적 우세가 있는 곳이 관성뿐만은 아니에요. 저는 요성(遼城)에 가서 요성 태수를 설득해 그곳에 주나라와 북요 간 양국 호시를 열 수도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욱장봉에게 달콤한 미소를 날리며 말했다.

"대장군, 제가 요성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하면 저를 차 던지고 혼자 독식하시려고 하지 않겠죠?"

요성은 육장봉의 세력 범위였다. 육장봉이 뒤를 봐주면 못할 장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요성을 선택하지 않았고 물론 선택할 수도 없었다.

주나라와 북요의 전쟁은 바로 요성 접경 지역에서 일어났다.

두 지역의 백성들은 서로 물과 불의 관계로 상호간 서로를 적대시했다.

두 나라 군대가 국경에서 마찰이 생겨 언제 싸움이 날지 모른다. 그곳은 장사하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랑은 다르지. 마음을 푹 놓게."

육장봉은 온조와 척연을 경멸 어린 눈빛으로 스쳐 보았다.

만약 월령안이 없었다면 진작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 대련했을 것이다.

그는 사전에 월령안에게 그들 사이 거래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월령안을 괴롭히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말끝마다 월령안을 차 버린다고 하다니. 온조와 척연이 진심으로 했던 말이 아니라 그냥 월령안을 떠보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사람을 온조와 척연이 떠볼 필요가 있단 말인가.

척연은 찝찝한 표정으로 거짓 웃음을 지었다.

"우리도 그냥 말만 했을 뿐이에요. 독식하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제수씨는 우리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자기 사람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겠나요."

온조도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수씨, 미안합니다. 저나 척씨나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냥 제수씨가 남을 너무 쉽게 믿어 혹시라도 손해를 볼까 봐 일부러 말해 본 것뿐입니다. 제수씨께서 경계심을 높일 수 있게 말입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척연의 찝찝함에 비해 온조는 태연하고 여유가 있었다. 또한 상대적으로 진실되어 보였다. 정말인지 가짜인지에 대해서는 월령안도 웃으며 신경 쓰지 않았다.

좀 전에 한 말이 진심인지 가식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의 태도였다.

"온 대인, 척 대인께서 과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마음에 두지 않을 겁니다. 제가 방금 한 말도 좀 날이 섰습니다. 두 대인께 사죄드립니다. 두 대인께서 널리 양해해 주시고 저와 따지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월령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각각 읍을 하며 예를 올렸다.

온조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 예를 받아서는 안 되었다. 육장봉은 뻔뻔스럽게 그 같은 문관에게도 대련하자고 할 수 있었다.

온조가 잠깐 정신을 판 사이 월령안은 예를 마치고 다시 척연에게 예를 올리며 사과했다.

척연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아니, 아니, 아니에요. 제수씨, 모두 자기 사람이잖습니까. 제발 저에게 예를 올리지 마세요. 저는 당신네 육씨하고 대련할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그러나 월령안은 겉치레를 하지 않았다. 척연이 말하는 사이 그녀는 이미 예를 마쳤다.

척연은 울상이 되어 가련하고도 억울한 표정으로 육장봉을 바라봤다.

"장봉, 이건…… 진짜 나를 탓할 수는 없잖아."

"허!"

육장봉은 척연에게 알아서 설치라는 눈빛을 주었다.

척연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끝장이군!'

월령안은 시선을 내려 눈 속의 웃음기를 감췄다. 세 사람의 날 선 겨룸을 못 본 척했다.

월령안은 자리에 앉아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먼저 온조와 관성의 풍속과 인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온조가 이야기하고 월령안이 들어주는 형태였다.

온조가 말을 끝내자 월령안은 또 그녀가 관성에 들어선 후의 견문을 털어놓으며 척연이 군사를 잘 다스렸다고 칭찬했다. 척연은 곧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았다.

술자리가 반쯤 지나자 어쩌다가 육장봉과 온조, 척연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요컨대 초반은 월령안이 말하고 셋이 듣고, 후반에는 셋이 말하고 월령안이 들었다.

월령안은 화젯거리를 잘 끌어내었다. 설령 육장봉같이 말수가 적은 사람도 그녀가 던지는 화젯거리에 따라 가끔 두어 마디씩 맞장구를 치곤 했다.

그러나 월령안은 화젯거리를 끌어내기만 하고 전혀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다. 화젯거리를 던진 다음 더는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하면서 조금도 이목을 끌지 않았다.

육장봉, 온조와 척연 세 사람이 한창 흥이 올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월령안은 때를 맞추어 지쳐서 먼저 가서 쉬겠다며 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세 사람은 여러 해 동안 만나 보지 못했다. 당연히 할 말이 많았다. 사실 어떤 말들은 월령안 앞에서는 하기 불편했다. 그녀가 자리를 뜨는 것은 마침 그들의 마음에 쏙 들었다.

월령안이 자리를 뜨자 온조와 척연은 거리낌 없이 말도 더욱 편하게 했다.

척연은 술잔을 들고 육장봉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장봉, 월 회장처럼 풍모와 재능이 이처럼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눈이 멀어 너를 마음에 두었지? 넌 참 운이 너무 좋단 말이야."

육장봉은 어이가 없었다.

온조는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장봉, 너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한 거니? 왜 이혼하려고 한 거야? 진짜 최면에 걸렸던 건 아니겠지?"

육장봉은 할 말이 없었다.

이 일은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이 한데 모이면 물론 일상적인 한담을 할 수 없었다. 더욱이 한가하게 술이 나 마시며 젊은 시절을 회상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조정의 풍운과 천하의 정세를 이야기했다.

월령안이 자리를 뜬 후 세 사람은 더는 술을 마시지 않고 다실(茶室)로 갔다.

세 사람은 하인들에게 시중을 들리지 않고 직접 차를 끓여 마시며 서로의 소식을 교환했다.

국경 지대는 줄곧 평온하지 않았다. 북요와 금나라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북요는 몇 해 전에 참패한 뒤부터 줄곧 달가워하지 않았다. 힘을 가다듬어 다시 쳐들어오려고 시도하면서 지난날의 기염을 다시 세우려 했다.

"올해 북요의 부락 여러 군데가 모두 가뭄을 겪었어. 연거푸 몇 달 동안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초원에 푸른빛을 보기도 어려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탑탑(塔塔) 주변의 몇몇 부락이야. 그 몇몇 부락이 손잡고 북요 수도에 가서 북요 귀족들을 상대로 유세를 벌이고 있어. 그들이 북요 황제를 설득해 다시 주나라에 출병하기를 바라는 거야."

온조는 말을 마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봉, 우리는 아마 북요와 다시 전쟁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육장봉도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금나라 대황자 완안경은 얼마 전 청주에 나타났다. 청주의 조씨 삼형제에게 많은 양식을 샀지."

"그들은 무엇을 하려는 거야?"

척연도 월령안 앞에서의 허술한 모습을 거두고 엄숙하고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금나라는 북요와 손잡고 주나라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다. 청주의 그 몇몇 노친네들은……."

육장봉은 조소 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들은 호랑이를 몰아 늑대를 잡으려 하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 후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거야."

"조의박 그들이 미친 거 아니야? 그들은 어찌 자신들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확신하는데? 호랑이를 불러들이면서 왜 자기들은 공격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데?"

온조는 한껏 숨을 들이켰다.

그는 일찍부터 조의박 세 형제가 야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이 스스로 왕으로 책봉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나라의 강산을 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만방자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조의박 그 사람은…… 내가 청주에서 한 번 만났었어. 겉으로는 겸손하고 온화한 것 같지만 실상은 안하무인이고 스스로를 너무 높이 보는 거야. 그는 이 세상에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바보이며, 자신의 손아귀에 놓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방자함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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